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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행하신 큰 일 (눅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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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행하신 큰 일 (눅 8:26-39)

 
성경에는 귀신 들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요즘은 귀신 들렸다는 표현보다는 미쳤다거나 정신 나갔다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길에서 옷이나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예배드릴 때에 혼자서 뭔가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을 길에서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정신병원이나 시설에 강제로 모두 가둬 두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미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유전적인 원인도 있을 수 있고 환경의 문제도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서 미칠 수도 있고 서서히 정신이 나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미친 사람과 미치지 않은 사람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밖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귀신 들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거라사인의 땅에 살고 있었지만 마을에서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고 무덤 사이에서 지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눅 8:29)
그리고 예수님이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군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에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와 관련해서 아주 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후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더 이상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더러운 귀신은 다만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예수님에게 간구했습니다. 마침 많은 돼지 떼가 근처 산에서 먹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예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귀신들이 그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했습니다. 돼지 떼를 치던 자들이 그 일을 보고 도망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나와서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누가복음 기자는 사람들이 보고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놀라고 두려워했습니까? 그 까닭은 자신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미친 사람이 행패를 부릴 때에 보통 어떻게 대처합니까?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 놓습니다. 미친 사람이 질서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격리시키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쇠사슬과 고랑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생각이 옳습니까? 물론 쇠사슬과 고랑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쇠사슬과 고랑 같은 수단이 악용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실시하는 전기충격 치료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 개발된 정신병 치료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전기충격 치료라고는 하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전기충격 요법은 군사 독재 시절에 정치범들을 고문하는 수단으로까지 악용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정신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징계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피해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쫓겨 나갔으면 모두 함께 기뻐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크게 환영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에게 떠나시기를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이 몹시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이 불편했을까요? 쇠사슬과 고랑이라는 수단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기준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가 그렇지 않습니까? 진보는 보수를 가리켜서 꼴통이라고 비난하고 또 보수는 진보를 가리켜서 빨갱이라고 매도합니다. 비록 생각이 다를지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환영한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오죽하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지만 예수님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탄하셨겠습니까?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별로 섭섭해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배를 타고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귀신 들렸던 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똑똑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편하게 생각해서 떠나시기를 요구했는데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던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과연 누가 진짜 미친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모두 다 바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렸습니다. 그들은 흑인 노예를 인간이 아니라 개나 소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모두 독실한 신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반기독교적, 또는 비기독교적일 수 있는가 생각하면 정말 두렵습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믿는다면 좀 더 진지하게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겉으로만 믿는다고 할 뿐이지 속으로는 예수님을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함께 있고 싶다는 그의 요구를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귀찮게 생각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제자들을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설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 살아야 할 몫이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눅 8:39 상반절)
그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고 하셨지만 그는 예수님이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마을에 전파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 바로 예수님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이 돌아가야 할 마을의 형편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비슷합니다. 안티 기독교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큰 일을 전파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에게 과연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한 체험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체험이 있으면 상황이 아무리 나쁠지라도 누구나 그 큰 일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큰 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가 더러운 군대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그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악한 영에게 사로잡힐 때마다 옷을 벗은 채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이 사슬로 묶었지만 그 사슬도 끊고 무덤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내면 세계를 처음으로 인정한 분을 만났습니다. 

주위에 용한 의사들도 많았고 또 내노라하는 선생들도 많았지만 아무도 그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 놓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을 받고 회복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그 큰 일을 그는 담대하게 전파했습니다. 마을의 골칫거리로 취급되던 그가 이제 진리를 전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런 놀라운 체험이 우리에게 있기는 합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도 더러운 군대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까? 혹시 아직도 레기온의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파괴하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분단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군대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육십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단 상황을 끝내고 평화 통일을 이루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악한 영의 작용이 아니고서는 달리 해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러운 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악한 영의 지배를 끝내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행하신 그 크고 놀라운 일을 널리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떤 강한 쇠사슬과 고랑을 가지고서도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이 비참한 현실 세계에서 십자가로 우리에게 참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능력의 주님을 널리 전파하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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