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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그릇 같은 인생 (고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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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같은 인생 (고후 4:7~11)

오늘은 질그릇 같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은 참되시고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는 믿음을 가지는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될 때, 믿음으로 모든 세계를 바라볼 때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으신 세계를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두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려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책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내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인간이 누구인가를 깨우쳐 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믿음을 얻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나아가 나를 알게 됩니다.
나를 모르고 어떻게 살아갑니까?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인간답게, 가장 탁월한 피조물인 인간답게 살려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영적 피조물임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하는 존재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지으심을 받은 영적인 피조물이고, 우리는 마땅히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못하고, 잘못되게 사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못하는 영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을 과대평가합니다. 이만한 칩속에 백과사전 수백권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보여줍니다. 인간을 신과같은 존재로 높여줍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또 어떤 부류는 동물이 진화해서 자연적으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짐승의 수준으로 깍아내리는 부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과대평가해서도 안되고, 과소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사도는 자신을 질그룻에 비유합니다.

나는 질그릇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 질그릇같은 내가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써 내가 너무나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질그릇같은 존재임을 믿음으로 깨달음으로 자신이 정말 훌륭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본래 목적대로 살아가는 복된 사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써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내 자신이 질그릇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릏구나, 내가 질그릇같은 존재이구나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질그릇같다는 것은 뭘 뜻합니까? 질그릇은 가장 사구려 그릇입니다. 그냥 막 만들어서 가난한 집에서 사용하는 겁니다. 사용하다 깨지면 그냥 버립니다. 우리 인간을 이런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아담이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을 때 다이아몬드로 짖지 않았습니다. 금으로 짖지 않았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흙으로 지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흙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살아가다가 마침내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지어다.”

여러분이 앞으로 죽으면 흙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64:8에 “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진흙같은 우리를 빚으사 우리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진흙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땅의 성분과 일치합니다. 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천마총에 오래전에 가 보았습니다. 왕의 무덤이라고 해서 발굴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관람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왕의 흔적이 어디 있나 싶어서 열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뼈다귀 하나 없더라구요. 천년의 세월동안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더라구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왕이 누웠던 자리는 까무잡잡해요. 주변보다는 조금 더 진해요. 시체가 섞어서 흡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우리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4-5달러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다 중고품입니다. 신품은 없어요. 간난애기가 신품이지요. 다 사십년, 오십년 중고품입니다. 좋게 보이려고 꾸며도 얼마 안있으면 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자신이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은 참으로 보잘것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왜 질그릇에 비유했을까요? 첫째는 흙으로 지어졌기 대문이요, 둘째는 죄로 말미암아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질그릇같이 무가치한 존재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셋짼째는 우리 인간은 질그릇같이 너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툭 바치면 깨집니다. 어떤 분이 길을 가다 넘어졌는데 디스크가 툭 빠져버렸습니다.

여러분 운동할 때 힘을 빼세요. 스키탈 때 제일 먼제 배우는게 뭔지 아세요. 넘어지는 겁니다. 잘 넘어지면 안 다칩니다. 안넘어지려고하니까 다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은 감기 독감에만 걸려도 열흘, 스무날 꼼짝을 못합니다. 자신이 머리가 좋고, 돈을 억만금 가지고있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
말한마디만 들어도 상처가 납니다. 그 말 때문에 잠을 못자는게 인생입니다. 이렇게 큰 소리쳐도 연약한 인생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인생을 질그릇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질그릇같이 보잘것없은 존재임을 깨닫게 됨으로 귀하게 쓰임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헬라철학을 배웠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철학을 마스터했고, 나는 바리새인이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라고 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나 무가치한 자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겸손하게 낮아졌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귀한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자신이 질그릇같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언제 변화되느냐? 내가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교회를 다녀서 십년만에 깨닫는 사람이 있고, 이십년만에 깨닫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을 깨닫기 전에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성경은 많이 들어있고, 지식은 있지만 내 자신이 정녕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겸손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지는 않는 겁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내가 정녕 질그릇임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되고, 주님을 붙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을 믿으기 바랍니다.

시편 39:4에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성군 다윗과 같은 기도입니다. 따라합니다.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내가 질그릇같은 존재임을 알게 해 달라는 겁니다.

다윗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왕좌에 앉아있지만 내가 질그릇같은 존재임을 잊지않게 하옵소서. 여러분이 어떤 권세를 가졌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질그릇같은 모습을 알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졌습니까? 재력가가 되었습니까? 자신의 질그릇됨을 잊어버린다면 실패의 자리로 떨어집니다. 머리가 탁월합니까? 그 탁월함 때문에 내가 질그릇됨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벼랑끝으로 떨어집니다. 잘못된 인생으로 가게 됩니다. 마귀는 이 시간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를 통하여 우리를 포장하여 우리가 질그릇인 것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인생이 잘못됩니다. 내가 질그릇됨을 잊어버릴 때, 돈 좀 있다고, 권세 있다고, 명예를 가졌다고, 학벌을 가졌다고, 나의 질그릇됨을, 내 속에 있는 질그릇을 보지못하여 교만해지면 그 때부터 하나님은 그 사람을 물리치십니다.

그러나 자기자신이 질그릇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을 늘 믿음으로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잘 되고, 높아져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이루어도 “나는 질그릇입니다”라고 합니다. 오늘 내가 이와같이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높이 들어서 지도해주시고, 그 길을 인도해주시고, 복된 길로 나아가도록 형통의 문을 열어주실 믿습니다. 내 자신이 질그릇됨을 알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의 신령한 눈이 열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질그릇 됨을, 왕이 되어도 나는 질그릇입니다. 대 재벌이 되어도 나는 질그릇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인간이 비록 질그릇같이 연약하고 무지하고 무가치하지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가 들어갈 때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 말미암아 너무나 존귀하고 훌륭하고 보배로운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질그릇같이 연약하기짝이 없는 존재였으나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상상도 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성취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8-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여러분 이 네가지 말이 너무나 중요한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감격해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질그릇 가운데서도 못난 질그릇인데 어떻게 나와 같은 사람이 그 엄청난 핍박과 환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도 많지만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질그릇같은데 왜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팝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았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질그릇같은 내가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바울이 깨달으니까 내 속에 보배로운 예수님이 계셔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고 끝까지 살아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승리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겁니다.

바울이 당한 핍박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말하고 있는데 어마어마한 일을 당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1:23-27절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여러분, 이 짧은 글로 표현해서 그렇지 당하는 바울에게는 너무나 너무나 상상도 못하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그릇같은 내가 이겨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내 속에 누가 계셔서...바울이 깨닫고 보니까 내 속에 보배로운 그리스도가 계셔서 이 모든 어려움들을 승리하게 된 줄 믿습니다.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나같이 연약한 질그릇을 하나님이 왜 쓰셨는가? 내가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인줄 믿습니다. 저렇게 약하디 약한 사람이 어떻게 그 일을 했지? 누가 그 일을 하게 했지? 바울을 보니까 바울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는구나!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배를 주셔서 바울을 사용해 주셨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7절 이후에 보면 고난을 이겨낸 후에 고백하기를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합니다. 따라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엄청난 죽음과 감옥과 매와 강과 모든 위험속에 그걸 이겨냈어요. 이겨낸 바울이 말하기를 그렇지만 내가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가 자랑한다면 나의 약한 것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건 누구를 자랑한다는 겁니까? 질그릇같은 나에게 역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그분 때문에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예수님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바울과같은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약한 것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어요. 질그릇같은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역사해주셔서 이렇게 귀한 일들을 이루게 하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도 보배로운 그리스도께서 내속에 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도 바울처럼 존귀한 존재로 쓰임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은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말라. 가문이 약하고, 배움이 부족하고, 가진것이 없다고 절대로 의기소침해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무디를 보세요. 초등학교도 못나왔습니다. 구두수선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그 속에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함께 하니까 일백만명 이상을 구령하는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김익두 잘 아시지요? 그 사람은 일제시대때 황해도 안악에서 소문난 불량배였습니다. 16살 때 과거에 실패하고, 17살 때 장사에서 실패하고 난 후 허구한 날 술마시고 노름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힘이 굉장했습니다. 손이 솥뚜껑만했습니다. 한방치면 사람들이 뻑뻑 나가 떨어졌습니다. 김익두 나타났다고 하면 모든 상인들이 벌벌떨고, 그 사람이 술집에서 술 마시면 그냥 끝나는 겁니다. 돈 달라고 어디 말합니까?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장난에 소팔고 뭐 팔러나가는 사람이 서낭당을 지나면서 돌을 얹고 침을 밷으며 오늘 김익두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렇게 못난 질그릇인 김익두가 그 속에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담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은 신학교에 갔어요. 목사가 되었고요, 유명한 부흥사가 되어 일생동안 776번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가 안수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는 등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처럼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귀머거리가 귀가 열렸습니다. 김익두라는 분이 예수의 보배를 가졌을 때 불량배요, 쓸모없는 사람이요, 온 백성에게 두려움을 주고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속에도 예수의 영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보배를 소유하게 되면 여러분도 그와같이 변화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를 믿어도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으로 고백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어도 내가 내안에 살아있고 예수님이 살아있지 않으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가,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버리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살아계실 때 우리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되어서, 비록 볼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우리는 약할 그 때에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붙드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병들었을 때 은혜가 되지 않아요? 왜냐? 약함을 아니까. 내가 강한 줄 알았는데 병드니까 내가 질그릇인줄 알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붙드는 거예요. 기도를 해도 진정한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오 내가 질그릇 이구나! 남들이 안가진 것 가졌습니까? 뭔가 잘되는 것같습니까? 절대로 잊지 마세요. 오 주여 나는 질그릇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남은 생애 가장 아름답게 쓰임받고, 바울같이 복된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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