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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와 같이 주를 섬기라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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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주를 섬기라 (고전 9:24-27)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원리를 운동경기에 비유하여 교훈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 사도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사도가 살았던 당시 그리스와 로마에는 여러 가지 운동경기가 성행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쇠로된 장갑을 끼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시합을 계속하는 복싱경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경기 가운데 하나가 레슬링입니다. 오늘날 “그레꼬 로망형”(Greco Roman Style)으로 불리는 레슬링이 곧 그리스 로마시대에 행해지던 경기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맹수와 싸우는 경기도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 동원되는 사람은 주로 죄수들이었는데, 맹수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았을 경우 죄를 사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박해 하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경기의 희생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스타디움(Stadium) 즉 경기장으로 불리는 것은, 본래 그리스어로 스타디오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스타디오란 606.75피트, 약 200m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시 그리스에 있는 경기장들이 한 스타디오(약 200m)로 규격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스타디오라 하면 경기장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스타디움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는 월계수나 감람나무 잎으로 엮어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줬습니다. 나무 잎으로 엮어 만든 면류관은 곧 시들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를 가리켜 썩을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운동 경기자의 모습에 비유된 신앙생활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一. 운동 경기자처럼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하셨습니다. 육상 선수는 사력을 다해 달린 후 우승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부도 함께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도 이와 같이 믿음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승리와 행복을 바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2-13의 말씀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의 항구도시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매우 나태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노력은 없이 안일한 생활을 하면서 복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잠든 영혼을 깨우기 위해 그 시대에 흔했던 운동경기자들의 모습을 예로 들어 교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하게 됩니다. 역대하 16:9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2:4~5에 말씀하시기를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4:15에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한 청년이 임금님을 찾아가 인생의 성공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임금은 말없이 컵에다 포도주를 가득 따르고는 청년에게 건네주면서 별안간 큰소리로 군인을 하나 부르더니“이 젊은 청년이 저 포도주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넌 칼을 빼어 들고 그를 따라라. 만약 저 청년이 포도주를 엎지를 때에는 그의 목을 내리쳐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청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잔을 들고 엎지르지 않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청년이 시내를 도는 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큰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넌 거리에 있는 거지도 장사꾼들도 못보고 술집에서 노래하는 것도 못 들었던 말이냐?”청년은 다시“네 저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임금은 말했습니다.“그렇다 이것이 네 인생의 교훈이다. 네가 거리를 한 바퀴 돌면서도 그 잔만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시킨 것처럼 너의 인생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살면 성공할 것이고 유혹과 악한 소리고 네게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이와 같이 하는 사람에게 은혜와 능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역대하 16:9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달리는 운동선수들처럼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의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과 함께 하셔서 능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二. 운동선수들처럼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하셨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자들은 통상 10개월가량 고된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음식과 오락과 수면 등에 있어서 절제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기는 불과 몇 분 동안에 승패가 결정됩니다. 그 몇 분밖에 되지 않는 시합을 위해 몇 년 동안 자기와 싸우며 연습에 몰두합니다. 이 날이 있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았겠습니까? 지금도 태능 선수촌에는 북경올림픽의 금메달을 위해 우리나라의 국가대표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젊음의 온갖 욕망을 절제하며 오직 연습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영광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의 싸움인 절제함의 뒤에 오는 것입니다.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는 말하기를, 연습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지나가는 차에 뛰어 들어 죽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가 승리의 영광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정성껏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려면 가야할 곳 가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멈추고 예배드리는 교회로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갈 곳 다 가고 남는 시간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면 그것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예배일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가인이 정성이 결여된 예배를 드렸으나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하여 히브리서 5:7에 말씀하시기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조지 워싱턴 장군이 미국 독립을 위해 싸울 당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주일을 범한 적이 없는 주일 성수에 성공한 사람이었고, 또 기도의 용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허쉬 계곡을 통과할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장래도 불안했고 언제 적의 총탄이 날아와서 자기의 인생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계곡을 건너다가 숲 속에 들어가서 기도드렸습니다.“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미국을 도와주세요.”하며 얼마나 간절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 드렸던지, 그 기도소리가 들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들렸습니다. 들에서 일하던 농부가 소리쳐 기도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가 저렇게 기도를 드리는가 궁금해서 가보니, 워싱턴 장군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던지 뺨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농부는 큰 감동을 받고 아내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여보, 조지 워싱턴 장군은 반드시 성공할거요. 우리는 반드시 독립이 될 거요.”“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나는 보았소. 나는 워싱턴 장군이 기도드리는 것을 보았소. 뜨겁게 기도드리는 것을 내가 보았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워싱턴 장군의 기도를 들어 주실 거요. 그는 반드시 성공할 거요. 틀림없어요.”그 농부의 예언은 맞았습니다. 워싱턴은 독립 운동에 성공했고, 미국 대통령으로도 성공했고 신앙인으로도 성공해서 오늘까지 미국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있는 사업은 무너지는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위하여 기도하는 보모가 있는 자식은 절대로 꺾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무리 바빠도 기도 시간은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 여러분 남편의 기업, 자녀의 기업, 가정의 기업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을 섬기는 봉사를 하는 데에도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려는 육신의 욕망을 절제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봉사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절제 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三. 운동 경기자처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육상선수가 어느 지점, 어느 방향을 향해 뛰는지도 모르고 달려가는 선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시청자가 보내온 비디오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운동회였는데, 바턴을 들고 뛰다가 그 바턴을 다음 선수에게 전달해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이어 달리기였습니다. 한 어린이가 자기에게 주는 바턴을 받으려고 달려오는 아이를 향해 서서 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턴을 받아들자 앞을 향해 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달려온 그 방향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이것이 곧 방향 없이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삶의 방향이 잘못되면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직업과 살아가는 방법은 각각 다를지라도 우리들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 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하셨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갈 때 보람을 느끼게 되며,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람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지닌 재능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일하는 직업이 다릅니다. 그러나 목적은 같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보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존경을 받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 받은 사람이 에녹입니다. 이 에녹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하셨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여인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와 다이애나가 그 사람들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열일곱 살에 수녀가 되어 칠십여 년을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갔습니다. 그녀는 숨질 때까지 인도의 가난한 자들, 버려진 이웃들과 함께 살았고 그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세계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테레사의 장례를 힌두교와 시크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극진히 표현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종교는 달라도 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수만 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앞서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태자와 이혼하면서 수백억의 위자료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집트 출신의 최고 갑부와 함께 생활하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테레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고, 다이애나는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와 프랑스의 작가 카뮈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노벨상을 받은 유명인 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평화상을, 카뮈는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둘은 모두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을 구입하고, 고급승용차를 사서 타고 다녔습니다. 카뮈는 그 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든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을 지었고, 그 병원에서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서 6:7-9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四. 경기자처럼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5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경기든 경기에는 지켜할 법이 있습니다. 법을 어긴 승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예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육상에서 금메달을 딴 캐나다의 벤존슨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약물복용으로 판명되어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미국의 칼루이스 선수에게로 금메달이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나라마다 법이 다릅니다. 그러나 전 세계 25억의 성도들이 지키는 공통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중심하여 살아갈 때 그의 신앙이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기도를 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그리고 응답될 때까지 인내하는 기도입니다.

봉사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는 은밀하게 봉사하는 것이 성경적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봉사하되 다른 사람들과 화목을 도모하며 해야 합니다. 교회는 혼자서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불장군식의 봉사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화평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봉사하되 겸손하게, 은밀하게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봉사를 인정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랑의 법칙은 이렇습니다. 되돌려 받기 위한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도 성경적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의 폭을 점점 넓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법을 무시하는 사람의 신앙생활에 대해 로마서 10:2-3에 말씀하시기를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운동선수가 경기 법을 모르고 경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칙으로 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법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열심이 중요하지만 열심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열심을 내되 법을 따라 내는 열심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섬기되 운동경기자의 모습처럼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삶의 모습일까요?

첫째,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둘째, 육신의 감정이나 유혹에 대해 절제하는 것입니다.
셋째, 삶의 목표가 분명하야 합니다.
넷째, 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영광은 승리자에게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 경주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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