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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해같이 빛나며 (출 24:12-18, 벧후 1:16-21, 마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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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같이 빛나며 (출 24:12-18, 벧후 1:16-21, 마 17:1-9)

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해하려고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 상황과 함께 성경의 첫 번째 수신자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복음서 본문이 있는 예수님의 산상 변모사건은 당시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3사람의 핵심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있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비로소 자신이 고난당하여 죽게 될 것이며 제 3일에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사상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 한창 들떠 있는 제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기까지 했겠습니까? 이 말은 베드로가 감히 예수님의 말씀을 비난하고 질책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하나님 맙소사, 절대로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제자들은 주님이 왕이 되실 것이요, 그리하면 다들 주님 좌우에서 한 자리씩 하게 될 것이라고, 아니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이제야 이스라엘이 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베드로의 저돌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하신 일은 없습니까? 내게 벌어지는 사건 앞에서 감당하지를 못하고 “주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항변해 본 일은 없습니까? 사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든지, 현실에만 고정될 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나의 인도자라는 것은 확실히 믿는다.” 이 말에 의하면 마르틴 루터도 황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수없이 겪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현실에서도 그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도자시라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항변까지 한 베드로도 베드로이지만 이런 베드로를 향한 우리 주님의 책망도 극치였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사랑하는 제자를 향하여 “사탄아!”라고 하실 만큼 베드로의 행태는 주님을 격노케 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까지 격노하셨습니까? 그 다음 내용이 말씀해줍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런 생각, 그런 말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랬을 때 그는 사탄의 하수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게쎄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드리신 기도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이제 우리는 주님이 어째서 그 고통 속에서 드린 기도가 이런 기도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철저히 흑백논리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신앙은 “예” 아니면 “아니요”이지 회색지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2. 이런 배경을 놓고 예수님의 변모사건에 접근해야 합니다.

 (1) 주님의 폭탄선언 같은 이런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런 일이 있고난 다음에 보여주신 것이 저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런 변모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들렸던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의 메시야는 그들이 상상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라고 하는 뜻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 예고말씀에 매우 충격을 받았고,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주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 변화산의 변모사건입니다. 말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그들이 지금 따르는 분이 누구이신가, 그들이 이분을 따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 후에 제자들이 여러 번에 걸쳐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이 승리하게 된 것은 적어도 주님이 이런 계시로서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2) 마태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대인들이 그 일차적인 수신자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의하여 이미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상황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이방나라인 로마가 어떻게 주의 백성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에 대하여 이토록 처절하게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처음부터 예수께서 임마누엘이신 것을 증거해 줍니다. 변화산에서 그분의 진짜 모습을 살짝이라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야에 관해 예언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초대교인들이 이런저런 절박한 상황에서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그때 이 복음서의 말씀을 듣고서 얼마나 확신과 용기를 얻게 되었겠습니까? 이 승리하신 주님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보장을 받은 제자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겠습니까? 이런 확신을 가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땅 끝으로 땅 끝으로 전파되어나갔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에 보면 이러한 제자들의 복음행진 앞에 “거칠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3. 그러면 우리 주님의 이 변화산 변모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예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 줍니다.

   이 놀라운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베드로사도는 나중에 신앙 때문에 고난 받는 초기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베드로전후서입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말씀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영광을 친히 목격한 자요, 영광 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노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서를 받은 성도들은 당시 많은 고난 중에 있었고, 또 숱한 거짓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는데 대한 확신입니다. 일찍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한바 있는 베드로는 이제 고난과 유혹에 시달리는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흔들릴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소위 기독교 이후시대 또는 탈기독교시대라고 합니다. 더 이상 기독교의 진리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안티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기독교 반대 내지는 박멸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이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시며 앞으로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확실한 신앙으로 무장할 때 우리 개인은 물론 우리 교회가 예수님 말씀대로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돌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의 산상 변모사건은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킵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말했다가 주님께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는 호된 책망을 들었습니다. 베드로 후서가 전해질 당시 초대 교회에는 예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변모사건은 예수님 말씀대로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시켜줍니다.

   오늘 이 시대는 성경을 우습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허구성을 파 해치려고 안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시대정신이 성경에 관해 별로 흥미나 관심을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요,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어 집니다.

   프랑스의 무신론자 볼테르 같은 사람은 “기독교는 20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예수의 12제자가 세운 교회를 나의 이 한 손으로 무너뜨릴 것이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그가 죽은 후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가 살던 집이 성경을 판매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비록 세상은 인스턴트시대가 되고, 육감적인 것만을 절대시하지만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요 모든 것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 변화산에서 들린 하늘의 음성처럼 우리는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3) 예수님은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가 되어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중에 바다 한 가운데서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 죽을 지경에 이른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사람이 이백 칠십육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바울이 썩나서서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어제 밤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내 곁에 서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 고난 한 가운데서 죄수인 바울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냈습니다.

   여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최 측근이었는가 하면 가장 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사도들입니다.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오래 살고 천수를 누렸으나 에베소에서 엄청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는 보좌 주변에 24보좌가 있습니다. 거기 사도들의 영광된 자리가 있습니다. 영광은 고난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얻게 되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의 영광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 없이 누리는 영광은 이후에 주님에게서 추방당해 영원한 수치와 고통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통해서 “온전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은 3가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이신 것, 성경말씀이 절대 진리인 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영광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혼란한 시대에서도 저 영광스러운 우리 주님에게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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