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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 주는 삶의 넉넉함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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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주는 삶의 넉넉함 (롬 8:31-39)


기독교교육학자 중에 글리슨 주니어(Gleason Jr.)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인격이 8 단계를 거쳐서 발달한다고 주장하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형성되어야 할 것이 믿음(Basic trust)입니다.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소중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우리에게 평안함과 편안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불안해서 이 세상을 한시도 평안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남자들의 이발 풍습이 좀 바뀐 것 같기도 합니다만 예전에는 남자들이 이발소에서 이발을 할 때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곤 하였습니다. 이발 하시는 분이 면도를 할 때보면 아주 날이 잘 선 면도칼을 가지고 하는데 사람들은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칼을 목에 드리대는데도 쿨쿨 잠을 잡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만일 믿음에 병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이 기분 좋은 일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로의 한 부자가 8살 난 외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부자가 8살 난 외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다 네 재산이 욕심나서 접근하는 사람들이니 절대로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아들은 그 아버지의 유언을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누구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병이 되어 그는 자식도 믿지 못했고 아내도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성공적으로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지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대신 그는 가정과 인생을 지키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속담이 가장 위험하고 나쁜 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속담을 만들라면 저는 이렇게 만들겠습니다. ‘발등 찍히는 한이 있어도 믿고 살아라.’ 발등 없이는 힘들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사람은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탈북자와 사회적 취약계층들의 자립과 자활을 위하여 열매나눔재단을 세웠고, 열매나눔재단에서는 2년 전 저들의 자활을 위하여 메자닌 아이팩이라고 하는 박스 공장을 세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염려하였던 일입니다. 사업에 전혀 경험이 없는 목사가 북한의 탈북자들을 고용하여 주 5일 근무와 최저 임금 124만원을 약속하고 시작한 사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살아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두 개의 공장과 한 개의 커피숍으로 사업이 확장 되어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저희 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이 공장과 커피숍에게 매달 백 몇 십 명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공장과 커피숍이 ‘탈북자들은 안 돼’라는 인식을 ‘탈북자들도 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당장 망하여 그 해로 문을 닫았을 것 같은 우리 재단이 망하지 않고 점점 그 무모한 도전을 늘려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저는 이 일을 시작할 때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탈북자들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사업에 대하여 염려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 대하여 제가 설교 중에 하였던 말을 여러분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좀 불경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은 뒀다 어디 쓰냐?’였습니다. 

우리 재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 무모한 도전에 도전하였고 결국은 믿음대로 승리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재단과 재단이 운영하는 공장의 승리에는 또 다른 믿음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탈북자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메자닌 아이팩 공장을 시작할 때 제가 재단 직원들에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째는 ‘다른 재단과 경쟁하지 말아라.’였고 둘 째는 ‘탈북자들을 믿어라.’였습니다.

다른 재단과 경쟁을 하면 목적과 수단이 바뀝니다. 재단의 목적은 재단이 아니라 탈북자입니다. 그러나 재단이 다른 재단과 경쟁을 하게 되면 재단의 목적이 재단이 되고 우리의 목적인 탈북자들은 그것을 위한 들러리가 되고 맙니다. 목적을 상실한 재단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고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재단과 경쟁하지 말아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 사역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탈북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저들에게 발등 찍혔을 때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미리합니다. 저는 그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 자기를 신뢰하는가 신뢰하지 않는가를 동물적인 본능으로 압니다.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이 함께 공장을 하여 그 공장이 성공할 확률은 제로입니다.

발등 찍힐 위험이 있어도 사업에 성공을 하려면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들의 신뢰를 얻어내야만 합니다. 탈북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저들을 믿어야만 합니다. 우리 재단의 실력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람들이 잘 믿어주려고 하지 않는 탈북자들과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믿음입니다. 저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승리할 수 없습니다.

소중한 믿음은 사랑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글리슨 주니어는 태어나서 제일 처음 시기에 형성되는 그 믿음 (Basic trust)이 사랑을 통하여 형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온 집안의 관심이 아이에게 집중됩니다. 아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받게 됩니다. 아기는 그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배가 고파 울면 젖을 주고, 기저귀가 젖어 울면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아기는 부모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통하여 세상을 신뢰하게 됩니다. 세상이 믿을만 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신뢰가 기본으로 형성된 아이는 건강한 인격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기 때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라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충분치 못한 관심과 사랑이 아이에게 불안감을 줍니다. 세상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불신을 뿌리 깊게 심어 줍니다. 세상과 사람을 믿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것은 평생 그 아이가 걸머지고 가야할 핸디캡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특히 어린 아이는, 더 특별히 버림 받은 어린 아이는 사랑 받아야 합니다. 충분히 사랑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어린이들과 특히 버림 받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저들이 충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저들을 사랑해 주어야만 합니다.

제 큰 손녀 민희는 지금 4년 8개월 3일이 되었습니다. 민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큰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이 뉴욕인데 아이 엄마와 아빠가 놀이 삼아 미술관과 박물관을 데리고 다녀서 그런 모양입니다. 작년 여름 한국을 다녀간 후 민희가 저와 제 아내를 아주 감동시킨 명화(?)를 그렸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17층 아파트를 자기 나름대로 기가막히게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 아파트 안에 아주 밝은 표정으로 춤을 추는 듯한 여자 아이를 하나 그려 놓았습니다. 민희 엄마가 민희에게 이게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습니다. 민희가 엄마에게 대답하였답니다. ‘이곳은 사랑 받는 곳이야. 이곳에서 소녀는 사랑을 가득 받어.’

민희에게 예쁜 드레스가 있습니다. 집에서도 그 옷만 입고 있어서 제 엄마가 아이에게 그 옷은 특별한 날만 입는 옷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손녀가 아주 기가막힌 대답을 하였답니다.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하고 있으니까 매일 특별한 날이야.’

지금 저희 집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평시에는 8명, 주말에는 10명 반이 삽니다. 주말에는 막내 아들 내외가 오는데 막내 며느리가 임신 중이어서 10명 반이 됩니다. 우리 손녀 민희와 세희는 온 가족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가족 모두가 민희와 세희를 사랑합니다. 민희와 세희 때문에 행복해 합니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습니다. 그것이 지나쳐 아이가 버릇 없어 지는 것을 조심해야 하지만 저는 러브 하우스인 우리 아파는 17층에서 우리 민희 세희가 가장 중요한 어린 아기와 아이일 때 그와 같은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우리 민희와 세희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주고 싶습니다.

막내 아들이 남산 쪽방 봉사를 늘 하곤하였습니다. 도배도 하고 또 쪽방에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롯데 월드도 가고 눈 썰매장도 가고 하는 봉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쪽방 아이들을 데리고 롯데 월드를 다녀와 찍은 사진들을 자기 홈 페이지에 올려 놓았습니다.

한 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계집 아이 하나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제법 예쁜 아이었는데 왠지 사나워보였습니다. 어렸을 때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도 사나워집니다. 제 막내가 그 아이의 사진 밑에 이런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애 눈에는 왠지 가시가 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 네 다섯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의 눈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사실 아이도 순한 아이가 예쁩니다. 그렇게 눈에 가시가 있는 아이는 예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막내가 저를 감동시킨 글을 이어 썼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사랑 곱빼기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지금도 쪽방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하고 들어가는 아이들이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쪽방의 아이들은 대개 그렇지 못합니다. 누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쳐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대어주면서 한글을 깨우쳐 주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도 가고 눈 썰매장도 갑니다. 아이 때 받아야 할 사랑을 받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우리 청년들의 봉사가 세상을 아름답게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사랑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 대신 미움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관심 속에서 냉대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을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정작 자식들을 그것을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병들었습니다.

그 병든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있습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여 경제는 전보다 많이 나아졌는데 삶은, 마음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하고 사납고 딱딱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지 못해서 우리는 병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는데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도 못할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그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자기 사랑받고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아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조그마한 일도 상처를 받고, 아무것도 아닌 일도 오해하며 사나운 눈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을 불신하며 자신과 세상을 힘들게 하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루를 쉬셔야 하리만큼 최선을 다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기도 하시며 더 나아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시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사실 그것을 모릅니다. 지식적으로는 아는데 실제적으로는 모릅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민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것을 느끼고 아는데 그래서 러브하우스도 그리고 맨날 특별한 날이라고 드레스를 입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모릅니다. 느낄 줄 모릅니다.

그리고는 고아처럼 삽니다. 늘 불안해 하고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격하고 의심하며 삽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가지고 살면서 정작 삶의 여유와 넉넉함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므로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늘 성경에 나오는 단어와 표현과 같은 환난과 핍박과 곤고와 어려움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세상 풍파는 전혀 격어보지 못한 사람과 같은 부드러움과 넉넉함과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고 자기를 위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나아와 예배하시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이 바울의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삶의 넉넉함을 가지고 남들은 지옥처럼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사랑을 가득 받는 러브하우스로 그려내고 매일 매일 드레스를 입고 행복해 하는 특별한 날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우리 민희 같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힘드십니까? 외로우십니까? 상처 받으신 일이 있으십니까? 삶이 무거우십니까? 답답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그와 같은 것들을 넉넉히 이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위하시는데 세상이 좀 힘들면 어떻습니까? 좀 답답하고 외로우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여러분들이 건강해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괴롬 많은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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