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말씀의 프로가 됩시다 (막 7:24-29)

  • 잡초 잡초
  • 259
  • 0

첨부 1


말씀의 프로가 됩시다 (막 7:24-29) 
 
 
❚성경의 해방

지금 우리는 말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주 교회 와서 설교를 들을 뿐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라디오나 TV를 통해 내로라하는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서점에는 수많은 종류의 성경과 설교집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집집마다 성경이 한두 권 이상 없는 분이 없고 교회 오면 방문자용 성경이 쌓여있기 때문에 굳이 성경을 안 가져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만큼 말씀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씀의 홍수시대이기에 오히려 말씀 소중한 줄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을 쉽게 접하고 가질 수 있게 된 게 그리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백여 년 전만 해도 성경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유럽은 로만 가톨릭, 즉 천주교가 지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기록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는 것 자체를 엄하게 금지했습니다. 

함부로 성경을 번역하면 이단으로 취급받아 큰 벌을 받거나 심지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라틴어로 된 성경은 사제와 몇몇 특정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신학교 다닐 때 라틴어를 공부했는데 참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소유할 수도 없고 오직 교회 와서 미사 드릴 때 신부를 통해 듣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에 의해 억압 받을 때 드디어 성경이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천주교의 잘못된 성경해석에 반기를 들고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됩니다. 천주교회가 루터를 파문하고 죽이려 하자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며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그것도 시장에 가서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독일어를 듣고 번역하게 됩니다. 

때마침 구텐베르크가 금속인쇄기술을 발명하여 성경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게 됩니다. 루터가 목숨 걸고 성경을 번역하고 그것이 인쇄술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말씀을 해방시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임을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성경의 해방’ 사건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용기와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오늘 우리 손에 이 성경이 이렇게나 많이 쥐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성경의 해방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현재도 그런 답답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 때 우리 선배 목회자들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은 아무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성경을 연구하고 제멋대로 해석하는 바람에 이단도 나오고 사이비도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반드시 전문 훈련을 받은 목회자들만 연구하고 해석해야 한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전문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성도들에게 너무 성경을 많이 가르치지 마라. 너무 배우면 문제 생긴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는 표정이신데 실제 이런 말을 연세 지긋한 목사님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경 너무 많이 가르치면 성도들이 기어오른다. 조심해라.”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성경은 결코 몇몇 목회자나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토록 우리 교회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성경공부반이나 큐티 훈련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괜히 성도들이 성경 좀 안다며 교만해지거나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일을 우리 교회가 열심히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교회 안에 성경의 해방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다만 목회자들의 전문적인 지도와 도움을 받는 것을 전제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전하는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몇몇 목회자들만 독점해 가르치지 말고, 그 교회 모든 성도에게 말씀을 깊이 있게 가르쳐 스스로 말씀을 읽고 연구하게 하고 전 교인이 다 말씀 전문가가 되게 할 때 교회가 살고 성도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말씀의 해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정말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 말씀전문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말씀의 전문가 프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권위 있는 새 교훈

첫째, 무엇보다 먼저 설교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그 유명한 마태복음 5~7장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은 무엇입니까? 28~29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산상수훈의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무리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깜짝 놀라지요? 왜 놀랐습니까? 주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무리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인데 그들이 어디 설교를 한두 번 들었겠습니까? 매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율법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개신교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심히 성경을 읽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매일 듣던 서기관들의 말씀과는 정말 비교가 안 되는, 게임이 안 되는 놀라운 권위가 주님의 말씀에 있음을 느낀 것입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이 있지요? 많은 닭들 중에 한 마리 학처럼 빛나는 설교,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가 축구를 하는데 그 가운데 단 한 사람의 프로가 있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그런 군계일학의 설교자, 말씀의 프로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고 그야말로 경탄을 금치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 다니며 늘 설교를 많이 듣지요? 그런데 수십 년 교회 다니며 수 천 수 만 번 설교를 듣다가 어느 날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깜짝 놀랄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설교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풀어주는데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고 내 마음을 울리고 심령을 감화시키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세상 설교가 다 이런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너무나 권위 있는 말씀을 대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처럼 오늘 그 자리에 모인 무리들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듣고 그렇게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 1장 21절에도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실 때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서 “권위 있는 새 교훈”(1:27)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갈릴리 지방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제일 큰 꿈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권위 있는 새 교훈을 전할 수 있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지만 제 설교를 들은 성도들이 감동 받고 은혜 받아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놀라며 저 목사가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소문이 퍼지는 그런 꿈 말입니다. 

물론 이 꿈을 이루려면 아직 한참 더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 꿈을 꾸며 저 자신도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 저와 동역하는 우리 교회 모든 목회자도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그 소문이 저절로 퍼지게 될 그런 말씀의 전문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 부목사님들 교육전도사님들도 있지만 제가 다른 것으로는 잔소리 안 해도 설교에 대해서는 참 지적도 많이 하고 잔소리도 많이 합니다. 목회자가 다른 무엇보다 말씀의 권위가 있는 설교자가 되지 못하면 다른 것 아무리 잘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기도해 주세요. 우리 교회 강단이 말씀의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 잘한다고 소문나는 것보다 말씀 좋은 교회라고, 담임목사뿐 아니라 모든 목회자가 권위 있는 설교자요 말씀 정말 잘 가르치는 말씀 전문가들이라고 소문이 나야 합니다. 얼마 전에도 새가족 환영회를 했는데 많은 새가족들이 “왜 우리 교회를 다니기로 정하셨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말씀이 좋아서요. 설교가 귀에 잘 들어와서요.” 지금 제가 설교를 잘하냐 못 하냐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살아 있고 설교가 은혜가 되고 말씀을 능력 있게 권세 있게 가르치는 교회라야만 좋은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정말 부담이 많이 됩니다. 설교 준비 정말 열심히 하고 더 설교 잘 해야겠다는 큰 부담감이 저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쁩니다. 

우리 교회가 말로만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교회”가 아니라 정말 말씀으로 소문나고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분명한 목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목회자 모두 더 노력하겠습니다. 제 서재에는 이런 글이 크게 써 붙여 있습니다. “강단에서의 1분이 서재의 1시간!”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저도 노력할 테니 여러분도 목회자들이 말씀의 전문가, 프로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을 통해 앞으로 또 어떤 더 좋은 말씀이 나올까 기대도 하십시오. 그 기도와 기대에 부응하는 목회자들이 되겠습니다.

❚말씀의 프로 성도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 그 교회 목회자 설교자들도 말씀의 전문가, 프로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말씀의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을 듣고 배우는 사람들이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분명히 말씀을 듣는 데도 프로가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데도 프로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마다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듣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 자체의 수준이 높아야 하겠지만 똑같이 정말 열심히 준비한 귀한 말씀을 전하는데 어떤 이들은 스펀지처럼 말씀을 쏙쏙 흡수하고 은혜를 받는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옥토’라고 부릅니다. 

같은 씨를 뿌려도 마음 밭이 좋아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막 4:20). 하지만 똑같은 말씀 받고도 어떤 이들은 길가처럼 마음 밭이 딱딱하게 굳어서 말씀이 튕겨져 나오는 느낌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말씀을 잘 받기는 받는데 마음에 이런 저런 근심과 잡생각 때문에 그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데도, 배우는 데도 전문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루돌프 보렌이라는 설교학자는 성령이 설교자에게도 역사해야 하지만 청중들에게도 역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배 때 기도하면서 “오늘 목사님이 설교할 때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달라”고 기도하지만 실은 말씀을 듣는 자기 자신에게도 성령이 역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나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칠 때 설교자나 가르치는 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능력의 말씀,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고 동시데 듣는 성도들, 배우는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 말씀을 받을 때 거기에 말씀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전문가, 말씀의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평생 교회 다니면서 고작 주일에 교회 와서 설교 시간에 30분 말씀 듣고 돌아가는 식으로 신앙생활 해서는 평생 아마추어 성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여러분 스스로가 말씀의 프로가 되어야 내 신앙도 잘 자라고 내 삶에 다가오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에 말씀에서 답을 찾고, 특히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올 때 그 문제들을 말씀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말씀의 프로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가 되어야 내 삶이 능력 있는 삶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됩니다. 그런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말씀의 프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세 가지 기준을 말씀드릴 테니 잘 들어보시고 이 세 가지에 내가 점수를 몇 점이나 받을 수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첫째, 말씀에 대해 머리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머리 부분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머리 부분에 있는 귀로 말씀을 듣고, 눈으로 말씀을 보고, 입으로 암송하고, 뇌로 머리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되라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서 가장 모델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사도행전 17:11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함께 찾아볼까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들이 바로 진정한 말씀 듣는 전문가, 말씀을 받는 프로들이었습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진정 들을 귀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너그럽다’는 말은 헬라어로 ‘유게네스’로 “혈통이 좋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 바탕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유게네스’라는 말은 가축이나 식물의 품종이 좋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도 씨가 좋은 사람들, 품종이 좋은 영적인 바탕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똑같은 씨를 뿌려도 열매가 많이 나오는 것이고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은혜 많이 받고 반응도 빨리 나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에 대한 흡수력이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또 “간절한 마음으로”라는 말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열심히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말씀에 대한 열정과 열심이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말은 그들이 설교 때 들은 말씀, 성경공부 때 배운 말씀을 성경을 통해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자기 스스로가 성경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려고 애썼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이해력도 뛰어나고, 말씀을 스스로 공부하려는 자발성도 유난히 강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눈으로, 귀로, 머리로 받아들이는 좋은 자세 때문에 베뢰아 사람들은 진정한 말씀의 프로였던 것이지요. 여러분도 베뢰아 사람들의 자세를 가지면 다 말씀의 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말씀에 대해 가슴으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열심히 듣고 읽고 공부하면 뭐합니까? 아니, 오히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물고 가슴으로 안 내려오면 우리는 머리만 커져서 하나님도 머리로 판단하려 드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와 거리가 먼 차가운 성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머리로 받은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으로 은혜 받고 감동과 감화를 받는 성도가 되라는 뜻입니다. 심장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뜨거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말씀에 대해 몸으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적용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듣고 공부해도, 또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아도 그 말씀대로 살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읽을 때마다 그 말씀의 뜻을 깨달으면 즉각적으로 내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아, 이 말씀은 나보고 이렇게 살라는 뜻이구나, 이런 것은 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하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주의할 것은 반드시 나 자신이나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 직장 등 공동체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받고는 엉뚱하게 남한테 적용하고 요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편보고, 아내보고, 며느리나 시어머니보고, 다른 성도보고 적용하면 실패입니다. 반드시 나를 중심으로 적용하되 뭉뚱그려 대충 피상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아주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그 말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내 삶이, 내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문항에 몇 점쯤 되는 것 같습니까? 이 세 가지를 잘해야 정말 말씀의 프로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권위 있고 권세 있는 신앙인으로 거듭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이런 경험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주신 말씀으로 설교를 맺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7~3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으니라!” “주여,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아멘! 이 고백이 바로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