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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죽음과 생명의 세례 (골 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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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생명의 세례 (골로새서 2:12-15)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주일에 오늘 함께 읽은 골로새서 2장의 말씀을 통해 교회가 시행하는 성례식의 두 축이 되는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성찬예식에 임하고자 합니다.  세례는 회개하고 죄를 씻는 예식입니다.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치던 세례 요한을 찾아온 이스라엘의 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마3:1-6).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을 받은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행 2:37, 38)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의 회심을 간증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행 22:16). 

이처럼 세례예식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주의 이름으로 죄 씻음을 얻는 증표로 받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던 요한에게 친히 받으신 예식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내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당신이 나에게 오십니까?’ 하고 예수님을 말렸지만 ‘이제 허락하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하시며 세례를 받으셨던 주님이십니다.  죄가 없지만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주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는 비로소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와 천국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으며, 제자들을 불러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으로 남기신 말씀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 20)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세례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도록 하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교회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들에게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풉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그 믿음고백을 주께서 인정하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나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하심을 믿음으로 요청할 때 교회가 세례를 베푸는 것이며, 그 의식을 통해 우리는 죄 씻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출생함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세례는 죄 사함의 표시입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교우들은 이런 고백과 함께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언젠가 자신의 신앙고백을 통해 세례 받기를 소망하는 교우들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께로부터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신 말씀대로 이제 마음에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분들은 주저하지 말고 세례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물로 세례를 받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죄 씻음의 표시인 세례라는 예식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확정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책임 있는 삶을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삽니다.

교회는 세례를 받은 교우들에게 성찬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찬예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자격을 누구에게나 주지 않고 오직 세례 교인에게 한정하는 것은 성찬의 참 뜻을 바로 알고 그 떡과 잔을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의 능력과 은혜에 동참하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아직 세례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 중에는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찬예식을 행할 때에 비록 세례교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살펴 이 떡과 잔을 대하기에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도록 권합니다.  그 이유는 성찬의 본 뜻을 기억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먹고 마심은 자신에게 은혜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찬은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던 자리에서 떡과 잔을 나눠주시며 당부하심으로부터 시작된 예식입니다.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 하셨고, 또 잔을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시고 이것을 다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는 이 예식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께서 주신 떡과 잔을 대할 때마다 주의 고난과 죽으심에 한 몸이 되어 동참하는 것이며 또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도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바로 여기에 성찬의 생명이 있습니다.  주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심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과 연합함이요 한 떡과 잔을 나누는 형제들의 하나가 됨입니다.  주께서 당하신 고난의 쓴 잔과 십자가 고통에 함께 연합함이며 또한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영광에 하나가 되어 참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찬을 대할 때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세상에서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뜻을 이해하고 또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이 성찬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며, 그 사람들은 이미 세례 받을 때 이 의미를 알고 믿고 고백하며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기로 결단한 교인들입니다.  그래서 세례와 성찬은 교회가 행하는 거룩한 예식의 두 축이 됩니다.

이미 세례 교인이신 분들은 이 의미를 항상 마음에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까?  세례는 단순히 교회의 회원이 되기 위하여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의 의미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에 하나가 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다시 말하여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예식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신 말씀 속에는 이런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뒤를 따랐으며 모진 핍박과 고난 속에 예수를 믿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가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처음부터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례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받았으며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실 날이 다가왔을 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르실 날만 기대하며 서로 더 높은 영광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경쟁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과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10:38) 하시니 그들이 대뜸 ‘할 수 있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 잔과 세례가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의 철 없는 대답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마시는 고난의 잔과 죽음에 너희가 함께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셨는데 그들은 장차 왕이 되실 주님 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영광만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이방인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주께서 뜻하신 이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골로새서의 내용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세례와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전에 율법을 의지하고 살 때에는 사람들이 손으로 할례를 받았지만 이제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으니 곧 주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12절을 봅시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세례는 곧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서 다신 살리심에 함께 하는 연합입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우리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고 그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주님과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2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나는 이미 그와 함께 거기에 달려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산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 것이니, 이제 내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삶의 의미가 곧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바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고백 속에서 바울은 또 다른 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세례 받은 사람으로서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으로 거룩한 삶에 동참하자는 호소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동일한 말씀을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 4절).  바울이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세례의 의미를 상기시킨 후 그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제 죄에 대하여는 죽은 몸이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산 새 생명을 가졌으니 우리의 몸으로 더 이상 죄 짓는 일에 굴복하지 말고 죄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말도 많고 문제도 많은 교인들에게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하고 세례와 성찬을 더럽히는 우상숭배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향하여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 홍해를 건넌 사건과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를 마신 사건을 세례와 성찬에 비유하여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엄하게 책망 받은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함께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간 것은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신령한 식물 즉 만나를 먹고 신령한 음료 즉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홍해를 지나면서 그들은 과거 애굽에서 종 살이 하던 종의 신분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애굽의 바로에게 매인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건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광야 생활 중에 먹이고 입히시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신 아버지셨습니다.  하늘의 양식과 생수를 먹고 마신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찬예식에 동참하던 광야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세례교인으로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으며, 간음을 일삼고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6절에서 말합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시고 엄하게 벌하셨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세례와 성찬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 자신의 몸이고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세례교인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은 이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삽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삶을 살기로 고백하고 결심한 세례 교인은 더욱 자신을 살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의 말씀을 한 곳 더 봄으로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하여 사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살펴봅니다.  9절, 10절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란한 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창 노릇을 하는 자나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남을 중상하는 자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여러 차례 설명 드린 것처럼,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15절-20절을 봅시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사람은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세례는 죽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세례식은 어떤 의미에서 장례식입니다.  나의 옛 사람의 성품을 물에 수장시키는 장례식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지나면서 그들의 옛 삶을 물에 장사 지내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신령한 떡과 음료를 먹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새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사람들 역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물로 나와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의 옛 사람은 물에 들어가는 순간 죽었고 물 위로 나오는 순간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례를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하셨고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습니다. 

  세례를 받는 자리에서 나의 옛 사람은 이제 죽었노라 사망선고를 하며, 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세례교인들은 나의 옛 사람이 잘 죽고 주께서 주신 생명으로 거듭난 삶을 힘차게 살고 계십니까?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성찬식을 행하였던 광야교회 성도들은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습성을 다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번번이 훼손하였습니다.  겉으로 세례는 받았는데 그 속 사람은 여전히 과거에 매여 죄의 종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를 살핍시다.  우리는 나의 옛 사람의 장례식을 잘 치렀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 노릇 하는 옛 사람이 아닙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선언하며 의에 대하여 살기로 선언한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쉴 틈이 없이 꿈틀거리며 치밀어 올라오는 나의 옛 사람의 성품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임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힘씁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빌며 우리를 성령의 사람으로 이끄십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처럼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힘쓰고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명으로 반응하며 삽시다.

고전6장11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여기 있습니다.  전에는 죄 가운데 살았지만 주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세례는 죽음과 생명에 관계되었음을 오늘 골로새서와 또 다른 본분들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  잘 죽어야 새롭게 살아갑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그 참 의미를 채 깨닫기도 전에 너무 가볍게 받은 것으로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슨 자격증 취득하듯 세례를 받아버린 사람도 있고, 결혼을 이유로 얼떨결에 받은 분도 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정성을 가상하게 여겨 바른 신앙고백도 없이 체면 유지용으로 베푼 세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동료들에 휩쓸려 초코파이와 우유 먹으려고 세례를 받았으니 내 세례는 가짜라고 하며 다시 받겠다고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고민이 없이 무감각하게 지내는 세례교인들이 문제이지 고민하면서 사는 분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분들입니다.  물세례는 또 다시 받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지난 날 바른 신앙고백이 없이 받았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분명한 고백 속에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기쁨으로 받아주시고 은혜와 능력을 공급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나는 어떤 세례교인인가 살피며 성찬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세례 받지 못한 분들은 오래 지체하지 않고 마음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시고 새 생명 얻은 거듭난 성도의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와 함께 주께서 명하신 이 떡과 잔에 동참함으로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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