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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는 안심하라 (행 27: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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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심하라 (행 27:22-26)

무디(D. L. Moody)는 영국과 미국을 변화시킨 복음 전도자입니다. 런던에서 전도집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탔는데, 대서양을 건너다 암초에 부딪히는 사고를 만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선원과 승객들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때 무디는 배 한구석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아들에게 묻습니다. "왜, 이렇게 소란하냐?" "아빠, 배가 암초에 부딪쳐 물이 들어오고 있어요." 무디는 곧장 배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시편 91편 9절과 11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저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리고 배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시작합니다. 기도가 끝난 후 무디는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이제 안심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잡시다". 그 날 믿고 잔 사람은 무디 뿐이었지만, 구조선에 의해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고 모두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풍랑을 만나면 포기합니다. 아예 절망하며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기는커녕 이웃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원망합니다. 그러나 풍랑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써핑보드(Surfing Board)에 몸을 싣고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풍랑을 이용하여 인생을 복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풍랑을 이용하여 더 빨리 가는 사람입니다. 거센 풍랑 앞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거센 풍랑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본문에 보니 바울과 275명의 사람들이 로마로 항해하던 중 '유라굴로' 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유라굴로' 는 동풍과 북풍을 의미하는 합성어입니다. 이 바람을 사람들은 '유리굴' 이라고 불렀는데 '광풍' 즉 미친바람, 죽음의 바람입니다. 이 바람이 배를 뒤엎고 바울의 일행을 보름동안 고난의 길로 몰았습니다.그로 인해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사방이 캄캄합니다. 배 안에 있는 짐들을 바다에 풀어버립니다. 양식도 버렸습니다. 기구도 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은 '안심하라' 고 말합니다. 죄수의 몸으로 외치는 바울의 모습은 바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심해야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도 안심해야 합니다. 절망의 상태에서 안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라굴로 같은 광풍이 불어올 때 "이제 안심하라" 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안심하라' 고 외치는 바울의 신앙적 태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속함을 믿기에

중세의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성찰을 하였습니다. "나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한 것을 조금도 이상히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타락하고 부패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더 악하고 타락하여 남아있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세상이 이 정도라도 지켜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어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자녀들을 지키시며 그의 계획을 이루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함을 매일 순간마다 확인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나의 속한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바울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거합니다. 소속은 중요합니다. 소속감을 통해 정체성이 확립되기 때문입니다. 소속을 잃어버리면 방황하게 됩니다. 위기감으로 개인, 가정,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절망적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라고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풍랑 가운데 소속을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소속을 분명히 합니다. "나는 소속이 확실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은총을 얻습니다. 세상이 힘드십니까? 어렵습니까? 답답하십니까? 이제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부디 하나님께 속한 사실을 선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던 89세의 선교사가 뇌일혈로 쓰러져 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몸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말도 못하는 중풍병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인도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죽더라도 인도에 가서 죽어야지 미국에서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기어이 병에서 일어나 하나님이 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 중풍까지 극복하고 인도로 돌아간 그 사람은 바로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중병에 걸렸어도,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확신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넬 마리(Nell Mary)는 스탠리 존스의 전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자신이 결코 쉼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향은 미국도 인도도 아니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에 고령의 나이에도 중풍을 극복하였고, 인도의 선교에 끝까지 생을 바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의 소원은 로마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풍랑을 통해 소원을 이루어주셨다는 고백입니다. 풍랑 또한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기에 풍랑 속에도 그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에게도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을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풍랑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면 도리어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억울하게 당한 고난이 많았습니다. 태장을 맞아 죽을 뻔했고, 강도를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거짓 증거하는 이들을 만나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으며,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어려움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8절과 9절을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자신이 고통 당한 이유를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이었다고 분명히 증거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기에

시카고(Chicago)에서 기독교 회의가 개최되었는데 러시아교회 대표로 세 사람이 참석하였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변증할 수 있나' 라는 주제로 사흘 동안 토의를 하였는데 러시아 대표들은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사흘동안 이 회의를 왜 하고 있는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오류가 없는 것을 저절로 알텐데 왜 이런 것 가지고 회의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 의견을 내놓았던 대표들은 그 말을 듣고 일순간 숙연해졌습니다. 말씀의 정통성은 말씀대로 되는 체험을 통해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배에 있는 사람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말씀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끼십니까?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까? 물질은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명예도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건강도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강한 의지가 됩니다. 말씀을 믿을 때만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풍랑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풍랑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풍랑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 모리슨(G. H. Morrison)은 '내 마음의 하이웨이'(Highways of the Heart) 라는 책에서 콜럼버스의 항해록(Voyages of Columbus)을 소개합니다. "콜럼버스 항해일지에 다른 항해일지에서 볼 수 없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은 순풍이 불었다' 가 아니라 '오늘 우리는 항해하였다' 입니다. 안개와 폭풍우, 선상 폭동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일 항해하는 것이 꿈꾸는 나라에 이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항해할 때 시련과 고통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헤쳐 나올 수 없는 절망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도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풍랑만 보고 절망하는 275명이 되지 말고, 풍랑 앞에서도 '이제는 안심하라' 고 외친 바울의 신앙을 닮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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