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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압으로 본 죄악의 속성 (사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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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으로 본 죄악의 속성 (사 15:1-9) 


이 시간 “모압으로 본 죄악의 속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상 노아시대와 소돔 고모라 이후 지금 이 시대만큼 타락하고 악한 시대는 없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문명만큼이나 세상의 죄악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모압족속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모압은 여러 면에서 죄악의 상징입니다. 

그럼, 모압을 통해서 본 죄악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전적 부패의 모습입니다. 

렘48:11에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렘 48:11) 했습니다. 

이처럼 모압은 전쟁에서 크게 패해본 적도 없고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되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런 안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바로 타락이었습니다. 즉 우상숭배와 교만과 이기심과 같은 악한 죄악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술에 비유합니다. 술을 빚어 오래두면 찌꺼기는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술만 고입니다. 맑은 술을 청주라고 하는데 이것을 따로 옮기지 않고 두면 보기에는 청주 같지만 저어보면 청주가 아니라 탁주라는 사실입니다. 모압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부강하고 찬란한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부패하고 타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계속된 평화 가운데 번영하다 보니 겉모습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다 잘 사는 것 같고, 다 잘 배운 것 같고, 다 말쑥하게 입고, 빌딩은 치솟고 자동차는 거리를 누비며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속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떠하며 이 사회의 윤리관은 어떠하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모압의 전적부패의 죄악이 침투하면 희망이 없다난 사실입니다. 

2. 인생을 저주하고 조롱하는 죄악의 모습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복술가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합니다. 또 조롱합니다. 렘48:27에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적 중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렘 48:27) 그들은 이스라엘을 도적 취급하면서 머리를 흔들며 저주했습니다. 스바냐서에도 “내가 모압의 훼방과 암몬 자손의 후욕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훼방하고 스스로 커서 그 경계를 침범하였느니라”(습 2:8) 했습니다. 

이것이 죄악의 모습입니다. 죄악처럼 인정머리 없는 것은 없습니다. 모압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압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롯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의 정 때문에 차마 버리고 못하고 데리고 나온 조카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잡혀갈 때 목숨 걸고 전쟁하면서 보호했고,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 간에 다툴 때도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양보했으며, 롯이 소돔성에서 멸망 가운데 있을 때도 간절한 기도로 살려냈으며, 이스라엘과 뗄 수 없는 친척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원수가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저주했습니다. 

이것이 죄악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죄악을 아무리 사모해도 죄악은 우리를 축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친척관계에 있어도 죄악은 인정도 사정도 없이 저주와 지옥으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죄악 전파에 앞장서도 칭찬하지 않습니다. 특히 롯의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듯 죄악은 대단히 부정하고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죄악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끝가지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영원한 원수입니다. 이런 철 천지 원수를 사람들은 무엇이 좋다고 그렇게 사모하고 환호하며 추종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한국의 문화 속에는 반(反) 기독교적 정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박멸하려는 사단의 조직적인 공작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타 종교의 상상할 수 없는 부패는 덮어두고 소수의 사람들을 문제 삼아 기독교만 공격합니다. 기독교 선교 100년이 넘도록 교회는 모든 재정을 회중의 결정에 따라 하고 있고, 매달 혹은 매 분기 재정을 회중 앞에 보고하며 교회처럼 투명한 곳도 없는데 세상은 모압처럼 도적 떼를 보듯이 교회를 질시하고 있습니다. 사이비나 되면 모를까 자기 사욕을 위해 맘대로 하는 교회가 몇 %나 되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사이비이지 정상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이 사회가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저주하던 죄악의 모압의 병이 크게 들었습니다. 

3. 교만할 대로 교만한 죄악의 속성입니다. 

사16:6에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렘48:29-30에도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했습니다. 모압은 교만하였습니다. 가장 악한 죄악이 교만 죄입니다.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타락의 척도를 보려면 교만지수를 보면 됩니다. 타락하면 타락할수록 교만지수가 높아갑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강조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어른들이 어디 가서 설 자리도 없습니다. 가장 인기 없는 사람들이 어른입니다. 어린 학생들도 선생님이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훈계를 해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경찰에 신고해 버립니다. 국민전체의 교만지수가 높아지면 국가는 패망의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모압의 멸망을 이사야 15장에서 봅니다. “황폐할 것이라. 울며 통곡할 것이라. 머리털을 밀고 수염을 깎게 될 것이라. 심히 애통하며 울 것이라. 그 혼이 속에서 떨 것이라. 도망하여 울 것이라. 패망을 부르짖을 것이라. 물이 마를 것이라. 청청한 것이 없을 것임이라. 재물을 가지고 도망갈 것이라. 부르짖을 것이라. 피가 가득할 것이라. 재앙을 더 내릴 것이라.” 

4. 하나님 자리에서 숭배를 받으려는 것이 죄악의 속성입니다. 

모압은 우상숭배가 심했습니다. 특히 모압은 ‘그모스’라는 우상은 유명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신을 달래기 위해서 맏아들을 태워 제사하는 백성들입니다(왕하3:27). 그래서 성경은 모압 족속을 ‘그모스의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그 결과 모압은 수치를 당합니다. 렘48:13에 “모압이 그모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로다” 

이처럼 사람들은 죄악의 정열에 자기를 불태우며 살아갑니다. 죄 지으면 지옥 가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나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자기 타는 줄 모르고 불가에서 놉니다. 하나님이 받을 영광을 세상이 받고, 하나님이 받을 사랑을 세상이 받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 바치는 사람은 적어도 세상을 위해 목숨 바치는 자는 많다는 말입니다. 이런 죄악이니 하나님께서 가만 두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죄악의 속성이 개인에게 퍼지면 희망이 없고 사회 국가 역시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루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하루 밤에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1절의 ‘모압 알’은 모압의 수도를, ‘모압 길’은 모압의 군사요새지를 가리키는데 다 함께 멸망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니므림 즉 오아시스도 마르고 풀이 시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축을 주로 한 그들에게 이 말은 경제적 멸망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압은 정치, 군사, 경제 모든 면에서의 멸망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모압은 결국 주전 580년에 바벨론에 의해 하룻밤 만에 멸망당했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나아가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죄악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루란 영적으로 성령의 날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개인이 희망이요, 나라의 희망이요, 인류의 희망입니다. 19세기 미국에 진화론이 팽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일으키셔서 미국을 성령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악을 멸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희망은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를 전파하고 성령 운동을 일으켜야하겠습니다. 전도하고 성령의 불을 던져 잠자는 신앙을 깨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죄악의 모든 속성을 다 무찌르고 각인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함께 신앙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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