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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품고 (빌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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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품고 (빌 2:1-11)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느낄 때도 있고, 반면에 나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 자기 스스로가 한 일에 대해서 자랑스러운 그런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내가 봐도 나를 용납할 수 없는 그런 후회스러운 행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어두운 기분과 분노와 혈기와 감정과 스트레스가 일시적인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러한 느낌을 바꾸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꾸어야 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어두운 자기 감정을 바꾸어야 됩니다.  또 그러한 건강하지 못한 자기 반응으로부터 벗어나고 해방되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상황과 사건의 희생자이기 전에 자기 감정의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들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잘 믿던 못 믿던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진실한 믿음은 틀림없이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삶의 실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진실로 사모해 보십시오.  우리는 한 생애를 살면서 수많은 실망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실망과 염려들이 마음속에 가득 차 오르면 나도 모르게 자기 안에는 건강하지 못한 감정의 분노가 일어납니다.  화가 일어납니다.  분노는 한탄을 낳고 한탄은 신세타령을 낳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내 인생에서 만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자기 결론을 내리고 해답을 얻고 가야 됩니다.  보십시오.  똑 같은 환경, 나보다 훨씬 더 나쁜 환경, 나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힌 자식, 나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힌 남편을 만난 아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삽니다.  문제는 마음의 습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이 일차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습관의 피해자입니다.  삶이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기 이전에 내부의 것에 대한 표현이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각하기를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인간이 행동하고 반응하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것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싫은 것은 안 받습니다.  결국은 그 사람의 내면이 자기 반응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 심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내면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을 자꾸 남을 헐뜯고 있으면 결국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남 때문이라고 하는 이런 자기 어리석은 비판의식, 어리석은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대개 이것을 빨리 통과한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가서야 돌이켜 보면서 후회를 하며 한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닫혀진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움츠린 가슴을 활짝 펴십시오.  고맙고 감사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은 깨닫는 자에게는 충분한 기회를 주십니다.  깨닫고 나면 충분한 시간을 주십시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안에 넉넉한 것을 채우십시오.  자기 안에 귀한 것을 채우십시오.  자기 안에 신령한 것을 채우십시오.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나는 곳은 메마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갈이 있어도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복의 샘물이 있는 사람은 살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 주신 최상의 선물이 무엇일까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한 생애를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최고의 선물은 마음의 기쁨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그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면 그 인생은 병듭니다.  그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에 생기를 잃어버립니다.

환경이 좋아서 기뻐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기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골 골짜기와 같은 험난한 길을 걸어감에도 불구하고 기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 안에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카라'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황홀경,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죽고 사는 권세가 내 마음에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만날 수 있는 황홀경입니다.  지금 당장에 마음만 먹으면 어느 순간에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카라', '기쁨'이라는 말은 하늘의 은혜만 받으면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감격과 보화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기쁨의 요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기쁨의 집입니다.  떡집이라는 말입니다.  잔칫집이라는 말입니다.  유교는 제사 집입니다.  불교는 초상집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잔칫집입니다.  그래서 늘 모여서 복닥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늘 먹는 겁니다.  그래서 기뻐야 됩니다.  누가 예수를 가장 잘 믿느냐?  기억하십시오.  기쁘게 사는 사람이 제일 잘 믿습니다.

활기찬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기쁨이라는 에너지의 불꽃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가 무엇일까?  기쁨의 다리입니다.  기쁜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여듭니다.  기쁜 사람은 사업도 잘됩니다.  기쁘게 사는 사람은 신용도 합니다.  기쁘게 사는 사람은 사람들이 이끌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 생명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기쁨입니다.  어느 날인가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나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정들었던 저와 여러분들이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면서 육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본향에서 다시 만나자고 기쁨으로 떠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느 날 이 땅을 떠나갈 때에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다 두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아끼던 옷들도 두고 가야 됩니다.  다 두고 떠나갑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다 남겨두고 떠나갑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오직 기쁨의 기억을 가지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기억들을 선사하십시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파도를 일으키십시오.  내가 가기만 하면 기쁨의 도가니를 만드십시오.  그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바른 원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육체의 선물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영혼의 선물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기쁨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 그 사람과 기쁨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 기쁨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여기서 기쁨을 찾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2장 41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셨을 때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성전에 올라가신 사건입니다.  유월절에 예수님이 사시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성전에 그냥 머물러 계셨지만 예수님의 부모님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착각의 시간이 한 두 시간 정도가 아니라 하루 정도였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리고도 그 사실을 모른 시간치고는 절대로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사흘 동안이나 다시 오던 길을 살피면서 올라간 끝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이것은 우리 신앙인들의 보편적인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서도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줄로 착각했던 것과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때때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서도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착각이 오늘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한번 확인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과 삶 속에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하에 있을 때 평양에는 최봉석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을 잘 모르는 분들은 아마 최권능 목사님이라면 아실 것입니다.  그것도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예수 천당' 목사님이라면 아실 것입니다.  그것도 모른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최권능 목사님은 '예수 천당'이라는 말로 전도를 하셨던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 목사님이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검거되어 감옥에서 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매를 맞으시면서도 '예수 천당'을 외치셨습니다.  신음 소리를 내지 않고 예수 천당하며 매를 맞으시는 목사님에게 일본 순사가 묻습니다.
"너는 왜 예수 천당을 하면서 매를 맞느냐?"
그와 같은 일본 순사의 질문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삐져 나오니 듣기 싫으면 때리지 말아라."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의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으셨습니다.  그 분은 의식과 무의식,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꽉 차 계신다면 말을 해도 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으시다면 우리의 말과 우리의 봉사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것들이 있어서 냄새가 나고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이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서 설명하면 한 마디로 "네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다면"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만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사랑으로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겨야 한다.  넷째는 자기 일만 돌아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 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사랑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일은 열심히 하는 듯 싶은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자기 자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 다툼과 허영으로 일을 하게 되어 교회 안에 갈등이 깊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하여 자기만 잘 났다고 의시됨으로써 서로 자기 일만 할뿐입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협동과 협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십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언양영신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아닌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 언양영신교회와 교인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우리 교회가 세워지고 새 성전으로 옮겨오면서 풍요롭지는 않아도 그래도 나름대로 교회의 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과 조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런가를 한 번 스스로 평가해 보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모임과 일과 조직과 사람들 속에 과연 예수님이 계시는가?  예수님이 꽉 차 계시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말을 하고, 일을 하고, 봉사하고 있는가?  우리는 한 번 곰곰이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어쩌면 이미 빌립보 교회의 위기와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지 아니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아니하고 교만하여 일은 열심히 하지만 다툼과 허영으로 하여 이곳 저곳에서 갈등의 소리가 들리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다툼의 소리가 들려오게 되어 하나님께 걱정과 근심을 끼쳐드리는 교회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아직 심각하지는 않아서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간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 교회 안에도 큰 시험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건강하고 좋은 교회에 대한 희망과 소원을 가지고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이 교회마저 그렇고 그런 교회가 된다면 여러분들은 또 어디로 가셔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평생을 집시처럼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랑하고 방황하다가 인생을 마치셔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살핍니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조건 나에게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따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의 수준이 적어도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수준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강하고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하여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건강하고 바른 교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리면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옳은 생각과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옳은 생각과 일 중심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옳은 일과 옳은 생각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시는 줄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경 쓸 것 없이 그저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만 신경 쓰면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분명한 사실은 그것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옳은 일 속에서도 얼마든지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옳은 일과 옳은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상은 옳지 않은 생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 일과 생각의 중심에 계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마음으로 말미암은 옳은 생각과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는 옳은 생각과 일에는 갈등과 다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과 같이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만 돌아보지 않고 남의 일도 돌아보아 천국과 같은 교회와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일과 옳은 생각을 한다고 하여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교만하여져서 남보다 자기를 높이게 될 것입니다.  그 옳은 일과 생각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된다면 다툼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육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옳은 생각은 다 영의 생각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아무리 옳은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육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옳은 육의 생각은 그렇지 못한 육의 생각과 똑같이 사망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옳은 생각을 가지고 일을 옳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늘 충만하여 의식과 무의식 속에,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한 시도 떠나지 않으시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삶은 행동에서 오고, 행동은 생각에서 오고, 생각은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누구의 마음이 들어가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찢기고 상한, 그리고 교만한 마음이십니까?

욥기 10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욥기의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여도 내 원통함을 발설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그렇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실패합니다.  내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고 내가 있습니다.  괴로운 마음, 원통한 마음, 속상한 마음, 미칠 것만 같은 마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 때 그 말과 행동과 생각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행동과 생각과 말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갈등과 분쟁과 미움과 시기와 다툼으로 우리의 교회와 세상과 공동체와 가정은 깨져 나가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옳은 생각을 하면서 산다고 하여도 그 생각과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옳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음과 삶의 중심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해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봉사를 해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옳고 그름에만 얽매여서 내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어진 것은 알지도 못하고 살아온 우리의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모셔드리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단비와 같이 내리시는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이 촉촉이 젖어 생명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해 보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이 역사합니다.  그래야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생각이 옳아도 우리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신다면 어떤 생명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가지고는 절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의 삶 속에 생명이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평안이 여기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기, 이곳에 운행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때를 따라 새로운 싹이 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기만 하면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싹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품기만 하면 새로운 나무가 무성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아름답고 새로운 숲이 우거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리십시오.  무엇보다도 강하고 뚜렷하게 들려오는 영혼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자꾸 피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의 사랑에 생포 당하십시오.  머뭇거리지 말고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정복당해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하늘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성령님의 충만한 기쁨이 임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 속에 평화를 누리고 기뻐하는 것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돈 돈 하지만 정말 돈으로만 삽니까?  돈보다 귀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 보다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품는 작업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수입과 행복은 비례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돈과 재물에서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다고 하는 그런 큰 믿음의 눈을 떠보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떠서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희망으로 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을 활짝 펴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믿음으로 살고 있는 한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절망의 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내 마음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민감하십시오.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주 날 인도하시네
주께 내 맘 드린 후에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사랑할수록 주 날 사랑해
매일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그 분 안에서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날인가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고 증거할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우리 언양영신교회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은혜입니다.  성령입니다.  그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은혜를 사모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과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충만한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과 삶 속에 넘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가 없다면 생각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혜가 없다면 일도 하지 말고 봉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을 하든, 말을 하든, 일을 하든, 봉사를 하든, 나의 생각과 철학과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 충만한 교회와 가정과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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