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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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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16~21)

어제는 민족대표 33인이 모여서 기미년 독립 선언문을 작성해서 낭독했던 삼일절 기념일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에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해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일제에 항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중에 대표적인 민족 지도자들이 거의 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싸웠고, 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에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지난 월요일이었죠?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으로 소망교회 이명박 장로님께서 대통령에 취임하셨습니다.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취임식 중계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뉴스를 통해서 보니까 여러 가지 말씀이 있으셨다고 그럽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많은 축하사절들이 왔었을 텐데, 한 나라의 대통령만 되도 대통령에 취임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비젼과 정치 철학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취임사입니다.

그까짓 임기 5년짜리 대한민국의 쪼그만 나라의 대통령도 그렇게 거창하게 취임사를 발표하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시게 되는데, 그 첫 번째 메시야로서의 취임사가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이에요.

우리 다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취임사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18-19절)

이 말씀이 오늘 설교의 요절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어디서 하셨습니까? - 회당에서 하셨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 앞에 일어서셔서 오늘 이 말씀을 읽으신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 가면 들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집에 가야 들을 수 있는 겁니다.

요즘엔 그저 TV만 켜도 유명하신 목사님들의 설교가 24시간 하루 종일 나온다고 하는데, 그거 앉아서 듣는 사람들 치고 믿음 좋다는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집에 나가야 들을 수가 있는 거예요.

옛날에 유대 사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어야 비로소 회당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열세 살, 우리나라 나이로 중학생 정도가 되면 의무적으로 회당 예배에 참석을 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우리 교회에서도 주일학생들은 먼저 따로 예배를 드리고 중학생이 되면 어른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예배를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열세 살 이상이 되면 의무적으로 누구나 회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니까 유대인들이 복을 받고 다 잘 사는 거예요.
세계 경제를 다 쥐고 흔들잖아요? 노벨 상을 받았다 하면 거의가 다 유대인들이잖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어려서부터 하시던 대로 안식일이 되니까 당연히 회당으로 가신 겁니다.
본문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고 계세요.
‘자기 규례대로’라는 말씀이 뭡니까?
늘 하시던 대로, 또는 자기만의 신앙 방식이나 자기만의 신앙 습관을 따라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시면서 예수님처럼 자기 규례대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목사님이 전화하니까 마지못해서 나오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오늘이 주일인줄도 모르고 있다가 엉겁결에 끌려나오셨습니까?
주일 예배는 그저 토요일부터 미리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동적으로 나와야죠.
그걸 누가 가자 말자 끌고 나오고 그래서 되겠어요?

토요일이 뭐예요? 벌써 금요일 저녁만 되면 주일날 교회에 갈 생각을 해야죠.
미리 미리 헌금도 챙겨 놓고, 주일날 입고 갈 옷도 미리 준비해 놓고, 성경책 들고 미리 미리 차 타는데 까지 나와서 기다려야죠.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루하루를 1분 1초도 빈틈없이 사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31절부터 44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을 어떻게 바쁘게 보내셨는지 잘 알수가 있습니다.

안식일이면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큰 권세가 있으셨는지 듣는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랏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있으면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회당 예배가 끝이 나면 곧바로 회당에서 나가셔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러 다니셨어요.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들어서 다 죽어가는 걸 고쳐 주셨잖아요?
그러다가 보면 금방 해가 넘어갑니다.
그런데도 해질녘에도 계속 병자들이 몰려오는 거예요.
나 같으면 힘들고 지쳐서라도 다음에 오라고 하고 말텐데, 우리 주님께서는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으셔서 다 고쳐 주셨습니다.(할렐루야!)

그렇게 밤늦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백성들을 돌보시던 우리 주님께서는 오히려 새벽 미명에, 동이 트기도 전에 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또 하루를 시작하셨어요.(막1:35)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일반적인 스케쥴이었습니다.
그것도 남들은 다 쉬는 안식일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렇게나 바쁘셨던 거예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매일같이 반복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게 일상 생활이셨던 거예요.
그저 ‘자기 규례대로’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동적으로, 저절로, 그저 습관을 좇아서, 늘 하던 대로, 예수님처럼 ‘자기 규례대로’ 그렇게 해야지 일주일 내내 엉뚱한 데로 돌아다니다가 언제 주일이 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헐레벌떡 뛰어오면 되겠어요?

어린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주일 예배를 잘 드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주일이면 당연히 교회에 가는 것으로 알아야지, 그저 교회는 시간 나면 가고 시간 없으면 안 가도 되고 그렇게 가르치면 되겠어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 바르게 하면 그것이 자기 몸에 배어서 이다음에 어른이 되더라도 예수님처럼 ‘자기 규례대로’ 스스로 주일 잘 지키고 신앙생활 잘하게 되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무조건 교회에 데리고 나오세요. 그래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서 남들처럼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따라서 끊임없이 경건 훈련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몸에 배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기 규례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셨던 겁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신앙 고집이 있어야 되요.
늘 주님만 생각하면서 일주일을 살다가 주일 예배 시간이 되면 ‘자기 규례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이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게 될 때에도 자기 규례대로 미리미리 다 준비를 하고서 여유 있게 갈 수 있게 될 거예요.

자, 그리고 이제 드디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시면서 취임사를 발표하실 시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 예배에서는 보통 성경을 두 군데를 읽게 됩니다.
한 곳은 모세 오경 가운데에서 읽고요, 또 한 곳은 에언서 가운데에서 읽게 되거든요.

그런데 회당 예배 때에는 회당장이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정해서 성경을 봉독도록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서 대표로 나가셔서 성경을 읽으시게 되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인데, 이사야서 61장 1절로 2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요, 성경에는 메시야께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들이 여러 군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사야 61장 1절과 2절 말씀처럼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한 예언도 없습니다.

사실은 구약 성경 전체가 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잖아요?
그런데 특별히 이사야 61장 1절과 2절 말씀은 메시야가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시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거든요.
예수님께서 바로 이 말씀을 펴서 읽어 주셨단 말입니다.

다같이 18절과 19절 말씀을 큰 소리로 봉독하시겠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아멘!)

여기에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하실 일이 다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메시야 취임사’라고 말씀을 드린 거예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까지 전 생애를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감동으로만 사셨습니다.

보세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땐 어떻게 태어나셨어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 오셨을 때에도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셔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역시 ‘성령에게 이끌려서…’(할렐루야!)
누가복음 4장 14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 첫 사역을 하실 때에도 ‘성령의 권능으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후~~ 성령을 받으라!” "Receive the holly spirit!"

일본어로는 “せいれいを ぅけ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성령 층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뭐예요?
첫째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에서 36년을 보냈는데, 70년 동안을 남의 나라에 글려가서 살았으니 오죽했겠어요?
그때에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주신 말씀입니다.
“장차 메시야가 오시면 포로 된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아프카니스탄에 피납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을 보았잖아요?
본인들도 그랬고 그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온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는 포로로 잡혀 있다가 그만 두 명이 희생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풀려나기까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포로에서 풀려나서 해방을 얻게 된다는 것은 포로생활을 안 해 보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일 거예요.
지금 우리들이 일제 침략으로부터 해방이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두 번째 목적은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말씀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수근거렸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마저도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어보았습니다.
“예수님,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자기 부모들의 죄 때문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모든 질병이나 장애 같은 것들은 죄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죄 때문에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은 이 사람이나 이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왜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겁니까?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할렐루야!)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육적인 시각장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소경된 우리들에게도 다시 보게 함의 능력을 전파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다같이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2)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짐들이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부채 문제로 빚더미에 눌려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질병에 눌려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눌려서 늘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잠을 못 잔대요.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어쩌다 잠이 들면 무서운 꿈을 꾸고 가위에 눌려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도대체 무슨 꿈인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꿈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한 영에게 눌려서 그런 거예요.
우리 예수님께 나오면 눌린 것에서 해방 될 줄 믿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그리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해 주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완전한 희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공생애를 사셨고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사순절 넷째주간을 맞이해서 여러분의 심령도 죄악의 포로에서 풀려나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소경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둠의 권세에 눌렸던 모든 심령들이 자유케 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한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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