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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경을 보호하자 (창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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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보호하자 (창 1:28)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이 세상 만물은 주님의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창조주의 인격과 정신, 사랑이 배어 있다. 그래서 만물을 들여다보면 신비로 가득하며,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된 하나이다. 이것이 없이는 저것이 살 수 없다. 먹이 사슬 때문이다.

생산자인 녹색생명들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산다. 소비자인 동물은 생산자를 먹이로 살아간다. 그리고 분해자인 미생물은 모든 생명체를 분해하여, 식물이 먹기 좋은 먹이로 만든다. 이것이 창조의 법칙이며 섭리다. 하나님의 이 창조질서를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되는 질서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부서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도로 성장해가는 과학과 기술문명 속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끝없이 풍요와 안락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으로 만물이 파괴되고 있다. 오존층의 파괴, 대양의 침범, 핵의 위협, 공해문제 등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이렇게 인간의 잘못으로 생태계는 물론, 지구의 운명이 위협받고 있다. 요즘 자연보호, 환경보호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자연(自然, 스스로 자, 그럴 연)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만 스스로 계신 분인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를,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라고 부를 수 없다. 자연에 해당하는 말은 만물이다. 그래서 만물로 말씀드리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만물을, 이번 서해안 사태를 통해, 환경을 보호하여, 죽음의 길에서 생명을 살리는 길로 가야한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다. 이처럼 교회는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래학자 ‘톰 사인’은 “21세기와 새천년에, 크리스천이 직면해야 할 최대의 문제는 환경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만물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함께 만물을 구원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시대의 소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구원에 대한 메시지는 많이 들었지만, 창조세계의 구원이라는 말씀은 생소하다.

진정한 복음 전도자는, 진정한 생태 회복 운동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2가지 명령을 하셨기 때문이다. (1) 복음전도의 지상명령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증거 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2) 문화명령이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이를 문화명령이라 한다.

지상명령과 같이 문화명령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환경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가?

1. 환경보호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1:28).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것들을 보시며 “보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하셨다. 보기에 좋기에 보호하려는 사람이 있고, 보기에 좋기에 빼앗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보기에 좋은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지으신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위임하시는 말씀이다. (창1:26)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선언하는 모습과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것을 경작하며(다스리게) 지키게 하시고”라는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위임하심은 피조세계를 파괴하고, 수탈하며, 착취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키고 보호하라는 명령이다. 오늘날 생태계를 파괴하는 실상 앞에서,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임무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 그 사명이 더욱 크게 주어졌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교회가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만물과 인간의 관계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만물과 인간은 협력하는 관계요, 운명을 같이 하는 관계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만 저주를 받지 않는다.

공동체의 책임으로 여기고, 땅도 함께 저주를 받는다(창3:17). 인간도 만물의 일부이며, 만물이라는 공동체 속에 인간도 포함되어 있기에, 공동체 속에서 운명을 같이 한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서로서로 의존하며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노아시대에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하나님의 진노가 있기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면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방주를 만드셨다. 그때 방주 속에 사람만 들어가게 하셨는가? 아니다.

그러면 방주 속에, 무엇이 들어가게 하셨나?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의 암수를, 방주 안에 함께 보존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을 보호하기 원하셨다. 사람과 더불어 아름다운 생물들이, 생명 있는 만물들이 함께 보존되기를 원하셨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지금까지, 이런 생물에 상당히 무관심해 왔다. 오히려 과거의 기독교는 환경파괴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복하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해서 오히려 파괴하였다. 정복하라고 했기에, 마구잡이로 땅을 개간하고, 정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모든 창조물의 중심이기에,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에,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물들도 만물도 마음대로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정복주의라고 한다. 정복주의 윤리를 가지고, 만물을 계속 착취하는 일에, 과거 기독교인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다스리라(라다)는 뜻은 무엇인가? 짓밟으라는 말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잘 돌보아 주라는 말이다. 아름답게 지켜지고 가꾸어지기를 원하셔서 위탁하셨다. 다스리다는 말은 ‘장려하다, 돌보다, 가꾸다, 보호하다’는 뜻을 가진다. 즉 다스린다는 말은, 섬김의 다른 형태이다.

그러면 정복하라(카바쉬)는 뜻은 무엇인가? 땅을 마음대로 파헤쳐도 좋다는 의미인가? 그런 뜻이 아니다. ‘정복’이라는 단어에서, 영어 culture라는 단어가 나왔다. 만문을 잘 가꾸고 돌보아 개발하라는 뜻이다. 이는 (창2:15)을 통해보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한다(다스리다)는 말 다음에, 어떻게 하셨는가?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잘 다스려 지키게 하셨다.

정복하라는 말은, 파괴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잘 다스릴 청지기적 책임을 강조한 단어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단어를 잘못 이해했다. 그러므로 창조물 보호, 환경보호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복을 주시며’로 시작된다. 복을 주시면서 “땅을 잘 다스려라, 땅을 잘 관리하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만물보호와 관리는, 인간을 위한 축복이다. 땅과 만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지음 받았다. 그런데 사람이 여섯째 날 이전에 지어졌다면, 아마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다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다. 인간이 지어졌을 때, 만물은 완벽하게 모두 이루어져 있으니, 만물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아니다. 선물 관리가 중요하다. 우리가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선물을 받으셨다면, 그 선물을 어떻게 할까요? 소중하게 관리할 것이다. 소중한 선물을 받으면, 소중하게 관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무시하는 행동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소중한 만물을, 우리는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날로 심각해 가는 대기오염, 강물과 바다 오염, 또 흙 속에 침투되고 있는 여러 화학적인 요소들로 말미암아,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다.

이 강산에 넘쳐흐르는 오염된 쓰레기들, 하늘에서는 산성의 비, 오존층은 파괴되고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날로 촉진되고 있다. 이번 서해안 비극을 보았는가? 땅을 파보니까 타르 덩어리가 나왔고, 조개들은 다 죽었다. 그 곳에서 나는 물고기와 음식을 먹지 않기에, 식당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지금 생태계가 파괴된 실상을 모두 알 수 없다. 지금 밝혀진 파괴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러난 파괴의 실상만 봐도, 그 심각성은 극에 달한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파란 이끼를 많이 볼 수가 있었다. 파란 이끼는 대기가 깨끗하고, 신선함을 증명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모두 파괴되어 보지 못했다. 가짜로 만든 것뿐이다. 물, 공기, 음식들이 모두 다 파괴되어 가고 있다. 한국인에게 최근, 호흡기 계통의 질환이 급속도로 증가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호흡기 질환은, 오염된 물과 공기, 음식 때문에 생긴다.

설사, 감기, 결코 대기 오염과 무관하지 않다. 1년 중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돌아가시는 달이 어떤 달이, 12월과 1월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12월과 1월이, 공기가 제일 나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진과 기근 현상, 또 홍수와 가뭄의 현상들, 모두 자연 파괴의 결과이다.

그것은 단순히 재앙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낸 인재다.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다. 지금 인간이 망친 만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가?

(1) 지구의 온실화 문제

대기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이산화탄소, 염화불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그리고 오존이다. 지구 온실화로 인하여, 기온은 상승하고 강우량은 감소되어, 점점 사막화되어 간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를 녹게 함으로, 대양의 수위를 높아져서, 해양이 침범당할 위기를 맞게 된다. 또 폭풍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된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이상 기온에 시달리고 있다.

(2) 대기오염 문제

대기 오염은 주로 자동차의 배기가스, 공장에서 나오는 납, 수은, 아황산가스 등에 의한 오염이다. 대기오염이 우리에게 주는 피해는, 뇌의 억제기능을 저해하며, 뇌 기능장애를 일으킨다.

또한 만성적 호흡질환과 폐암의 원인이 된다.

오존층을 파괴됨으로, 피부암과 백내장을 일으키며, 면역성을 일으킨다. 또한 산성비를 뿌림으로, 어류와 식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땅과 호수에 큰 원인이 되고 있다.

(3) 수질오염 문제

물의 오염은 공장의 폐수, 도시의 하수, 농경하수 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또 바다는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원자로에 의하여 오염되고 있는데,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가 방사능을 띠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의 오염은, 모든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위험이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만물을 파괴하나? 욕심 때문에 그렇다. 수많은 집과 아파트 건물을 지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지금도 사람들은 만물을 막 파괴하고 있다. 욕심의 배후에는 죄가 있다.

저주는 인간의 죄로부터 비롯되었다. 사람의 죄가 아니라면, 만물은 고통당할 필요가 없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았다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만물이 저주 받았다면, 우리가 죄를 덜 짓는다면, 만물도 당연히 회복 되어야만 한다.

만물이 사람 때문에 괜히 피를 본다. 인간에게 권리가 있듯이, 만물에게도 권리가 있다. 구약성경은 만물의 권리를 찾아주는데 강조하고 있다. 안식일은 인간만 휴식을 명하지 않고, 짐승들도 휴식을 하도록 명했다(출23:12). 사람처럼 안식년을 두어, 땅도 휴식하게 하셨다(레25:4).

그러므로 만물에 대한 다스림과 복종이라는 인간중심으로 만물을 대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만물을 가꾸고, 잘 돌보아야 한다. 만물이 통곡하는 소리가, 자연이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잘 들어보면 만물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구원이 완성이 되는 때는 언제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사람들의 구원이 완성되고, 이 땅에서 죄가 완전히 심판되고 추방된다. 그때 마지막 결과를 (롬8:20)에서 볼 수 있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마지막 때가 되면, 피조물도 썩고 병든다. 이것은 피조물의 뜻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다.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이 완성될 때, 부활의 몸을 입고 완성될 때 피조물도 그때에 썩어짐의 종노릇한 해방되어, 만물이 회복되고 완성된다는 말이다.

인간이 고통하고 탄식할 때, 자연도 고통하며 탄식한다(롬8:22). 우리가 성경 따라 살기 원한다면,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은 자연을 보시며 아파하시고, 자연을 돌보려는 의지를 가지셨다. 그 증거가 산상수훈에 나와 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도 안하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지만, 잘 자라고 있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돌보신다고 했다. 그러면 만물을 누가 돌보신다는 말인가? 하나님 아버지가 만물을 돌보고 계신다는 말이니, 만물에 대하여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주님께서 만드신 작품인 만물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만물을 너무 파괴하면 “야, 너 안 되겠다.”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만물에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원한다면, 우리도 만물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사11장과 계22장)을 보면, 천국은 오염이 없는 나라. 완벽히 만물이 회복된 나라, 푸른 강, 푸른 나무, 푸른 숲, 다시 저주와 병이 없는 세계다. 우리는 그 천국이 이 땅에 오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환경보호의 책임이 있다. 그것이 예수님의 구원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극단적 환경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 환경론자들이 있다. 크리스천들이 환경운동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계에서 환경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New Age 운동가들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금세기 최고 이단운동이다.
 
그들은 환경이나 만물을, 신으로 본다. 자연을 말하며 자연을 신으로 본다. 범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신으로 본다. 자연 앞에 기도하고, 자연을 숭배한다. 그리고 땅을 향해 “오, 나의 어머니이신 대지시여!”라고 기도한다.

그들에게 만물은 신이지만, 성경은 만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을 섬기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만물을 관리할 뿐이다. New Age운동가들은, 만물과 하나 됨을 추구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잘 돌보고, 만물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다.

결정적으로 New Age 운동가들과, 크리스천 환경론자가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는 만물의 등급적 가치를 믿는다. 만물과 인간의 등급적 가치, New Age 운동가들은 만물을 최고의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고의 가치가 인간에게 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물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을 더 풍성하게 가꾸어서 5달란트, 10달란트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만물을 물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사명임을 기억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자.

생산자인 녹색생명들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산다. 소비자인 동물은 생산자를 먹이로 살아간다. 그리고 분해자인 미생물은 모든 생명체를 분해하여, 식물이 먹기 좋은 먹이로 만든다. 이것이 창조의 법칙이며 섭리다. 하나님의 이 창조질서를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되는 질서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부서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도로 성장해가는 과학과 기술문명 속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끝없이 풍요와 안락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으로 만물이 파괴되고 있다. 오존층의 파괴, 대양의 침범, 핵의 위협, 공해문제 등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이렇게 인간의 잘못으로 생태계는 물론, 지구의 운명이 위협받고 있다. 요즘 자연보호, 환경보호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자연(自然, 스스로 자, 그럴 연)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만 스스로 계신 분인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를,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라고 부를 수 없다. 자연에 해당하는 말은 만물이다. 그래서 만물로 말씀드리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만물을, 이번 서해안 사태를 통해, 환경을 보호하여, 죽음의 길에서 생명을 살리는 길로 가야한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다. 이처럼 교회는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래학자 ‘톰 사인’은 “21세기와 새천년에, 크리스천이 직면해야 할 최대의 문제는 환경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만물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함께 만물을 구원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시대의 소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구원에 대한 메시지는 많이 들었지만, 창조세계의 구원이라는 말씀은 생소하다.

진정한 복음 전도자는, 진정한 생태 회복 운동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2가지 명령을 하셨기 때문이다.

(1) 복음전도의 지상명령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증거 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2) 문화명령이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이를 문화명령이라 한다.

지상명령과 같이 문화명령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환경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가?

1. 환경보호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1:28).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것들을 보시며 “보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하셨다. 보기에 좋기에 보호하려는 사람이 있고, 보기에 좋기에 빼앗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보기에 좋은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지으신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위임하시는 말씀이다. (창1:26)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선언하는 모습과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것을 경작하며(다스리게) 지키게 하시고”라는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위임하심은 피조세계를 파괴하고, 수탈하며, 착취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키고 보호하라는 명령이다. 오늘날 생태계를 파괴하는 실상 앞에서,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임무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 그 사명이 더욱 크게 주어졌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교회가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만물과 인간의 관계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만물과 인간은 협력하는 관계요, 운명을 같이 하는 관계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만 저주를 받지 않는다.

공동체의 책임으로 여기고, 땅도 함께 저주를 받는다(창3:17). 인간도 만물의 일부이며, 만물이라는 공동체 속에 인간도 포함되어 있기에, 공동체 속에서 운명을 같이 한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서로서로 의존하며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노아시대에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하나님의 진노가 있기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면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방주를 만드셨다. 그때 방주 속에 사람만 들어가게 하셨는가? 아니다.

그러면 방주 속에, 무엇이 들어가게 하셨나?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의 암수를, 방주 안에 함께 보존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을 보호하기 원하셨다. 사람과 더불어 아름다운 생물들이, 생명 있는 만물들이 함께 보존되기를 원하셨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지금까지, 이런 생물에 상당히 무관심해 왔다. 오히려 과거의 기독교는 환경파괴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복하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해서 오히려 파괴하였다. 정복하라고 했기에, 마구잡이로 땅을 개간하고, 정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모든 창조물의 중심이기에,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에,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물들도 만물도 마음대로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정복주의라고 한다. 정복주의 윤리를 가지고, 만물을 계속 착취하는 일에, 과거 기독교인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다스리라(라다)는 뜻은 무엇인가? 짓밟으라는 말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잘 돌보아 주라는 말이다. 아름답게 지켜지고 가꾸어지기를 원하셔서 위탁하셨다. 다스리다는 말은 ‘장려하다, 돌보다, 가꾸다, 보호하다’는 뜻을 가진다. 즉 다스린다는 말은, 섬김의 다른 형태이다.

그러면 정복하라(카바쉬)는 뜻은 무엇인가? 땅을 마음대로 파헤쳐도 좋다는 의미인가? 그런 뜻이 아니다. ‘정복’이라는 단어에서, 영어 culture라는 단어가 나왔다. 만문을 잘 가꾸고 돌보아 개발하라는 뜻이다. 이는 (창2:15)을 통해보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한다(다스리다)는 말 다음에, 어떻게 하셨는가?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잘 다스려 지키게 하셨다.

정복하라는 말은, 파괴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잘 다스릴 청지기적 책임을 강조한 단어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단어를 잘못 이해했다. 그러므로 창조물 보호, 환경보호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복을 주시며’로 시작된다. 복을 주시면서 “땅을 잘 다스려라, 땅을 잘 관리하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만물보호와 관리는, 인간을 위한 축복이다. 땅과 만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지음 받았다. 그런데 사람이 여섯째 날 이전에 지어졌다면, 아마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다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다. 인간이 지어졌을 때, 만물은 완벽하게 모두 이루어져 있으니, 만물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아니다. 선물 관리가 중요하다. 우리가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선물을 받으셨다면, 그 선물을 어떻게 할까요? 소중하게 관리할 것이다. 소중한 선물을 받으면, 소중하게 관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무시하는 행동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소중한 만물을, 우리는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날로 심각해 가는 대기오염, 강물과 바다 오염, 또 흙 속에 침투되고 있는 여러 화학적인 요소들로 말미암아,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다.

이 강산에 넘쳐흐르는 오염된 쓰레기들, 하늘에서는 산성의 비, 오존층은 파괴되고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날로 촉진되고 있다. 이번 서해안 비극을 보았는가? 땅을 파보니까 타르 덩어리가 나왔고, 조개들은 다 죽었다. 그 곳에서 나는 물고기와 음식을 먹지 않기에, 식당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지금 생태계가 파괴된 실상을 모두 알 수 없다. 지금 밝혀진 파괴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러난 파괴의 실상만 봐도, 그 심각성은 극에 달한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파란 이끼를 많이 볼 수가 있었다. 파란 이끼는 대기가 깨끗하고, 신선함을 증명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모두 파괴되어 보지 못했다. 가짜로 만든 것뿐이다. 물, 공기, 음식들이 모두 다 파괴되어 가고 있다. 한국인에게 최근, 호흡기 계통의 질환이 급속도로 증가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호흡기 질환은, 오염된 물과 공기, 음식 때문에 생긴다.

설사, 감기, 결코 대기 오염과 무관하지 않다. 1년 중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돌아가시는 달이 어떤 달이, 12월과 1월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12월과 1월이, 공기가 제일 나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진과 기근 현상, 또 홍수와 가뭄의 현상들, 모두 자연 파괴의 결과이다.

그것은 단순히 재앙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낸 인재다.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다. 지금 인간이 망친 만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가?

(1) 지구의 온실화 문제

대기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이산화탄소, 염화불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그리고 오존이다. 지구 온실화로 인하여, 기온은 상승하고 강우량은 감소되어, 점점 사막화되어 간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를 녹게 함으로, 대양의 수위를 높아져서, 해양이 침범당할 위기를 맞게 된다. 또 폭풍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된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이상 기온에 시달리고 있다.

(2) 대기오염 문제

대기 오염은 주로 자동차의 배기가스, 공장에서 나오는 납, 수은, 아황산가스 등에 의한 오염이다. 대기오염이 우리에게 주는 피해는, 뇌의 억제기능을 저해하며, 뇌 기능장애를 일으킨다.

또한 만성적 호흡질환과 폐암의 원인이 된다.

오존층을 파괴됨으로, 피부암과 백내장을 일으키며, 면역성을 일으킨다. 또한 산성비를 뿌림으로, 어류와 식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땅과 호수에 큰 원인이 되고 있다.

(3) 수질오염 문제

물의 오염은 공장의 폐수, 도시의 하수, 농경하수 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또 바다는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원자로에 의하여 오염되고 있는데,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가 방사능을 띠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의 오염은, 모든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위험이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만물을 파괴하나? 욕심 때문에 그렇다. 수많은 집과 아파트 건물을 지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지금도 사람들은 만물을 막 파괴하고 있다. 욕심의 배후에는 죄가 있다.

저주는 인간의 죄로부터 비롯되었다. 사람의 죄가 아니라면, 만물은 고통당할 필요가 없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았다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사람의 죄 때문에, 만물이 저주 받았다면, 우리가 죄를 덜 짓는다면, 만물도 당연히 회복 되어야만 한다.

만물이 사람 때문에 괜히 피를 본다. 인간에게 권리가 있듯이, 만물에게도 권리가 있다. 구약성경은 만물의 권리를 찾아주는데 강조하고 있다. 안식일은 인간만 휴식을 명하지 않고, 짐승들도 휴식을 하도록 명했다(출23:12). 사람처럼 안식년을 두어, 땅도 휴식하게 하셨다(레25:4).

그러므로 만물에 대한 다스림과 복종이라는 인간중심으로 만물을 대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만물을 가꾸고, 잘 돌보아야 한다. 만물이 통곡하는 소리가, 자연이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잘 들어보면 만물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구원이 완성이 되는 때는 언제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사람들의 구원이 완성되고, 이 땅에서 죄가 완전히 심판되고 추방된다. 그때 마지막 결과를 (롬8:20)에서 볼 수 있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마지막 때가 되면, 피조물도 썩고 병든다. 이것은 피조물의 뜻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다.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이 완성될 때, 부활의 몸을 입고 완성될 때 피조물도 그때에 썩어짐의 종노릇한 해방되어, 만물이 회복되고 완성된다는 말이다.

인간이 고통하고 탄식할 때, 자연도 고통하며 탄식한다(롬8:22). 우리가 성경 따라 살기 원한다면,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은 자연을 보시며 아파하시고, 자연을 돌보려는 의지를 가지셨다. 그 증거가 산상수훈에 나와 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도 안하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지만, 잘 자라고 있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돌보신다고 했다. 그러면 만물을 누가 돌보신다는 말인가? 하나님 아버지가 만물을 돌보고 계신다는 말이니, 만물에 대하여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주님께서 만드신 작품인 만물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만물을 너무 파괴하면 “야, 너 안 되겠다.”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만물에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원한다면, 우리도 만물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사11장과 계22장)을 보면, 천국은 오염이 없는 나라. 완벽히 만물이 회복된 나라, 푸른 강, 푸른 나무, 푸른 숲, 다시 저주와 병이 없는 세계다. 우리는 그 천국이 이 땅에 오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환경보호의 책임이 있다. 그것이 예수님의 구원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극단적 환경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 환경론자들이 있다. 크리스천들이 환경운동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계에서 환경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New Age 운동가들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금세기 최고 이단운동이다.

그들은 환경이나 만물을, 신으로 본다. 자연을 말하며 자연을 신으로 본다. 범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신으로 본다. 자연 앞에 기도하고, 자연을 숭배한다. 그리고 땅을 향해 “오, 나의 어머니이신 대지시여!”라고 기도한다.

그들에게 만물은 신이지만, 성경은 만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을 섬기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만물을 관리할 뿐이다. New Age운동가들은, 만물과 하나 됨을 추구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잘 돌보고, 만물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다.

결정적으로 New Age 운동가들과, 크리스천 환경론자가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는 만물의 등급적 가치를 믿는다. 만물과 인간의 등급적 가치, New Age 운동가들은 만물을 최고의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고의 가치가 인간에게 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물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을 더 풍성하게 가꾸어서 5달란트, 10달란트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만물을 물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사명임을 기억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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