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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모든 필요와 유일한 보고(寶庫)이신 그리스도 (엡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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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모든 필요와 유일한 寶庫이신 그리스도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23)

I. 창조와 신적 상호교통

성경본문에서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바지만 “만물 안에서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한 이 구절은 생소한 구절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 안에 계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그리스도는 이 모든 세계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또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는 아무데도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 안에 있다고 믿지만 우리 몸 속 어디를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과 물질의 차이입니다. 만물을 다 뒤져도 거기에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이시기 때문에 모든 만물 안에 계심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 계시며,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입니다.

충만케 한다는 것은 꽉 채운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꽉 채웁니까?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을 때 그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의 영광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온전한 사람이었고 동물들은 각기 하나님이 정하신 분량대로 온전한 동물이 되었고 식물은 식물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온전한 분량의 식물이 되었고 이하 모든 사물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창조된 인간을 비롯한 이 모든 세계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 모든 창조한 것들 속에 당신 자신의 신성의 영광을 가득 채우셨기 때문입니다.

II. 구속과 신적 상호교통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게 되어 모든 만물에 가득 채웠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은 일시에 사라져버리고 만물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어 성령 안에서 이루고 있던 아주 아름다운 연결과 연합들이 모두 깨뜨려지고 무질서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죄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힘, 하나님의 세계를 파괴하는 큰 능력을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죄를 짓자 하나님이 모든 만물들을 아름답게 연결해 놓으셨던 그 연결 속에 두신 하나님 자신의 신성에 충만한 영광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거둬가 버리신 것입니다. 그 모든 피조물들의 상호교통이 깨어지고 파괴되는 무질서가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망가진 이것은 죄의 힘과 능력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모든 만물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충만한 것들이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라진 것입니다.

A. 구속의 목적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될 때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만물의 창조를 위한 위대한 계획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무한한 지혜와 영원한 능력 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그 설계도를 따라서 아주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그 창조한 모든 만물들을 성령 안에 있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에 충만한 것을 그 모든 사물들 속에 스며들게 하셔서 발아래 구르는 돌멩이 하나로부터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창조하신 그 분의 솜씨와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것들은 가족처럼 이 존재는 저 존재에 기대고 저 존재는 또 다른 존재에 의지하며 상호 연결된 가운데에 궁극적인 하나님의 한 목적을 위해서 이바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창조 목적에 이바지해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과 위대함을 드러낼 때 그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가장 완전한 힘과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인간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던 모든 사물들 사이에 상호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글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우리 위에 있는 한 분,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봉사한다면 우리 밑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질서로 돌아가서 우리를 섬기고 사랑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이 세상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 가운데서 그 어둠이 없었더라면 차마 이 세상에 보여 질 수 없었던 하나님의 그 넘치는 사랑과 비범한 긍휼, 확실한 은총, 인간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아버지의 긍휼을 그 어두운 세상 위로 지나가는 한줄기 밝은 빛처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에 의해 창조목적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이 세상에 보이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이 죄로 인해 망가진 이 세상으로 인해 보다 찬란하게 드러나도록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시대가 너무 타락하고 어둡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며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도 얻고 세상도 얻으려는 사람들의 나약한 핑계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빛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어두운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세상에 참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주님의 참된 사랑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껏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많이 미끄러졌고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자신은 새롭게 시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어둡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에 이제 예수의 그 크고 넓은 사랑을 알고 그 진리 가운데로 돌아가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예전에 그리스도를 떠나서 경험했던 그 칙칙하고 어둡고 고통스런 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행복과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죄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뜨겁게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발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한때는 핍박자요, 폭행자였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주님을 대적하던 인간이었습니다. 그가 회개하였다고 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쉽사리 그의 회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무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과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진리에 대한 지식을 소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끊임없이 낮아진 가운데 순교의 순간을 앞두고도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거꾸로 보면 사울이었을 때 타락한 그 모든 시기는 하나님을 모질게 대적하고 주님의 명예에 먹칠을 한 인생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빛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자기가 우월해 보일만한 그 놀라운 일에 쓰임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겸비하게 낮추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감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만약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껏 실패하고 죄 가운데 미끄러져 살았다 할지라도 거기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면 미끄러지고 넘어진 많은 날들은 자기에게 임한 구원의 놀라운 은혜, 하나님의 값없는 용서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자랑하게 만드는 배경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악함이나 우리의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지만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원래 있었던 충만함을 상실한 인간과 이 세계를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하도록 채우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셔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가운데 생명 없이 살아가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볼 수 없을 하나님의 그 사랑을 생생하게 우리와 똑같은 뼈와 살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처럼 울고 우리처럼 아파하고 우리처럼 핍박을 받으며 우리같이 죄는 없으셨지만 우리와 똑같이 고난을 당하신 그분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큰 사랑과 긍휼, 자비를 보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 되심을 사람 되심 아래 철저히 감추시고 율법 아래서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감당하기 위해서 율법을 수여하신 분이셨지만 그 율법 아래에 내려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율법을 따라 판결을 받으시고 멸망의 일을 위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한없이 피 흘려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그분의 생애는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시는 복종의 생애였습니다. 우리들이 못 버리는 우리의 자아 때문에 지은 그 많은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당신은 친히 자기를 버리셨으니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삶이었고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구원받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그 무한한 형벌에 복종하심으로 쏟아 부어지는 아버지의 진노를 한 몸에 받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B. 교회의 모든 필요의 유일한 보고

아들의 이런 복종은 아버지께서 시키셨기 때문에 하신 복종이 아니라 아들이 기꺼이 드리신 복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보내신 사랑이었지만 십자가의 죽으신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아들의 완전한 복종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창조된 이 모든 세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고 함께 상호교통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하나로 모으셔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그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보물 창고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할 때 사랑보다 더 큰 인간의 감정은 미움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자원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움을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을 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무 관계도 없는 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형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어주시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만들어주시고 그들을 찌르기 위해서 평생을 가슴에 품고 다니던 피 묻은 칼을 내려놓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난과 핍박, 시련과 괴로움, 온갖 시험들이 내 안팎에 있지만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그 모든 것들을 참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사랑과 위로로 격려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베푸신 큰 사랑과 분에 넘치는 긍휼, 한없이 오래 참으시는 그분의 인내가 바로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우리들은 이 시대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알려고 찾으려고 배우려고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문제를 가져다주지만 그 대답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습니다. 회심하기 전에 우리들이 살았던 삶은 각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이었고 우리 중 누구도 복사판과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다양한 문제들은 한분 그리스도를 만나며 그 안에서 해결되었고 그분이 우리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의 복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들의 구세주가 세상인 것처럼 세상을 배우고 세상을 익히고 세상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터득하고 세상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교회 안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듣지 못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창고를 통하여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교인이 되면 제일 먼저 배워야 되는 것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에는 그리스도 없이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아무도 하실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그리스도의 참된 십자가 사랑 앞에 하나님을 반하여 살았던 자신의 많은 죄를 참회하게 하고 핏빛보다 더 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울게 만들고 죄 가운데 미끄러진 사람들의 양심을 찔러 자신이 예수를 못 박은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가던 길을 돌아가게 하는 것,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주님 한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의 자리에 서서 예수처럼 살기 위해 예수처럼 죽고 싶어 하는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돈이나 재주로 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가 무엇에 목말라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을 열고 부어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은혜, 진리를 몰라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찬란한 진리의 빛을, 생명이 없어 파리해진 자들의 영혼 속에 부으시는 생명의 강물 같은 은혜, 자기 사랑으로 인해 고립되어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의 빗장을 풀어 은혜의 강가로 나아오게 하는 이 신령한 감화의 능력, 이 모든 것들은 돈이나 한사람의 말재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없어도 돈이 꼭 있어야 되는 것처럼, 예수는 없어도 우리가 행복할 수만 있으면 그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 인본주의적인 정신이 교회를 향한 하늘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 기도해도 절대 응답되지 않을 수없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예수를 간절히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얘야, 곤고하게 사는 너에게 내가 무엇을 해주랴?”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합니다.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이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C.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을 통해 부어지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입니다. 아직까지도 회심하지 못한 우리의 가족들, 교회당을 드나들고 있는 비회심자들,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과는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마른 뼈와 같은 영혼들, 그들에게 부어질 그리스도의 생명,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죄를 책망하고 영혼을 중생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생명의 나타남,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은혜의 물이 누구도 그칠 수 없는 하나님의 생수의 강이 이 교회를 통해 가득차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희망이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기이한 생명의 역사, 이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수많은 문제는 오직 하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비극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들에게 이 생명을 주기 위해서 교회는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 생명을 이 땅에 분여하도록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모든 일에 해답이시고 그 하나님의 모든 보화를 한 몸에 가지고 계신 그 유일한 보고이신 그리스도께서 문을 여실 때 우리에게는 꿈꾸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래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생애적으로 만나고 변화되어서 이제는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인생의 대안도 없다고 모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육신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리스도를 향하여 눈을 감고 빛의 자녀이면서도 어둠 속을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영혼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 온전히 돌아가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이 끊임없는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기를 싫어합니다. 몸은 교회에 있으나 마음은 세상에 있고 영혼 안에는 참된 안식이 없이 갈등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는 충만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미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기를 모두 주시므로 하늘의 창고를 열어주셨지만 본인이 그 쏟아 부어지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기 싫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이런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갓 결혼한 신부가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남편과 함께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서 만물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그분의 그 충만하게 하시는 역사를 교회가 온전히 받아들여서 그분의 생명으로 충만해져서 자기 밖으로 이 생명을 흘려 내 보내게 하는 일에 심각한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그 무한한 사랑과 십자가 고난의 덕을 입고 그분의 몸에 접붙인바 되었지만 그분의 몸으로 이 창조된 세상을 섬기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지체들을 아프게 하고 끔찍한 고통으로 그리스도에게 쓰라림을 주는 그런 몸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III. 그리스도로 충만케 됨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충만히 오셔야 합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들의 영혼, 사람의 지혜로운 말로도 깨우칠 수 없고 마치 불에 한번 달았던 쇠가 굳어지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도 쉽게 녹지 않는 그 굳어진 마음에 생명의 강물이 흐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는 신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답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무릎 꿇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 진리의 말씀에 권위를 인정하며 그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든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하찮게 여기고 그분이 주신 모든 권위를 휴지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으려는 막무가내의 삶입니다. 여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의 발 앞에 복종하는 신자의 마음을 통하여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주님은 겸손한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들은 대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께 꽂힌 사람들이 되십시오. 눈을 뜰 때마다 그리스도 때문에 오늘도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며 부딪치는 수많은 일상사속에서 그리스도 도움을 바라며 나의 언어와 행실을 통해 그리스도께 어떤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 일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날마다, 날마다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가득히 나타나도록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해 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하고 그리스도 없는 세상 때문에 아파하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때문에 즐거워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 모든 만물 가운데 탁월하신 분이시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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