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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적성숙의 길(4)- 치유의 은혜 (시 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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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성숙의 길(4)- 치유의 은혜 (시 30:1-12)

금년에도 어김없이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이번주간 고향을 찾아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정겨운 시간을 나누어야 할 명절에 적지 않게 명절후유증을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한 기관의 여론조사를 통해 설날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전국에 40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36%가 “어서 친정 가봐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은 말로 꼽았고 24%는 “벌써 가려고”를 가장 듣기 싫은 말이라고 답했다.  그 뒤로 이어서 듣기 싫은 말로 “결혼해야지”(20%), “살 좀 빼라”(16%), “취직해야지”(12%), “많이 늙었네”(11%), “누구는 명문대학에 들어갔단다”(9%), “애는 안 낳니”(8%), “철 좀 들어라”(5%) 등을 꼽았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나고,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야지’ 하면 ‘그대들 사는 것 보니 험난해서 혼자 살랍니다’라고 말하고, ‘살 좀 빼라’ 하면 ‘저보다 훨씬 더 나가시는 것 같은데..’ 하고, ‘많이 늙었네’ 하면 ‘그대는 이제 곧 세상 떠나실 것 같으신데’ 한답니다.  자기도 모르게 던진 한 마디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깊은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 바로 이런 것에 상처를 받아 즐거워야 할 명절이 반갑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 삶에 상처가 있습니다.  깊은 상처든지, 얕은 상처든지 그것이 오랫동안 자리잡아 성숙하고 변해야 할 신앙과 인생에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적으로 성숙하는 길은 말씀, 기도, 예배와 함께 내적치유에 있습니다. 우리가 경건에 힘써 누구보다도 신앙이 깊더라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숙해 보이는데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세운 것을 한순간에 허물 때도 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기 위해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과 삶에 성숙하게 가는 길입니다. 

성경에서 경건생활로 성숙을 이룬 것과 함께 상처의 치유를 받아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된 인물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 말씀과 기도의 사람, 예배의 사람이고 또한 치유의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모든 상처와 아픔이 다 치유된 인물입니다.  그래서 참 귀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생애동안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무엇일까요?  다윗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몇 가지로 찾습니다.


우선, 사울에게서 받은 상처입니다.

초창기 다윗의 행적은 한마디로 당시 왕이었던 사울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와 위기를 맞고 있을 때, 그래서 사울왕의 지도력이 땅에 추락할 상황에 다윗은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물리침으로서 나라를 건졌습니다.  이 일은 누구보다도 사울을 도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사울은 왕이 되어 점점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 악령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사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금을 타며 왕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힘을 다했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이 점점 사울에게서 떠나 지도력과 지지율이 점점 하락할 때에도 다윗은 교만하지 않았고, 당시 왕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지금 백성이 할 일이라고 높여주었습니다.  사울과 관련하여 다윗은 그 어느 것 하나도 해가 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덤벼듭니다.  왕좌에서 밀려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
하며 그는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군사를 동원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사울을 피해 도피의 길에 오릅니다.  고향을 떠나고, 친구를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냅니다.  도망 다니면서 몇 번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다는 신앙양심을 지키며 20여년의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지었던 다윗의 고백이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그것을 보면 도망자로서 그가 사울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컸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왜 도망 다녀야 합니까?  그가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울 왕을 도운일밖에 없었습니다.  도망자로 지내면서 다윗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울에게서 받은 상처로 몹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라고 하며 상처받은 자의 아픔을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받은 또 다른 마음의 상처는 아히도벨에게서 받은 상처입니다.

아히도벨은 요나단과 함께 다윗의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허물이 없고 비밀이 없던 친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아히도벨을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책사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아히도벨을 찾았습니다.  그의 조언을 듣지 않고 어떤 일을 결정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믿고 신뢰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합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가 종종 그런 경험을 합니다.  믿었던 사람, 믿었던 친구, 비밀이 없던 절친한 친구가 그야말로 뒤통수를 치며 배신할 때 심정이 어떻습니까?  하늘이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다 귀찮고 주저앉고 싶은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다윗은 친구에게서 버림받고 배신당한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역시 시편을 통해 배신당한 자의 아픔을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울에게서 받은 상처보다도 오히려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가 더 깊고 컸습니다.  좀처럼 아픔이 사라지지 않아 정말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윗이 받은 가장 큰 상처는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합니다.  그때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다윗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모든 아들이 다 소중하고 귀하지만 왕위를 이어갈 아들을 잘 세워야 하는 것이 다윗의 마지막 소임이었기에 다윗은 여러 아들을 유심히 살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압살롬은 다윗의 마음에 쏙 드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여러 아들가운데 압살롬을 향한 사랑이 더 컸습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이름에서 찾습니다.

‘압살롬’에서 ‘압’은 ‘아버지’라는 뜻이고 ‘살롬’은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평화’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도 이름의 뜻이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다윗시대에 많은 피를 흘리고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후대에 안정되고 평화로운 나라를 염원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같은 다윗의 열망이 아들의 이름에 나타나는데 많은 아들 중에서 두 사람만이 ‘평화’의 뜻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은 후에 왕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솔로몬보다 먼저 태어난 압살롬의 경우, 다윗은 그에게 커다란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아버지의 평화’ 입니다.  다윗은 이름을 통해 어느 아들에게 강한 열망을 심어 주었고, 자연히 누구보다도 압살롬에게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압살롬이 서열상으로도 왕권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왕정시대이기에 아들 중에 왕위가 계승됩니다.  당시 왕위의 일반적인 기준은 ‘서열’입니다.  압살롬은 셋째아들입니다.  그런데 장남이던 암논은 강간죄를 짓고 죽었고, 둘째아들 길르압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가 어려서 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다음이 압살롬이기에 순서적으로 대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 시대에 바로 압살롬은 아들 중 왕권에 근접에 있었기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셋째는 압살롬은 왕이 될 만한 외형적인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4장 25절에 보면 성경은 압살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이 말은 곧 그의 외모가 준수했고, 남자다운 용맹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준수함은 모든 사람의 주목을 끌었고 그의 핸섬함을 사람들은 칭찬했던 것입니다.  당시 세계는 왕이 용맹스러운 자로 나타나는 때입니다.

사울도, 다윗도 모두 전쟁에서 싸우는 용사요, 장군들입니다.  압살롬도 이들처럼 지도력이 있고 근엄함을 갖추고 있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기에 어느 아들보다도 왕권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이런 압살롬이기에 아버지의 마음에 들고, 차기 왕권을 이어갈 재목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를 더 사랑하고, 더 훈련시키고, 더 큰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더 사랑했고, 더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합니다.  이제 다윗은 사랑을 주고, 마음을 주고, 모든 것을 다 준 아들에게서 버림을 받습니다.  그때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맨발로 걸어갑니다.  머리를 가리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통곡하면서 떠납니다.  성경은 이런 그의 참담한 모습을 통해 그가 받은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려줍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의 깊은 상처가 다윗의 마음을 도려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비수를 맞은 것처럼 그는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다윗의 삶입니다.  그는 평생 많은 영예와 축복을 누린 사람이지만, 동시에 많은 상처와 아픔의 인생을 살던 사람입니다.  사울에게서 받은 상처, 아히도벨에게서 받은 상처, 압살롬에게 받은 상처가 있던 사람입니다.  그가 힘을 다해 도와주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서 받은 배신의 상처, 평생 버릴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우리와 같이 마음의 깊은 상처로 정말 힘들고 괴롭고 아파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이런 모든 마음의 상처가 다 치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고백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한마디로 치유 받은 자의 고백이며 간증입니다.  특히 다윗은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하나님이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쓰리고 아픈 상처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평생 그를 괴롭혔던 육신의 질병, 마음의 괴로움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치유 받은 사람으로서 내적성숙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고,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에도 깨어지고 부서지고 몹시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상처와 아픔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런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성숙하지 못합니다.  병은 반드시 치료해야 됩니다.  가만 둔다고 낫지 않습니다.  가만 두면 더 큰 병으로 키우고 맙니다.  그래서 모든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합니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가만두면 더 큰 병이 됩니다.  그래서 치료해야 합니다.  치유되지 않으면 내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모든 아픔과 괴로움이 해결되어 평안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평안이 없으면 성숙하지 못합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이 없으면 더 피곤하고 지칠 뿐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었는가를 고백합니다.  우선, 하나님이 치유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 것을 봅니다. 10절과 11절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돕는 자이십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함께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돕지 못할 영역은 없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치유되지 못할 일이 없고, 해결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편은 전체적으로 감사의 시입니다.  감사가 주제입니다.  감사로 시작하여 감사로 끝을 맺습니다.  그가 순간순간 감사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것이 큰 위로요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존귀한 자로 여기시고 붙잡고 있음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바로 그 감사 속에서 다윗의 상처는 사람을 향한 사랑과 용서로 자기를 풀어주며 자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힘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 신앙에 의무
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감사의 힘은 모든 것을 풀어줍니다.  그 가운데 가장 풀지 못하는 나를 놓아주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가 치유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큰 은혜를 받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부르짖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내 마음은 나도 다스리지 못합니다.  내 의지를 내가 굳건하게 세우지 못하기에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 은혜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도움을 구합니다.  다윗이 평생 기도하며 살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기도 역시 단순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다 해결했습니다.  특히 상처와 아픔으로 괴로울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덮을 때 그의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았고, 굳은 것이 다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유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이라도 마음에 상처가 있지 않습니까?  그토록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는데 배신하는 상처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늘 만나는 사람들,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서 받은 상처가 깊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치유되지 않으면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늘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이제 다윗처럼 하나님을 인정하고 굳건히 믿으십시오.  우리 신앙에 더욱 더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아 이제 정말 내적으로 성숙하는 새로운 사람으로, 자유의 사람으로, 편안함으로 날마다 기쁘게 신앙생활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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