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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 6:9-13, 시 6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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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 6:9-13, 시 69:13-15)

     
지난 주일에 주기도문의‘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를 주제로 두 종류의 시험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시험과 유혹에 최선을 다하여 통과하고 물리치며 지내셨습니까?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시험에는 인내와 성실한 태도로 반응하시고, 우리를 파멸로 떨어뜨리려는 사단의 시험에는 굴복하지 않고 주의 말씀의 능력으로 당당히 맞서는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강건한 영적 군사로 살아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한 단계씩 성장하게 하십니다.  이런 시험은 참고 견디며 인내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사단의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피하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전 시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사단의 달콤한 유혹을 호기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바랍니다. 폭주족들이 스릴을 즐기며 차선을 넘나드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단 사이를 오가며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무모한 모험은 아예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차 실수하면 최소한 중상이고 여차하면 사망인데 구태여 하나님의 마음을 떠보듯 오락가락하는 신앙생활을 하다 스스로 파멸에 이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함께 나눌 주제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할 뿐 아니라 악으로부터 건짐받기를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하지만 연약한 우리들은 잠간 방심하는 순간에 악한 길에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마땅하지만 순간의 실수로 악한 길에 들어섰음을 발견하였다면 그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저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 2)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고 끌어 안고 있는 죄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편안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의식 없이 고의로 범하는 죄악, 헤어나오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부끄러운 죄악이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들려지고 기도 응답의 기쁨을 누립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험의 순간에 나는 어떻게 그 죄악을 물리치고 피하는 사람입니까?   구약의 인물 요셉과 다윗의 예를 비교하면서 오늘의 주제를 상고하기로 합니다.

애굽으로 팔려가 바로의 신하 보디발의 종으로 일하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여러 차례 유혹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그 여인의 유혹에 단호한 태도로 거절하였다가 도리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성추행범으로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시험을 물리치고 또 억울한 감옥생활을 참고 기다림 끝에 감옥에서 바로의 신하들을 만났고 그들의 꿈을 해석한 것을 계기로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면서 하나님의 연단 과정을 꿋꿋하게 견딘 요셉은 30세가 되었을 때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지난 13년 동안 겪었던 고난의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요셉 한 사람을 통하여 야곱의 가문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상상을 초월한 복이었습니다. 사단의 유혹과 하나님의 시험을 당당하게 통과한 요셉이라는 젊은이를 통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성취를 향해 한 발짝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유혹의 덫을 피하다가 억울한 고난을 당하였지만 요셉은 사단의 미혹에 일절 타협할 줄 몰랐던 순결한 성도의 모델이 되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반면에, 다윗 왕은 흐트러진 영적 상태와 정신적 해이함을 틈타 찾아온 사단의 유혹에 넘어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왕국이 강성하고 왕권이 튼튼하며 만사가 형통할 때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던 다윗은 순간의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남용하여 전쟁터에 나가 있는 충신 우리아의 처 밧세바를 궁궐 침소로 불러들여 동침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제껏 보아왔던 신실한 사람답지 않게 전혀 엉뚱한 실수를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는 다윗 왕입니다.

더 기가 막히고 무서운 사단의 시험은 밧세바의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뒷일을 처리하는 다윗의 방식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밧세바 사이에 벌어진 부정을 슬그머니 덮으려 전쟁터에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에게 특별휴가를 주며 집에 돌아와 아내와 지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이라는 사람의 머리에서 어찌 이런 교묘한 술수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의아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그는 한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골리앗을 담대히 물리쳤던 용맹스런 신앙인이었고 사울의 간교한 모함과 끈질긴 추격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의뢰하며 견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쳐놓은 유혹의 덫에 한쪽 발을 붙들린 즉시 다윗은 나머지 한 발마져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이런 계략을 알지 못했던 충신 우리야는 왕이 하사한 특별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궁궐 문 앞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죄악의 씨앗을 없애려는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진 다윗은 결국 우리야를 전쟁터 최전방에 보내어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도록 합니다. 한 번 사단의 시험에 빠진 다윗은 자신의 부정을 은폐하기 위하여 끝내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르면서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제대로 하고야 말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신임을 받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 방심으로 간음과 살인 죄를 동시에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은 불신자들에게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소위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인정받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나는 영적 혼란의 사태들입니다.  영적으로 흐트러진 성도들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실패의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삽시다.  사단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게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믿음 좋다고 자부하는 교만한 신자를 무너뜨려 더 큰 파급효과를 얻어냅니다.  유력한 한 사람의 무너짐으로 그를 따르던 주변의 사람들이 줄줄이 넘어지는 영적 도미노 현상이 일어납니다. 간교한 사단의 시험은 이처럼 사악하며 그 결과는 두려운 파멸을 가져옵니다.

다윗이 이처럼 추악한 죄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인정 받았던 것은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시인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겸손한 자세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찾아와 범죄 사실을 지적하였을 때 다윗은 한 마디 변명도 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구하며 굴복하는 정직한 회개가 그를 사악한 죄와 무시무시한  죄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회개라는 안전장치가 있어 언제라도 죄 짓고 또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니   참 편리한 사람들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회개와 용서의 복음이 그렇게 뻔뻔스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회개가 참 회개 되기 위하여 우리는 고의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만으로 회개가 아닙니다. 술 한잔으로 쓰라린 마음을 달래고 자신과 이웃에게 잠시 미안해 한 것으로 툴툴 털고 잊어버리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다시는 동일한 실수와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돌아서는 태도가 참 회개자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불가항력적인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며 자신의 부정한 행동을 정당화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늘 아버지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는 일을 즐기며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악을 멀리하려 힘쓰고 악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힘쓰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제 스스로 나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멸망의 자식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상관이 없는 죄인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입술로는 구원을 말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들먹이지만 아직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고 죄의 종노릇 하는 고상한 불신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악에 빠졌을 때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음이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입니다.  더러운 죄인이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사단이 주는 시험에 들지 않아야 옳지만 나의 연약함으로 악에 빠졌을 때 지체없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그 죄의 형벌로 세상에 들어온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건져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는 세상 모든 죄인이 구원의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기도이며 특히 죄악과 맞서 싸우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날마다 구하는 기도입니다.   

두번째로, 이제 다른 관점에서 오늘의 기도를 생각해 봅니다.  악으로부터의 구원은 내가 빠져있는 죄악의 상황에서 구원하시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한편으로는 악한 자들의 압제와 사단의 참소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지만 사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하여 믿는 자를 계속하여 미혹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옛 허물을 들추어내며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너의 수치스런 과거를 생각해봐라. 너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 후로도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느냐?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께 사함을 받지 못한다. 너는 절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런 식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주인공 크리스찬이 장차 망할 도시를 떠나 시온산을 향해 순례하던 도중에 아불루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귀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불루온은 시온산을 향해 가는 크리스찬에게 다가와 마음을 바꾸고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라 유혹합니다. 크리스찬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강하게 거절하자 아불루온은 본색을 드러내며 크리스찬이 순례 도중에 하나님 앞에 불충실했던 일들을 들추어냅니다.  

‘네가 순례 도중에 절망이라는 늪에 빠져 질식하게 되었을 때 결심이 흔들렸고, 세속의 유혹에 넘어가 딴 길로 빠진 적이 있었으며, 깊은 잠에 빠졌다가 약속의 말씀을 잃어버렸던 적도 있었고, 순례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길가에 묶어 놓은 사자를 보고 두려워 오던 길을 되돌아 가려고 했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사자들 사이로 걸어갔지만 무서워 덜덜 떨었던 적이 있었으며, 그동안 지나온 순례길 도중에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때 네 마음 속에 담긴 자만심과 허영심이 드러난 적이 있었다’는 등 지나온 일들을 들추어내면서 이런 일들 때문에 너는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크리스찬의 마음을 흔들리게 합니다. 

천로역정의 이야기처럼 사단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을 흔들어 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약점 잡아 ‘너의 그런 믿음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기대에 절대 미치지 못할 것이니 하나님은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포기하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어떠냐’고 회유합니다.  크리스찬은 사단의 이런 고자질과 비열한 비난에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네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다.  더구나 네가 다 말하지 아니한 더 많은 잘못들이 나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모든 것을 다 용서해주신다.  그뿐 아니라 내가 너의 나라에서 살며 너를 섬길 때 내 몸에 배어버린 여러가지 약점들 때문에 늘 신음하며 슬프게 생각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약점들마저 모두 용서해주셨다’ 이렇게 담대히 대답하고 사단의 유혹에 끝내 넘어오지 않자 화가 치민 아불루온이 창과 칼로 크리스찬을 맹렬히 공격합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반나절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단의 공격이 워낙 강하여 힘이 딸린 크리스찬은 많은 부상을 당하여 손에 쥔 칼도 놓치고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기회를 놓칠세라 사단이 달려들어 크리스찬의 몸을 짓눌러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고 절망에 빠져 신음할 그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고 떨어뜨렸던 칼을 다시 잡은 크리스찬은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미가7:8) 라고 외치며 온 힘을 다해 아불루온을 찔러 치명상을 입힙니다. 사단이 주춤하자 다시 힘을 얻은 크리스찬은‘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외치며 일어나 반격하자 아불루온은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못하고 달아나 버립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이야기 속에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 만나는 수 많은 일들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보려고 찾아오는 사단의 달콤한 유혹과 격렬한 공격입니다.  사단은 약점을 발견하면 여지없이 밀고 들어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나의 실수와 죄를 들추어 하나님께 고자질합니다.  그리하여 죄의 무거운 짐에 눌려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뜨림으로 우리로 하여금 제 풀에 나가 떨어져 더 이상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요청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이간질, 이것이 사단의 전술이며 공격 방식입니다.  

시편69:14, 15에서 다윗은 자신이 이런 어려움에 놓였을 때 하나님의 구원을 이렇게 요청합니다.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로 내 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악한 세력들의 참소와 거짓 증인들 때문에 고민하며 괴로움에 있는 분이 있다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그 수렁에서 건져 넓고 단단한 반석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구원의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했던 다윗의 글 시편 27:1-14을 함께 읽어봅시다.  

오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에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나의 죄악을 깨닫고 구원을 요청하는 것만이 참으로 우리가 살 길입니다. 감각 없는 자처럼 살지 말고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구원의 손길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물질, 건강, 성공을 위한 기도 못지 않게 악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기를 구하는 기도가 시급합니다. 죄악의 수렁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 바라볼 곳은 오직 구원의 손길입니다.  자신을 악의 수렁에 그냥 버려두지 마십시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자포자기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바라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그 손길을 바라십시오. 하나님은 자비롭고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그리고 악한 세력들의 압제로부터 나를 건지소서! (시37:40) 기도합시다. 내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만난 고난의 상황이 너무 깊고 힘겨워 연약한 나의 믿음이 위축되지 않도록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길 빕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시험에 들기 쉽고 악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사람들에게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기도가 또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한 주간 또 주님과 동행하며 죄악과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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