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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는 일과 가꾸는 생활 (롬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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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는 일과 가꾸는 생활 (롬 8:5-9)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9) 

지난 20여 일 동안 중남미 지역 선교지 7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9가정이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저는 이번으로 중남미 지역을 3번째 순회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남미에는 15명의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중남미 국가들은 모두가 크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들이 땅이 넓고 광활합니다. 브라질은 남한의 85배입니다. 멕시코가 20배, 아르헨티나가 27배, 칠레가 7배, 페루가 12배나 되고 쿠바도 우리나라 보다 큽니다. 

단순히 땅만 넓고 큰 것이 아닙니다. 그 땅속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나라들이 모두 기름이 나오고 각종 광물이 풍부하며 산에는 열대의 열매들이 열려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관광객이 몰려오는데 평균 300만 명씩 외국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백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이과수 폭포, 얼마나 시원합니까. 스트레스 받은 분들이 가면 단번에 치유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거진 밀림과 넓은 평원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거기에 페루의 거대한 잉카문명과 멕시코의 가야문명의 발자취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T. 폴러라는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보고 접하고 체험하면 눈이 열리고  생각이 크게 트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가서 보면 생각과 눈과 마음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열린 눈으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내 나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가능하면 기회가 되고 건강할 때 여행을 많이 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교회도 많이 가 보십시오. 가 보아야 내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가도 알 수 있고 내 교회 목사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울안에서만 살면 좁아집니다. 생각도 판단도 정신도 의식도 아주 좁아집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게 되고 내 시야 안에서만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돌아다녀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생각하게 되고 우리민족의 장점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작은 것도 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참 작습니다. 그 작은 땅에 기름이라도 펑펑 나와 주면 좋으련만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볼거리들도 없습니다. 한강에서 배를 타면 보이는 것은 아파트뿐입니다. 제주도에 가느다란 폭포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마치 애들 장난감 같이 보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돌아갈 때 무슨 생각을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없다는 것, 작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넓고 크고 많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많고 넓고 크고 풍성한 것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올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넓은 땅, 관광조건이 풍부한 자연, 산에는 열매들이 열리는 그 나라들이 오늘 GNP가 최고 높은 나라가 8천불이고 대부분이 3천불, 2천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의 85분지 일 밖에 안 되는 작은 땅을 가진 한국은 GNP가 2만 불입니다. 많이 주어진 것, 그것이 오늘 그들로 저 꼴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절박감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 절박감이 빨리빨리 정신을 가지게 하였고 그것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2만 불 시대를 열게 만든 것입니다. 풍부한 유산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땅이 큰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 유산타령하지 마십시오. 없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발전하게 하고 공부하게 만들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없는 것도 작은 것도 때로 은혜일 수 있습니다.

제가 베트남에 갔을 때 공산당 간부하고 이야기 하는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신 나라보다 더 비참했던 나라였습니다, 당신 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산에 가면 먹을 열매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는 곳마다 열대열매들이 열려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6∙25때 산과 들과 집안에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살았습니다.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었습니다, 당신들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나라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 세대 그리고 그 윗세대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뭐가 있었습니까. 산에 열매가 있었습니까, 들에 먹을 것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환경이 악조건이었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오늘 기적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어딘가 기댈 것이 있었다면 오늘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가는 습관이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기댈 곳이 없으니까 강한 자생력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유산 없는 것도 은혜입니다. 땅이 좁은 것도 은혜입니다. 땅을 파도, 산을 파도, 바다를 파도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것도 은혜입니다. 일본에게 지배받은 역사도, 6,25전쟁 때문에 고난당한 역사도 생각해 보면 모두 은혜입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피눈물 나는 아픔과 고난의 역사도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랬기에 오늘 우리는 세계인들이 때로 질시도 하고 때로 부러움도 받는 오늘의 기적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오늘 베트남이, 오늘의 중남미 국가들이 그 좋은 여건, 환경, 비옥한 땅, 넓은 땅, 풍부한 지하자원, 수많은 볼거리들, 산에만 가면 그냥 따먹으면 되는 과일들이 즐비한데도 오히려 그 좋은 환경들, 조건들 때문에 나태해서 오늘 낙후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초라한 환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기적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고난 때문에, 아픔 때문에, 배고픔 때문에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고난당하고 삶에 아픔이 있는 분들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장차 그것이 큰 삶의 디딤돌이 되고 발판이 되고 기회가 될 것을 믿으십시오. 집안에 갇혀서 살면 오늘의 고난과 고통은 더 큰 법입니다.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도 커지고 의식도 삶의 지혜도 하나님의 은혜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심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육신을 좆는 자와 영을 좆는 자를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성령을 좆는 자라고 하였고 육신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육신을 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아무런 생각이나 관련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매사를 육신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하나님과 무관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생각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되기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주일 몇 번만 빠지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어져 버립니다. 사람은 망각의 존재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 젊은 아들이 죽었습니다. 생각하면 미칠 것 같고 따라서 죽고 싶고 하늘이 꺼지는 슬픔이 임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잊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망각은 그런 면에서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관심하면서 살아가면 내 안에서 영적 성장이 쑥쑥 자라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잊고 관심 밖으로 살아가면 하나님도 잊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입니다. 성경은 그 사람을 육신을 좆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5절을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좆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신비한 존재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누구와 대화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의 일생이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납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내가 지금 무슨 일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고 살아가면 불가불 사람은 이생에 집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7) 육신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8)”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심는 일

조상의 역할은 심는 역할입니다. 후대를 위해서 열심히 심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선배, 어른, 조상, 부모, 스승, 나라의 지도자들은 모두 후대를 위해서 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심은 사람이 있는 사회나 집안이나 나라의 후손들은 복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심지 않은 조상이나 부모나 지도자를 둔 나라의 백성들은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늦었지만 자신이 오늘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후손들이 늦게라도 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심으라고 말씀합니다. 심되 영의 씨앗을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영적인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당시의 풍조는 지독한 율법주의가 성행하였습니다. 율법주의는 내면의 법 보다는 외면 즉 인간적인 것에 치중하였습니다. 그 인간적인 것은 육신적인 것에 집중하는 삶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삶은 당시는 재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콜라를 마시면 당시는 짜릿하고 톡 쏘는 맛이 있어 좋지만 그 후 얼마 후에는 계속 목마름이 거세어지게 일어나고 사람들은 더 짜릿한 것을 찾게 되듯이 인간적인 삶은 지극히 이생적입니다. 이생적인 것은 모두 썩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썩어버릴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영적인 것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것은 당시는 밋밋하고 재미도 없고 짜릿함이나 쾌감도 없습니다. 영적인 삶은 마치 냉수와 같습니다. 냉수는 맛이 없습니다. 콜라처럼 짜릿함도 쾌감도 없습니다. 그래도 냉수가 최고입니다. 질리지도 중독도 갈증도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삶이고 신앙의 삶이고 영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영적인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그날 열심히 영적인 씨를 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선택이나 결단은 내 인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영향은 광범위하게 미치게 됩니다. 내 자손에, 내 인생에 엄청난 변화와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나의 삶이 오늘에 연연하는 삶이면 나 자신의 삶에도 피해를 주지만 내 자손의 삶에도 영향을 줍니다. 오늘 내가 과감히 결단내리지 못한 일은 우리의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넘어갑니다. 그러면 내 자손들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집니다. 그 옛날을 살아간 내 부모 세대가 그때 일찌감치 영적으로 빨리 결단내리고 결심했더라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에, 나의 자손들에게 엄청난 영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오늘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가벼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심되 영적인 것을 심어야 합니다.

복의 씨앗을

영적인 것을 심으면 영적인 것을 거두게 됩니다. 육신적인 것을 심으면 육신적인 것을 거두게 됩니다. 인생의 삶 중에서 복이나 은혜나 은총이나 형통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과일나무에서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서 자손들이 힘들이지 않고 따 먹습니다. 그것은 조상 중 누군가 심어서 후손이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는 삶이 중요합니다. 심되 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저 너머를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만 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낙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현실은 우리에게 희망이 아니고 낙심을 주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일이나 먼 장래를 바라보면 희망이 주어지고 소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오늘 불가능한 일 같은 것들을 먼 훗날에 희망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시작한 일이 50년 후 손자시대에 큰 결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일을 통해서 세대를 넘나들며 섭리하시고 형통하게 하시고 이루십니다.

다윗왕은 성전 짓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지으려고 자재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을 준비하고 각종 금과 보석과 건축 자금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허하셨습니다. 다윗이 너무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에 그 손으로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하였습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올바른 판단을 하고 결단하고 씨를 뿌리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결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는 사람들은 투덜대지 말고 지금 내가 심고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손들이 투덜대지 않고 거두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내 집안에 이런 점을 깨달을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풀어야 할 것은 풀고 시작할 일은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은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누군가가 나룰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믿음의 유산이 주어지면 이렇게 언젠가 그 씨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곳에서 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그것은 행운이 아니고 기도 덕분입니다. 내 선조들이 선하게 살아서, 기도해서, 뿌려서,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사는 큰 집 그 집은 내가 지은 집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가 지었고 내 조부가 증조부가 지은 집입니다. 나는 그 누군가 심은 덕에 사는 것입니다. 오늘 사과나무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따 먹습니다. 그것도 내가심은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가, 내 조부가 심은 것을 나는 공짜로 따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우리는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집에, 내 교회에, 내 직장에, 내 나라에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가정, 교회, 사회, 나라가 복된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사회를 건강으로 이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잘 가꾸는 일

유산이 주어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넓은 땅, 좋은 조건, 풍부한 물질, 얼마나 좋은 유산입니까. 그런데 주어지는 것 보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 일입니다. 잘 가꾸지 못하면 에서처럼 주어진 몫도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경하게 여기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잃고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중남미 사람들이 주어진 좋은 조건도 간수하지 못하고 심고 가꾸지 않아서 오늘 저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주어진 것을 간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조상들이 많이 심어 놓는 일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것들을 잘 관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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