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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의 프로가 됩시다! (요 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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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프로가 됩시다! (요 4:19-24) 
 
 
❚아마추어 같이...

얼마 전 잠깐 어떤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데 어떤 개그맨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그러자 거기 모인 관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립니다. 저는 안 웃었습니다. 아니 ‘못’ 웃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저 사람들은 왜 웃는지 모르기 때문에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사를 알아듣고 웃는 사람은 신세대, 못 알아듣고 남들 웃을 때 못 웃는 사람은 구세대라는데 저도 구세대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아마추어 같이” 라고 한 것일까? 아마 상대방이 무슨 서툰 행동을 해서 그런 말을 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흔히 서툴거나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아마추어’라고 부릅니다. 반면 어떤 일을 능숙하게 잘해내는 사람을 보고 ‘프로’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은 제대로 쓰는 것일까요? 이것을 알고 싶어서 영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아마추어’(amateur)란 ‘취미로 즐기는 사람, 비전문가’이고 ‘프로’란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즉 ‘직업적, 전문적’이라는 뜻이다.” 그렇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참으로 엄청납니다. 예전에 한 번 인용한 이야기입니다만 오래 전에 제가 속한 노회에서 목회자 축구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대 팀 선수 중에 프로구단 할렐루야 팀 선수 출신이 하나 있었어요. 혼자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며 우리 팀을 초토화 시키고 심지어 하프 라인에서 강슛까지 해서 골인을 넣는데 모두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 다음부터는 시합 규정에 아예 프로나 선수 출신은 출전을 금지한다는 새로운 조항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다음부터 심판밖에 할 수가 없었지요. 따라서 아무리 아마추어 여러 명이 덤벼들어도 프로 하나 당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왜요? 사전에 나온 대로 아마추어는 비전문가고 취미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고, 프로는 전문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어떤 분야든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법입니다.

영적 세계,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도 아마추어가 있고 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아마추어 신앙인이고 프로 신앙인이냐? 교회 다닌 지 오래 되었다고,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반드시 프로는 아닙니다. 영적 세계의 프로는 신앙생활을 어떤 자세로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교회 오래 다녀도 그저 취미 생활수준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영원한 아마추어 성도고, 정말 간절한 마음, 절실한 마음으로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프로 성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1~2에서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며 그들을 마치 밥도 아직 못 먹고 젖을 먹어야 하는 간난아이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인들이 방언도 잘하고 은사도 풍성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많았는데 놀랍게도 그들을 영적인 어린 아이요 젖먹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인들의 신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끼리 편을 갈라 다투고 여전히 음란 등 많은 죄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이 익숙하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 아주 잘 믿는 성도처럼 보이더라도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에 머문다면, 즉 삶이 변화되지 못하고 취미 수준의 겉도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영적인 어린 아이요 젖먹이요 아마추어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신앙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취미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걸고 믿어야 합니다. 겉도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이왕 예수 믿을 것 교회에 깊숙이 들어가고 영적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예수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전문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성도들이 아마추어 취미 수준의 신앙인이 아니라 프로 신앙인이 되려면 어떤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어야 하는지 몇 주에 걸쳐 구체적으로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몇 주간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 바랍니다. “나는 아마추어 성도인가? 아니면 프로 성도인가? 진정 신앙의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것을 잘해야 하는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깊은 깨달음과 결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간절함과 애타는 심정이 있는 예배

오늘은 예배의 프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예배에도 전문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일 되면 다 같이 교회 와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예배하지만 엄연히 예배에도 전문가가 있고 비전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배에도 프로가 있고 아마추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우리가 예배의 전문가, 예배의 프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다가 사마리아라는 곳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옛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있던 곳인데 북 왕국이 망하면서 앗수르 사람들이 각지에서 이방인들을 데려와 살게 하는 바람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혼혈아들이 많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데 유대인들은 혼혈아 사마리아인들을 멸시 천대해서 사람 취급도 안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도 물론 하나님을 믿었지만 이렇게 유대인이 멸시하며 왕따 시키자 자기네들끼리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성경도 모세 오경만 인정하고 예배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안 가고 사마리아 옆에 있는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제단을 쌓고 자기들끼리 드립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 야곱의 우물가라는 곳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하지만 마음속에 깊은 갈증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 있었는데 다 죽었든지 이혼을 했든지 헤어지고 지금 사는 남자도 정식 남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사마리아인이라고 유대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터에 동족들에게조차 우리말로 치자면 ‘화냥년’ 소리를 들으며 산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속에 갈증과 애타는 심정이 있는 사람이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오래 동안 신앙생활 하며 주일마다 수요일과 새벽마다 교회 와서 예배하며 간절함도 감격도 없었는데 몸이 아프든지 먼 곳에 출타하는 바람에 부득이 예배를 오랫동안 못 드리다가 오랜만에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뜨겁고 예배가 소중하게 느껴집니까? 혹은 내 인생에 아주 힘든 일이 생기거나 큰 위기가 닥쳐왔을 때 아버지 집에 와 예배하면 얼마나 가슴이 메어지고 큰 감동을 받습니까? 습관화 된 신앙생활에는 간절함도 갈증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내 마음에 애타는 심정이 있고 간절하게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참된 예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나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이런 간절함과 갈증, 애타는 심정을 가지고 예배에 참여할 때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예배의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갑자기 예배에 대해 물은 이유도 바로 이 갈증과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19절부터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에 대해 대화하다가 다짜고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 즉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고 당신네들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맞습니까?” 얼핏 들으면 예배의 장소에 대한 질문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맞냐는 것입니다. 

우리 사마리아인의 조상을 따라야 하는지 당신네들 유대인을 따라야 하는지 물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엉뚱하게 예배의 장소에 대해 물은 까닭은 사마리아 여인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은 공허와 갈증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의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아요. 기쁨도 없어요. 마음의 공허와 저 마음속 깊은 영적인 갈증이 해결되지 않아요. 이럴 때 얼마나 답답합니까? 얼마나 속이 탑니까? 사마리아 여인도 아마 조상들을 따라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늘 드렸지만 마음속의 공허와 갈증이 해결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여인은 인생의 공허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 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결혼도 다섯 번이나 해보고 지금도 다른 남자와 살면서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멸시나 받고 사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조상들 말처럼 그리심 산에서 열심히 예배해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제물을 바쳐도 그 마음속 깊은 공허와 갈증이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의심이 생긴 것이지요. “과연 우리 조상들 말처럼 이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것이 맞나? 혹시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배의 감격이 없고 공허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장소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향해 주님은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예배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냐,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냐 하는 장소가 본질이 아니라 예배의 진정한 본질은 두 가지, 바로 예배의 대상과 예배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어디서 예배하든 상관없이 이 두 가지, 예배의 대상과 태도가 바르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뿐 아니라 너의 마음속 깊이 뿌리 받은 그 인생의 공허와 갈증도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바로 21절입니다. 함께 읽을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것은 ‘예배의 대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산이냐 저 산이냐 예루살렘이냐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누구시냐? 24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의 태도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영적 예배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목적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신령한 예배로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고백하고 영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예배는 진리의 예배여야 합니다. 진리의 예배란 예수님을 모시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신 주님 말씀대로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도 그 분께 나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된다는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첫째, 예배는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성부 하나님께,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는 누구를 통해 드려야 합니까? 성자 예수님, 진리이신 주님을 통해 드려야 합니다. 셋째, 예배는 누구의 도우심으로 드려야 합니까?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신령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프로는 누구인가?

우리는 오늘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늘 주일과 수요일이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지만 지금까지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영과 진리의 예배,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왔는가? 아니면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 하나님도 안 받으시고 내 내면의 갈증과 공허를 조금도 해결 받지 못하는 죽은 예배를 드려왔는가? 다른 말로 나는 지금까지 프로페셔널한 예배자였는가? 취미수준이 아니라 전문가요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모든 것을 집중하고 투자하는 예배자였는가? 아니면 아마추어 예배자, 취미수준을 넘지 못하는 비전문가, 생명도 영적 감동도 없는 예배자였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의지해 제가 여러분께 몇 가지 질문을 할 터이니 이 질문에 마음속으로 대답하면서 자신의 예배 수준을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첫째,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드려왔는가? 최고의 예배란 매번 습관적으로 와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한 주간과 토요일에 기도로 준비하고, 오늘 받을 은혜를 기대하며, 미리 와서 기다리고 최선의 컨디션과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맞이하냐는 것입니다. 한 주간 삶에 지쳐 주일 아침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교회 와서 준비되지 않은 별 볼 일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은지, 기도도 없고 기대도 없으면 기쁨도 감격도 변화도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최고의 예배, 최고 수준의 예배가 아니면 안 받으십니다.

둘째, 나는 지금까지 정말 예배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왔는가? 한 주일의 삶이 주일에 드려지는 예배에 모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한 주간의 포커스가 주일이고 예배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내 수입을 쓰다 여유 생기고 남으면 헌금하는 것은 진정한 헌금이 아니라 먼저 주님께 따로 떼어놓고 드려야 하듯이 주일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따로 떼어놓고 어떤 일로도 방해받거나 침해받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일성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성수는 신앙의 기초요 ABC요 시작입니다. 이 부분이 안 되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주간 살다가 남는 시간 하나님께 드리지 말고 한 주간 내 삶을 마음대로 살다 남는 끄트머리를 하나님께 드리지 말고 먼저 주일을 떼어 하나님께 바치고 한 주간을 이 주일과 예배에 포커스를 맞춰 기도하고 기대하며 보내라는 것입니다.

5월 한 달 동안 우리 교회 항존직분자 예배출석점검을 해보았습니다. 결과는 대실망입니다. 제가 왜 대실망이라고 할까요? 물론 부득이한 사정도 있겠고 예배 참석하고도 모르고 출석 체크 안 한 분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예배 결석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주(週)는 항존직 열에 둘 이상이 빠진 것을 보았습니다. 항존직이 이러한데 어떻게 서리집사님과 일반 성도들이 본을 받고 따라 오겠습니까? 항존직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 여러분, 교회봉사도 좋고 전도도 좋고 다 좋지만 내 교회에서 주일을 성수하고 다른 어떤 일로도 예배와 주일성수를 침해받지 않는 것 이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것이 잘 안 되면 아무리 좋은 성전 지어도, 다른 일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동안 목회하면서 느낀 우리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주일성수와 본 교회 예배의식이 다른 교회에 비해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아직 예배에 있어서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물론 누구 탓이 제일 크겠습니까? 목자인 저의 책임이 제일 크기에 저 스스로를 찢는 마음으로 엄중히 지적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심지어 교회의 지도자요 본이 되어야 할 항존직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주일을 범하고 예배를 범합니다. 이래서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부분부터 바뀌어야 우리 교회가 바뀌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바뀝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교회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예배생활 하나만은 아주 철저하고 강하게 강조하고 점검할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23절 말씀을 봅시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예배의 프로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도 나에게 예배하는 자가 세상에 참 많구나. 하지만 그 가운데 과연 내가 기뻐하고 받을만한 참된 예배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 나는 그런 참된 예배자, 진정한 프로 예배자를 지금 간절히 찾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예배의 가치가 떨어지고 예배자의 수준이 낮아진 것이 한국교회의 위기요 우리 성도들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흠 있는 제물이 되고 맙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예배의 진정한 프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영적 예배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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