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딤후 1:7~14)

  • 잡초 잡초
  • 662
  • 0

첨부 1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딤후 1:7~14)

할렐루야!
오늘도 주안에서 평안한 날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Nazi, 독일 국가 사회 당원)는
유대인들을 멸시하고 구분하기 위해서
‘다윗의 별’이라는 노란별을 가슴에 달고 다니게 했습니다.

다윗의 별: 정삼각형 2개를 겹쳐서
꼭지점 6개의 별 모양으로 만든 유대인들의 상징입니다.
‘다윗 왕의 방패’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Magen David에서 비롯되었으며,
솔로몬왕 때부터 유대 왕의 문장으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여섯 모와 중심을 합한 일곱 개의 면은
유대인이 완전수로 여기는 숫자 ‘7’을 의미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국기에 조상의 얼을 기리기 위해서 그려져 있습니다.

노란색 별: 동양에서 노란색은 왕실을 뜻하는 고귀한 색이지만
서양에서는 천박하고 멸시받는 자의 색입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멸시하고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하여
노란색의 다윗의 별을 달게 하였습니다.

만약에 유대인인 것을 감추기 위해 별을 달지 않으면 큰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은 나치가 두려워서 노란별을 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모두 그 별을 달고 다녔습니다.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별을 달아주면서
“너는 자랑스런 유대인임을 잊지 말아라”고 했답니다.

우리는 어떤 표시를 내고 삽니까?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군인/경찰을 보면 군인인지, 경찰 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간호사는 간호사인지 압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압니까?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흔적을 보여 주느냐 말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 예수 냄새가 난다고 합니까?
아니면 교회 다니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너도 교회 다녀?’하면서 놀라지는 않습니까?
옆의 분들을 한번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 같은가?
옆의 분들과 인사합니다. “예수님 냄새가 납니다.”, “예수 믿는 분이시군요.”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드러내야 합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최춘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큰 부자로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애국자였습니다.
일본의 명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수재였고,
5남매를 목사와 교수로 길러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돈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며 끝까지 고사했던 분이시기도 합니다.
화려하고 박수 받을 만한 이력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할아버지는 통일되는 그 날까지
신발을 신지 않겠다며 맨발로 복음을 외친 길거리 전도자였습니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누추한 옷차림에 제대로 된 전도지 하나 없이,
신문지와 광고지에 손수 성경말씀을 적어 행인들에게 나눠주며 전도했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습니다. 미친 사람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역사에서 쫓겨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천국 복음, 구원의 진리를 계속 전하다 가셨습니다.

요즘은 길거리 전도자들을
잘못된 신앙을 가진 열성분자로 평가한 언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예전처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하는 전도를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안 좋은 눈으로 바라보니 참 안타깝습니다.
심지어 전도자들을 보면, 크리스천인 자신이 부끄러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들으십시오. 자기가 못한다고/안한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길거리 전도자로 유명한‘아트 윌리암스(Art Williams)’는
뉴욕에 있는 타임스퀘어(Time Square) 광장에서
10년 간 매일 밤 9시부터 10시까지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전도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특이했습니다.
어떤 때는 소리 지르고, 어떤 때는 지나가던 사람과 대화하고,
어떤 때는 의자에 앉아 사람들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라는 잡지회사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똑같이 떠들고
대화하며 전도하는데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라고 했더니
‘내가 당신이 전도하는 소리를 듣고 잃었던 내 믿음을 찾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수도 없었고,
‘내가 믿지 않았지만 당신이 전도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람들을 1000명 이상 수첩에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길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복음 전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조금 전 성경을 높이 들고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 되고,
천국백성 되었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이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 교회에서 성경 들고 고백하는 것이 좋다고
“어떻게 하냐고, 내용은 무엇이냐”고 묻는 목사님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믿음, 고백하지 않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학교에서 입으로 행동으로
자랑스럽게 드러내는/표현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당부의 서신입니다.
자신의 사역을 이어 복음 전도자로 살아가야 할
디모데에게 유언처럼 남긴 글입니다.

바울은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딤후1:7)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어린 나이에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병약해서 늘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딤전 5:23)

앞으로 복음을 전하다 언제 자신도 바울처럼
매 맞고, 갇히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때는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이 득실대는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디모데에게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며
하나님이 주신 것은 “능력, 사랑,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딤후1:7)
- 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힘을 말합니다.
- 사랑은 사역자가 가져야 할 마음이자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 절제하는 마음(self-discipline, NIV)은
스스로 자신을 훈련하여 타인이 온전해지도록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조절하고,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 절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난 원래 성질이 그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쳐야하고, 자기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데서나 성질부리고, 소리치고, 얼굴 빨개져서 들이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조절하고 훈련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분노가 일어나지만 참고, 화를 내고 싶지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일 맡겨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품으면
얼마든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은혜를 기억하며 담대하게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하나님 곁에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온전케 되었습니다(히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4)
-언제든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엡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8)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입니다(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맥스 루케이도, The Gift에서 인용>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8절을 보면, 바울은
“ …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가지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주를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나 세례요한과 같은 선지자 중에 하나로 보았습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보지 않았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은 예수님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디모데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디모데에게 담대함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크리스천인 것을 드러내며 담대하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어디에 가든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숨기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승려들이 가발을 쓰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좋은 일일까요?
예수 믿는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해야 될 일이 있다면
그것이 좋은 일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예수님을,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며 사십시오. 그것이 승리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울한 누명 때문이 압니다.
‘주를 위하여’복음을 전하다 갇힌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그 때문에 받는 어려움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을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가슴 아픈 일을 겪기도 합니다.
- 병들어 몸이 괴로운 분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서글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잘 보이던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요즘 약병을 보면 화가 납니다.
약병의 사용설명서는 왜 그렇게 작은 글씨로 되어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밟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주보의 글씨가 작다고 하는데
글씨가 작은 것은 꼭 안 봐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것입니다.
어쨌든 작은 글씨가 안 보이는 것이 화가 납니다.
예전에는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었었는데,
지금은 힘이 들어서 화가 나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마음의 고통입니다

- 사람에 대한 배신, 경제적인 문제 … 등 힘든 것은 많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가르치는 고난은 그런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면,
- 교회 출석하여 신앙생활 하지 않았더라면 …
겪지 않아도 되었을 고통, 어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은 헛된 수고가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에 “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롬8:17)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롬8:18)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은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이 포함 된 것입니다.
- 찬양대를 하겠다는 말 속에는 내가 찬양대원을 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감수하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와야 하고, 늦게 가야 하고,
연습하면서 때로는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뜻입니다.
- 교회학교 교사를 하겠다는 말 속에는 교사를 하면서 겪게 될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되는 것은
그 직분을 받는 것 때문에 겪을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뜻입니다.
장로가 되면 시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많은 부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부담을 내가 지겠습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교회 회장, 속회 강사,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하는 말 속에는
그것 때문에 받는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따르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지고 가야 할 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려면 불편함이 많습니다. 참을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을 전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비난을 해도,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끼치려 해도
모두에게 ‘주께 하듯이’사랑으로 대하십시오.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지 잘못된 관행을 따르지 말고
이익이 덜 남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 식당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재료비가 올라서 요즘 힘들 것입니다.
재료비가 올라가서 음식 값을 올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
못 올리더라도 좋은 재료를 쓰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파십시오.
그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저는 대전에 가면 꼭 들르는 식당이 있습니다.
대전 쪽에 부흥회를 가면 제가 꼭 그 식당에 가자고 합니다.
군산에 가도 꼭 들르는 식당이 있고,
미국 LA에 가도 꼭 들르는 식당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 집에서 밥 먹어야 기분이 좋고 속이 편합니다.
언제 가더라도 맛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미국 시카고에 가신다고 하기에 제가 아는 식당을 추천했습니다.
그 식당에서 주는 성냥은 노란색입니다.
그 식당이 얼마나 유명한지
그곳에서 밥 먹었다는 기념을 하라고 파는 기념품 코너가 있습니다.
왜 그런 식당을 우리 교인들은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 공장하시는 분들,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내놓으십시오.
오늘 취임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제게
“목사님, 제가 사업을 하는데 동전 한 닢도
뇌물을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려니 힘듭니다.
하지만 뇌물을 안주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감동 받았습니다.
잘못된 관행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살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공부하여 정직한 평가를 받으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사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놀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평가하실 순간이 다가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지내는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므로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의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에 가든지
우리가 사는 동안 주님이 다시 오시든지 어느 때인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되더라도 “잘 하였도다”칭찬받는 주인공 되시기 바랍니다.

본받아 니다.

13절에 보면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딤후1:13) 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지키고”는
그냥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본받아 지키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사나 죽으나 예수님 닮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빌3:17) 고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선언입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너희도 나처럼 예수님 본받는/닮는 삶을 살라고
우리도 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감히 “이렇게 살고 싶다”고 소망하고, “이렇게 살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 저도 가족에게/자식에게 <나 닮으라고, 아버지처럼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아니 제가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 저는 후배들에게/제자들에게 <나 닮아라, 나 같은 목사 되라.
나처럼 목회하라고 말할 수 있는 목사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 성도들에게 <나 닮으라는 말할 수 있는 삶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늘 부족함에 탄식하고 늘 부끄러움에 눈물 흘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찬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잘 부르지도 않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

<함께 찬양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기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그렇게 살순 없을까 !
하나님 연약한 저희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기를 소원하나 순간 순간 매일 매일 부끄럽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했던 말씀이
옛 날에 옛 날에 한 얘기로 지나지 않게 하시고
오늘 우리들 가슴에 이 말씀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