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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롬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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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롬 15: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죄수들은 타에 의해 감옥이라는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수도사들은 스스로 산 속 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둘 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독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죄수는 내내 환경을 불평하거나 타인을 저주하기 때문에 감옥이 그야말로 감옥입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깊은 진리를 찾아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도 며칠씩 굶어도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보냅니다. 감옥의 죄수가 수도사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감옥은 수도원이 되고, 수도사가 불평을 하며 죄수와 같은 마음을 품으면 수도원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행복과 삶의 가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잠 11:29)    

행복은 찾는 자만이 누릴 수 있도록 은밀한 곳에 두라는 창조주의 명을 받는 천사들이 '긴급회의'를 가졌습니다. 바다 깊은 곳에 두자는 주장, 높은 산에 두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교활하고 야망있는 인간이 그 정도는 쉽게 찾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와 무산됐습니다.  한 천사가 인간의 마음에 두자고 했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자기 마음을 잘 볼 수 없으리라는 것 이 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이때부터 행복은 마음 깊은 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1832-1905)는 중국 내지 선교에 힘쓴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에는 피아노를 조율하지 않습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조율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조율하십시오." 테일러는 고아원도 경영했는데, 항상 그날 아이들에게 먹일 양식을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오래 전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경계선 문제로 장기간 분쟁을 계속했습니다. 이같은 분쟁은 급기야 무서운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1900년 부활절 아침 아르헨티나의 한 사제가 그리스도의 부활 및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화해와 형제의 우정을 맺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론했습니다. 그는 이같은 강론을 아르헨티나 각지에서 했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칠레까지 가서 했습니다. 

그의 이같은 노력으로 두 나라는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무기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군함은 상선으로 개조되었으며 무기를 만들던 공장은 공업학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국민 사이에는 신뢰가 생겼고 그리하여 대포를 녹여서 그리스도상을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드디어 1904년 3월 13일 동상의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전에는 적이었으나 이제 두 나라 백성들은 동포에게 느끼는 사랑을 서로서로 교감하였습니다. 동상이 제막되고 태양이 질 무렵 두 국민은 무릎을 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동상 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구주 예수의 발밑에서 끝까지 유지하기로 서약한 평화를 만약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깬다면 즉시 이 상들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라." 

그 때 모세나 쟈라 사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들은 이 기념상을 세계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의해서 세계는 확실히 인류에게 미칠 평화에 관해서 큰 교훈을 배울 것입니다." 그 후로 90년의 세월이 흘렸으나 이 그리스도상은 지금도 여전히 무언의 설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선한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한 마음 같은 목적을 가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 하는 가운데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함 같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아메리카의 장로교 선교사인 원한경(Underwood, Horace Horto) 박사는, 언더우드1세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여, 60평생을 연세대학교를 위해 바친 분인데, 그는 매우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합니다. 

1935년 이화 대학의 새 건물이 준공되어서, 그 집을 세 개 건축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에 가서 돈까지 얻어온 스와인 하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명월관에서 성대한 축하회를 베푼 일이 있었합니다. 좌장격인 윤치호 박사의 인사말이 끝나자, 원한경 박사는 선교사를 대표해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합니다. 

"우리 아버지(언더우드1세)가 한국에 와서 여러 지방을 선교하러 다니던 중에 하루는 어떤 시골의 조그마한 가게(상점)에서 다리를 쉬고 있었더랍니다. 그 가게에는 비교적 물건이 많았으므로, 아버지는 인사말로 주인을 보고 ' 당신 가게에는 물건이 많습니다.'고 했더니, 그 주인 하는 말이 '저의 집에는 없는 것이 없지요.'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슬며시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여보! 없는 것이 없다니요"? 우선 무엇도 없고, 무엇도 없지 않소?'하고 나무랐더니, 그 주인은 천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없는 것은 없다구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아버지는 이 말에, 참으로 말이라는 것은 하기에 달린 것이라고 탄복해 마지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한국말은 변화가 많고 재미가 있어서 '없는 것이 없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구비되어 있다는 뜻인데, '없는 것은 없다'고 하면, 다만 '이'자가 '은'자로 변했을 뿐이건만,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라고했다 합니다. 
   
괴테의 집에는 언제나 정치가, 문학가, 군인, 실업가들을 괴테의 문학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담화를 나누곤 했다합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이 타인의 흉을 보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합니다. 그럴 때면 괴테는 눈을 날카롭게 반짝이면서 엄하게 말했다합니다. "여러분, 종이 부스러기나 음식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남의 흠이나 음담패설을 흘리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더러운 말을 모두 주워 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을 저의 집에 가져오지 마십시오. 흠을 보는 것은 공기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의 개학 첫날이었다합니다. 1학년 남자 어린이가 교장에게 왔는데 그 아이는 겁을 먹었는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반은 어디 있어요?" 교장이 그 아이를 자기 반에 데리고 갔을 때 담임선생은 그가 늦은데 대해 꾸중하지 않았습니다.  "리처드, 우리는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단다. 자, 여기가 네 자리란다." 리처드는 어깨를 펴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곧 그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그 때 교장은 그 담임 선생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 선생은 늦은 학생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우에 합당하게 말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 선생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그 아이가 새 학기를 즐겁게 출발할 수 있는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에드워드 어빙이 병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한 소년을 문병했습니다. 그는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곧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얘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 단다"라는 한마디 말로 위로했습니다. 그러고 그는 병실을 떠났는데 소년은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소년은 병상에서 일어나 집안사람 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대요"라고 외치며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신다는 확신이 그 소년을 변화시켰고, 그 마음에 새로운 힘을 샘솟게 했습니다.
  
한입으로는 말씀은 한입 혹은 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구동성입니다. 이는 마음의 일치가 전제될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화합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수 요인임을 일깨워 줍니다. 교회는 마음과 목적 감정들이 일치가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미 우주선 패스파인더호의 화성착륙은 "천문학의 승리"였다고 평가들 합니다.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세운 과학자는 요한 케플(1571∼1630)인데 그는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단순히 원형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초점으로 타원의 궤도를 그린다는 이론을 폈다합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말합니다. "천문학자는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연이라는 책에서 무언가 찾도록 허락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일 뿐입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 육상선수가 있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가운데 미 NBC방송의 한 기자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최선을 다함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은 훌륭한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하이든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이 대답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셔서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작곡한 곡 가운데 유명한 곡이 '천지 창조'라 합니다.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톤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그는 이 위대한 '천지 창조'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입니다. 그때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곡이 공연될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휘를 하던 지휘자는 정말 놀랍게 이 음악을 하나님 앞에서 지휘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좌석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든이 갑자기 청중들을 중단시키면서 말합니다. "아니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외국의 어느 동시집에 이런 글이 있다합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의 대답은 "아니요."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그것도 아니요."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 인생이 주님과 함께 할 때 주님의 향기가 내 속에도 생겨나고 이웃에게도 번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 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롬11:36) 그러기에 우리가 구할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고 만물의 근원이고 섭리자이시며 그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진흙과 같은 나에게도 주님의 영광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하모니가 울려 퍼지려면 성도의 마음과 뜻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성도 개개인이 그리스도와 주와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다 밀접하게 그리스도와 연합 할수록 성도 상호간의 조화도 완벽해 지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더욱 기뻐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수록 이것은 기대 하기 힘든 과제로 남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그 양식과 모범과 영감과 능력을 그리스도에게서 취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께서 추구하신 방식 그분이 보여 주신 모범을 따르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됩니다. 주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라고 기도 하셨고 겟세마네에서도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세세로 돌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위한 것은 배설물과 같은 오물(빌 3:7―8)로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삶의 자세 때문에 의의 면류관이 자신에게 예비되었다고 단언하였습니다(딤후 4:8)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바울은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함이 마땅함을 밝히면서 성도가 각기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힘쓸 것을 명하였습니다.
성도가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고 타인의 기쁨을 추구하여야 할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된 사랑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구속할 죄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라는 교훈은 서로 사랑으로 섬기라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일맥 상통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실천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을 본받아 사는 데 있어서 인내와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한다고 증거 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되  한 마음 한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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