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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태도(II) (롬 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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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태도(II) (롬 12:3~13)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3-13

지난주에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내셔널심포니의 차이코프스키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임마누엘 성가대 지휘자인 주익성 집사님이 지휘를 하셨습니다. 저는 연주회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 가면 연주를 즐깁니다. 오케스트라 멤버가 15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앞쪽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을 연주하고 제일 뒤에 큰 북을 치는 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큰 북을 언제 두드릴까?’ 궁금했는데, 자기 차례가 되어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아주 시원했습니다. 큰 북 연주자는 탐탐이라는 북도 같이 연주를 했는데, 큰 북을 친 후에 옆으로 한 발짝 가더니 탐탐을 치더군요. 전체 연주 중에 큰 북과 탐탐을 여섯 번 쯤 쳤어요.

그 옆에 건장하고 큰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분은 다른 사람들이 연주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거의 1시간 반 동안 연주 내내 바뻤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알레그레토 비바체는 생동감이 있고 연주가 빠르잖아요. 그러니 모든 연주자들이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런데 큰 북 연주자는 겨우 여섯 번 쿵쿵 치고 앉았고, 그 옆 사람은 아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저 사람은 뭘 하려고 저렇게 앉아있나?’ 했더니 30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일어났어요. 그는 심벌즈를 들고 악보와 지휘자를 한참 보더니 자기 차례에 ‘쨍!’ 한 번 치고는 다시 앉았습니다. ‘저렇게 한 번만 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조금 있다가 두 번을 더 치더군요. 한 시간 반 동안 그렇게 세 번쯤 그 심벌 쯤 쳤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계속 앉아있기만 했어요. 저는 ‘저 사람이 저렇게 연주하고 월급을 얼마 받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훨씬 많은 시간을 연주하면서 땀을 흘리는데 심벌즈 연주자는 몇 번 ‘쨍!’하고 마니까요. 알고 보니 그 분도 다른 연주자들과 거의 똑같이 월급을 받는다는군요.

그런데 여러분, 심벌즈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에서 세 번 정도 밖에 연주하지 않지만 만약 그 연주에 심벌즈가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차이코프스키는 한국에 와서 완전히 망치고 말 것입니다. 세 번을 치더라도 작곡자가 써 놓은 대로 정확하게 지켜야 연주가 제대로 되고 음악이 살아나지요.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오케스트라 멤버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한 분도 소중하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바이올린 연주자, 어떤 분은 심벌즈 연주자, 어떤 분은 드럼 연주자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적절한 은혜와 은사와 역할을 주셔서 하나님의 큰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런 역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맡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적절하고 지혜롭게 하는가 하는 방법과 태도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3절). 바이올린 연주자가 심벌즈 소리가 좋다고 심벌즈를 연주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받은 은사의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와 믿음의 분량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표현을 원문으로 풀어보면 ‘자기 분량대로 적절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냉철하게 판단하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자신을 매우 정확하고 정직하게 판단해서 무슨 일이든 그 정당한 판단에 따라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와 분량이 있습니다. 역할이 각각 다릅니다. 우리가 다 똑같은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적게도 아니고 많이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나로 만들어 주신 믿음과 은사의 분량에 따라 적절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섬겨야 유익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5인데 0을 하나 더 붙여 50이라고 생각한다면 과대망상입니다. 교만해 집니다. 그러면 쓸모가 없습니다.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심벌즈를 치는 사람이 자기를 지휘자나 작곡자로 여기고 심벌즈를 아무 때나 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에게 맞게 적절하게 일하고 섬겨야 축복이 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난 아무것도 아닌데….’ 만약 심벌즈를 연주하는 사람이 “난 뭐야! 바이올린 연주자는 1시간 이상이나 연주하는데 나는 겨우 세 번 일어났다 앉게 하다니, 난 무가치한 존재야! 세 번 할 바에는 아예 안 할래!” 하며 연주를 안 했다고 합시다. 그것도 큰 문제겠지요. 과대평가도 문제고 과소평가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와 믿음과 능력을 가지고 정직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서 여러분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제 역할을 잘 이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판단력을 주십시요. 당신의 참된 지혜의 힘을 제게도 주셔서 날마다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고 당신의 은혜와 진리를 내 눈으로 보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어디서나 나의 역할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추구하십시오.

본문 8절에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고 적절하게 섬길 뿐 아니라 성실하게 섬기라고 합니다. 섬기는 자의 좋은 태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함’이란 원문에서는 “너그럽게, 넉넉하게”라는 뜻입니다. 내가 가진 은사를 남을 위해 쓸 때 덤을 얹어서 “넉넉하게” 주라는 말입니다. 덤으로 더 주라는 말이지요. 넉넉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너그럽고 넉넉하고 후하게 베푸는 마음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저는 전임목사가 되기 전에 직장생활을 7년 정도 했습니다. 비즈니스 세계를 들여다보니 직장인들 중에 세 부류의 사람이 있더군요.

첫 번째 부류는 8시간 어치의 월급을 받고 일은 6시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몫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이지요. 그저 기회만 있으면 살짝 살짝 빠져 나가요. 언제나 자기의 유익만 추구하고, 월급 받는 만큼 일하지 않지요.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줄 알아요.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을 어쩌다가 한두 번은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언제나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급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진급이 안 됐다고 화를 내고, 왜 자기보다 뒤에 온 사람을 진급시켰다고 야단을 합니다. 하지만 윗사람이 그의 처신을 아니까 그런 사람은 진급을 안 시키지요. 세상에서도 자기 몫을 못하는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자라서 어떻게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회사에 폐가 되지 않으려고 자기를 잘 관리하고 열심히 맡은 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자기 일만 하지요. 그래도 자기 몫은 해내니까 괜찮아요.

세 번째 부류는 별로 많지 않은데,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역할을 더 넉넉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엑스트라가 있습니다. 맡긴 것 보다 더 큰 효과를 냅니다. 회사에서는 이런 사람을 알아보고 승진을 시킵니다. “너그럽게 하라. 네 시간과 노력과 사랑을 넉넉하게 주라.” 섬김은 이런 식으로 해야 합니다.

과소평가나 과대평가는 둘 다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한쪽으로 기울고 치우치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과소, 과대평가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도 저 자신을 과대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만 솔직히 고백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젊고 건강할 때는 아무리 큰 호랑이라도 내가 꼬리만 잡으면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젊은이의 이상과 야망이 끓어올라 ‘내가 언젠가는 유학을 가고,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20년 후에는 내가 이 나라의 메시아가 되리라!’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인생을 알고 진리를 알게 되자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어느 날 이 성경구절이 제 눈이 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십니다. “너 식구가 몇 명이냐?” “6명입니다. 장모님까지요.” “그래? 너는 네 식구들을 잘 돌보느냐? 네 식구들을 사랑하느냐? 네 식구들이 너 때문에 행복하냐? 특별히 네 가족들을 잘 돌보아라.” 자기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자는 믿는다고 해도 믿는 사람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신자 보다 악하고 믿음을 부인한 자”라는 이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내 아내와 큰 아이, 둘째 아이, 셋째 아이, 장모님을 잘 돌보는가 생각해보니 하노라고 하지만 제대로 못하고 있었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 메시아가 되고 싶었지? 집어 치워! 네 여섯 가족이나 잘 돌봐. 너 때문에 네 가족 여섯 명이 행복하게 살도록 너 자신과 가족을 돌봐라.” 그때부터 제 메시아의 환상이 다 사라졌습니다. 내 가족 돌보기도 바쁘고 손이 모자라고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세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과대망상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정직하게, 솔직하게 네 믿음의 분량과 은사의 분량을 정확하게 알고 지혜롭게 생각해서 적절하게 섬겨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평가가 건전하면 겸손해집니다. 겸손이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섬기거나 무슨 일을 할 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넉넉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것 하나, 내 인생 하나만을 위해 겨우 살아가지 않고 내 인생을 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 있게 은혜를 베풀고 축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한 종목만으로 어떻게 그렇게 유명해졌나 했더니, 이 사람이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넉넉하고 너그럽게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줄까요?” “한 스쿱만 주세요.” 그러면 한 스쿱을 담고 그 위에 다시 작은 스쿱을 더 얹어줍니다. 두 스쿱을 달라고 하면 두 스쿱을 올린 위에 앵두 하나를 더 올려줍니다. 빨간 앵두는 얼마 비싸지 않습니다. 덤으로 더 얹어주는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맡든지 주어진 일보다 더 많이 섬기는 마음과 태도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역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얼마 전에 팥죽 파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팥죽을 팔아서 알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의 비법도 넉넉하게 더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 가면 자기가 낸 돈보다 더 많은 양을 먹는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그 할머니 집에 몰리는 것은 너그럽게 주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주되 너그럽게, 넉넉하게 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언제나 덤을 베풀고 엑스트라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엑스트라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서도 바로 집안의 총무가 되었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엑스트라를 더했습니다. 요셉이 바로왕 앞에 서자 왕이 물었습니다. “자네가 꿈을 해석할 줄 안다면서?” “제가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꿈을 해석하십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왕은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요셉에게 그 꿈을 해석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꿈 해몽을 합니다. 왕이 요구한 것은 꿈의 해석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해석했으니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셈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에게는 덤, 즉 플러스알파가 있었습니다. “왕이여, 풍년에 창고를 많이 만들어 곡식을 사 모아 그곳에 저장해놓으십시오. 나중에 흉년이 들면 그 곡식을 풀어 백성들에게 파십시오. 왕은 돈을 벌고 백성들에게는 먹을 것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서 이 일을 맡기십시오.”

바로왕이 지혜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너에게 꿈을 해석하라고 했지 그런 말까지 하라고 했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왜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야단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왕도 지혜로운 왕이었던 같습니다. “그래! 자네가 총리가 되어 주게!” 요셉은 이렇게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살렸을 뿐 아니라 자기 가족과 가문, 이스라엘과 애굽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에게는 늘 엑스트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넉넉하게, 너그럽게, 후하게 살아라!" 여러분이 주고 베푸는 것은 모두 심는 것입니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심으면 반드시 30배, 60배, 100배가 나옵니다. 심지 않으면 나올 것이 없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에서 우리의 삶이 언제나 넉넉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좋아하고, 하는 일마다 성공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태도가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좋은 태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복된 인생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말씀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우리가 섬기되 넉넉하고 신실하고 지혜롭고 적절하게 하며, 우리에게 있는 것을 남을 위해 줌으로써 축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된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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