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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을 주는 말 (잠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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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말 (잠 15:1-7)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장영희 교수가 있습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오른쪽 팔이 불편한 분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생활을 하며 장애인으로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서강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시대의 최고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분입니다. 유방암 수술과 척추암 수술을 받고도 웃음과 삶의 여유를 잃지 않는 분입니다.

  목발을 집고 다니기에 행동이 느릴 수 밖에 없는데 느리게 다니기에 사물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유방암과 척추암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가서도 웃었던 사람, 수술 후에 치료를 받는 고통속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도리어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대신해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고통속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장교수는 초등학교때부터 다리가 불편해서 집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대문 앞 계단에 작은 방석 하나 깔아 주고 그녀를 끌어 앉혔답니다. 노는 아이들이라도 구경하라는 것이겠지요.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할 수는 없었지만 친구들은 그녀에게 심판을 시켜주거나, 짐을 맡기거나 하면서 역할을 꼭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덕분에 놀이는 함께 못해도 소외감이나 박탈감은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영희 교수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이끌었던 한마디의 말을 기억합니다. 그녀가 평생 잊을 수 없는 힘이 되는 말 한마디를 해준 사람은 엿장수 아저씨였습니다. 어느 날 엿장수 아저씨가 장교수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계단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고 다시 돌아와서는 깨엿 두 개를 내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이며 ‘괜찮아’ 라고 말했답니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장교수는 그 엿장수 아저씨가 ‘괜찮아’라고 들려준 말에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어려울 때도, 실패할 때도, 외로울 때도, ‘괜찮아’라는 말은 자신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장교수는 지금도 ‘괜찮아’라는 이 말을 들으면 괜히 가슴이 찡해진다고 합니다. TV 퀴즈프로그램에서 혼자 남아 문제를 풀다가 결국 골든벨을 울리지 못하면 친구들이 얼싸안고 ‘괜찮아! 괜찮아!’을 외치는 말을 들을 때도 가슴이 찡해진다고 말합니다. ‘괜찮아’라는 한 마디의 격려와 사랑의 말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이기는 힘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에 절망하며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있고, 말 한 마디에 희망을 얻고 생명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평생 마음에 상처가 되는 비수로 꽂히기도 하고, 말 한 마디가 깊이 상처입은 마음을 아물게 하기도 합니다.

  말로 인하여 실수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는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이 사실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면 안됩니다. 말을 할 때는 사실인지를 꼭 확인하고 말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상대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면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타인에게 말할 때는 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들은 이야기 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함으로 상대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생각되면 사실일지라도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유익하지 못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목적입니다.

  셋째는 설령 상대에게 유익이 된다할지라도 모두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시험에 떨어져 실망하고 있는 학부모가 있는데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아들을 둔 부모를 칭찬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좋은 이야기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낙방한 학부모에게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단어가 남자는 평균 2만 5천 단어, 여자는 3만 단어 쯤 된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자신이 사용한 단어로 책을 펴내면 4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132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일평생 이야기하는 시간을 따로 모아 보면 대략 13년을 꼬박 말하는 데 소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말들이 결국 인생을 만들어 냅니다. 좋은 말은 좋은 인생을 만들고, 위대한 말은 위대한 인생을 만들며, 훌륭한 말은 훌륭한 인생을 만들고, 덕스러운 말은 덕스러운 인생을 만들며, 아름다운 말은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신앙적인 말은 건강한 신앙인을 만들 것입니다.
 
  말에는 부메랑의 속성이 있습니다. 부메랑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새나 작은 짐승을 사냥할 때 사용하던 도구입니다. 길이는 30cm-80cm정도이며, 양끝이 70-120° 벌어진 나뭇조각으로 단면은 밑이 편평하고 위쪽은 불룩한 반원형입니다. 벌어진 쪽을 앞으로 해서 한쪽 끝을 잡아 손목을 비틀면서 던지면 회전하면서 보통 30m 정도까지 똑바로 날아가다가 옆으로 회전하여 돌아옵니다. 부메랑은 표적물에 명중되지 않으면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을 부메랑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의 말에는 부메랑의 속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없는 데서 사람을 험담하는 것을 ‘뒷담화’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구에서 사용하는 속어 ‘뒷다마(다마: 공이라는 일본어)’와 발음과 상징적 의미가 비슷해서 뒤에서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을 ‘뒷담화 친다’거나 ‘뒷담화 깐다’라고 말합니다.

  대체적으로 뒷담화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뒷담화는 대인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풀어줍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분노를 해소하는 데는 뒷담화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습니다. 험담할 때 그 맛을 ‘깨소금 맛’에 비유합니다. 그 만큼 재미있다는 말입니다. 험담은 대인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줍니다.

  험담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열등의식 때문입니다.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험담을 많이 합니다. 험담하는 순간에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험담을 통해 상대방을 깎아 내리고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험담은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뒷담화는 부메랑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과 모여 험담을 할 때 그 험담의 가장 큰 피해가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험담의 가장 큰 문제는 험담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뒷담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험담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게 되는 자신입니다.

  험담은 세 사람을 죽입니다. 험담하는 사람과 그 험담을 듣는 사람, 그리고 험담의 대상입니다. 험담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성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칭찬은 세 사람을 살립니다. 칭찬을 하는 사람과 칭찬을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칭찬의 대상입니다. 칭찬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성을 밝고 감사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했던 험담을 당사자가 전해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면전에서 보인 태도와 없는 데서 하는 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제 3자를 통해 전해 듣는 칭찬은 최고의 점수를 받습니다. 3자를 통해서 칭찬을 받은 사람은 칭찬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칭찬은 최고의 점수를 받지만 험담은 최악의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사람은 험담을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리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리라.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리라.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언제나 혀를 조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에 명절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향을 찾고,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설날이기 때문에 덕담으로 꽃을 피우겠지만 혹이라도 우리들의 대화 가운데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분내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하는 가운데 즐거운 천국의 언어가 풍성한 명절을 보내시고, 행복한 시간들을 즐기고 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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