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김의 주관자 (삼상 17:47)

  • 잡초 잡초
  • 412
  • 0

첨부 1


이김의 주관자 (삼상 17:47)


오늘은 현충일이 겹쳐진 6월 첫 주일입니다. 잃었던 나라, 침략당한 나라를 살려내기 위해 수많은 순국열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제정된 날이 현충일입니다. 국어사전에는 현충일을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올해는 6.25 동란이 발발한지 60년째 되는 해입니다. 6월이 오면“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하고 불렀던 6.25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잊어진 노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도 남북은 대치상황으로 전쟁의 위험마저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행정안전부 등 각종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6.6%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답했고, 중,고생의 절반 이상이 북한의 남침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육군사관학교 신입생도의 34%가 우리의 주적이 미국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지금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현역 육군 소장이 간첩으로 국군작전계획 기밀문서를 북한에 넘겼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6.25전쟁이 남긴 가장 큰 민족사적 교훈이 있다면“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것입니다. 뜻밖에도 이 위대한 교훈을 전파하고 있는 곳은 전쟁이 일어났던 한반도가 아니라 미합중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국전쟁 기념공원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는 해마다 평균 32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공원을 방문하는 미국인들과 세계의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프랭크 게일로드의 조각 작품인 판초우의를 입고 행군하는 육해공군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여기에 새겨진 한 문구 때문이라고 합니다.“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그리고 그 아래 은색 글씨로 새겨진 불멸의 메시지가 있습니다.“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두 동강난 한반도 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로운 국가로서의 민족적 생존이 가능하기까지는 미군 사망자 5만4246명,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사망자가 모두 62만8833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부상자가 미군만 10만3284명, 유엔군 전체는 106만4453명, 미군 실종자는 8177명, 유엔군 실종자는 47만267명을 집계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도 아들을 잃었고, 벤프리트 장군도 아들을 잃었고, 클라크 유엔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고,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24사단장 딘 소장은 전쟁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피 흘림의 희생위에서 오늘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는 말하기를“깊은 고난의 상처가 없이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개인에게 깊은 상처가 있을수록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처럼, 민족과 국가도 억압과 박해와 고통이 있을수록 위대한 민족이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거의 전쟁의 연속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의 상처 속에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찾는 민족이 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4절에는“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 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골절되었다가 회복된 곳은 다른 부위보다 더욱 튼튼해져서 다시는 부러지지 않는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현충일인 오늘 이 시간 6.25 전쟁의 상처를 상기(想起)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에 대해 생각하고자 합니다. 

一. 힘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힘이란 인간의 힘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힘은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진정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27)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왜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왜 북한 공산주의자(共훌主義)들에게 침략을 당해 비극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우리에 게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민족이 이만큼이라도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살게 된 것은 그동안 힘을 길렀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 둘째, 끊임없는 전쟁. 셋째, 계속되는 천재지변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패배한 원인은 언제나 종교와 신앙의 타락이요, 도덕의 타락이요, 인격의 타락 때문이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에는 약 9천만 명의 크리스천이 있었습니다. 신부들의 수만 해도 6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만 5천명 밖에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의 종교가 형식만 남아 신앙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英國)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했을 때에 감리교의 존 웨슬리 목사가 신앙과 교회의 갱신운동을 통하여 영국을 구출해냈습니다. 영적인 힘을 길렀기 때문에 무혈혁명(無血華命)으로 영국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민족 공통체가 유지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한데, 첫째는,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야 하고, 둘째는, 군사력에 부응하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통치자와 국민간의 신뢰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 국방력, 경제력, 민족의 단결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도 확보하고, 경제적인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문제는 서로의 신뢰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드컵경기 때와 같이, IMF때 금모으기에 동참했을 때와 같이 단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 그들은 돌 하나 던지지 아니하고 단결된 신앙의 힘으로 성 주위를 돌기만 했습니다.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성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7:47의“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무척 어려운 때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세계열강들의 틈바구니에 있어서 국방이나,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외세의 영향에 매우 취약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 분문은 어린소년 양치기 목동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로 하나로 죽이고 나라를 건진 이야기입니다. 그 힘은 사람의 지식이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을 의지한 다윗은 시편 18편 1절~3절에 말하기를“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편에 계셔서 내 힘이 되시면 누구도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십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에게 힘이 되셔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5월 3일자 한 일간지에 이러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세기의 도박으로 불리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적 보급로 끊고 후방차단, 성공확율 5000분의 1뚫어.”<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최권삼> 이러한 기적의 역사는 믿는 자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二. 역사의식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4천 년 전에 행해졌던 유월절을 오늘날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쓴 나물을 먹으며 광야에 나가 스스로 고생하면서 출애굽 때 조상들의 고난을 지금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 중에 있는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게 되면 호텔베란다에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잠을 자며 유원절을 지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게 되면 배 갑판에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기거하며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종교 교육이요, 유태 민족이 신앙을 계승해 나가는 역사의식입니다.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일본군의 폭격으로 격침당한 전함 아리조나호의 굴뚝 위에“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the Pearl Harbor)”라는 문구(文句)가 써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기념관을 세워서, 1천 5백 명의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놓고 역사적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 도시 한복판에는 2차대전 때 폭격을 당해 불에 탄“카이제 빌헬름 1세 추모교회”건물을 지금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뭔헨 근처에 있는 다카오 유태인 수용소에는, 6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유태인이 학살당했던 치욕의 수용소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곳에는 독일의 청년들이 연일 줄을 지어 자기 조상들의 수치를 보면서, 그런 일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일본의 동경대학은 60년대 후반 좌익 학생들의 데모로 말미암아 본관이 불타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2년 동안이나 학생을 모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타 버린 건물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여 역사의 교훈을 삼고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백성은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지나친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일에 미국이 걸림돌이 된다고 하며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6.25 동란 때 유엔군 5만 명이 넘게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의 거름위에 오늘 우리들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토록 고마운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맥아더만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6.25때 통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까지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그 주동자들이 우리사회를 발칵 뒤집은 촛불시위를 주도했습니다. 거기에 공영방송까지 촛불시위는 순수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거짓방송을 계속하면서 호도(糊塗)했습니다. 

공산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산주의에 대해 치를 떨고 있습니다. 그 많은 탈북자들이 왜 생명을 걸고 국경을 넘었겠습니까?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가 우리나라입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적화통일은 안 되잖습니까?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사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다 망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아 발악하고 있는 곳이 북한입니다. 아무리 통일이 좋아도 공산주의자들이 원하는 대로의 통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심지어 어떤 친북단체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에 이 나라를 김정일 통일수령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됩니다. 역사를 통해 나아갈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잊지 않고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식을 유태인에게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 동포가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까지 종려나무 600만 구루를 가로수로 심어놓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육백만 학살 추모관 야드바샘(Yad Vashem)”이라는 600만 동포의 희생자 추모관을 세워 놓고 해마다 유치원 어린이들부터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그곳을 찾도록 하여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에 대한 최후의 항전지인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요새 마사다에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은 1년에 한 차래씩 반드시 그곳을 찾도록 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우리 역시 잊으면 아니 됩니다. 

우리도 결코 6.25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공산주의의 국가들의 패망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 성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6.25전쟁으로 불에 탄 교회가 2,122개나 되었고, 총살을 당하거나 납치된 목사가 523명이나 됩니다. 불에 탄 가옥이 60만 채, 미망인이 20만 명, 전쟁고아가 10만 명에 달합니다.

三. 신앙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 시대에는 전쟁을 반드시 신앙의 교훈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왜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 했느냐를 깊이 깨달아 신앙의 교훈으로 삼은 것입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수백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오직 자유만을 찾아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비록 굶어 죽을지언정 사람대접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살기를 원해 월남한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교훈을 잊으면 아니 됩니다. 역사의 교훈, 신앙의 교훈을 분명히 볼 줄 아는 지혜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 대한 항복문서에 조인할 때 맥아더 원수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이 사실은 정치적 문제도, 경제적 문제도, 군사적인 문제도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학적인 문제이다.”이 말은 일본 패전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신앙적인 교훈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입니다. 일본 천황이 자신을 신(神)이라고 말할 때에 맥아더 원수는, 자기는 신과 대화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천황이 스스로 신이 아니 라고 확증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천황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7:47의“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의 6일 전쟁 때에 이스라엘은 3차에 걸친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지만 마지막 4차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키신저는 이것을 두고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패한 원인은 교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교만해서는 아니 됩니다. 겸손하게 역사의 교훈을 깨달아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거울삼아 믿음과 자유와 평화를 굳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를 해치려는 악한 세력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평화와 승리는 여호와께 속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가정인 교회의 평안과 부흥을 위해 더욱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더욱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 나라에 더욱 넘치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