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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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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시 3:1-8)

 
이제 6·25 전쟁은 잊히는 전쟁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년이 60주년입니다. 그때 태어난 아기가 이제는 환갑입니다. 30대 후반인 중고등부 전도사님께 장년 예배 설교를 한번 하라고 제가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살아오면서 아버지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6·25 전쟁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가 군목으로, 평생 군인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중고등학교 학생 시절에 군인으로 평생을 사신 목사인 아버지가 자신을 앉혀놓고 가장 즐겨 하신 말씀이 6·25 전쟁 이야기였는데 자기는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그 소리였다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도 반복하셔서 이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6·25에 고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었는데 이제 자기가 전도사가 되어서 유대인들의 출애굽 유월절 행사를 공부하다 보니 유대인들에게 그 이야기가 절대 필요하며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이야기 때문에 살아가는 민족인 것을 깨닫고 나서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해 보이고 그때부터 오늘의 자신의 행복은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도 제대하셔서 교회에 같이 나오셨습니다. 

사람마다 이야기의 관심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여자들에게 제일 관심 없는 이야기는 남자들 군대 이야기입니다. 남자들이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는 화장품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보면 절대적 양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25세대가 생각하는 국가관과 신세대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은 접근할 수 없는 차이가 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문제는 피차 마음 양보를 하기 전에는 이야기가 안 되는 어려움이 우리 문화 가운데 있습니다. 6·25 전쟁을 말할 때 저 같은 목사 입장에서는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악령의 역사다. 마귀 역사다.” 저는 그렇게 단정합니다. 왜 그런가? 이 세상의 나쁜 전쟁 역사는 거의 다 주일날 일으켰습니다. 예배드리는 주일날 새벽에 모두 일어났습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공격을 시도한 시간도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이 새벽 6시, 그것도 주일 새벽 그 사람들이 안심하고 예배 준비하는 그 때를 우리가 때리지 아니하면 우리가 진다고 생각해서 정확하게 주일 새벽에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진주만에 가보면 그 역사가 다 나와 있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 사진 밑에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주만 공격은 주일 새벽 6시였고 6·25 전쟁은 주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주일을 선택한 것은 그 시간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이렇게 단정을 합니다.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커다란 규모의 전쟁이 20세기에 두 번 지나갔습니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라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치렀고 그것으로 인해서 부분적으로 여러 국가들이 수많은 국지전의 전쟁을 20세기에 치러왔는데 왜 그토록 많은 전쟁을 겪게 되었는가? 20세기는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의 6·25 동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 전쟁이었으므로 그토록 처참한 역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을 러시아 현실에다 적용시켜서 극단적 폭력 혁명론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레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회주의 깃발 아래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 혹은 3분의 1 정도가 인류의 희망은 여기라고 외치면서 그러한 이데올로기 확장이 곧 전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과거 소련에는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주도한 레닌 중심의 볼셰비키라는 정당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10월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세계 최초이자 최강의 공산 사회주의 국가를 형성했고 볼셰비즘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세계 혁명 이론으로 보편화시키면서 가능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그 이데올로기로 점령해 갔는데, 북한이 그 중에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의 결정적 피해자가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모든 국가에 마르크스의 혁명이론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가장 큰 힘이 기독교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 이론이 성공하려면 기독교를 없애버려야 된다고 해서 기독교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 많던 교회가 소련도, 북한도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공산주의 안에서도 레닌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정당은 수정주의자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절대 용납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 단어를 만들어서 숙청 작업을 했습니다. 배교자, 반역자, 제국주의 스파이, 자본주의자, 수정주의, 반혁명군자, 반동이라는 단어들이 귀에 익숙합니다. 6·25 세대들은 기억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6·25 당시 공산주의자가 남한에 내려왔을 때 가장 무서웠던 말이 “동무! 반동이요!”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끝났습니다. 6·25동란에 미국이 참전하고 16개국이 협조한 뜻은 “바로 그러한 공산주의 볼셰비즘을 대한민국이 막아야 한다.” 그래서 참전해 준 것입니다.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그렇게 무서운 물리적 힘을 자랑하던 소련의 레닌 동상을 자기들이 무너뜨렸습니다. 길바닥에 레닌의 머리가 뒹굴고 짓궂은 사람들이 그 얼굴에다 소변을 봅니다.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래서 소련은 71년 만에 무너지고 지금은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주변에 소련이 장악하고 있던 15개국이 다 독립을 해버렸습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러시아에 갔을 때 러시아에서 동양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 한 분을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자기는 레닌이 메시야라고 믿었답니다. 

‘그가 말하는 논리가 세상의 평화이다. 이 논리대로만 하면 세상이 다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대학 교수로서 그에게 충성을 했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의 논리를 열심히 가르쳐 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저한테 전해주었습니다. 
6·25 당시 군사적 비교만으로 생각하면 6·25 전쟁은 남한이 참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우선 전투 병사가 북한군이 54,000명이 많았습니다. 전쟁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전차 부대인데 그 당시 북한은 242대의 전차를 가졌었고 남한은 그런 전차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장갑차는 북한이 208대가 있었는데 남한은 27대였습니다. 대포가 북한이 2,540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은 840개 있었습니다. 전투 비행 공군기 북한이 230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은 10대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대구, 부산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전역 점령당했잖아요? 이 전쟁으로 인해 한국군과 유엔군 18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군만도 33,000명이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민간인까지 합쳐서 300만 명 이상이 죽은 지구촌의 대재앙으로 “악령의 역사다”, “마귀의 짓이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은 85,000명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갔고, 30만 명의 전쟁미망인, 10만 명의 고아, 1천만 명의 이산가족, 535명의 목사들이 학살당했고, 2,122개 교회가 불타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강대국들의 정치 철학은 분명했습니다.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고 하는 실용주의였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해도 절대 손해를 안보고 전쟁으로 인해서 얻어진 막대한 유익이 있다.” 실용주의, 프래그머티즘에 사로잡혀서 이러한 소련의 프래그머티즘 정치 철학에 북한이 절대적 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 6·25라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틀 전 한국 신문들이 중국 신문을 인용해서 보도했습니다. 중국 신문이 “스탈린과 김일성이 한국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중국의 관영매체가 분위기상 그런 보도를 절대로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왜 했는가? 아무래도 중국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진실적으로 가야한다는 지성인들의 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를 인용해서 일제히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제 믿음의 고백이 있다면 “6·25때 대한민국이 보존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다.”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참전국 16개국, 의료지원국 5개국으로 21개국이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는데 3분의 2 이상이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대한민국마저 공산화 되어 버린다면 아시아 태평양은 위험하다. 필사적으로 막아주어야 한다.” 기독교 국가들이 참전해 준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때 부산 초량교회에 기독교인, 목사들이 다 모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사회를 보면서 기독교 연합 비상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3일 동안 금식 기도한 후에 미국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에게 한반도를 포기하지 말고 유엔을 파송해 달라고 요청서 보낸 것이 큰 효과를 가져온 것을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시 주미대사가 장면이였는데 유엔 파송을 위해서 그가 밤낮을 뛰어다닐 때 미국 정부가 그런 결정을 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들 언더우드입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한국은 언더우드 가문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주일 미군 사령관으로 일본에 있었고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니까 그 사명까지 맡게 되었는데 맥아더는 철저한 기독교인이요 반공주의자입니다. 일본에게 마지막 항복을 받으면서 요청을 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일본은 앞으로 2천명의 선교사를 받아들이라.” 그래서 그 이후 일본이 선교사를 내쫒지 못합니다.

지금 월드컵 축구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마음을 여러분이 한번 평가해 보십시오. 북한은 남한이 잘한 것을 한번도 TV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보도 금지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잘한 것을 다 보여줍니다. 이번에도 “북한이 어떻게 축구의 강국 브라질과 경기를 잘했나? 아주 잘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브라질에 진 것을 1대 2 아깝게 졌다고 약간 애석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로 어느 방송이나 그렇게 방송했습니다. 정대세 선수를 모든 신문에서 칭찬했고 동아일보는 “정대세의 눈물이다.”라며 그 선수를 얼마나 선전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게임에서 북한이 이겼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자들이 신문에 보도해 버렸습니다. 브라질 팀에 한 골을 성공시킨 지윤남이 좋아서 웃통을 벗어버리니까 한국 방송에서 그의 상반신을 다 보여주면서 “가꾸지 아니한 자연 복근 몸짱이다.”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북한도 그렇게 해야 상식적인 국제 교류입니다. 날마다 그 아줌마 혼자 나와서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날마다 혼자 지껄이고…. 이번에 천안함 희생 장병을 비롯해서 군대 생활 가운데 희생된 젊은 장병들은 모두다 영웅들입니다. 왜냐하면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라는 인생의 가장 좋은 그 시절을 다른 사람을 위해, 국가를 위해 피 흘려 죽어버렸으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이 뭐가 있겠습니까? 

모윤숙이라는 여류 시인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분은 여자이고 시인이면서 군인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전방에 군부대 시찰을 갈 때 늘 따라다녔습니다.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 날 그가 바로 이곳 광주 오포 고개를 넘어가다가 피 흘리면 쓰러진 국군 병사를 보고 그날 밤 쓴 시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입니다. 제가 적어왔습니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너의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한 산맥을 지키다가 여기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내가 어여삐 사랑하던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 소리와 함께 나도 거기서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그래서 나는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이 나라의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푸른 밤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도록 내 외로움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나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가 사랑했던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전해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이 산맥에서 먼저 가노라.”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겁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그들의 피의 대가로 뚜렷한 것이 몇 가지 생겼습니다. 세계 제일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같이 교회 활동 활발한 나라가 세상에 없고 미국과 한국이 아니면 세계 선교를 못하는 그 자리에 한국 교회가 지금 서있습니다. 제가 휴스턴 텍사스에서 만난 유대인 랍비가 해준 말을 영원히 기억합니다. 유월절 행사에 초대해서 “너희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전도가 잘 되었느냐? 

우리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렇게 많이 체험했는데도 모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산다. 큰일 났다. 너도 기억할 것이다. 1967년 육일전쟁 때 당시 이스라엘 인구 250만 명이었다. 상대 국가 인구는 1억이 되었다. 250만 명, 1억 전쟁을 어떻게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가? 하나님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사오니 이것 때문에 우리는 그때 이기었다. 6일 동안에 150만 명의 포로를 만들었고 땅은 이스라엘 땅의 두 배가 넘는 땅을 확보했고 적의 비행기는 한 대도 뜨지 못하게 휴지 조각이 되는 인류 역사에 가장 짧은 전쟁인 육일전쟁의 승리를 가져왔다. 

그날 이스라엘 국방 장군이 한 일이 뭔가? 전쟁터에 나가서 지휘관 역할을 했는가? 아니다. 방송국에 앉아서 군인들과 이스라엘 전 국민을 향해서 하루 종일 방송했는데 무슨 방송을 했는가?” 시편 4편 오늘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그러나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그런데 이 체험을 한 사람들이 25 퍼센트 미만, 아주 인색하게 말하면 10 퍼센트 정도 밖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으니 큰일 났다. 그런데 너희 한국은 어떻게 기독교 인구, 하나님을 믿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느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전쟁을 선포한 첫날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백악관에 초대해서 “목사님,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 되게 해달라고 예배드려 주세요.”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백악관에서 그날 밤 예배드리고 그곳에서 잤습니다. 

병사들의 피는 대한민국에 자유를 선물해 준 것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온 세계가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초점도 누가복음에 “나는 눌린 자에게 자유를,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려고 죄에서의 자유함과 인간 권리에 대한 자유함과 인간답게 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나는 왔도다.” 우리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외국 군인이 이 땅에서 숨진 사람이 37,623명입니다. 충청남도 논산 병촌교회는 6·25 동란 때 한 교회에서만 공산당에 의해서 66명의 순교자를 낸 교회로 유명합니다. 병촌교회를 가보시면 순교비가 있습니다. 

그때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우재학 집사님이라는 분은 자기의 부모, 아내, 자녀 네 명, 동생 내외, 조카 두 명 11명이 교회 다닌 것 때문에 순교 당했고 그분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온 세상이 이제 공산당이 되는 줄 알았는데 순교자의 피의 대가가 자유라고 하는 고귀한 가치를 우리나라에 선사했다고 했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강냉이 죽을 배급받으며 서있던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한 달 만에 완전 정복을 장담했던 북한은 지금 남한 경제의 GDP 5.6퍼센트입니다. 56퍼센트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데 5.6퍼센트라면 20분의 1입니다. 왜 그런 결과가 왔는가? 천안함을 침몰시키면 결정적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정치 철학은 계산 못하는 게 아주 특징입니다. 천안함 피해의 100배도 넘는 피해를 입는 것은 계산 못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벌써 유럽 전체는 이미 결의했습니다. 

온 세계 국가 신용도가 테러국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언제나 골칫거리 국가로 낙인 찍혀 버렸습니다. 이제 세계는 안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계산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6·25기념 주일에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인가? “하나님이여! 북한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마귀의 역사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하루속히 젖과 꿀이 흐르는 저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할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세워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하나님이여! 북한도 남한같이 되게 해 주소서.” 요덕스토리에서 “예수여! 왜 남한만 심방을 가시나이까? 북한 땅에도 오십시오. 하나님이여! 북한의 주민을 돌보시고 그들도 따뜻한 식사와 배부른 빵을 나누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게 해 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하나님이여!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돌보심이 한반도에 영원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지금도 슬픔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들의 힘으로, 유엔의 힘으로도 가능치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구원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시편 3편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오니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불쌍한 북한 주민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한반도의 평화가 영원하고 21세기에 가장 크게 세계 선교를 위해서 쓰임 받는 이 한반도 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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