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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살자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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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자 (빌 4:4~7)

할렐루야!
3월에 좋은 일이 많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대의 찬양이 <깰 때라!>처럼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눈에 무엇이 많이 보이시나요? 무엇을 많이 보십니까?
귀에 무슨 소리가 많이 들리나요?
여러분의 눈에 무엇이 많이 보이고,
어떤 소리가 많이 들리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평가해 보세요.
여러분의 상태에 따라 보이는 것/들리는 것이 달라집니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많습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주변의 친구들이 달라집니다.
이유가 있어서 만나게 되고, 만나다 보면 영향을 주고받고
영향을 주고 받다보면 얽히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좋은 사람과 만나고, 좋은 사람과 얽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빛 되고 소금되어야 한다’는 말은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뜻인데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좋다. 멋지다. 잘된다.
좋습니다. 멋있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아멘.
3월에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쁨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고,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바울이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세운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행 16:11~40)
그래서인지 빌립보 교인들은 처음부터
바울의 사역에 동참한 신실한 동역자들 이었습니다.(빌1:5)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고 하며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이 남기고 싶었던 특별한 말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4:4) 였습니다.

수년에 걸친 수많은 전도여행을 했지만 …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내다 버리는 고난도 당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곳도 감옥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바울은 기뻐할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목숨 걸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했지만,
그는 멸시 당하고, 매 맞고,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권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지만,
- 자신을 보고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동역자들이 생긴 것이 기뻤습니다. (빌1:13~14)
-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선교의 동역자로 열매 맺은
빌립보 교회 때문에 기뻤습니다. (빌1:4~5)

물론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는 누구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라도 사람을 계속 기쁘게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환경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좋은 환경이 계속된다하더라도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환경이나 조건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이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새 옷을 사고 난 후의 기쁨이 며칠이나 가나요?
맛있는 것, 먹는(은) 기쁨은 얼마나 갑니까?
멋있는데 갔던 기쁨, 가는 기쁨, 얼마나 지속되던가요?
잠시 기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허락된 기쁨의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광풍이 몰아치고 악조건의 괴로움이 다가와도,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은 기쁨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
섬기며 순종하는 기쁨, 복음을 전하는 기쁨,
허락하신 가정/일터/교회/나라에서 사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사람,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물론 원망하는 사람은 누릴 수 없는 기쁨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한 기쁨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평안 할 때, 인생의 풍파가 없을 때만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란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변함없이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에 어느 금실 좋은 중년부부가 살았습니다.
아내의 시력이 나빠져서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좌절했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기능적인 일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매일 같이 아내를 직장으로 출근시켜 주고,
퇴근 시간에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서로의 직장이 너무 떨어져 있으니
내일부터 혼자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그런 말을 들은 아내는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아내는 남편 없이도 혼자 잘 해낼 수 있다고 마음을 먹고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부딪히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설움에 북받쳐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도 잘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가던 중에 운전기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함께 타고 아주머니께서 직장 건물에 들어가실 때까지 지켜보다
손을 흔들어 주신다는 거 … 여태 모르셨죠?”
<강준민,『성품 속에 담긴 축복의 법칙』에서 인용>

부인은 혼자서 직장에 다닐 때,
넘어지고 자빠져 눈물 흘리고 자기 혼자 다닌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배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2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내의 곁을 지켰던 것입니다.
혼자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넘어져도 그냥 두고, 부딪혀도 그냥 두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 사랑 아닙니까?

여러분 중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
아직도 모르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넘어지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우리를 이 세상에서 믿음 안에 굳게 살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는 하나님을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려는 절개를 지키다가 풀무불에 던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옆에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술로, 친구로, 돈으로 … 세상적인 것으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에든지/언제든지 무엇을 하든지/누구 앞에서나 …
주 안에서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 있어야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가 주께 하듯 해야 열정으로 일하게 됩니다.

- 아버지들 - 일, 주안에서 기쁨으로 열정으로 하세요.
- 어머니들 - 밥, 〃
- 학생들 - 공부, 〃
- 직장에서도 - 주안에서 일하세요. 주께 하듯 하세요.
- 교회에서도 - 주안에서 기쁨으로 열정으로 하세요.
모두가 그래야 합니다.
교사/안내/방송/찬양/주방에서 밥을 하든지 …,
집사/권사/장로 … 모두 주님께 하듯 하시기 바랍니다.
설교하는 목사인 저도 기쁨으로 일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설교하러 나오면서 ‘미치겠다. 가수도 한 곡이면 석 달은 부르는데
매주 신곡을 어떻게 내나’하는 마음으로 강단에 섰다고 하면
이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겠습니까?

저는‘목사도 열정으로 힘 있게,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기도를 해도, 설교를 해도 … 열정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그래서 잘 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잘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회를 위해서 ….
여러분도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서, 열정을 다해 하시기 바랍니다.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관용”(寬:너그러울 관, 容:얼굴 용, 몸가짐-Gentleness)이란
영어의 Gentleman 이라는 말은
양복을 단정히 입고, 넥타이 매고,
구두도 반짝 반짝 윤이 나게 차려 입는다고 해서 젠틀맨이 아닙니다.
‘젠틀맨’이라는 말은 넓은 마음으로 아량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셨다고 말했습니다.(롬10:22)
하나님께서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심판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 같이
오늘도 기다리시고 지켜봐 주시는 그 은혜가 관용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은 관용하는 것입니다.
봐 주는 것, 너그럽게 인정하고 아량을 베푸는 것입니다.
분열이 있고 싸움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생각 할 때마다 혈압이 오르고 분노가 치솟습니다.
결국 용서하지 못하면 자기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너그럽게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용을 베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 아내에게
부모에게 / 자식에게
상관에게 / 부하에게
친구에게 … 계속 너그럽고, 계속 이해하고,
계속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가 이해하고 너그럽게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붙여 주었습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입니다.(5절)
조금만 더 인내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데 …
주님의 날이 다가오는데 … 이제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이 있으십니까?
매주 신앙 고백하는 사도신경 중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 되어
언제 주님이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실지 …
우리는 그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만나는 사람도 내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인천공항에 가면 끌어안고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어린 손자가 공항을 떠나기 전에 끌어안고
‘또 볼 수 있을까?’하면서 우십니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안타까워서 우는 것입니다.

오늘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면이 마지막이라면
계속 미워하고 싸울 수 있겠습니까?

- 가정에서 부부간에/부모 자식 간에/형제간에 …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라고 생각한다면 …
그렇게 싸우고 미워하고 막 대할 수 있을까요?
- 혹시 교회에서도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헤어지면 훗날 천국에서나 만날 거라면 … 어떻게 하실는지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
모두를 긍휼히 여기고(불쌍히 여기고) 관용하며 손잡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관용해야 기뻐할 수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기뻐하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또 다른 비결은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기쁨을 빼앗는 원인은 “염려”와 “불평”입니다.
염려는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불평하게 만듭니다.
평안을 빼앗아갑니다. 감사를 잊게 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우리가 염려하는 96%는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 중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26%,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도 우리가 염려한다고 변화되거나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고 말씀하셨습니다.

맡기면 내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몸은 입으로 말한 것을 명령으로 알고 따른다고 합니다.
‘ ~ 될 것이다 하면 된다. ~ 안될 것이다 하면 안된다.’
-“안된다”고 하면 안된다는 명령을 받은 몸이 안되는 쪽으로 끌어간다는 것입니다.
- “된다”하면 된다는 명령을 받은 몸이 되는 쪽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 지난주에도 소개해 드린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1842~1910)
“행동이 감정을 따르는 것 같지만 행동과 감정은 병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조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쾌하지 않아도 유쾌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면 실제로 유쾌해집니다.
(데일 카네기 지음 / 이영권 엮음, 카네기 인간관계에서 인용)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과 사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광풍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불어오고, 우리를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평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관용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학교, 일터에서
언어와 표정과 살아가는 모습으로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태도가 예수 믿는 사람 같아야 합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사는 사람답게
분노하지 말고/염려하지 말고 …
모든 사람을 관용으로 이해하며 자기 자신, 가족, 친척, 이웃 … 성도들 간에
좋은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부활절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지내는 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울상을 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나를 위해 길 되시려고 세상에 오신 주님을 기억하며/감사하며 …
주 안에서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정하고 “이렇게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일해야 하는 것, 일할 거리가 있는 것,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는 것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뉴질랜드에는 ‘키위’라는 새가 있습니다.
부리가 긴 이 새는 앞을 보지 못하고 날지도 못합니다.
키위는 살고 있는 곳이 화산지대여서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해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날개와 눈의 기능이 퇴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육체의 근육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되고,
재능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30세가 넘으면 밥 먹는 근육과
수다 떨고 잔소리하는 근육만 남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듯이 사람도 편안하기만 하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인생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달리지 않는 자전거는 넘어지듯이
달려가지 않는 인생은 넘어지고 맙니다.
<국민일보 2008. 2. 28. 겨자씨 참조>

우리는 힘이 들고 어려워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믿음의 순례자임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감사하며 참아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참으라는 것입니다.
잘 들으세요. 참아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참으라는 것이고,
용서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말은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도저히 그냥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짐이요,
내게 주신 일이요, 내게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한다면
주님을 대하듯, 주께 하듯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늘 기뻐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감사하며 사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감당하며 살아야 되는 일을 맡겨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삽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뽑습니다.
그러나 참아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견뎌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배려하며 살아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관용하며 기쁘게 살고
염려를 맡기고 살라고 하신 줄 믿습니다.
관용하며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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