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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환란 날의 기도(1) (시 5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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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날의 기도(1) (시 50:14-15)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오늘은 6・25 60주년을 기념하여 드리는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시 50편 말씀에서 택하였습니다. 본 시는 레위지파 출신으로 음악가인 아삽이 지은 시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하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14)는 것입니다. 당시 예배의 형식화를 겨냥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제물만 잡아 바치면 다 되는 줄 아느냐 하고 책망하면서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15)는 말씀입니다. 어려울 때는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이 주어질 것이고 너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각종 환란이 발생합니다. 이 환란은 개인에게도 옵니다. 때로 상상도 못한 환란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암담함을 느끼고 눈앞이 캄캄함을 느낍니다. 그러다 또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문제들이 해결되고 다시 평온이 찾아옵니다. 자연에도 환란이 옵니다. 조용하던 바다에 거친 태풍과 폭풍과 해일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온 바다가 미친 듯이 거칠게 뜁니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면 거칠던 바다도 고요해집니다. 화산과 지진도 자연의 환란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런 환란이 있고 재난이 존재합니다. 

국가에도 환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를 보면 환란이 유독 많았던 나라에 속합니다. 그 환란 중에서도 6・25의 환란은 가장 큰 재난이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이 나라가 처절하였고 전후 가난 때문에 비참하였습니까. 세상에 최소한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엊그제 목사님들 몇 분이 모여 그때 모두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왜 그렇게 코가 많이 나왔는지 배가 고프고 추우니까 코가 더 나오더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코가 나오면 모두 팔소매로 닦았습니다. 그래서 양팔 옷소매가 반들반들 했습니다. 

또 생일날이면 보리밥 가운데에 쌀을 조금 더 놓아 주었고 그래서 생일날을 모두 고대하고 기다렸노라고, 형제 중에 하나가 아프면 보리밥에 쌀을 조금 얹어 주었고 그리고 계란 하나로 찌개를 만들어 아픈 동생에게만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아팠으면 좋겠는데 아프지도 않더라고, 겨울에 학교를 가려면 얼마나 추운지 속에 입을 내의가 없어서 그렇게 추웠고  또 낮이 되면 땅이 녹아 길이 진흙탕이 되어 고무신이 진흙에 빠져 고무신을 새끼줄로 묶고 길을 갔다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그때 시골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는데도 어쩌면 삶의 모습이 그리 똑같았는지 너무 신비해서 함께 웃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다시 이 나라를 가난한 나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정신을 차려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그 환란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환란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때 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건지리니 너희가 내가 하나님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란 때마다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을 건지셨고 그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구약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역사 중에 가장 큰 환란이 6・25 전쟁이었습니다. 금년이 그 6・25의 역사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금년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한일합방이 된지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2010년 금년을 “국치의 해”라고 부릅니다. 오늘 10대 20대들 가운데 60%가 6・25가 언제인지도 모른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왜 모르냐고 물으니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서 모른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60년 전인 1950년6월25일 새벽 5시 북한은 소련제 탱크 T3458형 200대와 150mm 장거리포와 600대의 공군기와 23만 천명의 북한군이 문산, 의정부, 춘천, 강릉으로 일제히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때는 우리나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5년 후이고 남한이 정부수립을 한지 1년 10개월로 정부가 아주 엉성할 때였습니다. 그때 한국은 군인이 9만 명뿐이었고 소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때였습니다. 그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당해 전사자 13만 7천명, 부상자 45만 7천명, 민간인 학살자 22만 명, 납북자 84,000명, 과부 30만 명, 고아 10만 명, 학도병이 5만중에 7천명이 전사하였고 이산가족은 100만 명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외에 파괴와 복구비와 고난을 돈으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역사가 60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모른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오늘 지난 6・25를 생각하면 참 아찔함을 느끼게 됩니다. 꿈꾸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 전쟁에서 오늘 이 나라가 되찾아졌는지 신비할 뿐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몇 가지 생각할 일이 있습니다. 


세계 16개국의 도움 

6・25가 발발하자 당일 유엔이 6・25는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당일 북한을 침략자라고 규탄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27일 16개국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터키, 태국, 그리스, 남아공,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가 참전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스웨덴,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덴마크 등 5개국은 병원선과 의료진을 보내겠다고 결의하여 총 21개국이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월남전 때 파병한 나라가 10개국 뿐이었습니다. 6・25때 북한을 위해 파병한 나라는 소련과 중국 두 나라 뿐이었고 의료를 제공한 나라는 체코와 폴란드 뿐입니다. 그래서 6・25는 모두 25개국이 참전한 전무후무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오늘 한국이 살아남았으니 기적 아닙니까. 

오늘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6・25의 전쟁을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전쟁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이 수만 명이나 됩니다. 미군이 3만 6,940명의 전사자와 3,737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을 아직도 유해를 찾고 있습니다. 9만 2,1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아직도 미국 원호병원에서 60년 동안 입원해서 치료받고 있는 부상자가 있습니다.영국이 1,078명의 전사자를 냈고 캐나다는  516명이 전사자를 냈습니다. 16개국 유엔군 모두 40,670명의 전사자와 4,116명의 실종자를 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6・25가 오늘 발발했더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6・25 때 우리나라를 되찾은 것은 기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이 함께 하신 증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 세계에서 전쟁이 나면 우리나라도 가서 적극적으로 도와서 빚을 갚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때 알지도 모르는 나라에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서 죽으면서 이 땅을 찾아주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군이 한국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것을 비율로 보면 치사율이 2.2%나 됩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비에는 “그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로 갔다, 인생의 꽃이 피기도 전에 미국의 젊은이들은 치사율이 높은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본 적도 없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로 갔다”고 쓰여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1억분의 1이라는데 미국 젊은이들은 치사율 2.2%나 되는 한국전에 참전해서 4만여 명이 사망자를 내서 이 나라를 되찾게 해 주었습니다. 


나라위해 희생한 사람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25 전쟁으로 전사자가 13만 7천명, 실종자 24,495명, 부상자 45만 7천명, 민간인 학살자가 22만 명, 납북자 84,000명, 과부 30만 명, 고아 10만 명, 불구자 30만 명, 학도병 5만중에 7천명이 전사하였고 이산가족 100만 명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들 때문에 오늘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아주 약합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만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한일월드컵이 열려 터키와 3,4위전이 벌어지던 날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경비정을 향해 85미리 함포를 발사해 참수리호가 침몰해서 6명이 전사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우리 함대에서는 당시 북한군의 무선을 감청해서 교신 내용을 다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참전하였던 한철용 예비역 소장은 얼마 전 비망록을 펴냈는데 그때 북한군 8전대가 우리 경비정에게 발포명령을 내리는 것을 사전에 듣고 상부에 보고했는데도 위에서 그냥 묵살해서 고스란히 우리만 희생당했는데 그때 명령을 어기고 발표하려고 했던 한철용 소장은 전역식도 안 해준 채 강제 예편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전사한 군인들은 추모식도 못하게 해서 그 후 모두 죄인처럼 살다가 6년 후에 2008년에 처음으로 공개추모식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너무 가볍게 취급합니다.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 점에 철저합니다. 뉴저지 주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 본관 천장과 벽에는 그 대학 출신자들 중에서 세계 1,2차 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월남전에서 숨진 전몰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에서 싸우다 숨진 동창들의 명예를 기리고 있습니다. 변두리에 있는 각 카운티에서도 그 마을 출신으로 전쟁에 나가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충혼탑을 마을 중앙의 공원에 세워 놓았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최고급 백화점인 불루밍 데일이라는 백화점에는 1층 벽면에 백화점 종업원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숨진 군인들의 이름을 새겨놓았습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위해서 죽으면 이렇게 대우받는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에 갔다가 온 사람은 무료로 대학공부를 시켜 주고 직장도 먼저 알선해 줍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모집제인데도 군에 가고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죽은 사람만 억울하고 불쌍합니다. 그러니 누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국에는 전쟁에서 포로된 사람과 실종자는 끝까지 찾기 위해서 확인사령부라는 기구가 설치되어 몇 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들을 한구라도 더 찾아 가족들 품에 안겨주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위기의 때에 희생을 감당한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는 그들을 마땅히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도층의 의무 

높은 사회적 신분자나 지도층의 신분에 맞게 의무를 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나타내는 말을 “노블레스 오불리주”(noblesse oblige)라고 말합니다. 초기 로마사회에서 사회고위층들은 공공에 대한 봉사나 기부나 헌납이나 전통에 아주 강했습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시대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고위층 자녀들이 먼저 참여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그렇게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귀족들이 솔선하는 노블레스 오불리주 때문이라고 합니다. 1,2차 대전 때 영국의 고위층 자제들이 다니던 이튼 칼리지 출신중 2천여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을 할 때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었습니다. 6・25때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 현역 장군의 아들이 142명인데 그중 3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그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아이젠하워 육군중령도 전투요원으로, 미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의 아들 샘 육군대위도, 유엔군 총사령과 클라크 육군대장의 아들 빌 육군대위도, 미 해병비행단장 해리스 해병소장 아들 해리스 해병 소령도 참전하여 작전 중에 전사하였습니다. 미 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중장의 아들 공군중위 밴풀리트 공군중위는 B29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하여 북한 상공을 야간 폭격하다가 전사하였습니다. 

미 CIA부장 알렌 덜레스의 독자 덜레스 2세도 6・25당시 프린스턴대학교 학생이었는데 휴학하고 자원하여 참전하였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영구 정신장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공군으로서는 유일하게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이 참전하였다 1950년 11년25일 미군 폭격에 의해 전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무합니다.   

서구사회가 민주주의가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사회가 든든한 것은 거기에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진 자나 사회적 지위자는 국민 앞에서 솔선하였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단합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공직자들, 사회지도층에 유독 병역미필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안보의 최고 의결기관인 NSC 라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이 8명인데 그중 4명이 병역미필자 입니다.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군에 가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자른 사람이 도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안정이 오늘 우리 국민들의 국가관이 심히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천안함 사건 때 군에 간 아들들이 집으로 전화해 “엄마 무서워, 전쟁난대“하고 전화질을 해 댔다고 합니다. 오늘 병영 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아이들이 바로 집에 전화하고 엄마들은 즉시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해서 호통을 친다고 합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주가가 떨어지니까 대다수 증권가에서는 “북에 돈 줘서 조용하게 하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천안함 사건 때 생존자들 중 5명 다시 함상 근무를 자원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그래도 지금 지탱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에도 기득권층인 양반들은 군대와 조세에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리고 씨족이 국가개념보다 우위에 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위험한 것은 아랫것들이 다 했고 자기들은 누리기만 하고 몇 자리 안 되는 벼슬자리 놓고 피터지게 싸웠으니 그때 당쟁이 얼마나 치열했겠습니까.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당하였고 그러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다가 정묘호란을 당하였고 그러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다가 병자호란을 만나서 마침내 나라를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독립운동가 자손들을 보면 하나같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죽은 자들과 그 가족들만 억울한 것입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남북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북한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나라입니다. 밖의 세상을 모르고 안에서만 살아 자기들의 수준을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사람을 잡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큰 죄를 짓지 못합니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죄를 지을 용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식한 사람은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북한이 지금 그렇습니다. 

지금 북한이 얼마나 무식하게 행동하고 무식하게 나옵니까. 세계를 향해서 큰소리를 치는데 창피한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이 나면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데는 가장 먼저 싸워야 할 사람은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싸워 이기지 못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먼저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느 때나 의지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지난날에도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함께 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오늘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정익 ㅁㅎ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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