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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훈련) (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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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훈련) (빌 2:5)

  우리 아이들이 저하고 많이 닮았나요? 전에 어떤 분이 제 아들 모세를 야단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모세를 야단치면 꼭 저를 야단치는 것 같다나요. 자녀는 부모를 닮게 되어 있듯이 믿는 자들은 영혼의 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마 5:48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합니다.

레 11:45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히 1:3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롬 8:29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아시고 선택하셔서 부르신 이유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엡 4:15에서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 21일째입니다. 우리는 40일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목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계획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해서 가족 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목적을 살펴봅니다. 세 번째 목적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은 훈련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1.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닮아야 합니까?

  지난 10여 년간 한국교회의 화두는 단연 ‘영성’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영성을 정의했습니다. 저는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을 닮는 것인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의 인격을 닮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능력을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은 능력보다 인격을 더 우선합니다. 고전 13:2에 보면 예언의 능력이 있어 모든 숨겨진 비밀도 알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훤히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어서 놀라운 일들을 행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언과 산을 옮기는 기적 등은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품 즉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격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나도 내 성품이 주님을 닮지 못했다면 슬퍼해야 합니다. 비록 내게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주님의 인격을 닮았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 능력을 갖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소유하는 일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력을 소유하면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맨손으로 땅을 파는 것보다 삽으로 땅을 파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삽으로 땅을 파는 것보다는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하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능력을 닮으십시오.

  주님의 능력을 우리가 소유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영적인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들과 영적인 전쟁 중에 있습니다. 이 싸움은 육신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미군이 전쟁을 잘하는 이유는 미군들이 용맹하거나 싸움을 잘하는 특별한 기술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이 돈이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전쟁에 승리하려면 영적인 무기와 같은 영적인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전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 복음이 증거 되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 세계비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비전은 각자의 사명과 소명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사업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어떤 사람의 꿈은 법률가가 되는 것이고,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고, 의료인이 되는 것이고, 선생님이 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목회자 또 디자이너, 건축설계사, 동시통역사 등등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비전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비전이 주님의 비전 즉 세계비전과 일치되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비전입니다. 왜 사업을 하느냐? 재정으로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법률가가 되고, 왜 의료인이 되고, 왜 운동선수, 선생님, 목회자, 건축설계사 등이 되어야 합니까? 그 직업을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2. 어떻게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위대하신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유전인자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닮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생아를 보고나서는 “엄마(혹은 아빠)를 참 많이 닮았네요”라고 말합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기가 엄마나 아빠를 닮은 것을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듭니다. 왜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를 닮을까요? 그 아이 속에 엄마와 아빠의 유전인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아버지를 닮은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이 닮은 것을 보면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유전인자가 숨어 있습니다. 창 1:27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므로 시작되는 것입니다(요 1:12). 그런데 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했습니다(히 1:3).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신 주님을 마음에 영접했으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유전인자가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므로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다.
  닮은 부부들을 보면 우리 부부처럼 처음부터 닮은 부부도 있겠으나 대부분 처음에는 닮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니 닮게 된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환경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닮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날마다 만나고 날마다 동행하고 날마다 교제하기 때문에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할수록 주님을 더 많이 닮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녀도 주님과 개인적인 교제가 없는 사람은 주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프로그램 된 훈련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군대에 입대하면 바로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지 않습니다. 오합지졸과 같은 대기병들을 훈련소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4주간 훈련을 시킵니다. 그 훈련을 통해서 이등병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등병 가운데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보직에 배치하려면 또 다시 몇 주간 동안 보직에 맞는 훈련을 시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훈련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주님을 닮아가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닌 이유는 바로 이 훈련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어떻게 훈련하십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당하는 모든 훈련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는데 있습니다.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훈련입니다.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율법학교 학생이 스승에게 와서 스스로 랍비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스승은 “그 자격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저는 제 몸을 단련해서 맨 땅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고, 들판의 풀을 먹을 수 있으며, 날마다 채찍으로 세 번씩 제 몸을 때리며 훈련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귀를 보아라. 저 나귀는 맨땅 위에서 자며, 들판의 풀을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으로 맞는다. 지금까지 너는 나귀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지 랍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무슨 도구를 사용하셔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실까요?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십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과 비전을 닮아가는 일에 있어서 전적인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인격 즉 성품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 가운데 은사가 나타나는데 은사는 곧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비전을 닮는 것 역시 성령의 역사입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하시고 그 비전을 추구하므로 모든 민족에게 증인의 사명을 다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가는 길을 보여주는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인천 옥련동에 있는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옥련동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가본 동네입니다. 저는 처음 가본 동네였지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차에 있는 네비게이션이 저를 인도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대했던 대로 네비게이션은 저를 옥련동으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네비게이션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하는지 영적인 길을 정확하게 제시해줍니다. 읽고, 듣고, 믿고, 묵상하고, 고백하고, 암송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십시오. 말씀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은 죽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있는 여러분이 살아 있기에 오늘 그 옷들이 이 장소에 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그 말씀의 능력은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옷을 교회로 이끌어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주님을 닮도록 주님에게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갈 4:16에 보면 사도 바울의 해산하는 수고를 통해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의 사역을 통해서 성도들을 훈련하시고 그 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엡 4:11-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을 세우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인데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훈련소에 들어가면 훈련병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조교가 있습니다. 훈련병들이 조교의 가르침대로 따르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목회자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십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마치 조각가의 손에 들린 조각도와 같습니다. 조각가가 꿈꾸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조각가는 조각도를 가지고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하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변에 조각도와 같은 사람들을 세우셔서 내게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하시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어떤 부분을 훈련시키시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내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인내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만 상대가 가능한 사람들을 붙이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붙이셔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면에서 모델이 될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 주변에 두신 것은 우리에게 그들을 보고 배우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실 때 친히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모범을 보여주신 이유는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하늘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렇지만 제자인 우리들을 훈련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 주변에 모범적인 조교와 같은 사람들을 세워두신 것입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보면 먼저 조교가 시범을 보입니다. 그리고 조교가 보인 시범대로 훈련생들이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는 사람들은 우리가 따라야할 모범을 보이므로 우리를 훈련하는 조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실패자들은 비난을 위해서 세워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경각심을 갖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세워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의 모범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실패와 허물과 수치스러운 모습까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우리는 실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십니다.

  아비 독수리는 높은 곳에 만들어진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때가 되면 새끼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합니다. 독수리는 먼저 가시를 물어와 보금자리에 넣고 그 위에서 날개를 너풀거립니다. 가시에 찔린 새끼 독수리들은 자리를 어지럽히고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아비 독수리를 따라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봅니다. 그러나 날개에 힘이 없기 때문에 여지없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아비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날개 위에 얹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아기 독수리는 하늘을 날 수 있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아비 독수리가 꿈꿨던 대로 아기 독수리는 창공을 날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때로는 가시 같은 환경으로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광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내를 훈련하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한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우리를 몰아넣으시고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받아서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우리가 가진 것을 잠깐 동안 가지고 가시기도 합니다.

  훈련이 강할수록 강한 군인이 나옵니다. 이등병이 되는 훈련보다 하사관이 되는 훈련이 강합니다. 하사관이 되는 훈련보다는 장교가 되는 훈련이 더 강한 것입니다. 강한 부대는 강한 훈련을 하는 부대입니다. 해병대나 공수부대는 일반 보병부대보다 강한 훈련을 시키기에 더 강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이 없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훈련을 잘 이기고 빨리 통과하려면 고난을 훈련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기 원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십시오. 훈련은 훈련의 목적이 달성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환경을 통해서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으로만 훈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을 주셔서 그 환경을 바로 이용할 수 있는 훈련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을 잘 통과하면 더 좋은 환경을 주시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로 설명합시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주고 타국으로 갑니다. 종들은 그 달란트를 바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올 때 받은 것만이 아니라 받은 달란트를 사용해서 더 벌어드린 달란트까지 내놓습니다. 주인은 적은 것에 충성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맡깁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준 달란트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주어진 좋은 환경을 바로 이용하는지 테스트를 하고 또한 더 좋은 환경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환경을 누리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그 환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시고 환경을 바르게 이용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도구로 이용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좋은 환경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훈련하십니다.

  마귀는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시험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를 통해서 계속된 시험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시험들을 잘 이기게 하시고 결국은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험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광야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수많은 환경적인 시험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시험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마귀는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잘 통과하게 하셔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시는 분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시험이나 종살이 옥살이의 시험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시험들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셨고 히브리민족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비결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시험이 오거든 관심을 다른 것에 집중하십시오. 사단은 생각을 통해서 사람 속에 자기가 들어갈 통로를 확보하려고 합니다. 요 13:2에 보면 마귀가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이 때 가룟유다가 그 생각을 받아드리지 않고 물리쳤다면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비국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련하게 마귀가 준 생각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그 결과 요 13:27에 보면 마귀가 가룟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하게 되면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오든지 내가 그것에게로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이 찾아오거든 생각을 다른 것에 집중하십시오.

  마귀가 주는 시험을 혼자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지 이길 수 없는 시험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믿음의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가족들이나 교우들 가운데 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받으십시오. 나에게 지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받으십시오. 나를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격려를 받으십시오.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승리하십시오.

  악에 대항하십시오. 악의 힘에 떠밀려 악에 빠지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나를 구덩이에 밀어뜨리려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밀려서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까? 그렇지 않죠. 상대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의 시험에 대항하십시오. 그가 나를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힘을 쓰십시오.

  자신의 약점을 깨닫고 대처하십시오. 족구 시합을 할 때 보면 상대 선수 중에 가장 약한 선수가 있는 곳을 ‘구멍’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실력이 상대보다 월등할 때는 구멍이든지 구멍이 아니든지 가리지 않고 공격을 합니다. 그런데 실력이 비슷할 때는 집중적으로 구멍에 공격을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구멍이 어디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항상 그 구멍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든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 넘어진 일로 또 넘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복싱선수가 시합하는 것을 보십시오. 복부가 약한 사람은 철저하게 복부를 보호합니다. 턱이 약한 사람은 철저하게 턱을 보호합니다. 반대로 상대는 복부가 약한 사람의 복부를 집중 공격합니다. 상대가 턱이 약하면 상대의 턱을 집중 공격합니다. 영적인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나의 약한 부분을 알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 부분을 공격합니다. 우리는 나의약한 부분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정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원하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훈련이라는 차원으로 바라보고 대응하십시오. 범사를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시고 주님처럼 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잘 훈련 받으셔서 주님을 더욱 닮은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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