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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할까? 기도할까? (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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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할까? 기도할까?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어느 생명보험 회사에서 성인남녀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보았답니다. 일상생활 중에 불안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62%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불안 요인으로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불의의 사고, 노후 문제 순으로 꼽았습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이라는 말을 완화시켜 ‘염려’라는 말로 바꾸어 질문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아마 100% 그렇다고 응답할 겁니다. 그렇죠. 세상에 염려나 근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솔로몬 같은 사람조차 염려와 근심이 있었죠. 전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아시다시피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백한 것을 보면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역사 가운데 보면, 나폴레옹 같은 사람도 염려가 많았어요.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호걸 중 하나가 아닙니까? 항상 용맹스러운 그를 보고 측근이 슬며시 물어봤습니다. “각하는 세상에 두려운 게 없으시죠?” 그러자 나폴레옹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웬걸, 나도 있지. 1주일에 한 번 이발사에게 면도를 할 때 혹시 이 자가 적들에게 매수당해 면도날로 나를 찌르면 어쩌나 몹시 염려가 된단 말이요.” 좀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그로서는 진지한 고백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청년은 청년대로 염려가 많습니다. 대학 못 가면 어떻게 하지, 졸업은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취직은 또 어떻게 하지? 결혼은 잘 할 수 있을까? 장년은 장년대로 염려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혹시 쫓겨나면 어쩌지, 사업이 망하면, 가정에 혹시 우환이 생기면, 자녀들이 혹시 잘못 되면 어쩌나 하고 염려합니다. 중년이나 노년도 나름대로 염려가 많습니다. 혹시 몹쓸 병에 걸리면, 혹시 사고가 나면, 혹시 노후에 먹고 살 게 부족하면, 혹시 일찍 죽으면 어쩌나 염려합니다. 심지어 아이들도 염려가 많아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엄마에게 대뜸 물었습니다. “엄마, 나 중학교 안 가면 안 돼?” 하도 주변에서 공부, 공부 하니까 염려가 된 겁니다. 이렇게 따져 보면, 대기업 회장인들 대통령인들 어찌 염려가 없겠습니까? 

여러분, 인생이 왜 불행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염려가 많아서 불행한 겁니다. 염려만 없앤다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염려 없애는 법(염려 퇴치법)을 함께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앞에 닥쳐오는 염려를 물리치고 늘 행복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1] 염려 : 백해무익한 인생의 독소

한 마디로 백해무익합니다. 인생을 망치는 독소입니다. 열심히 염려하면 인생아 잘 된다면 얼마든지 염려해야죠. 아무리 염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또는 목숨을)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염려해도 작은 키가 쑥쑥 자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수명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염려는 무익할 뿐 아니라, 아주 해롭습니다. 여러분, 염려라는 단어가 영어로 뭐죠? worry입니다. 우리말로는 별게 아니죠. “워리~” 강아지 부르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영어로는 이게 아주 무서운 단어입니다. 고대 앵글로색슨어 ‘워겐’(wyrgan)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는데, ‘물어뜯다’ 이런 단어입니다. 지금도 자주 쓰이지 않지만 영어 사전에 몇 번째 의미로 나와 있습니다. 잠17:22 말씀 그대로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good medicine)이라도 심령의 근심(crushed spirit)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심령의 근심이 바로 염려죠. 영어 성경 보면 crushed spirit이라고 되어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마음이 으스러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몸도 망가뜨립니다. 가장 단단한 뼈가 마를 정도니 몸이 남아나겠느냐 말입니다. 

실제로 염려 때문에 마음이 병들고, 이어서 육체까지 병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현대병 중에 심인성질환(心因性疾患 Psychogenic Disease)이 많잖아요. ‘신경성 ~ ’ 이런 마리 붙은 병들이 그런 겁니다. 이런 병들은 다 염려가 많아서 생기는 겁니다. 신경성위궤양, 신경성 관절염, 신경성 심장병, 심지어 신경성 기침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사자가 35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그런데 자식이나 남편을 보내놓고 염려하다 심장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무려 100만 명입니다. 염려가 무서운가요? 전쟁이 무서운가요? 염려가 전쟁보다 보다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한 심리학자는 염려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염려는 인간을 서서히 죽이는 느린 형태의 자살 행위(slow suicide)이다.”

염려는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망가뜨립니다. 여러분, 혹시 ‘노시보(nocebo)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플라시보(placebo) 효과의 반대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대로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아픈 사람에게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을 주고 괜찮을 거라고 했더니 정말 나았다는 겁니다. 노시보 효과는 그 반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면 정말 그렇게 나빠진다는 겁니다. 병들면 어쩌지, 내가 병들었나봐 이러면 정말 병들 수 있습니다.

[2] 염려를 이기는 법 : 기도 

염려가 백해무익하기에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반드시 염려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염려를 이겨보려고 합니다. 흡연과 음주, 정신안정제 복용, 대화(수다) 등으로 이겨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건 다 임시변통입니다. 잠시 마음을 돌려놓을 뿐, 금세 더 큰 염려가 엄습합니다. 어떤 사람은 또 점을 칩니다.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몰라요. 좋은 소리 듣고 싶어서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대개는 나쁜 소리를 듣고 옵니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죠. 설사 좋은 소리 듣는다고 해도 그 말이 정말 맞나 의심이 생기고 또 다른 염려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그런 게 거의 틀리기 일쑤입니다. 

어느 가수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할 때 어른들이 궁합을 보고 반대를 합니다. 궁합이 좋지 않고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30세 이전에 이혼할 거라고 점쟁이가 말했다는 겁니다. 그는 마음이 꺼림칙했지만 신앙이 있어서 무시하고 결혼을 강행했습니다. 지금 40대 중반인데,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걸 믿고 염려를 물리쳐보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러면 도대체 이 백해무익한 ‘염려’, 이 나쁜 놈을 어떻게 처치할까요? 일반적으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염려를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심리요법이죠. 마음을 바꿔 먹는 겁니다. 

어느 어촌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어부들이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몇 명 죽었습니다. 한 청년의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장례 치른 후 청년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갑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말립니다. 청년이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들의 아버지는 어디서 돌아가셨나요?” “그야 침대 위에서지.” “오늘 밤에 어디서 주무시죠?” “침대 위에서 자지.” “그러면 제가 바다에 나가는 것도 문제없잖아요.” 그 청년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죠. 생각을 그렇게 정리하면 염려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조차 근본적인 염려 퇴치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가라앉고 염려가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정말로 확실한 염려 퇴치법이 있습니다. 그 비법을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바울이 숱한 역경 가운데 염려하고 근심하다가 터득한 비결입니다. 말하자면 임상실험이 끝난 좋은 방법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사도라도 연약한 인간인데, 왜 염려가 없었겠습니까? 그는 복음을 전하다 수시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투옥됐습니다. 목숨에 위협도 느꼈습니다. 본문 빌립보서를 기록한 그때도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면서 ‘기쁨의 서신’이란 별명이 붙어 있죠.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염려를 물리치는 비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시죠. 6절. “아무 것(nothing)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everything)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를 중단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prayer), 간구(supplication), 구할 것(requests) 3중 강조입니다.

여러분, 염려의 반대말이 뭐죠? 평안입니다. 그런데 평안이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평안이 임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염려의 또 하나 반대말은 기도입니다. 본문 7절을 보시죠.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guard)” 기도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평안이 임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그 평안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병에 공기가 가득합니다. 공기를 빼내려면 어떻게 하죠? 물을 가득 채우면 됩니다. 일단 물로 가득차면 공기가 비집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하고 평안을 얻으면, 우리 마음이로 그득 채워져 있는 한 염려가 감히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공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하면 염려 안하고, 기도 안 하면 염려한다”(Prayer, No Worry. No Prayer, Worry.)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하면 가장 효과적일까요? 바울이 뭐라고 했죠? 다시 6절 하반절을 보세요. “ ...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려면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하고 맡길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맡기는 게 뭔지 잘 가르쳐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벧전5:7이예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cast)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맡긴다는 것은 던져버린다(cast)는 뜻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항하든지 망하든지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2005년 12월에 미국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습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한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다 1개월 된 아들을 이불에 싸서 3층 아파트 창밖으로 던지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침 아래서 구경하던 한 아마추어 야구팀 캐처가 아이를 받은 겁니다.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때 신문(동아 2005년 12월 17일자) 기사 제목이 이랬습니다. “3층서 던진 아기 나이스 캐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이스 캐처(Nice Catcher)이십니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염려는 던지면 받아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죠? “나이스 캐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분인 줄로 믿습니까? 우리의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하고 위험해도 하나님은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여호와 이레(창22:14)이심을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정말로 아멘이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게 염려를 퇴치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강력합니다. 그런데 감사하면서 하는 기도는 초강력(superpower)합니다. 

아마 바울이 전하는 이 말씀을 들은 빌립보 성도들은 큰 은혜를 받았을 겁니다. 바울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 말씀대로 기도하고 이 말씀대로 평안을 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이 모두 다 익히 알고 있는 바울의 간증이 있죠.(행16:16~40 참조) 바울이 빌립보에 처음 갔을 때 귀신 들려 점치는 여종(신내린 점쟁이)을 구해줍니다. 정신이 온전해지자 점을 칠 수 없게 됐는데, 그 주인이 수입이 끊어지지 난리를 칩니다. 

바울을 이단자로 몰아 고발했고 바울과 실라는 체포됩니다. 애매하게 매를 잔뜩 맞고 차꼬에 채워진 채 투옥됩니다. 그런데 그 밤에 어떻게 하죠?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밤중에는 상처가 더 아팠을 텐데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했다는 겁니다. 이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내일 아침이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감옥에서 영영 썩어야 될지도 몰라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염려가 됐겠습니까?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앞날을 책임져 주시리라 확신했습니다. 믿음으로 맡기고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나이스 캐처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셨나요?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유유히 걸어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멋지게 역사하십니다. 

간수가 졸고 있다 깜짝 놀라 자결하려고 했죠. 불쌍하잖아요. 무슨 죄가 있어요?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바울이 도망가지 않고 간수를 만류합니다. 잠깐! 죽지 마! 우리 여기 다 있어! 탈옥하지 않을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죽을지도 모르는데 간수 살리려고 희생하다니! 감동 받은 간수가 집으로 모셔다 목욕 시키고 잘 대접합니다. 

그때 바울이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 받으리라!” 이미 마음이 활짝 열린 집안 식구들이 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로마시민권자임을 밝히고 당당히 출옥합니다. 간수 가족들이 루디아의 가족들과 더불어 빌립보교회 개척 멤버가 된 거예요. 빌립보교회 교인들치고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기에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그대로 실천함으로 승리했을 겁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이처럼 놀랍고 놀랍습니다. 인간이 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묻겠습니다. 염려하실래요? 기도하실래요? 여러분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세상 사노라면 계속해서 염려가 엄습해 옵니다. 그러나 결단하고 기도하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여러분, 앞이 캄캄합니까? 눈 딱 감고 기도하십시오. 잠이 안 옵니까? 기왕 못자는 것 일어나 기도하십시오. 한숨이 나옵니까? 우리의 신음조차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부디 오늘 말씀대로 염려 대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염려 많은 이 세상이지만 늘 평안을 누리고 행복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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