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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감사고백 (고전 15:55-58, 롬 1:8-11,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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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5-5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8-11).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오는 주일은 맥추감사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한국교회는 구약 이스라엘이 초실절로 지키던 가르침을 본받아 보리 추수기를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맥추감사 절기를 맞아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감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후 바다 속에 수장(水葬)당한 애굽 군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려드리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출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감사의 찬송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시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우리 예수님도 일생을 감사의 삶으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큰 일부터 아주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오히려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마 11:25). 복음의 단순성을 감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천 명의 굶주린 사람들의 눈앞에서 떡 몇 덩이를 손에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요 6:11). 주님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부요하심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도 떡과 잔을 가지시고 감사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된 바울도 우리에게 감사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울 사도와 함께 ‘감사의 길’을 떠나봅시다.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함 (= 그리스도에 관한 감사 고백)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 사도의 감사 고백은 많은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감사로 시작됩니다. 본절에서 사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셨고, 이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죄에 대해서 죽으셨으며 사망에 머물지 않고 부활하셨다’는 점에서 죄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승리를 향유(享有)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이 죽음에 동참해야 합니다(롬 6:19,11).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완성된 승리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첫 열매로 부활하셔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지막 날의 부활을 보증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승리는 흔들릴 수 없는 매우 확실한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바로 이같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감사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절망적인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이요,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써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믿고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는 바로 그 승리가 우리를 대신한 승리요 우리를 위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지고 날마다 실패하고 날마다 절망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날마다 이기시고 날마다 승리하시며 개선가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그 승리를 믿는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 자신의 이김으로 인정해주시고 적용해 주십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깨달은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늘 감사하였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의 본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나사렛 예수를 원수처럼 생각했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습니다. 그 무리들 중의 대표자격인 스데반을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일 때 청년 사울은 그들의 옷을 맡았습니다.

행 7:57-58=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행 8:1). 그는 유대교에 대한 열심이 특심하여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을 가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 8:3). 그러한 사울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감사는커녕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게까지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살기등등하여 멀리 다메섹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마수(魔手)를 뻗치려고 가다가 홀연히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 권세를 이기신 것을 알게 되었고, 주님의 승리가 성도의 승리가 된다는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평생을 그리스도에 관해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마귀에 대한 성도의 승리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구원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고 유대교에 충성했던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을 확신했고, 이로 인해 감사를 쉬지 않았습니다.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살아계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선물로 받은 천국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2. 모든 성도들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함 (=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감사 고백)

롬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우리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생각하며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감사 고백은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감사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 대해 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절에서 그는 로마교회의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소식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사랑하는 바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도 요한도 같은 기쁨을 말했습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1:3-4).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감사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자신이 책임 맡은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행할 때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영적 교제의 원리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진정한 사랑은 살아 있는 교제를 원하게 됩니다. 성도들을 사랑한다면 그들과 서로 사귀며 가까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때 이것이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성도들을 사랑한 바울 사도는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빌 1:3-6=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여러분을 교회로 잡아 끄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주일마다, 수요밤 금요밤마다 여러분을 교회로 오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구역 모임이 기다려지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우리는 성도들이 간절히 보고 싶어지고 성도들과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서로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함께 모이는 성도들의 모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과의 사랑에 굶주린 사람이었고, 성도들의 믿음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쉬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때때로 어떤 성도들은 말과 행동에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말하지 않고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한 믿음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교회 안에 충성된 자들을 남겨 두셨고, 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위에 앉아 있는 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여러분은 모든 믿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로 결심하지 않겠습니까? 

3. 모든 일,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함 (= 그치지 않는 감사 고백)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모든 일,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감사 고백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여기 ‘감사하다(유카리스테오)’ 동사는 특히 하나님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또한 ‘범사에(엔 판티)’는 ‘모든 일에’ 또는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감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없으면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출애굽 이후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간 머물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고 걸핏하면 지도자 모세를 향해 돌을 들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성찰(省察)이 부족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대적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망각했고, 또한 하나님이 자신들을 가나안 복지로 능히 인도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성도에게 있어 마땅한 바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이 땅에 존재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조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안다면 감사치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구원받아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 아닙니까? 성도에게 있어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일,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자신의 권위가 아닌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권위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감사 생활에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박해자들이 던지는 돌을 맞으면서도 ‘주님 감사합니다’ 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교 여행에 나선 배가 파선이 되어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도 ‘주님 감사합니다’를 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안력(眼力)이 약해도, 똑똑하지 못해도, 외모에 자신이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 감사합니다’를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교회의 사역 중 남의 눈에 띄는 일을 맡지 못했어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 감사합니다’를 쉬지 않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감사 생활을 모범적으로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들은 매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소망은 그들에게 ‘그치지 않는 감사 고백’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감사를 권면할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감사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매맞고 감옥에 갖혀 있으면서도 원망이나 불평 대신에 오히려 주님을 위해 핍박 받음을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도를 사랑하셨고,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처럼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인하여, 그리고 장차 재림주로 오실 것을 인하여 끊임없이 감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교회로 불려나온 다른 성도들을 인하여, 그리고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인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매일의 감사 생활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바울처럼 감사 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매일 매일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박순오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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