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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름 받은 사람 (살후 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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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받은 사람 (살후 2:13~15)

할렐루야!
여러분은 예전에 학교 다녔을 때 공부 잘 하셨습니까?
지금은 성적을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지만,
예전에는 ‘수우미양가’ 다섯 단계로 평가했습니다.

성적표를 받던 날이면 기뻐 뛰며 집으로 뛰었던 기억이 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성적표를 받는 순간 어디에 감출까, 도장은 어떻게 받아갈까 …
염려하며 근심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수’가 많으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양, 가’를 많이 받으면 “양가댁 자식이라 양가를 받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수우미양가’의 뜻도 모르고
‘수’는 좋은 것, ‘가’는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평가에 쓰이는 이 다섯 단어에는 모두 좋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수(秀)'는 '빼어날 수'자로 '매우 우수하다'는 뜻 입니다.
'우(優)'는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미(美)'는 '아름다울 미'로 '좋다'는 뜻입니다. 역시 잘했다는 의미입니다.
'양(良)'은 '양호하다', '어질다', '뛰어나다'의 뜻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괜찮다'는 뜻입니다.
'가(可)'는 '가능하다'고 할 때의 '가'로 '옳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선생님들은 마지막에 있는 제자들까지도 가능성을 보시고
‘너는 가능성 있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수우미양가’ 중에 어떤 글자를 많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가“잘하고 있다”, “아름답다”, “가능성 있다”… 는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시고,
오라고 부르시고, 받아주시니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쓰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임에 감사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에서 만들어 일간신문에 넣어 전도하는 에 보니
“둔감하게 사는 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합니다.
남에게 무슨 말만 들어도 바르르 떨며 ‘열 받어’하는 분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남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흘려버리는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며 오래 산다고 합니다.
여러분, 넉넉하게 여유 있게
‘하나님이 아시는데 …, 그럴 수도 있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여유있게 넉넉한 마음으로 오래 오래 사십시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르심 - 소명

우리는 지금 “예수 믿어 구원 받았고 /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며/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召命, 부를 소 / 목숨, 명할 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은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소명을 영어로 ‘왕의 호출’(a royal summons) 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소명을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시는 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순화하여 ‘부르심’, ‘calling’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소명(calling)’은 성경에 직, 간접 표현으로 약 700회 정도 나옵니다.
구약에 나오는 대표적인 소명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부르심입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 …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불렀다는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신약에서 가르치는 소명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걸어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천국 백성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살후 2:13~14)
또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고(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느니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기 위하여(갈 1:15~16)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셔서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따라 살게 하시려는 부르심입니다.

소명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길을 내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every one)
하나님의 자녀 되는 길을 내셨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그 은혜에 응답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청함 받은 자’와 '택함 받은 자’를 구별하여 설명하셨습니다.

한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갑자기 잔치를 열지는 않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손님을 초청합니다.
‘몇 월 며칠에 결혼식이 있으니 와 주십시오’라고 음식 메뉴까지 밝히면서 청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초청받은 사람들이
그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감사히 여기거나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밭으로 일하러 갔고,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 때문에 갔습니다.
심지어는 잔치를 알리고 청하러간 종들을 모욕하고 죽여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이미 준비된 혼인잔치니 네거리 길에 가서 만나는 사람,
누구든지 혼인잔치에 청하라”고 종들에게 명합니다.
그래서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습니다(마22:10).

도덕적인 잘못이 드러난 악인이든지 …
선하게 산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든지 … 누구든지 다 오라고 했습니다.
임금의 초청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잔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사환들에게 예복입지 않은 자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묶어 어두운 곳에 던진다는 말은 감옥에 가두라는 것과 같습니다.

오라고 초대해 놓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왜 내쫓았을까요?
당시 유대의 관습은 혼인 잔치에는 꼭 예복을 입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는 것은, 그 잔치 자리를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특별히 궁중 잔치는 문 앞에서 예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페르시아 궁중의 경우에는, 예복을 빌려 주는 정도가 아니라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아예 예복을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이런 게 뭐 필요 있어, 내 방법대로 하면 되지 …’하며
임금의 권위나 준비한 배려를 무시한 채 자기의 생각대로 하겠다고 고집부린 것입니다.
임금이 초대한 잔치를 모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쫓으라고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한 임금같이
하나님은 어느 누구라도 동일하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라는 초청장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고 하셨습니다.

독생자라는 초청장을 받아 든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믿음의 옷을 입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구원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청하실 뿐 아니라
예복 또한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
소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택함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고 하셨습니다.
청함에 응해야 그 잔치에 택함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초대 받은 손님이요,
초대 응하여 잔치 자리에 참석한 택함 받은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고 / 하나님 자녀 되고 /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믿음의 고백’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경품 추첨을 한다고 할 때
추첨이 되어 선택된 번호를 가진 사람이라도
앞으로 나가 경품을 받아야 택함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초청장을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초청을 받아들이고
예배의 자리에 오셨으니 택함 받은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소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라는 확신은 건강한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고,
아직도 자신이 구원 받았는가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공격에 믿음이 흔들립니다.
사건, 사고, 사람 … 때문에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이라는 초청장을 받아 ‘내가 구원 받은 자리에 있다’는 확신으로,
이미 예수님이라는 예복을 입은 사람으로 사셔야 합니다.

부르심에 대한 확신은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최고의 권력을 행사한 이집트 바로 왕 앞에서
담대하게 “백성을 보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사도로 부름 받은 확신을 가진 사도 바울은
매 맞고, 돌팔매질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자신을 죽이려는 결사대까지 조직되어 쫓아 다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명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세상이 흔들고 어려움이 닥쳐와도 …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핍박의 대상이었습니다.
언제나 조롱의 대상이었고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박수 받고 인정받는 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 때는 땅굴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신앙생활 했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땅바닥에 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 신앙 생활했던 ‘카타콤’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까?
왜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명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삶에서 소명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부르심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음에 대해
항상 감사가 넘쳤으며,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롬11:1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롬1:7)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나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갑니다.
집사/권사/장로입니다.’라고 표현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당당하지 못한 것은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1부 예배를 드리고 장로님들과 기도회를 할 때
장로취임식 초청장 만든 것을 보여드리면서
“이번에 취임하는 장로님들은 일가친척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십시오.
그리고 특별히 예수 믿기 전에
같이 술 먹던 친구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런 이들에게도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변화된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변화된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부르심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청함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청함에 응하여 택함 받아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명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부르심에 대한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 …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 ”(고전10:31)
일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찬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행16:19~34)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니, 미친 것 아니냐, 저 상황에서 노래가 나오냐?’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기쁨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남들처럼 넉넉하지 않을지라도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갖는 기쁨은
넉넉하면서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앤 월터 펀 양은 선교사를 자원하여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당시 중국은 많은 선교사들이 가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앤의 어머니는 떠나는 딸에게 210달러 값어치의 금을 주며
‘안전하다(safe)’는 한마디만 전보로 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후에 선교지에서 앤에게서 전보가 왔습니다.
내용은 어머니가 기다리던 ‘안전하다’가 아니라 ‘기쁘다, 즐겁다(delighted)’였습니다.
<서임중 지음.『못 박는 소리 듣는가?』에서 인용>

이것이 소명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편안함과 안전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명 가운데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소명자의 삶은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주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간혹 우리가 ‘소명’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면
성직자만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6장 29절에 예수님은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임을 믿는 것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성으로 예배드리는 것, 기쁨으로 찬송하는 것,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것,
자신과 가족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예수 이름으로 섬기고 베풀며 사는 것 …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았으니 부름 받은 대로 최선을 다해 살며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 같은 게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어.’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기도하고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고,
말씀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왕에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소에서 일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 가사도우미(파출부)가 있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이런 저런 지시를 받고
집 주소를 확인하고 다음 날 일찍 일하기로 한 집으로 갔습니다.
집안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먼지를 찾아내 닦고, 쌓여있는 빨래감을 세탁기에 넣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주인아저씨 옷도 빳빳하게 다려놨습니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도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뼈 빠지게 일했는데 …
그 가사도우미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알고 보니 남의 집이었습니다.
일하기로 한 집에 가서 일한 것이 아니라 남의 집에 가서 일했습니다.

바울이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는,
그의 불타는 열정과 책임감으로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남의 집에서 열심히 일한 꼴이었습니다.
오늘 날 교회에도 목사/장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멸시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낙심을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쁜 자리에서 열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38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뜻대로가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일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말을 하든지, 일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할 조건을 주시고 일할 능력에 따라 일 시키시는 것입니다.

옛날 군대에서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 손들어!’해서 불러다가 피아노 옮기게 하고,
‘디자인 전공한 사람 손들어!’해서 불러다가 운동장에 족구 라인 그리게 하고 …
그렇게 불려가 일했던 사람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제가 군에 있을 때 이발병에게 어떻게 이발병이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날 ‘머리 깎아본 사람 있느냐?’고 물어봐서
동생 머리 한번 깎아봤던 적이 있기에 손들었다가 이발병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에 따라, 재능에 따라 우리를 쓰시고 일하기 원하십니다.

때로는 능력이 없지만, 무능하지만 … 능력 주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연말이 되면 선교회 회장/속회 강사를 하라고 하면
‘못해요. 안해요. 해본 적이 없어서 …’라고 말하는데
해본 적이 없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운 게 없다고 / 아는 게 없다고 주저앉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보면
“ …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능력 주셔서 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명자는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일하는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4절에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백했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손가락질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 감당하는 자에게 갚으시는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의 섬김을/헌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속상하시고 서운해도 참고 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합니다.
굳건하게 서야하는 이유는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대가와 보상이 없다고 마음 흔들리지 마십시오. 믿음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를 흔드는 사람, 사건, 여러 가지 말… 그것 때문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가정에서 식구들을 돌보고 사는 것 힘드십니까? 힘드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치매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지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른을 섬기며 참고 견디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과
자기만 알고 노인을 박대하며 사는 사람이 …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똑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고, 몸이 불편한 가족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집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친구들에게 본이 되는 것 … 힘들 것입니다.
동료들에게 예수 향내 풍기고 사는 것 … 어려울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들과 하나 되어 사는 것 … 힘든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강하고 담대하게 그 일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훗날 ‘잘하였다, 넌 내가 부른 뜻대로 살았구나. 잘했어. 착하다. 충성되다.’라고
칭찬 하는 자리의 여러분 모두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불러 주신 것 감사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택함 받은 자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부름 받은 사람답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믿음을 흔드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든든히 서서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지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름 받은 사람답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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