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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서 제자 삼으라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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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제자 삼으라 (마 28:16-20)

유대인들의 지혜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랍비 위원회가 있어서 나라 안을 순회하며, 도시나 마을이 얼마나 잘 경비되고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어느 날 한 읍에 도착한 랍비들이 그 곳 읍장에게 물었습니다.
“이 읍의 방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읍장은 한 무리의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망대로 쓰는 작은 요새를 가리키며 대답했습니다.
“이 병사들이 지킵니다.”
랍비는 놀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읍을 지킨다면 이 읍의 장래가 암담하오.
이 읍은 병사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교육이 지켜주는 것이오.
그런데 그대들은 왜 우리에게 학교를 보여주지 않는 거요?”

유대인들은 아버지보다 교사를 더욱 중요시 합니다.
만약에 자기 아버지와 교사가 한꺼번에 적에게 붙잡혀 노예시장에 팔려갔는데, 한 사람 밖에 사올 돈이 없다면 먼저 교사를 구해야합니다. 아버지는 다만 자식을 이 세상에 데려왔을 뿐이지만, 교사는 사람을 영원한 세계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돈보다 책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책과 돈을 동시에 땅에 떨어뜨렸다면 먼저 책부터 집어 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 같은 유대인의 배경을 가지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역시 한 사람의 유대인으로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두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세기1:28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시니라.”

이것을 우리는 문화명령이라 합니다. 이 명령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처음명령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자 하나님처럼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살라하신 명령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마테복음28:19,20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것을 복음명령이라 합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죄로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하라 하시는 복음전도의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이 복음명령을 통하여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가끔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을 만나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봅니다. 세상이 너무 타락했다든지, 정치가 부패되었다든지, 교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둥 열정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세상에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이 때마다 우리 가슴에 들려오는 한 마디의 소리가 있습니다.
“네가 바로 세상의 소망이 되어라.”
예수님은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탄식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가르치시고 훈련하시고, 당신 스스로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시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네가 또 한 사람의 작은 예수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가 되어라”

주님은 무엇보다 먼저 내 자신이 제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28:16이하의 말씀입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예수님의 이 말씀은 누구에게 전하는지 분명한 한계를 정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하십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신실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다음 비로소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진리라고 모든 사람에게 다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준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보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 모두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제자입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아직도 젖을 마시는 어린아이입니까?
예수님은 모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자라 불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나섰습니다. 스승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1.제자 됨은 존재의 정체성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은 이와 같다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내이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소금이 될까? 빛이 될까? 산위의 동내가 될까? 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자식이 어떻게 하면 내 아버지의 자식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존재의 문제는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식과 인정의 문제입니다.
자식은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자식의 관계는 고민하고 노력해서 얻는 자격증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자녀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답게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도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 자신의 존재됨에 대한 나 스스로의 인식 아래 이루어집니다. 소금은 어디서든지 녹아 맛을 냅니다.
녹아내리기 위해서 투쟁하지 않습니다.
빛은 이미 켜져 있습니다.
내 스스로 빛을 발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힘써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 자신이 빛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빛으로 살면 됩니다.
산위에 있는 동내도 그렇습니다.

제자로 사는 것은 특별해야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존재방식의 문제이지 존재의 변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존재는 이미 변화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5:17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하여 노력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새로워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여러분의 자녀가 와서 말합니다.
“아빠, 나 정말 아빠의 아들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 아빠 DNA 검사를 해봐야겠어.”
그래서 DNA 검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와서 말합니다.
“그 DNA 검사가 잘못 된 것 같아 다시 해봐야겠어. 왜 아빠처럼 살지 못하지?“
이 정도 되면 철저한 것이 아니라, 정신 분석을 받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신을 제자로 불러주시고 제자로 인정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금이든, 빛이든, 산위의 동내이든 그 존재는 항상 그곳에 있지 산위에 있는 동내가 어느 날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다시 산 위로 올라가는 것  아닙니다. 소금이 어느 날 고추장이 되었다가 어느 간장이 되었다가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기 인식이 분명해야합니다.
신분은 이미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안과 밖이 동일해야합니다. 투명해야합니다.


2.제자는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삻을 보고 모방하고 배웁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만든다.’는 말은 복제하여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자신과 같은 제자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를 삼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11:1에서 ‘내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제자가 된 것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아 제자가 되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정한 규범을 가지고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람들에게 머리에 쌓이는 지식보다는 행할 일을 더 자세히 일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니?” 하고 제안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명령하셨고, 제자들은 수행하였습니다.

제자란 그의 스승의 삶을 살도록 요구받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점차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삶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제자도(discipleship)는 지식의 전달이나 홍보가 아니라, 생명의 교류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6:63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므로 제자도란 스승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가는 것 이상입니다.

예수님이외에 세상의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제자는 만들어져 갑니다. 완성된 제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완전에 빗대어 우리자신의 부족함을 논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고 교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부족함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해야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일생동안 제자여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끊임없이 부족함을 고백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되고자 하는 도전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항상 바라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지금 이곳에서 이와 같은 일을 접하셨다면 어떻게 하실까?
지금 예수님이 여기에 계시다면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실까?
이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3.이런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한 사람을 소개하면 바로 요셉입니다. 
창세기39:2-4말씀입니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일과 재산을 맡겨서 관리하게 하였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본인이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 주인까지 그 사실로 감동을 받았고, 그 때문에 요셉은 신뢰를 받았고, 형통하는 삶을 삽니다. 이 삶은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함께 있을 때나, 공중 앞에 설 때나 회중 가운데 있을 때나 항상 동일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투명합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옆을 보아도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신뢰할만합니다. 제자들이 이런 삶을 부담스러워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과 밖을 다르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이것이 부담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4.제자가 제자답게 살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오순절입니다. 성령의 강림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 전까지 제자들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혼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신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 속에 오셔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 때 제자들은 제자 됨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1:8에서 증언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의 약속은 실로 혁명적인 변화를 선언한 것입니다.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따로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증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따로 행동 강령을 정하거나 노력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함께 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제자는 철저히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전에 개척교회를 할 때는 목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였습니다.
부목사님들과 의논을 하였지만 거의 일방적인 지시의 형태였습니다. 장로님들과 의논도 하였지만 거의 내 생각에 동의를 구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교회였기에 가능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처음부터 혼자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동역자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시하는 형태가 있지만 동역자들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장로님들의 의견이 소중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중지를 모아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내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동역자들의 동역의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귀찮고 시간이 더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들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들의 여러 생각을 모아가는 동안 우리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공감하게 됩니다. 자제력도 배우게 됩니다. 혼자서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은 그들 가운데도 함께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인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제자 삼는 일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온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늘 너희가 먼저 제자가 되어라 하십니다.

제자만이 제자 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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