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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의 땅을 향하여 든든히 서가는 공동체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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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을 향하여 든든히 서가는 공동체 (수 1:1-9)

이번 수요일에 일행 14명이 성지를 떠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성지 순례를 떠나게 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이스라엘을 여러 번 가고자하는 소망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졌었습니다. 이번에도 따나긴 떠나는데 어떨 결에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부흥회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을 떠나면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부흥회의 주제가 "정직한 자의 형통"이라는 주제로 요셉의 일생을 다루기 때문에 작가가 역사의 글을 쓸 때는 반드시 등장 인물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살았던 현장에서 재료를 구하는 것처럼 저도 그런 심정으로 여행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경험하셨겠지만, 여행할 때에 정말 곤란한 것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입니다. 뭐, 한 며칠 길이면 간단하게 차려입고 가방하나 들고 떠나도 되지만, 환경이 다르고 기후와 음식물이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한 보따리가 됩니다. 도대체 무엇을 빼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좋은 듯이 보여서 인생의 여행 가방에 이것저것 채워놓지만 실제로는 인생 길에 짐으로 전락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같은 여행 일정이라도 아마추어와 베테랑의 여행 가방은 같지 않습니다. 둘의 차이는 필요한 듯이 보이는 것들을 얼마나 포기할 줄 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떠날 때 당부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배낭이나 전대의 돈을 갖지 말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 길을 가는 모든 순례자의 제일의 여행수칙입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은 대단히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닙니까? 여행하는 사람에게 생필품을 넣고 다니는 여행 가방과 생존 수단인 돈을 갖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들립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얼마나 심한지, 주님의 말씀대로라면 한 밤의 냉기를 막아줄 여벌의 옷도 가지고 떠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잔인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생의 여행길에 아주 중요한 진리가 하나 담겨있습니다. 왜 여행 가방과 생존 수단인 돈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까? 이는 인생 길에 필수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보이는 세상 적인 것들에 사로잡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절대 의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시 욕에 차있는 세상은 언제나 자신이 커 보이고 하나님은 작아 보이도록 우리에게 영적인 착시 현상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은 이제 40년의 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마치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방을 줄이듯 당부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말씀을 주실 때 여호수아의 심정은 밝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1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기원전 1446년, 애굽 제국의 억압 속에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2백만 여명을 지팡이 하나 들고 탈출시킨 사람입니다. 그것도 애굽 역사상 가장 무서운 정복자로 알려진 람세스 2세의 통치 하에서 당시 나이가 80인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낸 탁월한 지도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광야에서의 40년 방황 생활이 끝나고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모세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뒤 이어 가나안의 여정을 이끌었던 자가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소개되는 여호수아입니다. 너무나 위대했던 전임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부담이요, 심적인 스트레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가나안 여정 길은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커다란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항상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조수에 불과하던 여호수아가 과연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여호수아 자신도 백성들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호수아서를 연구해 보면 여호수아가 33번의 전투를 치루는 치열한 전쟁 한 복판에서 놀랍게도 전승을 합니다. 33전 33승! 물론 '옥에 티'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7장에 보면 아이 성 전투가 나오는데 첫번째 공격에서는 패퇴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1차 전투였던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우쭐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작은 아이 성 정복에 애를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두 번 째 공격에서 결국 승리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유명한 장군이라도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운동선수라도 전승하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는 여호수아는 한 마디로 무적인생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갑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엄청난 역사를 일구었겠습니까? 이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비출 때 부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숱한 문제 속에서 매일 깨지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사건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한 시대를 승리의 삶을 살았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승리의 우물을 같이 마시며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아시지만, 여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안내자입니다. 안내자 없이 사막여행을 떠나거나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안내자는 생명과 같습니다. 우리의 여행길에 가장 좋은 안내자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안내자로 모시는 것입니다. 여기 보세요. 마음이 찹찹한 여호수아에게 다가오신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 3-4절을 보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조상 대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 수백년 동안 세월을 거치면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주어진 축복의 땅이라고 자손들에게 계속 확인시켰습니다. 너희가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모두 너희에게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발바닥입니까?

여호수아의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 '발바닥 사건'입니다. 4장에 보면 드디어 여호수아는 백성과 함께 범람하는 요단 물을 건너게 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요단을 건너기 위하여 앞장을 서서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들어가 서 있는데 그들의 발이 4장 18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넘쳐흘렀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발바닥으로 요단강에 들어서자 요단강이 갈라졌고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육지를 다시 밟자 요단강이 합쳐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5:13-15절 말씀에도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었던 여리고성의 함락도 사실은발바닥 사건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맨발바닥으로 지내는 사람은 종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겸손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귀를 꽉 막아 버리고 자기라는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은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교만하여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발바닥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겸손한 자에게는 동행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여기 여호수아가 한번도 밟지 않은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이 친히 안내자로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5절과 9절에 놀라운 약속을 합니다. 5절에 보면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또 9절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이 한해 우리 인생의 여정 길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통해 승리의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길을 떠나 여행 할 때에 꼭 챙겨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여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입니다. 나침반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몽골 밤에 길을 잊음) 나침반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나침반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침반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나침반이 없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새해라는 여행을 떠날 때 우리가 소유해야 할 나침반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7-8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에 '형통'이란 말은 "막힌 것이 뚫어진다는 것과 굽은 것이 펴진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뜻대로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이 여호수아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 가운데 3종류의 형통함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 거룩함에 형통입니다. 여리고를 점령할 때부터 그들은 이방인과의 거룩성의 싸움을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아이성의 싸움에서의 실패는 한 마디로 거룩성의 실패입니다. 그래서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 매장을 할 정도로 거룩 성을 보전해 나갈 때 그들은 형통의 길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시편 1:1절은 말씀합니다. 죄인과 가까이 사귀지 아니하며, 죄를 용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지키는 것을 일컬어 거룩이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거룩함에 실패해버리면 아무리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이미 물이 새는 신앙생활입니다. 은혜를 간직할 수 없게 됩니다. 죄와 가까이 하고, 죄를 짓고, 잘못된 생활에 빠지면 한동안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일은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지그 지글러'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키모인의 늑대 사냥 법입니다. 아주 날카로운 칼에 피를 발라 얼린 후 늑대가 지나가는 길목에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고 늑대들이 와서 혀로 핥아먹습니다. 그러다가 얼음에 자기 혀마저 얼얼해지고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칼날에 혀가 잘리고 피가 흘러나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중독이 되면 죽는 줄도 모르고 자꾸 세상으로 갑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붙잡고 나갈 때 위로를 받는 형통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남긴 이런 감동적인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미국에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 두 사람이 전쟁에 징집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훈련을 받고 공교롭게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도 작전 도상에서 친구 하나가 참호를 나갔다가 길을 잃었어요. 그리고 포탄이 나르기 때문에 자기 참호로 돌아오지 못한 체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친구를 잃어버린 것을 안 또 한 사람의 친구가 그대로 견디지 못하고 막 포탄이 날아오는데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분대장이 막았습니다. 지금 나가면 너도 위험해 진다. 그러나 분대장의 시선이 다른 데로 쏠린 틈새를 이용해서 그는 재빨리 자기의 참호를 나와서 친구가 고립된 그곳을 향해 포복해 계속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고립된 친구에게 접근해서 그 친구를 붙들고 들쳐업고 그는 다시 참호로 돌아옵니다. 파편이 튀는 조각 속에 그도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서 친구를 데리고 참호로 데리고 왔을 때 이미 친구는 숨을 거둔 후였습니다.

분대장은 야단을 칩니다. 이런 병신 같은, 이 바보 같은 이 네 친구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너도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이때 그 죽은 친구를 들쳐 업고 왔던 친구는 분대장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분대장님은 친구는 이미 죽었고 저도 부상을 입었으니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씀하시지만, 분대장님은 제가 친구를 죽기 직전에 만났을 때 제 친구의 얘기를 듣지 못하셨지요'.' 네 친구가 뭐라고 그랬나? 내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짐,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짐,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그게 친구예요. 친구입니다. 친구는 고통의 순간에 더불어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땅을 확보하기 위해 사선에 선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 고독과 두려움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때마다 주께서 위로하셨기에 그는 힘을 얻고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시편 119편 5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0절,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인생을 살면서 곤란한 일들을 만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구나 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위로합니다. 나에게 능력을 줍니다. 나로 하여금 긍지를 가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면 위로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위로가 풍성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그의 생애 마지막에 그의 가장 아름다운 고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붙잡고 산 그의 삶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담대함의 형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마지막장인 2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가나안 땅은 전쟁이 그치고 이곳 저곳 마을이 형성되고 도시가 형성되며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창고에 곡식이 쌓이고 아랫목이 따뜻해져 오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공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전쟁에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애굽의 문화와 우상들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가나안의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이방문화와 우상에 대한 묘한 호기심과 매력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수아는 인생의 석양에서 그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설교를 외치게 됩니다. 한 시대를 이끈 지도자의 마지막 절규는 더욱 힘이 있었고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수24:15절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절규와도 같은 외침의 현장은 자신이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세겜이란 땅입니다.

성경에서 세겜이란 장소는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위치한 유명한 계곡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또한 야곱이 메소포타미아의 방황에서 돌아와 우상을 땅속에 파묻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했던 곳이 세겜입니다. 이곳에 요셉의 뼈가 묻혔고 이미 오래 전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율법책을 낭독하여 백성들의 순종을 요구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겜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바른 결단이나 선택을 할 때 섰던 장소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세겜 골짜기에서 우상에 젖어있는 백성을 향하여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그리고 여호수아는 주저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선택을 고백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이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갔지만, 지금 평생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말씀을 붙든 여호수아!! 그는 이처럼 온 땅에 당당하게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애가 말씀으로 형통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주저하고 불안해하십니까? 아니면 처음 가졌던 열정은 간데 없고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태한 자리에 있습니까? 이제 일어나십시오!! 미국의 유명한 지도자 케네디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이젠하워 전대통령을 찾아가서 자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젠하워는 젊은 새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임무는 결단해야 할 때에 결단하는 것이요." 그렇습니다. 우유부단하거나 우왕좌왕하는 지도자는 나라를 살릴 수 없고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기회는 우리가 결단하기까지 언제나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신속하게 바른 결단을 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포착해서 남을 앞서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시대는 결단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약속의 땅을 향해 인생의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분명 우리는 내일 일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믿는 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고 확신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는 2008년 한해가 힘들고 어렵게 여겨진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어두운 그늘로 드리워진다 할지라도 거기에 두려워하고 떨지 않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마음을 담대히 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희망찬 새 해를 향해 전진할 때 좋은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의 인생 길을 형통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여호수아처럼 힘차게 나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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