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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먹을것을 주라 (눅 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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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것을 주라 (눅 9:10~17)

우리 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해가고 있습니다. 그 첫 기둥은 빈민 자활 사역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2003년도부터 밑천나눔공동체란 이름으로 이 빈민자활 사역을 감당해왔습니다. 금융권으로부터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는 빈민들에게 자활 교육과 함께 자본금을 대출해주는 사역이었습니다. 2006년부터는 교회의 희년운동이라는 큰 틀 속에서 복지재단 발족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마침내 2007년 7월, 서울시로부터 사회복지법인 열매나눔재단이란 이름으로 설립 인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2007년 8월에는 열매나눔재단의 법인등기와 사업자 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이제 교회 외에도 정부나 사회 기관이나 개인들의 지원금으로 여러 가지 사역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의 두 번째 기둥은 통일사역입니다. 여기에는 한반도평화연구원, 평양과학기술대학, 그리고 여명학교를 후원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지난 주 광고 드린 대로, 우리 교회는 여명학교에게 공간을 제공해드리기 위해 건물임대 계약을 마쳤습니다. 여명학교는 북한을 떠나온 새터민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대안학교입니다. 학교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 사상과 경제구조가 전혀 다른 공동체 안에서의 적응과 조화, 궁극적으로는 분단 민족의 아픔과 고통의 회복이라는 사명감 고취가 그 설립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명학교 선생님들은 하나님 사랑, 새터민 사랑, 그리고 민족 사랑에 온 몸을 던지신 분들입니다. 그 여명학교가 바로 우리 곁에 오게 되었습니다.

건물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심지어 우리 교회 사무실 겸 교육관, 그리고 인재양성관이라 할 수 있는 청어람 건물을 내드리자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만일 학교 운영에 적합한 건물이 나오지 않으면, 차라리 우리 교회가 임대건물에 들어가고 여명학교가 우리 것을 사용하도록 해드리자는 의견이었지요.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에 최우선순위를 두자는 우리들의 의지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줄 믿습니다. 이제 교회 내 각 기관과 성도님들께서는 최상과 최선의 것으로 여명학교를 환대해주시길 당부합니다.

한 방송사 뉴스 시간에 우리 교회 이야기가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문의해옵니다. 우리 교회가 무슨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그런 방향과 의지를 가졌다는 것뿐이고,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의미 있는 일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 세 번째 기둥인 인재양성 사역도 그 윤곽을 드러낼 것입니다. 해당부서에서 열심히 기획하고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세 기둥이 기초를 잡고 튼튼하게 세워져 가도록 일도매진해가는 우리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이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사복음서가 모두 다루고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시사해줍니다. 

본문 앞서 눅 9:1-2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부여하고 파송하십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데 있습니다. 사도들은 각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병도 고치게 됩니다. 천국복음으로 회개하여 참 소망을 갖게 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귀신의 공격에서 자유케 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몹쓸 질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사도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잠잘 곳을 제공해주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때로는 냉대 받기도 했을 것이고, 핍박도 받았을 겁니다. 

본문 10절은 그 사도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그간의 사역을 보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먹지도 못한 채 한참을 들으시던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데리고 벳새다라는 마을로 떠나갑니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 6:31에 좀더 정확하게 밝혀집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분주한 사역으로 지쳐버린 사도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휴식 취하도록 하는 데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얘들아 이제 좀 쉬어라. 그러다가 아주 망가지겠다. 자, 같이 가서 쉬자”

사역이 참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역자들이 쉼 없이 달려가다가 탈진되어버리는 것 원치 않으십니다. 그만큼 사역자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일행은 평온하고 한가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런 곳은 주로 인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빈들과 같은 곳이어야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술하고 있는 마태복음을 보면 당시의 이 빈들에는 잔디가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푸른 초장과 같다고 할까요? 과연 예수님께서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목자이십니다.

하지만 휴식도 잠시 뿐, 이미 소식 들은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 일행 앞으로 몰려와버립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했던 평안과 휴식은 당연히 방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필요를 갖고 쇄도해오는 사람들에 대해 대부분 어떻게 반응하게 됩니까? “죄송한데요, 그동안 너무 바빴고 지금은 때가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리 약속을 정하고 와야지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래야 더 잘 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개는 그럴듯한 말로 돌려보내고 싶어 합니다. 사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때론 한적한 곳에 가서 쉬기도 하시고, 군중들이 몰려오면 산으로 피신하여 기도에 힘쓰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무리들을 영접하십니다. 11절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맞이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손님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따뜻하게 ‘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환대하셨는지에 대해 막 6:34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합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막 6:34)” 예수님은 무리들을 보십니다. 지금껏 선한 목자와 같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그들입니다. 목숨까지 내줄 정도로 희생적으로 섬기고 돌보는 지도자를 경험하지 못한 그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 생명과 진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었을 그들입니다. 종교적인 멍에를 매고 죄인취급당하며 살았을 그들입니다. 심지어 각종 종교세 명목으로 이용마저 당했을 그들입니다. 그들은 병들었고, 가난에 신음하고 있으며, 위로받지 못한 백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딱하다 참 불쌍하다며 측은히 여기십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마 11:28을 통해서 사람을 대하는 당신의 근본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밖의 저 가난한 사람들이나 새터민들도 불쌍히 여기시고 환대하십니다. 이 자리에도 참으로 속상하고, 기막히며, 딱한 사정 가진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두 내게로 오라 환대하시며 해결해주실 것을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본문 11절을 보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시고 병도 고치십니다. 제자들을 보내어 감당하게 한 그 하나님나라 사역을 예수님께서도 친히 감당해가십니다. 병들고, 무지하고,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돌보아 가십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섭게만 생각하는 잘못된 종교적 이미지를 교정시켜 주십니다. 억눌려 지내는 사람들에게 밝고 환한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가슴 찢으며 원망하고 한탄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감사와 감격, 기쁨과 자유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육체에까지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이시며 갖가지 질병도 고쳐주십니다.

남자만 오천 명에 달하는 인파를 생각해볼 때, 이렇게 사역하다간 예수님 몸은 거의 탈진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됩니다. 제자들의 휴식은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정작 당신 자신은 편히 쉬는 것을 뒤로 하십니다. 이 장엄한 광경의 빈들은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저물기 시작하자 사도들의 우려가 시작됩니다. 12절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눅 9:12)” 시간과 장소에 대한 염려입니다. “곧 캄캄해지면 여기서 어떻게 쉴 수 있겠습니까? 푸른 초장도 밤에는 추워서 머물 데가 못됩니다. 완전히 어둡기 전에 미리 미리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빈들이라 먹을 것도 구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정말 아닙니다. 늦기 전에 빨리 사람들을 보내어 쉴 곳도 좀 알아보고 먹을 것도 찾아야 합니다. 가만히 이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런 우려의 소리입니다.

하지만 13절 예수님께서는 다짜고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남자만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음식의 양과 그 구입 금액이 얼마인지 몰라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는 제자들의 한계를 몰라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무엇을 보더라도 이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을 갖고 있을까요? 몰려든 수많은 백성 먹이는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높은 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갈 때는 자신의 능력이나 여건을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함께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는 사역에 동역자로 헌신하겠느냐?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너희는 헌신하겠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해가면서 사회의 다양한 필요를 먼저 채우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힘이 남아돌아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조차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소 예배실과 교육공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자모실이나 성도님들 간의 친교 공간, 그리고 식탁 교제를 가능케 하는 주방시설은 아예 없습니다. 주차는 늘 씨름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재정을 다 써버리면 언제 사회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자신을 위한 재정을 아끼려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그 엄청난 필요를 다 채울 수도 없습니다. 상담실에 털어놓는 수많은 분들의 딱한 사정을 읽다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다 해결해드릴 수도 없는 우리 교회의 한계가 얼마나 무기력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1월 31일자로 교회 홈페이지 사랑방에 올린 글의 제목처럼,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이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이요 우리 교회를 향한 명령이니, 부족한대로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진 것 전부인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립니다. 그것을 받아든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나누기 시작하자 모여든 그 군중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 남는 풍성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보잘것없는 것을 사용해서라도 하나님나라의 풍성함을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여한이 없습니다. 과연 요 10:10에 기록된 것처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들의 영혼이 다함없이 만족하고, 그들의 육신도 배부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해가실지 잘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이야말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순종해갈 때,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를 하나님께서 친히 거두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지혜를 모으십시다. 시간과 물질을 쪼개고 희생하여 나누고 드리십시다. 온 몸 다 바쳐 봉사하며,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그리할 때 우리 사회 속에 참으로 여러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풍성한 역사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아울러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 사역에 헌신하시는 성도님들 가운데도 핍절한 사람이 한 분도 없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기적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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