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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 문제 해결의 열쇠 (갈 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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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문제 해결의 열쇠 (갈 2:11-21)


사회의 아픔을 품어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현재도 다양한 싸움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부분 공산주의라고 답하시라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틀린 답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북한에 대한 반공주의적인 적대의식도 있지만 주사파등 맹목적인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안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만든 정치제도 중에서 가장 좋은 제도이지만 한편 가장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 길을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방법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형성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으로 인해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여 초대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은 모여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서로서로 아픔을 나누며, 세워주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거나 자신들이 죽으면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으로 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들 안에,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가정과 사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소망하면서 신앙생활 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완벽하게 보이는 초대교회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크게 세 분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서의 수신자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서이고, 마가복음은 로마의 박해로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은 데오빌로로 대표되는 지성적 이방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헬라사고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공관복음을 보충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유대인중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과, 이방인 중에서 예수님 믿은 사람들과, 헬라말을 하는 유대인(Hellenists)이 있었고 이들은 각각 공동체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사건이 (행6:1)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사건이 있습니다. 헬라말을 하는 유대인 중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스데반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성막과 성전을 대조하면서 성막은 이동식이었지만 성전은 고정된 건물인데 하나님은 고정된 성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설교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화가 나서 스데반에게 돌을 던져 죽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신앙이 같아도 대립 

이렇게 동일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배경이 달라서 갈등은 계속되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더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고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들도 커다란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럴 즈음에 베드로사도께서 초대교회를 뿌리채 흔드는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원래 베드로도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이방인을 멸시하는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11:1-11) 욥바에서 기도 중에 황홀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와서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였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서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고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소리를 세 번들은 후 베드로 사도님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님께서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대인으로 예수님 믿는 사람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먹는 것을 그만 두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나"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까지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께서 그 사건을 떠올리며 베드로사도님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서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바울사도께서는 (갈5:2-3)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유명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19-20) 

즉 옛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갈등이 진정으로 해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죽고 예수로 살 때만 갈등이 해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행위로는 갈등해소가 없다 

여러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많은 교회 들이 외치므로 초대교회가 주님이 생각하신 완벽한 교회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으신 것처럼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해도 옛사람을 죽이지 않고 믿으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주장하여 비신자일 때 보다 더 악한 행동을 할 수가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틀을 깨서 희망을 준 판결문을 소개합니다.  

어떤 노인이 소송 끝에 1심에서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희망을 되찾은 사건입니다. 노인의 손을 들어준 판결문의 말미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한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냉철한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꿈 너머 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갈등이 넘치는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 화목재물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떻게 순종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갈등해소를 위해서 때로는 담대하게 행동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어떻게 순종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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