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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 (요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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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요 3:1-17)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는 일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게 된다.

나는 20대 중반 청년시절, 교회에 출석은 하지 않았으나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주로 읽었던 책들 중에 생각나는 것이 몇 권 있다. 전 연세대 철학교수였던 김형석씨의 수필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오 할레스비의 [나는 왜 크리스쳔이 되었는가?]라는 책이었다.

주로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스스로 교회당을 찾아 나갔고, 한 동안 심각한 고민과 갈등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니고데모라는 사람도 역시 ‘예수’라는 한 젊은 청년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문에 이런 묘사는 없으나 그는 예수로 인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밤 중에 예수를 찾아왔다. 하필이면 왜 가로등도 없던 시대, 칠흑같이 어두웠던 밤중에 찾아왔는가?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그는 바리새인요 유대인의 관원이라고 그의 신분을 소개하고 있다. 바리새인이라함은 그가 종교적 귀족 신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지도자였고, 관원이란 말은 그가 산헤드린 70인 공회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국회의원에 해당되는 권력을 지닌 정치가였다. 명예와 권력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신 후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릴리로 시작해서 유대 사방 모든 지역에 예수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다녔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경계하고 비난하고 공격하기까지 했으나 니고데모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는 모든 표적들을 유심히 듣고 관찰하였다. 도대체 저 젊은이는 누구인가? 그의 설교를 들을 때면 마음에 찔림이 있고 두렵기까지 했던 것이다. 예수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예수께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요 3:2)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

니고데모는 그 젊은 예수를 보면서 단순한 세상의 유능한 선생으로 보지 않았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던 것이다. 최선을 다하여 자신은 낮추고 예수를 높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주제를 벗어난 엉뚱한 대답이었다.
(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이 말씀은 니고데모의 본심을 정확히 찌르는 말씀이었다. 그가 비록 예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찾아 왔으나 그의 현재의 영적 상태는 하나님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상태에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이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격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대단히 충격적인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리어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하고 만다.

(요 3:4)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이 대답은 그의 영적 무지를 여지 없이 드러낸 것이다. ‘거듭남’의 의미를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해하고 답변했으나 그 말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이때 예수께서 진지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것이 5-8절의 말씀이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1)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조건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회개를 뜻하는 요한의 세례를 가르키는 것이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을 성령세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란 말씀은 중생, 곧 거듭남의 방법이 육적요소 - 율법을 잘 지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함을 반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2)거듭남의 현상을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셨다.
바람의 존재는 느낄 수 있으나 모습은 볼 수 없고,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거듭남의 역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적 역사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설명을 들었지만 니고데모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 3:9)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처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설교 시간에 잘 조는 이유는 영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 청년들 뿐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증권투자에 관심이 많다. 5백만원을 투자해서 10억을 벌었다는 얘기를 하면 울던 어린아이까지 들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분히 세상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예)공부 못하던 아이를 외고나 예고, 서울대.

니고데모의 생각은 율법을 잘 지켜고, 신앙생활을 잘 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그리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왔고, 또 백성들을 가르쳤던 그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무지는 결국 하나님 앞에 책망거리가 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하여 책망하셨다.

(요 3:10)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는 구약성경 전문가이다. 이미 물과 성령으로 세례 받을 것에 대하여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예언되었고, 니고데모가 그 내용을 읽어 보았을 것이다.

(겔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러나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 교리, 고정 관념, 경험, 잘못된 지식들이 신령한 세계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반면에 일반 대중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선포하실 때 아멘으로 받고 순종했다. 그러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율법사들은 받지 않았다. 도리어 예수님을 향하여 도전하고, 비난하고 공격하였다. 영적인 귀가 막혔고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밤중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를 박대하지 않으시고 친절하게 하늘의 비밀을 들려 주셨다. 그 비밀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놀라운 계획이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1)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완전한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의 인성을 가르키는 것이고, 하늘에 올라간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되심 곧 신성을 가르키는 것이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또한 완전한 사람이셨다.

2)광야에서의 불뱀 사건
민 21:4-9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중에 불뱀을 보내어 물리게 하였다. 이때 백성들이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아나게 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볼 때 살아났던 것처럼 유일한 구원의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원한 죄의 저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3)하나님의 사랑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은 전 성경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범죄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핵심으로 보여 주고 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에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밤중에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적 무지에서 벗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자신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게 되었다.

비록 그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헌신하지는 않았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다른 동료와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잘 치룰 수 있도록 도운 숨은 제자였다. 오늘 니고데모와 예수님 사이의 긴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하나님 나라의 조건은 오직 성령, 오직 예수.

바리새인으로서의 종교적 신분, 산헤드린 공회원이라는 정치적 신분, 유대인의 선생이라는 교사로서의 신분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 받은 세례가, 자신의 직분(집사, 목자, 교사, 찬양대원)이, 종교적인 배경이 구원의 조건이 되질 않는다. 만약 천사가 내게 와서 “너는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다”라고 말해 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점검이 없다면 스스로에게 속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가룟 유다는 사도였다. 그러나 끝에 가서 배반하였다.
예)Are you christian? Of course, I,m a christian. Are you born again christian?

니고데모와 같이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한 고민을 안고 예수님을 찾아나온 것처럼 자신의 영적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인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정말 성령 안에서 변화되었는가? 본질적인 변화가 없이 외적인 변화만 있었다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2.나 자신의 영혼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

청년시절, 신앙의 열기가 식어지고 의심에 시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10시경, 사택을 찾았다.
자존심, 체면 내려 놓고 밤중이라도 예수님을 찾아온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투자하라. 예)눅 12장의 부자.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며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신다.


3.하나님의 사랑

눅7:36-40,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을 때 그 동네 죄인인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다. 그때 바리새인은 마음 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께서 비유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오백 데나리온 빚진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자가 탕감받았을 때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

(눅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그는 자신을 향하여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다(딤후1:15). 자신의 죄성을 깨달을 때 더욱 더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사랑이다. 모든 믿는 자에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사랑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말씀은 똑같이 듣지만 반응은 다르게 나타난다. 니고데모처럼 자존심, 체면 내려 놓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밤중에라도 찾아오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 의문을 품고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의 놀라운 비밀을 듣게 되었다.

오늘날도 이런 열심을 품고 찾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비밀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부어 주신다.

주께서는 성도들이 모인 이 자리를 기뻐하신다. 그리고 함께 하신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풍성히 받고, 한 주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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