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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에 이르는 길 : 장애물(11) - 과거의 아픈 기억(trauma)↔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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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길 : 장애물(11) - 과거의 아픈 기억(trauma)↔치유 (삼하 19:24-30)

      <TRAUMA, 그 아픈 기억>

      오늘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주제의 연속 설교 마지막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살다보면 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사고 혹은 큰 화재가 일어나서 온 식구가 목숨을 잃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분들이 있지요. 테러나 납치 혹은 유괴를 당했다가 풀려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되었다가 석방된 분들의 경우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면 큰 충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처로 남아 일생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정신의학적 용어로 ‘TRAUMA'라고 합니다. 정신적 외상(外傷)이라는 말이지요.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이런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전쟁 때 인민군이나 혹은 국군에 의해 전 가족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몇 사람만 간신히 목숨을 건진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가운데에는 10-26 사태 때 연루되어 목숨을 잃은 분의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예기치 못한 엄청난 사고를 직접 겪은 뒤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이와 같은 TRAUMA는 대개 한 석 달 정도 지나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충격적인 상처를 받아서 꽤 오랫동안 불안과 공포와 초조 속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도 있듯이 비슷한 일만 당해도 깜짝 깜짝 놀랄 수 있습니다. 긴 시간 아픈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정도의 차이일 뿐 다 어느 정도의 충격적인 상처를 안고 삽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을 막고 서 있는 열한 번째 장애물은 과거의 아픈 상처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잘 들으시고 과거의 아픈 상처를 믿음으로 잘 치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TRAUMA에 시달린 사람 므비보셋>

      본문에 나오는 므비보셋은 TRAUMA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하에 보면 므비보셋의 이름은 모두 다섯 군데에 걸쳐 나옵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삼하 4: 4)

      먼저 삼하 4: 4절을 보세요.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므비보셋은 대단히 곤란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지금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는 사울왕가가 망하고 다윗왕조가 들어 선 다음에 나옵니다. 그런데 새로운 군주 다윗과 관련해서 므비보셋은 참 난처하고 미묘한 처지에 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은 다윗과 숙적이요 피맺힌 원수였습니다.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가 블레셋 군대에 의해 그 아들 요나단과 더불어 전사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된 다윗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사울왕가의 잔존 세력들을 차례로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므비보셋은 그 할아버지와 다윗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에는 서로 원수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요나단은 다윗과 목숨을 건 친구였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편을 들지 않고 친구인 다윗 편을 들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이 죽더라도 요나단의 후손들을 돌보아 주기로 서약을 맺었습니다(삼상 20: 14-17). 그러나 할아버지 사울을 생각하면 다윗이 언제 어떻게 죽일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 므비보셋은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므비보셋은 겨우 다섯 살이었습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유모가 그를 업고 황급하게 도망을 치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불운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 장애인이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므비보셋은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학살 한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약점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I(삼하 9: 1-13)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는 삼하 9: 1-13절에서도 또 출현합니다. 여기에서 므비보셋의 종이요 과거 사울왕가에서 종노릇하던 시바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시바를 통하여 므비보셋의 소재를 파악한 다윗은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므비보셋에게 두 가지 특전을 베풉니다. 먼저 과거 사울왕에게 속했던 일체의 토지를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므비보셋은 다윗의 다른 왕자들과 마찬가지로 궁전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다윗 임금이 므비보셋을 자기의 친아들처럼 대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참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삼하 9장은 끝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므비보셋이 언제나 다윗왕의 식탁에서 먹었으며 궁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만 살았다는 말까지는 좋은데 두 다리를 다 절었다는 말을 사족(蛇足)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반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므비보셋이 다윗의 왕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II(삼하 16: 1-4)

      그 다음에 므비보셋의 이야기는 삼하 16: 1-4절에서 또 나오는데 그 종인 시바의 모함을 소개합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은 정처 없이 유랑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시바가 큰 선물꾸러미를 들고 다윗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곳저곳 망명을 다닐 때 제일 긴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어야만 합니다. 그런 처지를 정확히 간파한 시바가 다윗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뇌물 공세를 펼친 것입니다. 다량의 먹거리를 다윗에게 바쳤던 것이지요.

      이제 다윗은 자연스레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 때 시바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압살롬이 일으킨 모반 사건이 자기 할아버지 사울왕가를 복권시킬 수 있는 절호의 챈스라고 믿어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시바의 말을 듣자마자 다윗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므비보셋을 반역자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단안이 므비보셋에게 준 일체의 재산을 몰수해서 시바에게 준 것입니다. 이렇게 므비보셋은 자기의 종인 시바에게 배신과 모략을 당해서 재산을 다 빼앗겨버리고 맙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IV(삼하 19: 24-30)

      그런 다음에 나오는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가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입니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 므비보셋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미 시바가 므비보셋을 모함해서 역모자로 몰아세운 뒤였기 때문에 다윗은 므비보셋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다윗이 므비보셋을 심문합니다. 26절을 보면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자기와 함께 피신을 하지 않은 이유를 다그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므비보셋의 대답을 살펴보기 전에 다윗을 영접하러 나온 므비보셋의 몰골을 주목해봐야 합니다. 24절을 보세요.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망명의 길을 떠난 그 날부터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췌한 몰골이 되어서 다윗의 고난과 슬픔을 함께 했다는 말이지요. 므비보셋의 초라한 모습은 다윗의 왕권을 찬탈할 모습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므비보셋은 자신의 억울한 모습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26-28절을 보세요.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이 다윗과 함께 움직이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시바에게 자신이 탈 나귀에 안장을 얹으라고 했지만 시바가 속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윗왕가에 대해서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것은 모조리 시바의 모략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왕이 자기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었는지를 상기하면서 어떤 처분이든지 달게 받겠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이와 같이 겸손한 므비보셋의 모습에는 추호의 거짓도 없어 보입니다. 시바가 거짓말을 하는지 므비보셋이 거짓말을 하는지 성경은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시바가 더 간교해 보이고 므비보셋이 더 순진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30절을 통해서 더욱 더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아직 므비보셋의 모반 가능성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다윗은 시바에게 주었던 재산의 절반만 므비보셋에게 환속시키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아직 므비보셋의 역모 혐의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므비보셋은 빼앗긴 재산의 절반만 되돌려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절에서 므비보셋은 다윗 임금께서 안전하게 환궁하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인데 시바가 자기 땅을 다 차지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겠느냐고 대꾸합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시바가 간교를 부린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어쨌거나 므비보셋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깁니다!

      므비보셋에 관한 삽화 V(삼하 21: 7)

      므비보셋에 관한 이야기는 삼하 21: 7절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납니다. 사울왕가에 대해서 원한과 복수심으로 가득찬 기브온 사람들의 소원을 다윗이 들어주었습니다. 사울과 그 집안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에 이제 다윗을 통하여 복수를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후손 가운데 남자 일곱 명을 자기들에게 넘겨주어서 교수형에 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므비보셋의 이름을 명단에서 뺐습니다.

      삼하 21: 7절을 보세요.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요나단과의 언약을 생각해서 므비보셋의 이름을 살생부에서 뺐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므비보셋은 또 한 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참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지요!

      <TRAUMA를 극복하는 길>

      지금까지 므비보셋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 드렸습니다. 므비보셋은 그 누구보다도 TRAUMA, 정신적 충격과 상처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마당에 자신의 목숨조차 백척간두에 달려 있었습니다. 사울과 원수였던 다윗이 왕권을 잡았습니다. 역성혁명이 일어날 경우 과거 왕조는 삼족을 멸해서 씨를 말리는 것이 상례가 아닙니까? 실제로 사울왕가는 거의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시는 다윗왕조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싹을 잘라버린 것이지요. 아마 다윗왕권의 중신들이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원수가 있다면 므비보셋이었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사울과 요나단을 잇는 직계 후손이요 적자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므비보셋은 살아남았습니다. 압살롬과 같은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므비보셋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모반을 일으킨 세력들과 손을 잡고 다윗왕조를 넘어뜨리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바가 이런 기회를 틈타서 므비보셋을 역모죄로 엮어넣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므비보셋은 모든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성경이 침묵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TRAUMA, 그의 정신적 충격과 상처도 잘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을 통해서 TRAUMA를 극복하는 두 가지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상처와 약점이 큰 득이 될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섯 살 때 두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일생동안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되었겠지만 오히려 이 장애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다리를 다 쓰지 못하니까 다윗이 역모를 일으킬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수시로 므비보셋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의 약점이 오히려 그를 살렸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과거에 우리를 충격과 공포로 몰고 갔던 큰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것 때문에 우리는 더 대성할 수 있습니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씨는 부친이 남로당에 관계해서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이문구씨만 간신히 살아남아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아직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숨죽여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과 상처 때문에 이문구씨는 더욱 더 훌륭한 작품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신성분과는 정반대인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문인 김동리씨 문하에 들어가 문단의 총아로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문열씨 역시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가 월북했기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와 충격적인 기억이 더 좋은 것으로서 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둘째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아버지 덕을 톡톡히 본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다윗과 둘도 없는 친구였을 뿐 아니라 둘 사이에 아름다운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억울한 모함도 당했고 몇 차례 죽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세운 언약 때문에 살아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켜주신 사람입니다. 므비보셋 자신도 이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죽은 개’(삼하 9: 8)만도 못한 자기를 거두어준 다윗의 은혜를 한결같이 기억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그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도 하나님께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므비보셋에게 다윗을 붙이셔서 보살펴주신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 주변에도 많은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여러분이 상처를 잊고 새 힘을 얻도록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 C. S. 루이스는 8세 때 어머니를 잃고 절대로 엄마 생각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슬픔이 찾아올 때 외통수로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60세가 넘도록 루이스는 철저히 감정의 벽을 쌓은 채 학문에만 전념해서 그야말로 사랑도 눈물도 모르는 냉철한 이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루이스가 60세가 넘어서야 조이 데이비드맨이라는 여성을 만났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루이스와 같은 대학자를 만날 때 책에 사인을 부탁한다든지 하면서 경탄하는 것이 보통인데 조이는 달랐습니다. “당신은 왜 그 모양으로 사십니까? 당신은 사랑이 뭔지나 압니까? 당신처럼 사는 것이 인생입니까?” 자기에게 이렇게 당돌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조이가 처음이었기에 루이스는 놀라서 반문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사랑을 모릅니다. 혹시 당신이 사랑에 대해 안다면 나에게 가르쳐주십시오.”

      이런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결혼 당시 조이는 골수암으로 1년 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 3년 2개월을 살았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나중에 루이스는 “내 평생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조이 데이비드맨과 산 3년 2개월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를 잊게 만드십니다. 극복하기 어려운 TRAUMA가 있었던 므비보셋에게는 다윗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아픈 상처와 괴로운 기억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따뜻한 이웃을 허락하셔서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신앙으로 잘 극복하셔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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