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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올바른 믿음의 삶 (벧후 1: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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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믿음의 삶 (멛후 1:16~21)

  우리가 사는 삶은 참으로 고달픈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고달픈 삶을 산다는 점에서는 모두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옛 어른들이 인생을 고해와 같다고 했겠습니까?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한층 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양보해야 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남들 다 노는 일요일이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바쁘지 않습니까? 주일이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봉사해야 합니다. 헌금도 꽤나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하여간 믿음의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고달프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행복하고 또 더 편안해야 마땅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방편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2005년 4월 8일 로마 교황청이 있는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미사가 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의 장례식에 최고의 정성을 담았습니다. 평화 TV에서 보여 준 장례 미사 실황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 미사의 끝 부분만 잠시 보았는데 광장에 모여 있던 군중들이 틈틈이 박수를 치는 것이 참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해설하는 신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흡사 무슨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그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그들이 보낸 박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믿음과 그런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곧 죽음이라는 경계 너머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죽음 이 편에서 희망하는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희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런 희망들은 늘 유한하고 잠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집을 장만하겠다는 희망은 그것이 성취되는 순간부터 우리를 허무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것을 갈망하게 만듭니다. 죽음 이전에 우리가 성취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를 생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참된 희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참된 희망은 죽음 이후와 상관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런 죽음 이후의 희망을 바라보고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삶, 특히 믿음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없을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가장 어리석고 또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은 미래의 희망을 오늘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오늘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에 더욱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이 갖는 미래의 희망은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갖는 미래의 희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 이루어질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지금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일 것입니다. 또 최근에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고발되었던 것처럼 신천지라는 집단은 그들의 교주가 메시야라고 주장하며 이제 곧 새 예루살렘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이비 이단 집단들의 그릇된 활동 때문에 종말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라는 사실만은 변치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과학 기술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일찍이 신학자 바르트가 지적한 것처럼 종말론은 기독교 조직 신학에서 맨 끝에 나오는 부록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믿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은 박해를 받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과 같은 맥락의 가르침입니다. 슬기로운 처녀처럼 신랑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경우를 대비하고 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주인이 집을 비운 동안에도 마음을 다해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종은 주인으로부터 결코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비록 힘들고 고달픈 처지에 있을지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광야교회 식구들 중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녀 양육 문제, 특히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연로하신 어르신네를 모시느라고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과 그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야 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는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 반박의 근거는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모시고 변화 산에 올라가 경험한 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변화 산 위에서 하늘로부터 “이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음성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베드로를 움직인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변화 산에서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중간에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결국 베드로를 위대한 사도로 세운 것은 예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과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 문명의 소리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그릇된 주장을 펼치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흔들릴 이유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곧 다시 오실 분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친히 고쳐 주셨던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몰트만이라는 신학자는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 때 그 주님에 대한 희망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신 바로 그분이 재림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위에는 자기가 인류의 미래라고 주장하는 거짓말쟁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인류의 미래라고 주장합니다. 주의나 사상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어떤 제도가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건설해 줄 것처럼 말합니다. 잘못된 이단 사이비 집단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교주가 바로 재림한 예수님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이미 예고되어 있고 베드로가 확증해 주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재림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TV를 보면 제법 의미있는 CF 하나가 있습니다. SK Telecom 광고인데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아들의 이름이 ‘나의 희망’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들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희망은 과연 무엇입니까?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희망입니까? 권력과 지위를 얻는 것이 희망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핀 말씀에 따르면 그런 것들은 결코 참된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된 희망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비록 지금 시련과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베드로의 증언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가 또한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13절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이제 곧 나타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오늘도 참된 희망을 갖고 모든 어려움과 싸워 승리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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