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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본질 (막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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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본질 (막 1:14-15)

헬라어로 복음을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이는 '좋은 소식' ‘희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에,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10)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고 구주 탄생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복음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이유가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것은 구주 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들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범죄한 인류가 처해 있는 비참한 실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들은 죄에게 종살이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죄가 시키는 대로 종노릇하는 것과 같습니다(롬 6:12).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진단합니다(롬 3:10, 23).

둘째로, 사망에게 종살이하는 자들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들을 가리켜“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히 2:15).

셋째로, 마귀에게 종살이하는 자들입니다.

마귀는 이 죄악 세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6:11).

넷째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실상에 대하여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고 말씀합니다(엡 2:1).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는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 영이 죽었으므로 영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 결과,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 되었으며, 생명과 빛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있습니다.

다섯째로, 영원한 멸망을 당할 자들입니다.

성경은‘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증거합니다(히 9:27). 최후의 심판날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하시는 주님의 선고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외에도, 범죄한 인간들이 처한 비참함은 삶의 전 영역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살상과 폭력과 착취와 거짓과 인신매매와 같은 죄악상을 보노라면 도무지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인간들의 적나라한 실상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실상을 알게 된 사람은 구세주를 갈망하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는 인간들의 요구에 의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인자와 긍휼이 한량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고 말씀합니다.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내신 동기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믿는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경을 근거로 하여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매우 짧은 말씀이지만 그 안에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중심은 복음이고 복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는 성경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66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성경은 한갓 도덕책이나 오래된 역사책이나 문학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양을 쌓는데 약간의 도움이 될 뿐, 그의 운명을 바꾸는데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그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어두운 우리 마음눈을 밝혀주셔야만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옵소서, 우리 마음눈을 밝혀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엡 1:17-18).

복음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듯이, 복음의 내용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를 요약해서 말하면,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 말씀이 됩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복음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 오랜 시간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영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 복음의 내용을 아는 데는 영어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몰라도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듣는 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 믿은 자들로 하여금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말로 듣는 것이므로 글을 몰라도 얼마든지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으나,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를 것이며,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을 수 있으며,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믿은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포착해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사람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완악하게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일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토록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변화시켜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던 것처럼, 때가 되면 그 사람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전도에 힘써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그 영혼들을 이단들이 가로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단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모릅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들도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가짜 복음, 짝퉁 복음을 전합니다. 이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교주를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 사기꾼들이요, 마귀의 종들입니다. 요즘 극성을 부리는 신천지 이단의 교주 이만희는 자칭 보혜사라고 주장합니다.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도 자신을 하나님 또는 재림주라고 내세웁니다. 이 외에도 이단들은 하나 같이 그들의 교주를 신격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합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니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주가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단인지 정통신앙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지 여부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또 다른 구세주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단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1장 6절로 9절에 이 같이 경고합니다.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요즘 이단들이 기독교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공부하자고 꾑니다. 우리는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성경을 배우고 싶은 열정이 있거든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의 목회자에게 배워야 합니다. 교회에서 배울 수 없는 비밀을 말해 준다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밀이란 곧 이단적인 교리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죽이는 독약과도 같습니다. 한번 알아나 보자는 생각으로 이단들과 접촉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청산가리는 지극히 적은 양으로도 목숨을 잃게 되듯이, 이단의 가르침은 우리 영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교회에 가서 성경을 공부해도 안 됩니다. 어느 목회자가 다른 교회의 교인에게 자기에게 성경을 배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목회 윤리에 어긋납니다. 그것은 목자가 이웃 목장의 양을 훔쳐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목회자들은 다른 교회의 성도들에게 관심을 두지 말고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먹이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단들은 양들을 훔치는 절도요 강도들입니다.

그리고 이단에게 넘어가는 사람은 그 영혼을 마귀에게 내놓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므로 이단에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앞으로 갈수록 이단들이 더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성경 말씀과 같이,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은 마귀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친히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믿음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외치신 첫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영적인 나라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미래에 임할 하나님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것으로서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장차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갈 영원한 천국이 바로 그 하나님 나라입니다. 거기서, 구속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후자는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이미 임하여 있다는 의미로,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믿는 자들 가운데 임하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 495장)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라는 말은 어떤 영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다스리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역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모시고 온 성도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면서 순종한다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들의 모임은 아무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화기애애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단들은 사단의 통치를 받는 사단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생명력을 갖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26)…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30)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31)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눅 17:)

겨자씨는 눈에 보일듯 말듯 작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심으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서 드디어는 큰 나무처럼 되어서 큰 그늘을 드리우고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되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시작은 미약하게 보이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복음이 처음 전파될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겨우 열 두 명의 제자를 데리시고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더구나 그 열 두 제자는 하나같이 당시 유대사회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부가 네 사람에, 세리가 한 사람, 극단주의자인 열심당원도 한 사람 끼여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매우 작고 보잘 것 없었지만, 그들의 헌신을 통해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오늘과 같은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도 날로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임한 하나님 나라도, 우리 교회에 임한 하나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날로 자라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 날까지 쉼 없이 자라고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하신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때에 관해서 일깨워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4장에 보니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종말론적인 개념입니다. 버스를 놓쳤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번 버스를 타면 됩니다. 그것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 것은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들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지만, 복음을 믿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나중에 믿겠다”는 것은 영원한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하신 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일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할 일을 다 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일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으면 그 순간부터 모든 일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하되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겨 두고 가도 될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모든 일을 다할만한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결국, 시급한 것부터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일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느냐 하는 것은 각 사람이 결정할 문제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나누는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그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응급환자가 생기면 만사를 제쳐놓고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목숨을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은 바람직한 기준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도 귀하지만,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더욱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목숨”은 육신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 앞 절에서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육신의 생명을 버려서라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육신의 목숨은 귀하게 알면서도 자기 영혼은 등한히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상의 삶을 위해서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숨을 주신 것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지 보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일 조심스럽게 목숨을 아끼며 살아간다면, 항상 우리의 이익, 안일, 안전을 제일로 생각할 것이다. 인생을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살며 걱정거리가 없이 지내는 것이 우리 영혼의 목적이며, 그리고 또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을 위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목숨을 잃고 사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소비한다면, 만일 예수를 위하여 또 예수가 구원하기 위하여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바라는 건강과 시간과 부귀와 위안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언제나 목숨을 얻고 사는 것이 된다.”

만일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반면에, 이 땅에서 짧은 생을 살다갈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어느 편이 지혜롭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남의 나라를 빼앗기 위해 국경을 넘어서 침입하는 군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소풍 가듯이, 여행 가듯이 하는 군인이 있을까요? 죽기를 각오하고 덤빌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너무나 편하게 믿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왕 믿을 것 좀 편하게 믿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데 많은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 일에 열심내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현실의 안일함에 젖어 있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란 단지 우리의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살아가는 믿음의 실천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입으로는 믿음을 고백하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무하다면 그 믿음은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먼저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회개는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종교다원주의와 세속화의 물결 앞에서 복음의 진리가 도전 받고 있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온갖 이단 사이비가 성도들의 믿음에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종말이 가깝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굳게 서야 할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하여 차지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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