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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임마누엘 가정 (사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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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가정 (사 7:14)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임마누엘 가정”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가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확인시킨 말씀이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임마누엘이란 말은“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반드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 대해 구약성경 역대상 11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가난한 가정의 양치기 목동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훗날 이스라엘 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왕이 아니라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윗 같은 왕이 한 번 더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와 그의 가문이 그토록 강성하게 된 비결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다윗의 가문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까닭은 농사의 이치와 같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온 땅에 같이 내립니다. 그러나 모든 농부가 풍년을 맞는 것은 아닙니다. 내린 빗물을 잘 활용하는 농부의 논밭에만 곡식이 풍성합니다. 이처럼 임마누엘의 은혜를 힘입으려면 우리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一. 죄악을 멀리할 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죄악이 있는 곳에는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말씀하시기를“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하셨습니다. 죄악은 하나님과의 사이를 멀리하게 하며, 죄악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힘입으려면 죄악을 멀리 해야 합니다. 욥기 22장 23절에“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하셨습니다. 불의를 멀리 버리면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다시 흥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범한 지난날의 죄를 없이하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도“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12절에“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회개함으로 깨끗해진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에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 말씀하시기를“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이처럼 회개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많은 죄로 인해 늘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이 많은 한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주실지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당신은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립니까?”“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당신은 돈이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아닙니다. 다시 붙여서 사용합니다.”그러자 늙은 수도사는 그에게 말하기를“당신이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며, 돈도 그 가치 때문에 찢어진 것도 버리지 않고 다시 붙여 사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어찌 깊은 애착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람이 어찌 찢어진 옷만 못하며, 찍어진 화폐만 못하겠습니까?”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서 쓰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는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목수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장 난 것도 잘 고칩니다. 목수이신 예수님의 공생애는 고장 난 영혼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장 난 심령들을 고치셔서 하나님의 고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二.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신명기 4장 7절 말씀에“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 곁에 오셔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쉬면 안 됩니다. 기도하는 하나님이 내게 오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말씀하시기를“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셨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쉼 없이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예수님의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인 성도의 길입니다. 

기도를 전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지만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어둠은 물러가지 않고 불빛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도 이와 같이 항상 우리의 생활을 감싸고 있습니다. 만일 어두운 방에 앉아서 스위치를 누를 생각을 하지 않고 어둡다고 불평하며, 나에게만 왜 이렇게 어두움이 있는가 하면서 실의에 빠져 남을 원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전기는 아주 가까운 곳까지 와 있습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빛이 방안 가득히 비치도록 구조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움을 운명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기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듯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내 생활 속에 영향력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기도”라고 하는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문을 열게 합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 속에 이끌어 오게 됩니다. 기도만이 우리 삶의 허다한 문제를 하나님께 넘겨드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서 전기의 스위치를 누르듯, 우리 생활 속에 광명이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곳에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말씀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닭고기 음식 가운데 KFC가 있습니다. 이 음식이 세계적인 체인을 두게 되기까지는 이러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음식은 미국 켄터키 주에 살고 있었던 Colonel Sanders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된 음식입니다. Sanders는 그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두 살 때 어머니는 개가 했습니다. 이렇게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한 산더스는 어려서부터 온갖 일을 다 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산더스는 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자주 치킨을 사다가 튀겨서 먹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켄터키 주 어느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지나다가 기름을 넣으러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여기는 음식 먹을 식당이 왜 없어.”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산더스는 집에서 자주 튀겨먹던 치킨을 튀겨 와서 배고파하는 고객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었습니다. 받아먹는 고객들마다 맛있게 먹는 것을 본 산더스는 주유소 길 건너편에 치킨 식당을 열었습니다. 그 식당을 경영하는데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그 식당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거기로 길이 나면서 산더스는 삶의 터전을 잃고 빗 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나이가 65세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자 아내는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은 산더스는 신경쇠약과 정신 착란증세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당 앞을 지나는데 교회에서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배당으로 들어가서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찬송은 어느 정신병자가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찬송 소리를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의 평안이 오고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날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얼마 후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모든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열심히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할 때마다 닭이 막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해서 교회 장로님께 여쭤보았더니,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닭울음소리를 듣고 회개했으니 그것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게시라고 했습니다. 산더스는 그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계속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도 기도할 때마다 계속 닭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그를 깨닫게 하시기를, 네가 잘 만드는 닭튀김에 양념 11가지를 넣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KFC라고 합니다. 그 후 산더스는 92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KFC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 그의 자산이 1조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곳에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三. 믿음의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크신 능력을 베푸시는 사람의 조건은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말씀하시기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삶의 핸들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운전하셔서 승리가 있는 곳으로, 행복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믿음의 가치에 대해“금보다 더 귀하다.”(베드로전서 1:7)고 했습니다. 이토록 소중한 믿음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 얻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로마서 1l장 17절에 말씀하시기를“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 얻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되 자주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당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자주 모이라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자주 들을 때 우리의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성한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셔서 능치 못한 일이 없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미국의 무디는 믿음에 대하여 말하기를“나는 믿음을 간구하면서 언젠가는 믿음이 내려와서 나를 번개처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 나는 로마서 10:17을 읽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나는 성경을 덮고 믿음을 간구했다. 또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 후 나의 믿음은 점점 자랐다.”라고 말했습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무디가 깊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무디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무디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무디가 무디된 것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였습니다. 

어느 날, 멘델스존이 유럽에서 가장 값비싼 오르간을 소장하고 있는 대성당을 방문했다가 그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자기도 한 번 연주해 볼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주자는“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 귀한 오르간을 연주하게 하겠느냐.” 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여러 차례의 부탁 끝에 멘델스존은 겨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오르간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고 환상적 음악이 온 성당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연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듣던 그 연주자는“대체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멘델스존이 자기의 신분을 밝히자 그 연주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이 늙은이가 눈이 멀어서 당신 같은 위대한 음악가의 연주를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악기이지만 연주자에 따라 소리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연주하시고자 하시는 손길을 방해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우리의 삶을 주님의 손길에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분께 맡기면 하나님이 내 삶을 보람되고 축복이 가득한 곳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위해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시간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四.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시기를“내가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단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추진하시는 계획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며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로 하여금 세상 죄를 담당시켜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오셔서 초대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옥을 향해 줄달음질치는 불신 영혼들을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후 각 시대마다 수많은 성도들이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증거는 용인 양지에 있는 순교자 기념관과 양화진, 그리고 절두산에 가서 보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그토록 많은 주의 종들의 피를 흘리게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불신 영혼들을 건지기 위함입니다. 

구원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로마서 10장 13절~15절에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해야 합니다. 전하되 힘써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은 농부가 씨앗을 논밭에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을 심는 곳에 싹이 나고 자라나듯,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나타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주셨기에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를 이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원한다 해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즉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어떤 가정에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죄악을 멀리할 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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