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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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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4:9~12)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서신의 내용을 보면 앞부분은 교리적인 문제를 이야기 했고, 뒷부분은 윤리적인 문제를 이야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믿어야 된다’는 신앙적인 교훈을 먼저 말해 주었고, 나중에는 ‘이렇게 살아라’는 생활의 교훈을 말해 주었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그 사람이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과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열매는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열매가 있으며, 그 열매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만큼 형제를 사랑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얼마나 형제를 사랑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는 ‘형제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일서 3:10을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알려면, 형제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는지 불의한 짓을 하지 않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가인의 행동을 보면, 그가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3:14~15을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요 필수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고 말씀하셨습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9~10에서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라고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믿음을 사랑으로 보여주는, 믿음이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있는 교회였으니, 얼마나 좋은 교회였을까요!

성령 충만했던 예루살렘 교회도 성령의 열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사도행전 4:32~35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고 했습니다. 부부사이에도 재물을 나누어 쓰는 것이 어려운데, 교회 안에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다는 것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처럼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였지만, 이런 사랑이 많은 교회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왔다는 생각들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니,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재림하신다고 하는데, 일하고 돈 버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일도 그만두고,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빨리 오셨으면 되는데, 예수님?! ? 오시지 않고 세월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진 재산을 다 써버리고 나니,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잃어 돈이 없는 사람들이 이 집 저 집 다니며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렇게 일하지 않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다보니 아무리 사랑이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얼마나 큰 부담을 가졌겠습니까! 재산을 나누어 주는 사람은 주는 기쁨이 있어 좋습니다. 그러나 받기만 하는 사람은 거지근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주고받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점점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사랑을 주지 못하면, 누구에게나 부담을 주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자기가 받고자 하는 사랑을 누군가가 대신 충족시켜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사랑을 충족시켜 줄 사람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사랑을 충족 시켜주지 못하니까,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받기 보다는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 밤낮 주면서 사는 사람은 손해 보는 것 같고,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풀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누가복음 6:38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누어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몇 배로 안겨 주겠다고 예수님은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1. 조용히 자기의 일을 하라.

사도 바울은 또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본문 11절)』

일하는 사람은 대게 말이 많고 자기 자랑을 많이 합니다.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했다’고 나팔을 불고 다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4)』

성도 여러분, 조용히 일하십시오! 은밀하게 일하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떠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 아시면 됩니다.


2. 조용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

데살로니가 3:12절에 보면, 『조용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은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애써 모은 양식을 얻어먹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내가 먹을 양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탈무드를 읽어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녀에게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여 그 댓가로 먹고 사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일해서 돈을 벌지 못하면, 자연히 남이 일해서 번 것을 얻어먹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불한당이요 도둑놈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10절을 보면,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자기의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1947년 미국 시카코 근교에 있는 천체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시카코 대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고급 물리학에 대한 특별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 뒤 몇 주 뒤에 학교에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등록한 학생이 두 명뿐이어서 강의를 취소해야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는 학생 수가 적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등록한 두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를 묻고는 강의를 수락했습니다. 시카코의 겨울은 무척이나 춥습니다. 그런데도 첸드리스카 박사는 2시간 이상 떨어진 시카코 대학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학교로 가서 두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들었던 두 사람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첸넝 양 박사이고,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 미국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우리 두 사람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단 두 명의 학생밖! 에는 없었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아름다운 결실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할 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살전 2:9)』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아무도 생활 대책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막치는 일을 손수했습니다. 예수님도 30세까지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잠언 31:19을 보면, 현숙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부잣집 여인입니다. 그렇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아니하고 한밤중에도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일을 했습니다.

어느 마을에 구두를 수선하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지만, 진실하고 성실했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환하게 웃으며, 정성껏 구두를 수선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번에는 구둣가게를 냈습니다.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서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노인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제는 연세도 많으시고 돈도 많으셔서 일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구두를 만들면 될 텐데, 왜 힘들게 직접 일을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부자가 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내일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을 뿐입니다.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은 내가 만든 구두를 신으려고 온 분들입니다. 그러니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난 이 일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하기에 힘써야만 남에게 짐이 되지 아니하고 사랑을 베풀면서 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8을 보면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써야 할 이유’가 오늘 본문 1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일도 하지 아니하고 밤낮 게으름을 피우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덕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게을러서 가난하게 산다면 전도길이 막힙니다.

왜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불신자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 전서 10:31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믿지 않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일을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일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3:22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일 하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도움을 주며 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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