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선교 (눅 2:41~52)

  • 잡초 잡초
  • 169
  • 0

첨부 1


하나님의 선교 (눅 2:41~52)

세상의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던 한 어른이 평화에 대해서 ‘평화는 탁월한 힘이 배후에 있지 아니하는 한 없다’ 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많은 일들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가식적으로 혹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또 다른 목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정말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들 또 지식과 경험으로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를 가지고 힘을 쓰고 애를 씀에도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최선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평화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가정에도 마찬가지이고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도 물론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를 말하는 누가복음의 제 2장은 우리들이 잘 아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기독교의 위대한 선언을 비롯해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련된 일입니다. 로마는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거두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호적을 명령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남편 요셉과 함께 시댁인 베들레헴에 갔는데 그 곳에 쉴 곳, 여관이 없어 마구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기 예수님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였는데 이를 온 인류에게 미칠 커다란 기쁨의 좋은 소식,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때 그 소식을 전하면서 천사들이 했던 말이 그 유명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탄생한 지 며칠 뒤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분명하게 명기하지 않지만 당시 이스라엘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하였으므로 우리는 팔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정결례를 하기 위해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 갔는데 거기서 오래전부터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고 고대하던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남자 시몬이었는데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 찬양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백세가 다 되어가는 여자 안나였습니다. 그 역시 예수님을 보자 이분은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더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예수님의 가정은 관례대로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우리나라도 명절이 되면 고향으로 가는 대이동이 있는데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전 세계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정도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흘간 예수님을 찾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사흘만에 만난 자기 부모에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몰랐습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잘못하면 신성모독이므로 쉽지 않는 말인데 그런 말을 자기 부모에게 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를 말하는 누가복음의 제 2장에 이런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떤 신인가를 말씀하시는 아주 중요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의 탄생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한 일 같지만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획하고 연출하시고 예비하신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드라마이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인간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서로 만나 결혼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런 일은 일어났을 것이고 그들이 만났기 때문에 예수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금 예수라는 아이가 태어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천사들이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시몬과 안나는 무엇을 알고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감동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죽기 전에 예수님을 만날 것이므로 기다리라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밤낮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사람의 자식으로 보이지만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는 이 인간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주 놀라운 선물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명절이 되면 선물을 주고받을 것입니다. 선물이란 어떤 선물일까 궁금하기 마련인데 예수는 어떤 선물일까에 대해서 말한 것이 땅에서는 평화라고 한 천사들의 말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인데 다른 말로 말한다면 평화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만 만들 수 있고 하나님께서만 줄 수 있는 것이 평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아야합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은 잘 알아야합니다. 내 가정의 평화는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셔야 내 가정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정을 생각합니다. 함께 있지 아니하는 아들이 와서 오랜만에 네 식구가 만나 식사기도를 하면서 그 아이들에 대한 저의 소원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을 만나 그렇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직 결혼할 확실한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평안하게 서로 사랑하고 살 수 있고 조금 여유를 내서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소원입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제가 먼저 가고 없을지라도 남아있는 그 아이들 가정이 평화롭기만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이것을 할 수 있을까요? 방법이 없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평화로운 것을 소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화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평화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는 상태라고 철학적으로 정의를 내렸습니다. 인간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셔서 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신 평강이 나를 주장할 때 내가 평화로운 수 있는 것이고 그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에 계셔서 우리 가정을 주장할 때, 우리 가정이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더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이든 간에 정말로 진실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 나라를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배하시도록 하고, 예수가 가지고 계신 그 평화가 이 나라에 충만할 때 평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사람이 어떤 누가 평화를 만든다는 자체가 얼마나 헛된 말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누가 감히 내가 이 나라를 평화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이고 기망입니다. 속이는 것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속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본인이 진실될 지라도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제한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도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아는 위대한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기원전 1,500년부터 서기 1860년까지 약 3,400년 동안 영구적 평화보장을 전재로 약 8,000건의 영구평화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 체결된 평화조약이 지속된 것은 평균 2년에 불과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에릭 프롬은 전쟁 발발의 책임을 정치인들에게 돌렸습니다. 정치인들이 전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한 정치인들이 평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평화를 깨뜨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나라, 이 사회를 다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가식적인 사람들도 있고 진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전쟁발발의 책임자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정치인들은 문제를 서투르게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도했지만 결과가 그렇게 아니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인데 제한된 인간, 만들 수 없는 인간이 정치를 하면서 평화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어느 가장, 어느 주부가 내 가정의 평화를 원치 않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가정이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까닭입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이 오시기 전 크고 작은 평화회담이 무려 9만 번이었고 예수님께서 오시고 난 후 만 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상 체결된 것과 체결되지 아니한 평화회담이 약 십만이라는 말인데 지금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중동을 보십시오. 남북한을 보십시오.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 미국을 보십시오. 9․11이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떱니다. 인터넷을 하시는 분은 워싱턴, 마이애미, 뉴욕 등을 쳐보십시오. 국가적으로 아예 검색을 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초강대국 미국이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면 벌벌 떨면서 온갖 수단을 다 부려 만들지 못하게 하는 미국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평화가 있겠습니까? 평화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우리들에게 선물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예수를 알리는 일이라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 것을 누가복음 2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주체, 예수님을 전하는 시점, 예수님을 전하는 표현방법, 양태에 있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첫 번째를 보겠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예수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천사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하늘의 존재입니다. 완전한 하늘의 존재가 예수가 오시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팔일 만에 성전에 갔을 때 예수를 전한 사람은 시므온과 안나였습니다. 이들은 완전한 사람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예수를 전했습니다. 열두 살 되었을 때 예수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고 예수를 전하는 이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완전한 신이고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도식적으로 본다면 첫 번째는 완전한 인간이 아닌 존재, 그리고 완전한 인간, 다음 두 번째는 완전한 신이고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께서 전하였습니다. 예수를 전하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신 것입니다.

시점을 보겠습니다. 맨 처음 예수께서 태어나자마자 천사들이 선언하였고, 팔일 만에 예수께서 성전에 갔을 때 시므온과 안나가 선언하였고, 십이 년 후에는 예수께서 선언하였습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사실 때 여기저기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행동언어로 전하셨습니다. 모든 방법과 모든 시점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표현 양태도 그렇습니다. 천사는 선포로 선언하였고 시므온은 찬송으로, 안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였고, 아기 예수는 자기 부모에게 해명하는 가운데 전하였습니다. 공생애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르치는 것으로 때로는 행동언어로 나타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전하는 일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이처럼 중요하게 여기시고 이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아끼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겠습니까?

이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주 명백한 행동철학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실 일을 어떤 사람이 대신하게 되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일하십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 하여 야단치실 일이 있습니다. 매를 때리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고 약간의 저주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벌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서서 그 사람을 때리든지 힘들게 하든지 어렵게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을 벌 주어야할 하나님 뜻은 이루어졌지만 하나님 손은 이미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올라간 손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내리지 않습니다. 벌을 주기 위해 올리신 그 손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일을 한 사람을 위해서 쏟아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는데 혹시 여러분 주변에 하나님이 벌을 받겠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을 때 여러분들이 나서지 마십시오. 하나님 손이 여러분에게 가게 됩니다. 내버려두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 그 사람을 벌을 주시든지 어렵게 하게 하시든지 그냥 두십시오. 만약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듯한 일이 있을 때면 ‘다른 일을 시키시면 흔쾌히 하겠습니다. 이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고 사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하나님의 일을 실컷 하고서도 대신 매를 맞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함부로 할 일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법관이라면 또 경찰이라면 그 일을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향해서 무섭게 하려고 했던 하나님 손이 여러분을 향해서 갑니다. 미워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매를 쳐도 하나님께서 매를 치실 당신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설 일이 아닙니다.

이제 반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언제 줄까 준비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 먼저 나서십시오. 이것이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면 항상 도와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고 축복해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에 잔뜩 들고 있는 그 복, 그 좋은 것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줍니다.

여기서 선교와 복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것, 예수를 전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어떤 방법으로 전할까 생각하고 계실 때 여러분들이 나서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셔야할 일을 대신 하십니다. 여러분의 아들과 딸을 대신 키워주시고 챙겨주십니다. 쓸데없이 내가 힘을 써서 챙기고 키우는 것보다 그 일이 얼마나 쉬운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됩니다. 내가 내 아이를 챙기고 내가 내 건강을 챙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어쩌면 좀 미련스럽고 바보스럽게 보이고 기독교주의인지 몰라도 하나님 일을 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시간도 모자라고 경제사정도 좋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꼭 하실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지면 스스로 뛰쳐나가서 그 일을 한 번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을 여러분들이 하게 되면 여러분들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예수님은 평화이십니다.

여러분, 이제 2008년도 한 달이 거의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평화를 누리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이 계시는 곳이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를 어떻게 누릴까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내가 평화를 가꾸고 싶고 만들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충만해야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를 전할 때 내가 전한 그 예수가 내 아들과 딸,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주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전하십시오. 제일 쉬운 일입니다. 예수가 갈 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고 평화이신 예수가 그 분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이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를 말하는 누가복음 제 2장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평화이시고 여러분들이 예수를 전할 때, 여러분들이 예수로 충만할 때 여러분도 평화를 누릴 수 있고 평화를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