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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둘러보시는 예수님 (막 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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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둘러보시는 예수님 (Looking Around All Things of the Temple)
성경 : 막 11:11-18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 위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면 감개가 무량합니다. 우리는 ‘재림신앙’의 기치 아래 예언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초대교회 기도운동과 119 새생명 세우기를 통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부으심을 체험하고 새방언을 말하게 되고 병고침의 체험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11월 하순에 시작된 40일 작정 특별새벽기도회는 매일 새벽 수백명의 기도특공대들이 예물과 기도제목을 하나님께 올리는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일 많은 기도 응답의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고, 치유의 간증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위에는 지금 성령님의 은혜의 빗줄기가 내리고 있고, 준비된 심령 위에 언약의 축복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국가적으로도 연초에 있었던 1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이래 가장 높은 지지율(48.7%)을 받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줄 것을 바라는 국민들의 신망을 한 몸에 업고 새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시키면서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해는 참 바빴습니다. 새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의 급격한 추락(53.1%에서 두달 만에 25,4%로 떨어짐), 미국산 쇠고기가 몰고온 촛불시위의 거대한 물결, 가시화 된 불교계의 기독교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저항, 태안반도의 기름유출사고와 교회의 눈부신 봉사활동(교인 27만명, 10억 5천만원 순수헌금), 멜라민 파동 등 온 국민의 분노를 몰고온 중국산 먹거리, 그리고 세계인을 불안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미국의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전세계의 실물경제 추락, 등등.  

2008년 연말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밀어닥친 거대한 태풍 속에 전세계인이 숨을 죽이고 방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환율인상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선교정책의 적신호 앞에 서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사회문제, 높은 이혼율,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로 새삼 문제가 되고 있는 높은 자살률에 대한 교회의 책임이 점점 무거워오고 있습니다. 

지난 60년대 군사정권의 산아제한정책은 이제야 ‘그것이 가장 실패한 정책이었으며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다’ 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위적으로 일구어진 인구정책의 결과는 젊은이는 부족하고 노인들만 가득한 한반도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마다 어린이들이 가득하였고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로 이어지면서 피라미드 형태의 교회 구성원이 되었었지만, 지금은 역피라미드 현상이 되었습니다. 

우울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지난 수천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하나님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더 큰 역사를 이루어 오신 분이십니다. 지금은 오히려 교회들이 떨치고 일어나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비전과 꿈을 선포해야 할 좋은 기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며 점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둘러보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아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며 연말연시를 뜻있게 보내게 되기 바랍니다.  


1. 성전의 제반 상태를 점검하심 (적용적해석: 교회 영적상태 점검)
  
11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 먼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둘러보신 내용입니다. 마치 큰 행사를 앞두고 그 전날 밤에 총지휘자가 그 장소에 나와서 하나 하나를 점검해보는 듯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의 기물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성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셨습니다. 이것은 신약교회로 말하자면 주님께서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심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민족의 흥망성쇠의 척도였습니다. 성전이 말씀대로 바로 서고 그 속에서 제사가 말씀대로 잘 드려지고 모든 기물이 말씀대로 완비되어 있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훼파되거나 기물들을 빼앗기거나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할 때 민족은 멸망의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제반상태가 온전하다는 것은 나라 전체의 부흥과 번영에 직결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의 장면을 우리 눈 앞에 한번 그려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토록 고대하던 예루살렘 입성을 군중들의 환호와 함께 마치시고, 곧장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가 꼼꼼히 둘러보십니다. 주님은 성전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해 보십니다. 
  
점검을 마치신 후 예수님은 눈 앞에 전개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하지 않으시고 표정을 감춘채 돌아나오십니다. 주님은 그 다음날 하실 성전 정화작업을 계획하시면서 아픈 마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숙소인 베다니로 돌아오십니다.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은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받읍시다. 주님은 우리 교회에 들어오셔서 교회 안의 영적 상태를 꼼꼼히 점검해 보십니다. 우리 개인과 우리 가정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시는 예수님!  주님의 눈빛과 주님의 거동이 우리의 영적인 시야에 잡혀야 합니다.   

율법에는 성전에서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역할, 제사의 법, 제물의 내용, 제사의 날 등에 관한 까다롭고 복잡한 규정이 나옵니다. 성소의 바깥 뜰에는 제물을 잡는 번제단이 있고 제사장의 손을 씻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오른편에 떡상(진설병상)이 있는데,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떡이 놓여 있습니다. 이 떡은 안식일마다 갱신되는데, 굳은 떡은 내어버리고 새 떡으로 교체합니다.
  
성소 왼편에는 등대가 있는데, 일곱 가지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성소 안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향단이 있어서, 밤낮으로 향연이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향단 다음에는 휘장이 있고, 휘장 안은 지성소인데, 이곳에 언약궤가 있고, 언약궤 속에는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비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의 모든 것을 둘러 보셨더라.” 이 말씀은 한 해를 보내는 우리에게 좋은 그림자가 됩니다.
  
바깥 뜰의 번제단과 물두멍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죄사함 받은 성도들이 매일 십자가의 피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 서현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피로 깨끗함 받았는가를 살피시며 구원의 감격으로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가를 둘러보십니다. 

떡상의 떡은 생명의 양식, 곧 성경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 관리가 잘되고 있습니까? 묵고 검댕이가 피는 떡은 내어버리고 매주 새 떡을 올려놓았던 것처럼, 주일마다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생명의 말씀에 갱신을 받고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주님의 눈에 합격점을 받을 것입니다. 

등대의 빛은 성령의 조명을 의미합니다. 성소의 모든 것이 이 빛으로 정체를 드러내듯이, 우리의 마음과 주님의 교회의 모든 것이 인간적 지혜로 판단 받아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옳다 하시면 옳은 것이고 그르다 하시면 그른 것입니다.   
  
성소의 향단은 성도의 기도의 상징입니다. 향단의 향연이 밤낮으로 올라가듯이, 성도 개인과 교회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주님은 지금 둘러보고 계십니다. 
  
언약궤와 그 속의 십계명 돌비가 성전의 가장 깊은 중심에 거룩하게 자리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의 말씀이 성도 개개인의 심령 중심부에, 그리고 우리 교회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느냐 하는 것을 예수님은 둘러보고 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과 우리의 구역, 전도회, 사역팀, 그리고 우리 교회 전체가 둘러보시는 주님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까 생각하며 점검해보는 지혜가 있길 바랍니다.  

  
2. 장사꾼들을 쫓아내심 (적용적해석: 있어선 안 될 것 추방)
  
15절=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그 다음날 아침 예수님은 성전에 다시 들어가셔서 전날 둘러보시고 계획하셨던 성전 숙정을 결행하셨습니다. 성전 뜰에서 소와 양을 사고 파는 자들을 내어쫓으셨습니다. 성전세를 내기 위해 돈 바꾸는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을 지나다니는 자들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엄히 가르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17절).

무슨 뜻입니까? 성전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성전 안의 장사꾼들을 쫓아내신 것은 ‘있어선 안 될 것을 추방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쫓아내신 소나 양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비둘기는 매우 가난한 자들이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모두 거룩한 목적에 사용될 것들입니다. 돈을 바꾸는 것은 당시 이방 땅에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반 세겔되는 성전세를 바치기 위해 이스라엘의 화폐로 바꾸던 것을 가리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을 모두 추방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물은, 가령 유월절 제사를 두고 말한다면, 흠 없는 일년 된 수양입니다. 금년도 유월절 제물을 바치면서 그때에 낳은 어린 양이 내년의 제물이 됩니다. 그래서 유월절에서 다음 유월절까지 계속 이어가는 유월절 정신을 중단됨이 없이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왕에 죽이고 말 제물을 왜 흠 없는 것으로 준비하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그 양을 기르면서 하나님께 바칠 제물이라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기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그 정성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본절에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던 자들이 있던 곳은 성전의 가장 바깥쪽 뜰인 ‘이방인의 뜰’을 가리킵니다. 이곳에서 소나 양을 매매하게 된 것은 먼 곳에서 온 순례객들이 희생제물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매매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차츰 부패한 지도층과 상인들에 의해 본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타락한 인간의 탐욕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당국자들은 엄격한 검사제도를 이용해서 순례객들이 희생짐승을 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고, 이윤을 챙긴 상인들은 그 대가로 당국자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였습니다. 이 돈의 일부는 교활하고 부자인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상인들과 제사장들과 지도층들은 이 악한 사업에 동역자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처음 양을 팔게 된 곳은 예루살렘 성 서쪽의 양문이란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이 스데반의 순교장소이므로 스데반문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습니다. 그런데 차츰 매매 장소를 성전 가까이로 옮겨가서, 성전 바로 밖에서 팔다가, 마지막에는 성전 뜰 안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타락이라는 것은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일 듯 말 듯 조금씩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보셨고, 분노하셨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이들을 내어쫓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가정, 섬기시는 구역, 그리고 우리 교회를 살펴봅시다. 우리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러 가지가 생각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거룩한 성전이며,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전입니다. 행여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장사꾼의 모습들이 우리 안에 없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파는 자들’ 뿐만 아니라 ‘사는 자들’까지 추방하셨습니다. ‘파는  자들’이야 그 죄가 명백하지만 ‘사는 자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사는 자들’ 역시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파는 자들’의 부패와 악행을 방조하였고 그 범죄를 묵인함으로써 하나님의 전을 더럽히는 일에 실제적으로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 모두를 성전에서 추방하셨고, 이같은 영적 행위를 오늘의 교회에서도 추방하십니다. 

성전을 사모하시는 예수님의 열심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주님은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16절). 당시에는 사람들이 성전뜰을 예루살렘성과 감람산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하였습니다. 신성한 장소가 순전히 세속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정화의 차원에서 이러한 모든 세속적 행위를 금지시키셨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소위 우리의 ‘종교 행위’가 인간 편리나 사회적 유익, 물질적 이익 등에 관심을 갖는 수단으로 전락될 때 진정한 헌신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때 ‘기도하는 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곳이 아니라 인간 이익의 출처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모에 우리에게 있어선 안 될 것이 혹시 없는지 살펴보는 지혜가 있길 바랍니다. 

   
3.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찾으심 (적용적해석: 있어야 할 열매 찾으심)
  
13절=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본절과 14절은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찾으시다가 얻지 못하고 그 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앞서의 성전 정화 사건과 정반대되는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전 안에는 없어야 할 것이 있었지만, 무화과 나무에는 있어야 할 열매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있어야 할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팔레스틴의 무화과는 보통 일년에 두 번 열매를 맺습니다. 먼저는 3월 말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5, 6월경에 익습니다. 조금 늦고 더 큰 무화과는 8월에서 10월 사이에 땁니다. 본 사건은 유월절에 가까운 4월경이었으므로 예수님이 기대하신 것은 분명 익은 열매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당시 유대 백성들에게서 기대하신 것은  메시야 왕국의 완숙한 믿음이었다기보다는, 비록 미숙하나마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날 수 있는 믿음의 싹이라도 가질 것을 바랐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에게서는 오히려 메시야를 대적하는 패역함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풋열매조차 가지지 못함으로 저주를 당하였던 무화과 나무처럼 이스라엘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에 빠지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그로부터 40년 후인 AD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뿌리가 뽑혔고, 지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시던 예수님은 지금 우리 각자의 심령과 가정, 우리의 구역,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열매를 찾으십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 나무는 우리의 외식적이고 열매 없는 삶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20세기 초창기만 하더라도 우리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삼일운동 때 교회가 앞장 서고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새로운 학문이 소개되었고, 학교와 병원들이 이만큼 자리잡게 된 데에는 교회의 노력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소망이었고 등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교회의 수는 많아지고 대형교회들은 즐비하지만 한국교회가 무슨 열매를 맺고 있는가 라고 반문해 보면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좋은 일은 고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받기가 일수이고, 교계안에는 믿지 않는 자들과 타종교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사건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일년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 답게 한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는 열매가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있어야 할 열매가 있는지 살펴보고 계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서현의 성도 여러분!
  
금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의 시선에 맞춥시다. 둘러보시는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봅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은 예수 이름으로 과감하게 추방합시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열매를 주님께서 찾고 계심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맙시다. 성령의 부으심을 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능력 있는 성도로 성장해 갑시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우리 가정 속에, 우리 교회 속에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혀가는 은혜가 넘치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순오 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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