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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를 기울이라 (사 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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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라 (사 55:1-5)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 왜 목이 마를까?

피나 바우쉬는 독일의 세계적인 안무가입니다. 몇 해 전 그가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을 관찰하면서 만들어낸 무용의 ‘rough cut’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어딘가로 겅중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역동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안쓰럽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어쩌면 결승점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나가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다 행복을 구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다보면 슬픔의 안개가 밀려옵니다. 다들 왜 그리 힘들어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저마다 자기 속도에 맞추어 세상을 살기 보다는 세상이 정해준 속도에 맞추느라 허둥댑니다. 또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다보니 숨이 가쁠 지경입니다. 내 속도에 맞추어 살면 그만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습이 워낙 강고하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전우익 선생님은 옛날 노예는 쇠고랑 찬 덕분에 어슬렁어슬렁 일했고, 사슬에 묶인 줄 알았지만,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뜀박질을 강요당하며 짓밟히면서도 묶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고 혀를 차셨습니다. 늘 뭔가 일에 쫓기다보니 우리는 남 탓하고 세상 탓하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전 선생님은 말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쳐다보는 해와 달은 구름에 가려도 몇 며칠 장마가 져도 빛나지요. 구름 끼었다고, 비 온다고 모습 바꾸지 않지요. 제 모습 갖지 못한 놈 세상 탓합니다.”(전우익, <<사람이 뭔데>>, 66-67쪽) ‘제 모습 갖지 못한 놈 세상 탓한다’는 말씀이 가슴을 쿵 하고 칩니다.

도시인들은 다 목이 마릅니다. 속을 태우며 사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닮았습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목이 마릅니다. 바쁘게 돌아다니기는 하는데 마치 고갱이가 빠진 것처럼 삶이 푸석푸석합니다. 다섯 남편을 두었으나 마음의 헛헛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우리의 상황을 잘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신들을 찾아 나선 여행길이 고되어서 지쳤으면서도, 너는 ‘헛수고’라고 말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너는 우상들이 너에게 새 힘을 주어서 지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구나.”(사57:10) 사람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길이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속에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심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등지고 걷는 길은 그것이 제 아무리 화려해보여도 삶에 궁극적인 만족감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섯 남편’이 아니라 참 남편이신 하나님입니다.

• 눈을 뜨면 보인다

도로테 죌레라는 신학자는 현대인들을 가리켜 ‘고장난 존재’라 했습니다. 유기체인 인간을 기계라고 하는 게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그의 진단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는 고장난 인간의 특색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결속감정이 없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통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지 못합니다. 피조세계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참여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의식하지도 못합니다. 세상을 보면서도 놀랄 줄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줄도 모릅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하면서 행복은 한사코 피합니다.

13세기 아프가니스탄의 시인인 루미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포도주가 술통 가득 넘쳐나는데/잔이 없구나/우리에겐 아주 참 잘된 일이다./아침마다 덕분에 달아오르고/저녁에도 벌겋게 달아오른다.”(<잘된 일> 부분).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담가놓으신 포도주가 넘치는데, 우리는 잔이 없다고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놀라운 초대 앞에 서 있습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아오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라.”(1)

이 메시지는 주전 6세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온 말씀입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로도 그들은 목말랐을 겁니다. 시편의 시인은 바벨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들이 노래를 청하고, 이스라엘을 억압한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주기를 요구했을 때도 그들은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찌 남의 나라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시137:4). 그들은 고국 땅으로 돌아가는 날만을 기다립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감미로운 은총을 맛볼 수 있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마치 봄의 전령처럼 예언자는 하나님의 초대를 전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 누구라도 와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고달파도 삶은 계속되게 마련입니다. 아니 계신 곳 없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순간, 우리 속의 우울함이나 어둠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는 얼마 전 1년여의 암투병 끝에 재기 무대에 섰습니다. 그는 행복에 넘치는 듯 보였습니다. 죽음의 벼랑에서 귀환한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그는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모두가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이 와요, 너무 아름답잖아요. 그저 행복하고 감사해요. 살아 있다는 것이,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병에서 회복되었을 때 그는 자전거를 타고 청계천에 나갔습니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지금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승부욕에 불타던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버리고, 이제는 여유있게 즐기면서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이제 생의 풍요로움과 환희를 팬들에게 들려드리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 얻은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바람과 물결이 일지 않는다면, 인간 도처에 아름다운 푸른 산과 싱그런 물이 있다(心地上無風隨在皆靑山綠水, 채근담) 하지요?

• 영혼이 살 길

문제는 바람과 물결입니다. 인생에는 평온하고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흐린 날도, 눈물겨운 날도 있습니다. 그 속을 걸어가면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인생의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면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자기 속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 소리에 ‘다이몬의 소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그 소리 덕분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참된 삶을 살기 위해 고심할 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유입됩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비록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셔도, 다시는 너의 스승들을 숨기지 않으실 것이니, 네가 너의 스승들을 직접 뵐 것이다.”(사30:20)

그 스승은 우리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려 하면,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 길로 가거라' 하고 가르쳐주십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2b-3a)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우리 영혼을 지켜낼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음에 적응된 우리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려듣지 못합니다. 우리 귀는 늘 사람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어쩌다가 유용한 정보가 얻어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야 왕따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귀를 열고 살다 보면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참답게 산다 할 수 없습니다. 참 사람은 ‘어떻게 하면 고생을 면해 볼까?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까? 어디에 땅을 사야 돈을 좀 벌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우리를 더 어지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참 사람이 되려면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깊이 생각하며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이 닥쳐올 때 허둥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 속에 깊이 들어가 있다가, 샘을 통해 솟구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꼭 필요할 때면 솟아나 우리에게 길을 일러줍니다.

• 언약을 받은 자의 삶

말씀을 받아 모신 사람의 마음은 든든합니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3)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한평생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언질만 받아도 마음 든든한 데,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결코 훼손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우리가 고난을 받을지 모르나,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완수할 수 없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것이고 우리가 못 다한 일들을 완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은 겸손하지만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사람을 대포알에 비유합니다. 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폭발할 줄 압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일으켜 줄 마음이 일지 않고, 불의한 일을 보아도 못 본 척 외면해버리는 사람은 불발탄이 된 사람입니다. 그 까닭은 화약이 없거나, 뇌관이 고장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 영혼은 점점 편안함에 길들여집니다. 불편함을 못 견딥니다. 그래서 점점 화약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마음이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의 뇌관도 고장나 꼭 필요한 상황을 만나도 폭발하지 못합니다. 혼이 꺼지고 살덩이만 남은 존재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불이 우리 속에서 타오른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기껏해야 목마름이나 더해 줄 욕심에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시려는 주님의 꿈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주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자의 삶은 당당합니다. 성도의 삶은 그렇기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어려움도 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임금이 등장하면서 도둑처럼 다가온 해방의 날을 맞았습니다. 어느 누가 예측이라도 했겠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 믿음이 진정으로 우리 속에 스며든다면 우리의 목마름은 그칠 것입니다. 주님은 수가 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4:14) 하셨습니다. 지금 도시라는 척박한 우물가에서 목마른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이 들려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모신 사람은 결코 불발탄일 수 없습니다. 입춘이 내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한 봄을 가져오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새 봄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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