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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날임을 전파하라 (눅 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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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날임을 전파하라 (눅 4:16-21)

주님처럼 삽시다. 는 주제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사는 것이다. 시험을 이기며 사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 삶이 세례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며 광야의 고난과 마귀의 유혹과 자신의 욕망을 이기고 승리하시며 천사들의 위로를 받기까지 한 주님의 모습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예수님은 승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그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 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집고 넘어갈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늘 하시던 대로” 습관입니다. 늘 하신던 일이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가시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좋은 생활습관은 우리의 실생활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좋은 영적 습관은 우리의 믿음 생활에 큰 유익을 줍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근본적으로 습관의 복합체이다.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습관의 씨앗은 성품을 얻게 되고, 성품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 축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습관, 말씀 보는 습관, 봉사하는 습관 다 유익한 것이지요. 그러나 화투치는 습관, 담배 피는 습관, 술 먹는 습관, 모여 앉아서 남의 흉이나 보고 떠드는 습관, 내게 전혀 축복이 되지 않는 습관들입니다. 신앙의 습관을 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나가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 셨어요.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제가 아는 비누 공장을 하는 장로님은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때부터 십일조를 드리는 습관을 드렸는데 십일조를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고 구겨진 돈을 다 다리미로 다려서 깨끗하게 펴서 그림이 똑같이 맞도록 맞추어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가 성공해서 큰 공장을 세우고 돈을 주체를 할수 없이 많이 벌 때도 제가 아는 대로는 신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주었는데 들어 오는 돈에서 십일조를 떼는 아르바이트를 주었어요. 모든 헌금을 새 돈으로 그리고 다리미로 다려서 드렸어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기에 아무렇게나 할 수 없다. 그 마음이 귀하지요. 좋은 습관이 축복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매일 성경을 3장씩 읽는 분도 있습니다. 연말이면 한 해 모았던 작은 저금통을 털어 경로당을 방문 하는 분도 있습니다. 김장철이면 김장을 담아 독거노인을 찾는 집사님도 있습니다. 사랑의 습관, 봉사의 습관아름다운습관을 가지세요. 옆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것도 습관 이예요.

왜 얼굴이 언제나 세상불만을 다가지고 있는 사람 마냥 그러고 삽니까? 세상 죄를 다지고 가신 예수님도 잔잔한 미소가 있었어요. "당신의 습관은 당신의 운명을 좌우 한다" "인생의 성패는 당신의 습관에 달려있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좋은 습관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좋은 습관으로 사람들에게 귀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펼쳐 읽으신 성경은 이사야서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 말씀 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요 기름부은자입니다. 그 메시야, 그 구원자 예수님이 은혜의 해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분이 아니요 은혜를 주기위해 오신분입니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신분입니다. 그것이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눈 먼 자에게는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는 자유 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그는 가난한자들과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 스스로 가난하셨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가난은 저주도 아닙니다. 가난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난자체가 축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주님을 만날 수 있기에 축복입니다. 부자가 예수님을 믿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대부분의 부자들은 가난할 때 예수를 믿고 부자가 된 사람들이지 부자로 살면서 예수를 믿은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세계적 갑부이며 강철왕으로 알려진 미국의 카네기에게 어느 날 신문기자가 성공의 비결을 말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 카네기는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성공의 비결은 역설적이지만 가난이었습니다.” “나의 성공의 비결을 설명하면 첫째, 나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기에 늘 가난한 생활에 한탄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분발심이 솟아서 ‘이놈의 가난 두고 봐라. 부모님을 근심시키는 가난이라는 놈을 없애버리고 말겠다.’라고 결심하고서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했더니 성공을 했습니다.

둘째, 가난했기에 무슨 직업이라도 가리지 않고 어떠한 일이라도 좋아했고 항상 제일인자가 되도록 힘써서 일한 탓입니다. 셋째로 제일 중요한 성공한 비결은 내가 가난함으로 심령이 가난하여 진실하시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가난 했기에 하나님을 만났다. 바로 그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는데도 고향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있기 때문입니다. 저가 목수의아들이 아니냐? 는 것입니다. 말은 맞는데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선입견이 개입이 되면 복음은 오염이 됩니다.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복음이 화가 됩니다. 그래서 보세요. 끝내 이들은 예수님을 끌어다가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죽이려 하쟎아요. 믿는 것 같은데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도 하고 은혜를 받으면서도 나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믿기는 믿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방법으로 믿느냐 내 방법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온 마디로 전하여져서 행동이 나와야 하는데 중간에 담이 많아서 막혀버리고 주님의 것이 아닌 내 것이 나와 행동 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신앙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속에 진리를 막는 장애물들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여행자가 미국 그랜드 캐년에 놀러 갔다가 발이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구르다가 가까스로 작은 나무 가지 하나를 붙잡아서 간신히 살았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해줘요." 그러자 "내가 여기 있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좀 구해 주세요" 하니까? 음성이 나기를 "내가 구해 주마.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 아니라 새벽기도회에도 나갑니다. 헌금도 몇 달러씩 합니다." 주님이 다시 묻기를. "네가 정말로 날 믿느냐?"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는지 모르실 거예요. 저는 하나님을 믿어요." 믿습니다. 했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좋아! 그렇다면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그러자 그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더니 이렇게 절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거기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이 없소!"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은혜의 해를 전파하라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포로 된 자가 해방되는 은총, 눈먼 자가 눈을 뜨게 되는 은총, 억눌린 자가 풀려나는 은총, 배 고픈 자가 먹게 되는 은총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해야 할 일들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의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포로된 자요, 우리가 눈 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리사욕에 포로가 되면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됩니다. 우리는 육체가 가지고 있는 눈을 뜰 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가슴으로 눈을 떠야 합니다.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실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서 복음을 전파 할 수 있고 은혜의 해를 선포 할 수 있습니다.

은혜는 거저 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왔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죽어가는 자기아들을 가슴에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가슴에 끌어 안고 있던 자기아들을 사흘 만에 토해내셨습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묻혀야 사느냐 하면 하나님의 가슴에 묻혀야 삽니다. 하나님의 가슴에 묻히면 부활의 보증을 받습니다. 거기서 승천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은혜입니다. 사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속에 삽시다. 은혜를 선포하며 삽시다. 믿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의 가슴에 묻혀 영원한 생명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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