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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똑똑한 바보 (마 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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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 (마 5:38-48)

I. 리더십 유형

우리나라에 한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자가 앞장 서 일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연구해 보았더니 똑똑한 사람이 있고 멍청한 사람이 있더랍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게으른 사람이 있더라고 합니다. 이것을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4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나옵니다.

첫째,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는 똑게형입니다. 똑똑하면서도 게으른형입니다. 분명히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모든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함께 일할 줄 아는 유형의 지도자 말입니다.

두 번째는, 똑부형입니다. 똑똑한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못마땅해 합니다. 여간해서 마음에 차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힘이 듭니다.

세 번째는, 멍게형입니다. 멍청한데다 게으르기까지 해서 도무지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이보다 더 나쁜 유형은 멍부형입니다. 멍청한게 부지런하기만 해 가지고, 지혜도 없이 설치기만 하다가 사람들을 다치고 일을 거스르기가 일수입니다.

흔히 멍부형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숭이 한 마리가 강가를 지나다 보니까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면서 노는데 물고기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죽는 걸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아뿔사 저 불쌍한 것들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네 내가 살려내야지' 그래서 원숭이가 강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건져서 모래사장으로 집어 던지는 겁니다. 살아나라고. 한 마리 건져서 던질 때 마다 푸득푸득 거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실컷 다 잡아서 밖에 던져놓고 보니까 다 죽어 있거든요. 무릎을 치면서 하는 얘기가 아뿔사 내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저것들 다 살려낼 수 있었는데... 그 다음날도 역시 강가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고기를 잡아서 밖으로 던지는 겁니다.

뭔가 열심히 일한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바른 것인가? 옳은 것인가?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내게도 너에게도 유익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생의 바른 목표와 바른 가치관이 없이 산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일본의 한 화가는 예수님을 「바보」로 묘사했습니다. 오늘 산상보훈 첫 번째장 제5장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복된 제자의 모습은 아무래도 바보입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면 십리를 동행해라
너를 박해하는 원수를 사랑해라」

이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복된 사람이 사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똑똑한 바보」「복된 바보」「행복한 바보」입니다.

II. 똑게 라이프 스타일

복된 바보, 똑똑한 바보가 살아가는 첫 번째 라이프 스타일이 39절에 나옵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는 것"입니다. 왜 하필 오른뺨인가 하는 랍비들의 설명이 퍽 재미있습니다. 상대방의 오른뺨을 치려면 왼손으로 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른뺨이란 손등으로 때리는 것을 말하며 뺨을 치는 것만으로도 모독인데 손등으로 뺨을 때린다는 것은 모독 중 가장 큰 모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존중과 신뢰를 받아야 할 우리가 극한의 인격적 모독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왼편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뺨 맞았다고 욱! 하고 주먹을 내밀면 살인자가 됩니다. 인격 모독 받았다고 살인자가 되기 보다는 그냥 손해보는 바보가 되라는 것입니다. 관용과 온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를 대하는 똑똑한 바보가 되라는 것입니다.

똑똑한 바보가 살아가는 두 번째 라이프 스타일이 40절에 나옵니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너를 고발하여" - 이 말은 재판정에 고소를 당해 다 빼앗기고 속옷 한 벌까지 빼앗길 비참한 상황에 빠진 상황을 말합니다. 우리가 최소한의 권리를 마져 빼앗길 위기 상황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당시 가난한 유대인에게 겉옷은 낮에는 의복으로 밤에는 이불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26에서도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27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그러나 주님은 겉옷까지 내어놓아야 할 형편에 몰리면 흔쾌히 내어 주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권리,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져 줄 수 있어야 우리는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그냥 손해보고 사는 똑똑한 바보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똑똑한 바보가 살아가는 세 번째 라이프 스타일이 41절 42절에 나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1절 "억지로"라는 말에서 당시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길가는 유대인 아무나 붙들어 강제로 1마일(3-5리)을 짐을 지워 가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거리는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까지를 의미합니다.

세상 살아가다가 정말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성품이 예수님을 닮은 성품입니다. 때로는 내 인격적인 결단 없이 강제로 일을 하고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너는 관용과 너그러움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자존심 다 묻어두고 사는 똑똑한 바보 말입니다.

똑똑한 바보가 살아가는 마지막 네 번째 라이프 스타일이 43절 44절에 나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런데 구약 성경 어디에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첨부한 말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 정도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보처럼 그렇게 사셨습니다. 원수 갚을 힘이 없고 방법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똑똑한 바보처럼 사는 것이 복된 존재들의 삶의 방식이기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분(곽선희)의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전쟁은 전쟁으로 종식시키지 못한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원수를 갚으면 또다른 원수가 나온다. 미움 받았다고 미워하면 미움에서 자유 할 수가 없다. 싸움은 또 다른 싸움을 일으키고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일으킨다. 이 무서운 악순환을 해결하는 길은 사랑밖에 없다. 증오와 한을 이기는 길은 사랑뿐이다. 한이 사랑으로 바뀌고 증오가 사랑으로 바뀔 때 미움의 싸이클은 사랑의 싸이클로 바뀐다. 악을 이기는 길은 또 다른 악이 아니라 선이다.」

이 길이 바로 똑똑한 바보가 살아가는 길, 율법을 완성하고 사는 길,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의 길 - 복된 길이라는 것이다.

III. 오리 인생 십리 인생

똑게 라이프 스타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오리 인생이 아니라 십리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오리도 못 가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십리를 더 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미국의 성공 철학자 「나폴레옹 힐」은 훌륭한 교수였는데 카네기를 만난 다음에 이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평생 그것을 연구하는데 바친 리더십 전문가입니다. 그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역사, 성공하는 역사는 오리보다 십리를 걸어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한 리더십 연구가가 「오리 인생이 되지 말고 십리 인생을 살아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보다 더 많이 하면서 살라는 얘기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거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 기대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댓가를 받습니다. 댓가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신앙생활,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직장에서의 근무시간과 태도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늘 지각하고 걸핏하면 조퇴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 - 오리도 못 가는 사람들이죠. 땡출 땡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제시간에 출근하여 땡하고 퇴근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오리 인생일 겝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여 하루 일을 설계하고 성실히 일하다가 뒤늦게까지 자신이 맡은 일을 할 뿐만 아니고 창조적인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십리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고 좋은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얌체같이 제 할 일만 하는 사람, 자기 이익만 챙기며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은 누구도 좋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배우자 간에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생활, 목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사회생활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형들을 문안하기 위해 세겜까지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이곳 세겜은 야곱 가족에겐 대단히 위험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형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세겜 땅에 갔더니 형들이 아무런 일없이 세겜에서 양들을 다 치고 도단이란 곳으로 이미 멀리 간 다음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리입니다. 돌아와서 아버지 세겜에 갔더니 형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다행이지 뭡니까?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의무보다도 요셉은 더 멀리 갑니다. 도단까지 갑니다. 그 일을 위하여 인생의 커다란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길이 십리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어린 요셉은 십리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요셉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십리인생으로 살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남을 도와주는 십리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이 십리 인생으로 살았기 때문에 한 장관의 추천으로 애굽에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주변의 사람의 한번의 추천 때문에 인생의 위대한 전환점을 맞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상사의 한 장의 추천장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지 모릅니다. 내 동료나 친구들의 한 마디 좋은 평가 때문에 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② 오리도 못 가는 인생은 언제나 공동체 속에서 필요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갑니다. 가정 공동체, 직장 공동체, 교회 공동체 말입니다.

세계적인 셀 신학자 랄프 네이버 박사의 이야기 가운데 에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디라는 슈퍼마켓 점원이 있었습니다. 그냥 콧노래만 벙글벙글 부르고 슈퍼마켓 가운데만 왔다 갔다 하는데 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손님들의 발길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어느날부터 에디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에디가 보이지 않네요. 이제 에디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점원을 찾아야 되겠네요." 주인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니요. 에디는 원래부터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랄프 네이버 박사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을 정복하지 못하는가? 교회가 사탄의 견고한 진을 파하지 못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감당하게 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을 우리에게 한다고 말씀했는데 이 땅을 주의 복음으로 정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무력한 공동체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는가? 교회내에 에디들이 오리를 못 가는 인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자리에 있든지,
걸림돌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있으나마나한 에디 인생, 오리 인생으로 살지 마십시요. 누군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동행하십시오. 그게 바보 갔지만 복된 바보, 똑똑한 바보가 사는 길입니다.

미국에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중에 존 록펠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 회사의 평범한 회계원이었습니다. 어느날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석유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성령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석유사업을 하려 하니까 유전을 매입해야 되겠는데 어마 어마한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록펠러에게 자금을 대 주었습니다. 그 당시 석유사업은 전망이 없어 보이는 사업이었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약속이 보장된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많은 돈들을 왜 록펠러에게 맡겼습니까?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전망 때문이 아니었다. 성실한 록펠러, 정직한 록펠러, 창의적인 록펠러, 그와 더불어서 함께 일하기를 우리가 기뻐하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IV. 십리 인생의 축복

1. 이처럼 십리 인생들에겐 예상치 않은 보상, 축복이 따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때로 임무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할 때 손해 보는 것처럼 느낍니다. 주변의 오리 인생들을 보면서 자신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리 인생이 걸어가는 길에는 언제나 보상이 따릅니다. 아니 보상이 없어도 그렇게 삽니다. 그것이 똑똑한 바보의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2. 똑똑한 바보로 사는 사람에겐 늘 자신의 능력이 향상됩니다.

십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숨어있던 잠재력이 발동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풍성해지고 커지는 법입니다.

성경에 다윗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한창 전쟁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를 찾아갑니다. 요셉도 다윗도 심부름하다가 인생이 바뀝니다. 형님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안부를 묻고 오는 것이 다윗의 할 일이었습니다. 거인 장수 골리앗이 버럭 버럭 소리질르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데 아무도 그 앞에 나서지 못하고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이 임금 앞에 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나를 저 골리앗을 대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 누구도 다윗에게 전쟁에 참여하도록 요청하지 아니했습니다. 형님들에게 음식을 전해주고 안부만 묻고 오더라도 오리 인생으로 충분한 자리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 주변에 있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수들은 골리앗 대장과 자기 자신을 비교했기 때문에 그 앞에 나서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 듯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오리도 못가는 장수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린 다윗이 이 어마 어마한 전쟁터에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은 자기 자신과 골리앗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날 도와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할 때에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지만 나는 네가 저주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그는 골리앗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윗은 십리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지는 것 같지만 승리합니다. 내 힘만 가지고는, 내 재주만 가지고는, 오리도 갈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면, 주께서 내게 능력을 주시면 십리도 갈 수 있고, 백리도 승리하며 지치지 않고 달려 갈 수 있다. 할렐루야!

십리를 갔던 이 한번의 사건으로 다윗은,
①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능력이 개발되어집니다.
②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③ 여호와께서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④ 백성들의 존경과 마음을 얻었습니다.
⑤ 용맹이 개발되어졌습니다. 믿음이 개발되어졌습니다.

무명 용사 다윗이 다윗 왕국을 건설하게 되는 것이죠.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도 도망 갈 때도 압살놈에게 쫓겨 도망 갈 때도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다윗이 바로 똑똑한 바보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번의 예배를 드릴 때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리도 못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그 찬송과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빈손 들고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빈손 들고 나와서 은혜를 사모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죠. 오리도 못 가는 예배를 지금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예배를 정성을 드립니다. 예물을 정성껏 준비합니다. 오리 인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 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힘에 겹도록 예물을 준비하고 시간을 준비하고 몸을 드려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이들에 의하여 교회는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리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V. 기쁨으로 가는 십리길

혹시 우리 가운데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겝니다. 100리를 가도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게고 한 걸음을 가도 함께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겝니다. 평생을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게고 한 번을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고요.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본문은 "억지로" 끌려가도 십리 인생이 되라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느낌이 아닙니다. 의지요 결단입니다. 사랑을 느낌으로 감정으로만 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요 사랑은 결심이요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시작은 느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속은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41절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여기 중요한 단어가 "누구든지"라는 말입니다. 함께 가고 싶지 않을 때가 문제입니다. "억지로 가게 하거든" 입니다. 여기 생략된 말이 있습니다. 기꺼이 혹은 기쁨으로라는 말입니다. 기꺼이 십리를 가거라. 기쁨으로 십리를 동행하거라. 그래야 바보는 바보인데 똑똑한 바보가 되는 겁니다.

오늘 십리 인생이 되라는 이 말씀은 복수에 대한 교훈의 결론입니다.
38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사는 것 아니다. 누가 너희에게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려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눌려 살면서도 나를 누르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눌려 살면서도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를 바꾸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부자를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배운 것이 없음에도 많이 배운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 -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 진정한 주의 백성의 능력입니다.

가고 싶은 길, 취미나 오락으로 골프채를 잡고 걷는 십리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황은 어려운데 억지로 오리를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무거운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순종해 보지 못한 신앙생활 십리 길이, 그 무엇이 있습니까?

너 일어나 기도해라. 너 혼자 힘으론 안돼. 열심히 기도해라. 성령님이 여러분 마음 속에 부담감을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바로 그 끝에 여러분을 위한 아름다운 능력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너 그 문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금식해라. 말씀하십니까? 금식을 시작하십시오.

솔로몬의 일천번제처럼 어깨가 무겁도록 하나님께 한번 드리고 신앙생활 결단해라. 말씀하십니까? 짤라서 드릴 것 드리십시오. 세상 줄을 끊지 못해 한 걸음도 꼼짝달싹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짜르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앉은자리보다 더 멋진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가 가고 싶은 곳까지만 가지말고 십리까지 가 보아라!

VI. 끝까지 감사하며 가는 길

이 말씀 듣고 한번은 똑똑한 바보가 되어 줄 수 있지요. 그러나 똑똑한 바보로 사는 것은 복된 성도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성품을 말합니다.

1. 십리길은 끝까지 잘 가는 길입니다.

도중하차 인생은 하나님이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카네기 연구소에서 경영지도자를 승진시킬 때에 5가지 기준으로 선택한다고 합니다.

① 거짓말을 가장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가?
② 약속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가?
③ 실수에 대하여 이유나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사람. 그를 선택하라.
④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언어나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뽑지 말아라.
⑤ 쉽게 포기하는 사람, 오리도 못가는 사람, 도중하차 인생을 뽑지 말아라.

우리가 십리길을 가다보면 지칠 때가 있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러나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으면, 가장 힘든 인생을 걸어가고 있으면 승리가 성공이 여러분 앞에 문을 지금 막 열고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2. 십리길은 감사하며 가는 길입니다.

감사는 미래에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에너지입니다. 감사는 낙심과 좌절의 안개를 걷어내는 아침햇살과 같습니다. 성공자는 이루어진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압니다. 이루어져 가는 작은 일을 보며 감격해 할 수 있습니다.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십리길을 걸어가며 두 다리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는 손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내가 건강하니 나를 불렀겠지 감사합니다. 가지 않아도 되는 길, 많은 사람이 찡그리며 가는 길인데 찬송하며 갑니다. 십리 길은 인상 쓰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감사하며 갑니다. 콧노래 부르며 갑니다. 기뻐하며 갑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주변의 사람들이 변화를 감동을 경험합니다.

내가 내 눈으로 나를 보면 절망이고 좌절이지요,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나? 낙심할 때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니 나는 이미 복되도다. 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예수님의 성품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살아가다 보니 바보처럼 살아가는데 예수님은 똑똑한 바보다. 너는 복되구나. 복된 존재구나. 주님이 나를 축복하십니다.

언제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똑똑한 바보입니다. 팔복으로 시작된 산상보훈 5장은 복된 바보, 똑똑한 바보가 되어 살아가는 인격, 성품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카네기 회사에 늘 웃고 다니며 입에 감사가 붙어 다니는 챨스 슈와브라는 노무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카네기보다 늘 먼저 와서 있었습니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중에는 언제나 챨스 슈와브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카네기는 그에게 100만불의 보너스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감사를 아는 사람들에게 주는 보너스요. 이것은 십리 인생길을 아는 사람에게 주는 나의 작은 배려입니다. 훗날 이 노무자가 미국 최고의 철강회사 유나이트 스틸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장 취임식에서 카네기가 축사를 했습니다. “일개 노무자가 어떻게 이 스틸사의 사장으로 앉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일하는지를 꾸준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지금 오늘 이 자리는 당연히 스와브의 자리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는 늘 손해보는, 이익을 챙길 줄 모르는 바보 같지만 똑똑한 바보였습니다.
"누구든지 너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오늘 바보 같으나 똑똑한 바보입니다. 그 안에 예수님 닮은 성품이 있습니다. 이게 복된 존재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자존심의 손해를 입고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킬 수 없는 상황속에서 극한의 모독속에서 바보처럼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면 우리 예수님 너는 복된 바보야. 너는 똑똑한 바보야. 예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가진 것도 없는데 마지막 남은 권리마져 무너져 내릴 때에 그것을 흔쾌히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바보나 하는 짓이지요. 그러나 예수님 너는 똑똑한 바보야. 너는 할 수 있어 말씀하십니다.

힘이 없어 끌려가는 노예처럼 살아갈 때에 기쁨으로 그 길을 가라구요? 속이 뒤집어 지는데, 깨끗이 인생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는데,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닌데?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이 능력 주시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인내해야 되는 고통이 한 두 번 이었습니까? 꺾여지는 자존심이 한 두번이었습니까? 버려야 되는 일이 한 두번이었습니까? 저 바보! 그러나 당신은 똑똑한 바보입니다.

밟는다고 밟힙니까? 박해한다고 박해나 당하고 있습니까? 욕한다고 욕이나 듣고 있습니까? 비난한다고 다 감당하고 있습니까? 바보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복된 바보입니다. 당신은 똑똑한 바보입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그 바보 같은 짓 때문에 세상은 바뀌어 질 것입니다. 당신을 박해하던 사람이 돌아올 것입니다. 짓밟히면서도 나를 짓밟는 사람에게 우리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면서도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욕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배운 것도 없는데 많이 배운 사람들을 뒤집어 놓습니다. 가진 것도 없는데 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꾸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똑똑한 바보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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