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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다투고 왜 시험하느냐? (출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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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투고 왜 시험하느냐? (출 17:1~7)

  세상에서 우리가 걷는 길이 평탄할 수만은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닥칠 경우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다른 모습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모습은 의견이 갈라져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 모습은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어려움을 잘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는 형편과 처지에 상관 없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 혹은 하는 일이 잘 될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시련과 역경이 닥칠 것 같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그 결과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이 광야에서 만난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들은 지도자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건너 광야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들은 르비딤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없어서는 아니 될 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이미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마라라는 곳에 갔을 때에도 물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그들이 마라에서 찾은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또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는 먹을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배불리 먹던 때를 회상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광야에서 물이 떨어졌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괜히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타는 목마름 때문에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뭘 잘못했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모세가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도 어려운 위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위기가 닥칠 것 같으면 사람들은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평소에 볼 수 없던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평소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형편없는 사람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이 대단한 사람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심각한 위기 앞에서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은 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특히 지도자인 모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3 하반절) 그들은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그들의 항의에는 애굽에서 이끌어 낸 것부터 잘못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따졌는데 여기서 ‘우리’란 ‘나’라는 것을 듣기 좋게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극히 이기적으로 오직 나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위기 상황에서 이웃과 함께 살 길을 찾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믿음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의 것만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공동체가 무너지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만 살려고 하면 결국 모두 다 죽게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모세는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출 17:4) 백성들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상세히 고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어떻게 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문제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해결책을 물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칠 때 주님 앞에 상세히 고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문제를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주님,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믿고 맡기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부르짖음에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출 17:5) 그리고 그 장로들의 목전에서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펼치셨습니다.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친히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장로들은 신기하고 놀라운 그 사건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신 까닭은 증인이 되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주님의 그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또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이 변함없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의 표지입니다. 일찍이 모세는 그 지팡이를 의지하고 바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 지팡이로 나일 강을 피로 변하게 했습니다.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던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때문에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때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출 17:6 상반절) 호렙 산이 어디입니까?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돌보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했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사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신 곳이 바로 호렙 산입니다. 그 호렙 산은 이제 곧 모세가 율법을 받게 될 시내 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호렙 산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게 될 곳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즉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생수가 솟아날 것이며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산 호렙에서 생수를 공급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와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는 극복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과정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아가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그 때에 모세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그렇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위기 앞에서 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 채로 믿음 없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짓을 모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그 곳 이름을 ‘맛사’라고 했습니다. ‘맛사’는 시험한다는 뜻입니다. 또 ‘므리바’라고 했습니다. ‘므라바’는 다툰다는 뜻입니다. 그 곳 이름을 반석에서 물이 나온 곳이라든지 모세가 간구하여 응답을 받은 곳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다, 혹은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거기서 하나님의 종과 다퉜고 또한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찍이 주님도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을 받으신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 4:7)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굳센 믿음을 가지고 모든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행여나 믿지 못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모세의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사 반석에서 생수를 솟아나게 하신 주님이 오늘도 함께하시는 것을 믿고 모든 어려운 문제를 그 주님께 맡김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주님의 신기하고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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