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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생활(2) (잠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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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생활(2) (잠 18:20-21)

(잠18:20-21)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1.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이런 팻말을 목에 걸고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걸인에게 당신이 이렇게 해서 구걸하는 액수가 하루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10프랑(14,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행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인의 목에 걸려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으며 다른 어떤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그 행인이 그 곳에 다시 나타나서 걸인의 손을 붙잡자 걸인은 감격해 하며 물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가신 뒤 요사이는 전보다 5배나 되는 50프랑(70,000원)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 놓았기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 그러자 행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써 있는, ‘저는 때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 말 대신에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써 놓았을 뿐이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준 프랑스의 시인인 로제 카이유의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 이란 무미건조한 말만 가지고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지만, 거기에 좀 더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말, 같은 생활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말, 선한 말, 지혜로운 말은 그 열매,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혜서인 잠언의 기록 목적을 잠언 1:2-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1:2-6)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이 지혜서 구구절절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는 단어가 “말”, “혀”, “입술” 등으로 언어생활이 지혜로운 삶에 그만큼 중요함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말에 따라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악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말에 따라 행복하게 되기도 하고 불행에 빠지기도 하며, 말에 따라 축복을 받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며, 존경을 받기도 하고 멸시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말은 그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지을 만큼 중대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을 얻었다고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구원받게 됩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입으로 예수를 주, 구세주로 시인하지 아니하고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심판날에 그 말로 정죄함을 받게 됩니다.”

(마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세주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는 고백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7:19에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짓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사57:19)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짓다.”는 말은 ‘창조하다.’(히브리어, ‘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입술의 열매”, 곧 사람의 말대로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에 상관없이 그 말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사람의 지식 유무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소유의 많고 적음에 무관하게,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입술의 열매”라는 표현은 사람의 말은 ‘씨’와 같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말이 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씨앗은 아주 작지만 그 속에는 생명을 잉태시키는 생명의 근원이 숨어 있습니다. 씨앗은 적당한 온도와 수분 등 알맞은 조건만 충족되면 새싹을 피우고 큰 나무가 돼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 터전에 좋은 씨앗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포도나무를 심으면 포도 열매를 거둡니다. 가시나무 씨를 뿌리면 고통을 안겨주는 가시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축복을 심으면 복을 거두고, 저주를 심으면 저주를 거두게 됩니다.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비판을 심으면 비판을 거두고 용서와 사랑을 심으면 기쁨과 생명을 거두게 됩니다. 이처럼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씨가 좋아야 그 열매가 좋듯이, 좋은 말, 선한 말, 아름다운 말, 지혜로운 말을 뿌리게 될 때 행복한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됩니다. 참으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됩니다.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됩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할 때, 사울 집안의 시므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삼하16:7) 살인자여! 악한이여! 여기서 꺼져라!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도다.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도다!

이때 신하 중 하나가 “어째서 왕은 이 죽은 개 같은 녀석이 왕을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제가 가서 당장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고 하자 다윗 왕은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나를 저주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네가 어째서 이렇게 하느냐? 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내 몸께서 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내버려 두어라.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삼하16:8-12) 며 만류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길을 갔으나 시므이는 비탈길로 계속 따라오면서 여전히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려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훗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왕명을 거역한 시므이를 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왕상2:44) 여기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는 바로 피난길의 다윗 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던 행위를 말합니다. 솔로몬 왕은 시므이가 왕명을 거역했지만 과거 다윗을 저주한 그 저주가 시므이의 머리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결국 시므이는 저주의 씨를 뿌려 저주의 열매를 거두어 백발이 되기 전에 참수형을 당했습니다.(왕상2:46) 이를 두고 일찍이 다윗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109:17-18)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 갔나이다. 

여름휴가를 얻은 한 가족이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아빠를 보고 아들도 따라 가니까 엄마가 깜짝 놀라서 아들을 소리쳐 불러냈습니다. “너 어쩌려고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해?”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불평합니다. “아빠는 들어가도 그냥 두고 왜 나만 혼내는 거야?” 이에 엄마가 “네 아빠는 생명보험에 들었단 말이야.”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자고 하는 말일지라도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입술의 열매를 짓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언어생활로 행복과 축복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지혜로운 생활을 위해서는 믿음의 말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때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가나안 땅 접경인 가데스 바란 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합니다.(민13:1-3) 각 지파별로 한 명씩 12명이 정탐꾼으로 선택되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모세와 백성 앞에 보고합니다.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먼저 보고합니다.

(민13:27-29) 우리가 그 곳에 가 보니 정말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것이 거기서 가져온 과일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들은 아주 크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거인 아낙 자손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남쪽 지방인 네겝에는 아말렉족, 산간 지방에는 헷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이, 지중해 연안과 요단 강변에는 가나안족 등 결코 정복하기 불가능한 대단한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같은 보고에 백성들이 요동하기 시작하자 갈렙이 나서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외칩니다.“자,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민13:30) 또 다시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합니다.” 며 그 땅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며 반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탐지한 땅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민13:31-33) 그 땅에는 힘 센 장사들이 수두룩하고 사람들의 키가 모두 컸으며 게다가 우리는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 아낙 자손들도 거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느껴졌는데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10명의 정탐꾼이 탐지한 땅을 악평하며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여기며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보고를 거듭 주장하자 온 백성들이 밤새도록 소리 높여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모세를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다 잡혀갈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자, 지도자를 뽑아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라며 백성들을 선동합니다.(민14:1-4)

바로 그때 땅을 탐지하러 갔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으며 모든 백성에게 외칩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아주 좋은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좋게 여기신다면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하여 기름지고 비옥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거역하지 마십시오. 그 땅 사람들은 우리 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민14:7-9) 그러나 군중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위협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여호와의 영광의 광채가 성막 위에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14:28-30)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 분명히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믿음을 가지지 못한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우리가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라고 말한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것도 가나안 땅을 탐지한 날 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간을 광야에서 원망 불평하는 죄악을 걸머지고 죽었습니다.(민14:34) 광야의 땅이 갈라져 죽기도 하고, 여호와의 불에 타서 죽기도 하고, 불뱀에 물려 죽기도 하고, 염병으로 죽기도 하고, 전쟁에서 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악평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를 원망케 한 10명의 정탐꾼들은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민14:36-37)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때를 기준으로 해서 20세 이상 된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한 명도 예외 없이 40년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며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생존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40년 후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수14:6-15)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여호수와 갈렙의 말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말,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진 말을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의 기도만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말을 모두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신다고 했습니다.

(말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는 말, 생각까지도 들으십니다.

(시139:2-4)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십니까?(시19:14)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언어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언어가 아닌 패역한 말(혀)는 베임을 당할 것입니다.(잠10:31) 다시 말해 사람의 모든 말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패역한 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말 등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발람이라는 사람이 발락이 주는 엄청난 뇌물을 받고 그의 주문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발람의 입술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축복의 말을 담아서 축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아무리 악독한 말을 들어도 결코 그대로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독한 말, 저주의 말을 축복으로 바꾸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해서 욕을 먹고 조롱을 받는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말로 이웃을 축복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이웃을 축복하는 생활이 선한 믿음의 언어생활입니다.
선한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지만 악한 말은 사탄이 좋아하는 말입니다.
선한 말은 정직하지만 악한 말은 거짓을 말합니다.
선한 말은 이웃을 칭찬하지만 악한 말은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선한 말은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지만 악한 말은 이웃의 허물을 선전합니다.
선한 말은 미담을 나누지만 악한 말은 험담을 퍼트립니다.
선한 말은 온량하지만 악한 말은 과격합니다.
선한 말은 긍정적이지만 악한 말은 부정적입니다.
선한 말은 창조적이지만 악한 말은 파괴적입니다.
선한 말은 화목하게 하지만 악한 말은 이간시킵니다.
선한 말은 무엇이든 살리지만 악한 말은 죽입니다.
선한 말은 모든 종류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악한 말은 병들게 합니다.
선한 말은 흥하게 하지만 악한 말은 피차에 망하게 합니다.
선한 말은 행복하게 하지만 악한 말은 불행하게 만듭니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지만(잠16:24)
악한 말은 독사의 독과 같고 칼로 찌름과 같이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잠12:18)
선한 말은 감사하는 말이지만 악한 말은 원망 불평합니다.
선한 말은 남을 높이지만 악한 말은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선한 말은 고상하며 품위가 있지만 악한 말은 누추하고 더럽고 상스럽습니다.
선한 말은 덕을 세우지만 악한 말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하게 합니다.
선한 말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지만 악한 말은 어리석게 만듭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벧전4:11)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웃을 축복하는 선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어느 누구라도 저주할 권한이 없습니다. 왕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심중에 왕을 저주하지 말고, 아무리 불의한 부자일지라도 침상에서 그 부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10: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어떤 젊은이가 버스에 탔는데 시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자 운전기사에게 말했습니다. “기사 아저씨, 이 똥차 왜 빨리 출발 안하는 거예요?” 운전기사가 젊은 사람을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합니다. “손님, 똥이 차야 똥차가 출발하죠.” 우스개로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세치 혀를 잘못 놀리면 사람이 똥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 말입니다.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이 크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기업체 커뮤니케이션 특강에서 강사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더니 교육생 한명이 손을 들고 “교수님, 그게 다 옛말입니다! 요즘은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라고 말하더랍니다. 오늘의 세태를 반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는 가는 말도 고울 뿐 아니라, 오는 말이 아무리 곱지 않다 해도 가는 말을 곱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구박을 당하고 욕을 먹어도 말로 복수하지 마시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언어생활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 되시는 성도”(벧전2:9) 여러분은 가정과 자녀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민6:22-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이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믿음을 가지고 이웃들을 축복하는 입술의 열매가 생활 속에 풍성한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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