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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 (왕하 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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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체험하는 신앙 (왕하 4:8~17)

엘리사는 능력을 구하였다. 선생님께 역사하신 사역을 갑절로 구하였다. 새 번역으로 말하면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라고 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능력이 그에게 임하도록 승천하는 선생님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오면서 요단강의 물을 갈라지게 하고 강을 건너는 기적을 행하였다. 그때부터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는 계속적으로 일어났다. 요단 강 강물을 가르고 여리고 성읍의 물 근원을 고치고 벧엘에서의 저주가 그대로 성취되는 권세가 나타났다.

1. 요단강 강물이 갈라지는 역사 (왕하2:14)
2. 여리고 성읍의 터의 물근원을 고치다. (왕하2:19~22)
3. 벧엘에서의 암콤의 권세로 저주가 응하여 42명의 아이들이 찢겨지다. (왕하2:23~25)
4.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에 대한 승리의 예언 (왕하3:1~27)
5. 감동된 엘리사의 예언대로 골짜기에 물이 넘치다. (왕하3:15~20)

6. 과부의 생계 문제와 빚 문제를 해결하는 도움자 (왕하4:1~7)
7. 아들을 품에 안게 하는 엘기사의 예언 성취 (왕하4:8~7)
8.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표적과 기사 (왕하4:32~37)
9. 독이 가득한 솥 안의 국을 해독한 기적 (왕하4:38~41)
10. 보리떡 이십과 채소로 무리를 먹이고 남게한 기적 (왕하4:42~44)

11. 나아만을 요단 강물에 목욕시켜 문둥병을 고친 기적 (왕하5:1~27)
12. 도끼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한 엘리사 (왕하6:1~7)
13. 아람 군대를 물리친 엘리사의 지혜 (왕하6:1~10)
14. 사람의 눈을 열게 하고 닫게 한 기도 (왕하6:14~23)
15. 사마리아 성의 굶주림이 해결되는 예언 (왕하7:1~)

16. 7년 기근에 대한 가르침 (왕하8:1~6)
17. 엘리사의 죽은 뼈에 닿은 시체가 회생함 (왕하13:20~21) 

열왕기하 2장에서부터 13장의 엘리사가 죽어 장사 지낸 바 된 순간까지 그 기적과 능력의 이야기는 모두 17번이나 된다. 정말 그 기적의 사건은 놀랍기가 한이 없다. 정말 엘리야보다 2배의 능력을 받았다. 엘리야에게는 모두 8번의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엘리사에게는 17번의 능력을 더하셨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필요하다. 기적은 유치하다고 치부할 필요가 없다. 어린 아이의 신앙이라고 둘러대서도 안된다. 육적인 인간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모르기에 기적을 부인한다. 그러나 갑절의 영감을 구한 엘리사는 당당하게 능력의 역사를 보이며 우리를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이 능력의 일들이 지금 여기서 일어나야 한다.

스데반 집사를 보라. 행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하였고 빌립 집사를 보라. 행8:6~8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오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의 전도 속에, 설교 속에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기적의 능력이 나타나면 복음이 전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기적의 축복을 구하려면 엘리사의 이야기에서 배울 것이 많다.

첫째, 오직 능력을 구해야 한다. (왕하2:9)

권능이란 본래 나의 것이 아니다. 사람은 나름대로 힘이 있지만 상식을 넘어서 작용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역사를 일으키는 권능은 하나님의 것이다.

시62:11 “하나님이 한 두 번 하신 말씀을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였도다.”

권능이란 하나님이 일으키는 것이다. 히2:4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구원대 대한 말씀을 믿고 삼가 지켜 순종케 하려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일으키신다. 그렇다면 우리 전도자들은 그 능력을 달라고 매어달리며 갈급해 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의 관심이 사람의 영혼이 아니기에 구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능력을 사모하라.

둘째, 능력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섬기라. (왕하4:8~10)

엘리사는 엘리야를 좇았다. 선생님을 모시고 섬김으로서 능력의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좇아가므로 실망한 것 밖에 더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섬기는 것은 나에게 복이 된다. 그래서 엘리사는 선생님보다 더 큰 기적을 행하였다.

“누구와 접촉하느냐, 누구와 만나느냐, 누구와 친밀히 교제하느냐.” 이것은 ‘성공 하느냐’와 ‘실패 하느냐’의 문제가 되기고 한다. ‘축복을 받느냐’와 ‘받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왕하4:8에서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엘리사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다. 이 여인의 섬김은 일회용이 아니었다.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고 들어가니라.”고 하였으니 얼마나 그 섬김이 선지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인의 섬김은 음식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선지자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지었다. 침상, 책상,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였다. 여인은 자세하게, 세밀하게 준비하여 섬겼다.

왕하4:13을 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고 엘리사가 말했다. 마치 엘리야를 끝까지 섬겼을 때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엘리사에게 물었듯이 엘리사는 섬기는 수넴 여인에게 물었다. 결국 수넴 여인의 섬김은 놀라운 복을 받는 채널이 되었다. 왕하4:14~16을 보면 엘리사는 여인을 불러세우고 “돌이 되면 아들을 안으리라”고 선언한다. 대접받고 섬김받은 엘리사는 무자한 여인을 위해 복을 빌었다. 그때 여인은 “아니로소이다.”하고 아기가 있으리라는 말을 속임수 정도로 받아드렸다. 하지만 이 여인은 1년이 지나 아이를 낳게 된다. (왕하4:17)

아! 기적 같은 축복이 주어졌다. 기적의 원리는 이와 같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능력과 기적은 그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흘러간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말의 권세는 가까이 하는 자에게로 옮겨진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통찰력도 가까이 하는 자에게 흘러간다. 이것을 Importation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섬기는 것이 내가 능력 받는 길이요 내가 복을 받는 길이다. 수넴 여인은 복 받으려고 시작한 섬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도 큰 복을 받게 되었다. 예부터 도공이 최고의 장인이 되는 길은 그 명장의 밑에 들어가 섬김으로 시작한다. 물을 길러오고 장작을 패고 밥을 해서 바치고 심부름을 하고 섬길 때 하나씩 장인의 일과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영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기름부음 받은 자를 따라야 한다. 희생적인 섬김없이 영적 복을 받을 수 없다. 나는 원고지를 사용할 때 아직도 16절지를 반 나누어 사용한다. 성장하면서 목사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행하는 일을 도와 드릴 때 본대로 하기 때문이다. 방안에 원고지를 모아두었는데 꼭 반으로 자라서 사용한다. 나도 그렇게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갑절의 영감이다. 그렇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의 사람을 섬겨야 한다. 아니 기름을 부어주시는 성령을 섬겨야 한다.

제천 동부교회의 정찬유 씨는 머슴이었다.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섬겼다. 목사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섬겼다. 그래서 교회를 지을 때 백미 3,000가마 값을 드려 예배당 봉헌에 일익을 감당하였다. 목사님이 은퇴하자 과수원에다 기와집을 지어 등기까지 내어 드렸다. 매년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의 첫 열매를 등에 지고 가서 큰 절을 올렸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셔서 대 풍년입니다.”하고 원로 목사님을 극진히 섬겼다. 정 장로님이 섬기며 사시다가 세상을 떠날 때 조객과 문상이 십리 길이 되었고 그의 자녀들이 복을 받아서 강원산업을 경영하는 자가 되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하고 맡기는 믿음을 갖자. (왕하4:23~27)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섬겼다. 그러나 그 섬김을 가능케 한 요인 중의 하나가 여인의 믿음이다.

왕하4:9을 보면 여인이 남편에게 말한다.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내가 아노니...”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안다고 자기 의사를 밝힌다. 그것이 그의 믿음의 눈이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제대로 섬기기를 제안한다. 여기서 이 여인과 남편, 두 부부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믿음이 귀한 것이다.

왕하4:8을 보라. 이 여인을 가리켜 “거기 한 귀한 여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왜 그냥 여인이라고 하지 않고 한 귀한 여인이라 했을까? 물론 섬겼기 때문이지만 그 섬김을 가능케 한 믿음의 눈 때문이다. 사실 섬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맡기고 신뢰하는 생활이다. 수넴 여인은 처음에 음식으로 섬겼지만 그 다음에는 남편과 의논하여 쉴 수 있는 작은 방을 준비하여 드렸다. 그것은 믿음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믿음은 선지자를 가까이 하므로서 더욱 큰 섬김으로 자라나고 또 더 큰 믿음으로 자라났다. 신뢰하지 않았던 잉태의 기적, 출산의 기적이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그 후 그 장성한 믿음은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에게 봉사는 할 수 있어도 나를 맡기는 것은 어렵다. 물질을 드릴 수 있어도 괴로움의 날에 나를 맡기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수넴 여인은 아들을 품에 안은 이후 믿음이 생겼다.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능력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자신을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자기 집에 축복받은 아이가 자라나서 두통을 호소하며 죽었을 때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달려간다. 연유를 묻는 남편에게 수넴 여인은 왕하4:23 “평안이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아들을 잃어버리고 난 후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앞에 가서 엎드린다. 그것은 평안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당신이 괴로운 인생의 문제에 답을 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침상에 누워진 수넴 여인의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나게 한다. 죽은 아들을 다시 되돌려 받은 이 기적은 맡기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맡기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맡겨야 한다. 기적을 원한다면 염려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이며 맡겨야 한다. 그것은 예탁하는 믿음이다. 은행에 돈을 맡길 때 염려가 되지 않듯이 맡겨야 한다.

넷째, 기름부음 받은 이의 말을 순종하라. (왕하8:1~6)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향해 기근을 예언한다. 그러므로 거할 수 있을 만한 곳에 가서 거하게 한다. 이 말을 듣고 여인은 왕하8:2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땅에 칠년을 우거하다가 돌아왔다. 이 순종하는 일은 자신의 가정에 큰 복이 되었다. 왕은 이 여인을 위해 관리를 임명하고 왕하8:6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들려주라 하였다. 엘리사의 말대로 행하는 순종이 큰 기적을 가져왔다. 기근의 7년을 무사히 보냈을 뿐만 아니라 왕을 통하여 7년 소출을 다 돌려받는 물질의 복을 받았다.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의 기적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귀히 여기고 섬기고 맡기고 순종한 수넴 여인이야말로 귀하다. 그 여인은 아기를 출산하는 기적으로부터 인생살이의 아들이 죽는 슬픔과 자연의 7년 재난까지도 뛰어넘는 기적을 누리고 복음 받아 살았다.

히13:17 “너희로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한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축복의 기적은 순종에서 온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말을 존중하고 시인하고 환영하며 몸을 움직일 때 기적은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베니 힌 목사는 1980년 디트로이트 집회를 인도하는데 토요일 저녁 성령의 강한 임재를 느꼈다. 그 날 사람들이 회개하고 질병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모두가 체험하였다. 그날 점심 때 베니 힌 목사는 누이와 약속이 있어 점심을 먹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호텔로 돌아가 집회를 위해 기도하라.”

베니힌 목사는 그때 하나님께 ‘오랜만에 점심을 누이와 나누는데 점심을 먹고 갈래요.’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계속 시간을 누이와 보냈다. 오후에 호텔에 가서 준비를 하고 저녁 집회에 섰는데 어제 일어나던 강한 능력의 역사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교에도 반응이 없고 냉랭하고 치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베니 힌 목사는 깨달았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한데 그것은 순종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주님 우리에게 수넴 여인이 체험한 기적과 복을 주세요.”

철저히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갑절의 영감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주님은 기름부으심 받은 이로 엘리사보다 크다. 그를 주님으로 모신 우리는 전심으로 섬기자. 삶을 맡기자. 순종하자.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은 여기서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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