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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단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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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단 1:8~21)

오늘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심령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하나께서 은혜를 주셔도 우리 심령이 열리지 않으면 그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영이 살지 못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힘드십니까? 삶의 전쟁터에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죄를 짓게 되고 가슴도 아프게 되고, 상처투성이로 이곳에 나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치유받고 회복되고, 다 건강해져서 영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잇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예수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나중에 묘비에 성도라고 습니다. ‘성도000의 묘’라고 씁니다. 성도라는게 중요합니다. 목사냐, 장로냐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성도라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세상의 많은 죄인들 가운데서 예수를 믿게 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별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부터 다르게 살라는 겁니다. 전과같이 살지말고 예수 믿는 그 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거룩한 백성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라는 겁니다.

세상사람들도 우리들을 향해서 요구하는 것은 다르게 살아달라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처럼 살면 막 욕을 합니다. 자기들은 마음대로 살고 죄지으면서도 우리가 그렇게 살면 욕합니다. 당신들은 우리와는 달라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알지 못하고, 소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같은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에베소서 5:8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전과 후는 어둠과 빛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이제 어둠이 아니다. 어둠의 자녀들이 아니다. 이제는 어둠을 벗어나서 빛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어둠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겁니다.

달라야 된다는 겁니다. 마5:46-47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라고 합니다.

내가 좋은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사랑해야 합니까? 원수...따라합시다. “원수도 사랑하라” 로마서 12:20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씁니다.

예수님게서는 이렇게 달라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오늘 성경찬송 들고오는 것이 다르지요. 밥먹을 때는 뭐가 다릅니까? 기도하지요. 어떤 사람은 예수 믿어도 부끄러워서 눈을 뜨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술담배를 안해요.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은 술먹고 와도 되고, 담배피우며 와도 됩니다. 절대로 교회는 당신 술끊고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술 먹어도, 담배 피워도 예수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 나오라고 합니다. 계속 예배드리다보면 담배 냄새가 역겹고, 술마시기가 싫어져요.

예수 잘 믿는 분들은 자기 가게 앞에다가 뭐라고 붙입니까? 목욕탕하는 사람도 자기 가게 앞에 뭐라고 붙입니까? 붉은 글씨로 뭐라고 붙입니까? “주일은 쉽니다.” 세상 사람들은 돌았나라고 합니다. 주일날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버는데 왜 문을 닫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육이오가 끝날 무렵 공산당들이 막 판을 칠 때 공산당들이 손양원목사님의 사랑하는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를 총으로 쏴죽였습니다. 동네 뒷산으로 데리고 가서 죽였습니다.

그 때 손목사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성이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보세요.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경찰서가서 용서해주시오. 내 두 아들을 죽인 저 사람을 용서해주시오. 나는 저 사람을 내 양아들로 삼겠습니다 .그 때 모든 사람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과연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르구나!

그걸 보여줘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라야 될까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관이 가치관이 내세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인생관이 확고해지고, 가치관이 확고해족, 내세관이, 금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내세가 있다는 것이 확고해졌기 때문에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는 당신의 피조물입니다. 진리만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천국에 갈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잇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을까요?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살아간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겠습니까?

한 개인을 봐도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가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목표없이 돈만 끌어 모으려고 하고, 온갖 짓을 다해서 부자되려고 했는데,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가고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내세관이 분명해지니까 그 때부터 깨끗해지는 겁니다. 좋은 남편이 되는 겁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겁니다. 너무나 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달라지는 겁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한 사람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식인종이었는데 지금은 예수를 믿는 부족이 되었습니다. 한 인류학자가 연구하기 위해서 그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이 학자는 무신론자입니다. 그 마을에 들어가니 한 노인이 성경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학자는 “왜 그렇게 낡은 책을 읽습니까? 지금 문명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그런 성경책은 읽지 않습니다. 당신도 그 책 읽느라 시간낭비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식인종 노인이 “내가 지금 이 성경이 아니면 당신은 이미 내 뱃속에 들어갔소”라고 하더랍니다. 예수 믿었기 때문에 식인종이 변해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올바른 신앙을 통해서 인생관, 가치관, 내세관이 진리위에 굳게 세워졌기 때문에 두드려 맞아도, 감옥에 들어가도 다르게 살 수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같은 모양으로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패도 다르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진리를 알고 깨달았기 때문에...

예수 믿음으로 내세의 소망을 가진 자는 땅의 것을 찾지 아니하고 위엣것을 찾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하늘에 쌓아둘 수가 없어요. 하늘이 안보이는데, 하늘이 없는데...그러나 믿음으로 저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계속 하늘에 자기 보물을 투자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돈 쓰는 것이 안 믿는 사람과 너무나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 돈 쓰는 걸 보니 다르구나! 돈 쓰는게 불신자와 스타일이 똑같으면 그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디메도전서 6:17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통해 인생이 무엇이며 참된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사람은 그것이 없는 사람과는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물질문제로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다른점을 보여줍니다. 롯을 불러서 “골육간에 물질문제로 싸워서 되겠느냐? 헤어지는게 좋겠는데, 니가 먼저 좋은 것을 택해라” 이것이 다른점 아닙니까?
안믿는 세계는 어떻습니까, 돈몇푼 때문에 부모자식간에도 안면몰수하고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다른점을 보여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4명의 신앙의 훌륭한 청년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온 유대청년이었습니다. 바벨론 왕들이 이 똑똑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서 바벨론의 인재로 쓰기 위해 회유책을 씁니다. 그래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네 친구는 왕이 주는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믿는 사람이 무엇이 달라야 되는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큰 도전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잘믿는 사람일수록 다른점이 보여져야 합니다.

1. 다니엘과 3친구는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뜻을 정했다는 것이 다른점이었습니다.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뜻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것에 가치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깨끗한 것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이 주는 것을 정신없이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3친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왕이 주는 것이지만 이것은 우상에게 드린 제물인데 이것을 내가 먹으므로 내 마음과 육체와 영혼이 더러워져서는 안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왕이 주는 것을 거절했다면 그들의 목숨이 남아있겠습니까? 그들은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돈을 벌기위해서라면, 명예와 권세를 얻을수만 있다면 더러운 것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 많이 벌수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그렇게 돈벌면 안됩니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더러운 것, 똥이 묻은 것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재벌들 얼마나 더러운 짓을 해가면서 돈을 법니까? 국회의원, 군수, 시장되려고 얼마나 더러운 짓을 합니까?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더러운 것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믿으면서도 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습니까? 월급받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받는 월급 그 이상으로 충실하게 살아가지 못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버는 돈은 더러운 돈입니다. 1,000만원을 받는다면, 1,200만원어치는 해야 그 돈은 깨끗한 돈입니다. 1,000만원 받으면서 500만원어치 밖에 일안하고 돈을 받았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양심이 무디어졌다는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나쁜 짓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훌륭한 어머니가 계신데, 이 목사님이 예전에 사업을 하셨답니다. 이 분이 돈을 벌어서 매달 어머니께 용돈을 드립니다. 어머니는 가장 먼저 묻습니다. “얘야, 이 돈이 깨끗하냐?” “어머니, 걱정마세요. 깨끗한 돈입니다.” “그래, 고맙다” 참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돈만 많이 주면 기분이 좋아서 입이 찢어져 어쩔줄 모르고, 그래서 되겠습니까? 내가 굶어도 좋으니 이 돈은 깨끗한 돈이어야 한다, 이것이 달라야 합니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인류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입니다. 매스컴을 타고 그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어느날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어느 담배회사 사장이 그를 모델로 삼아 CF를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제안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회사 담배를 물고 폼을 잡고 있는 사진을 찍고싶다, 그러면 5만불을 사례로 드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80년전에 5만불은 지금으로 수십억은 됩니다. 그런데 린드버그는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저는 교회다니는 세례교인입니다. 담배광고에는 출연할 수 없습니다.” 그 소문이 미국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미국교회들이 모금을 해서 린드버그에서 10만달러를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그와같은 다른모습으로, 깨끗함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과 다른 모습입니다.

2. 다니엘과 3친구는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믿음을 보여주었고,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환관장에게 제안하기를 “우리에게는 물과 채소만 주십시오. 10일후에 비교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쇠약해져 있으면 왕의 음식을 주시고, 우리 얼굴이 더 좋으면 계속 그렇게 주시기 바랍니다” 허락이 되었습니다. 계속 채소만 먹었습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진리를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을 왜 사람들이 비난합니까? 말은 잘한다고 비난합니다. 행동은 하지않으면서 말은 잘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같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랜드 박성수 사장을 소개합니다. 그분 정말 귀한 크리스찬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큰 빌딩을 짓는데 공무원, 세무서, 소방서에서 와서 돈만 조금 쓰면 건물을 쉽게 지을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다 거절하고 제대로 지으려하자, 다시 와서 이것 잘못됐다, 저것 잘못됐다 지적을 하는겁니다. 그러면 다시 고치고 또 다시 고치고 그렇게 했습니다.
전부 다 거절 했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네 번 자꾸 오는데 전부 다 거절했습니다. 나중에는 제대로 하니깐 시비를 거는 거예요. 이것이 잘못되었다. “예 그렇습니까?” 돈을 억수 같이 쓰가면서 원칙대로 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이 분의 한 말 중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저는 세금을 많이 내기 위해서 이 사업합니다. 저는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여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름을 보여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통영으로 세금을 바로 내고 정직하게 살면 사업 못한다는 것이 통영입니다. 그런데 박성수사장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아라 더 잘 살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겠다. 보여 준지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비교하여 보십시오. 왕의 진미를 먹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체소만 먹는 사람의 결과를 비교하여 보십시오. 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박성수 사장이 그렇게 사람입니다. 내가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만으로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 박성수사장같은 분이 정말 귀한 분입니다. 그런 분이 이 나라에 많이 일어나야 이 나라가 살 줄 믿습니다. 세 번 째로 우리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 가?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끝까지 존귀하게 쓰임받는 것이 달랍니다. 17~21절 까지 그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 친구에게 큰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왕이 그들을 존전에서 면담을 해 보니깐요. 그 바벨론의 술객들과 박사들보다 총명과 지혜가 10배나 뛰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 앞에 존귀하게 쓰게 된 것을 봅니다. 여러분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따라 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쓰임받는 것이 달라야 된다.” 그 사람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임받는 사람, 한 사람이 가정에 들어오면 요셉이 보디발의 가정에 들어오니깐 요셉 한 사람 때문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깐 달랐습니다.

저 사람은 다르구나 수많은 종들이 그 집에 있는데 요셉이 독보적으로 다르게 보였습니다. 왜 그렇게 보였습니까? 너무나 너무나 진실하고 정직하고 충실하게 “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르구나. 저 친구를 우리 가정에 가정 총무로 삼아야겠다.”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든지 무엇이 달라야 합니다. 일하는 일군으로 쓰임받는 것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에서도 달라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다릅니다. 가정에서도 다릅니다. 국가에서도 다릅니다. 어디가더라도 청화대에서도 다르고, 어디가더라도 다 다릅니다.
왜냐 믿음의 뛰어나기 때문에 책임감이 다릅니다. 성실함이 다릅니다. 실력이 다릅니다. 21절을 말씀을 같이 읽읍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이 짧은 말이 대단한 의미를 가집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바벨론에 느부갓네살 왕때부터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 그 다음에 벨사살 왕, 그리고 다리오왕과 고레스왕까지 4대 왕을 섬기면서 높은 자리에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왕이 바뀌고 제국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어느 사람에게든지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시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귀하게 쓰임받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귀하게 쓰임받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더러워지기 않기 위하여 뜻을 정하고, 깨끗하게 살자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주셔서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과연 다르구나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다른 것을 나타내주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에 어디서든지 귀하게 쓰임을 받는 그 모습을 통해서 귀연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을 꼭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르구나 그 소리를 꼭 듣고 살아가기 위해서, 날마다 과연 나는 다르게 살았는가? 날마다 그 말씀을 떠올리면서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면서 더욱 더 다른 모습으로 구별된 모습으로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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