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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식사 기도의 중요성 (잠 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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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기도의 중요성 (잠 18:12-20)
  

요즘 우리 사회에 트위터라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트위터라는 말은 영어 트위트(tweet)에서 따온 말입니다. ‘지저귀다. 재잘거리다’ 라는 뜻입니다. 즉 트위터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140자 이내로 표현하는 공간입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사람, 아니면 단체 등에 팔로어로 등록해서 실시간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상황을 함께 공유하는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겨 선수인 김연아 선수가 가장 많은 팔로어를 두고 있답니다. 약 14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를 중심으로 1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며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커다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법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간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짧은 글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위기가 더 익숙해지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서로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문자만으로 이뤄지는 대화는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제가 기계를 싫어하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대화 방식에서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더 심각하게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대화는 서로 얼굴과 몸짓을 통해 표현되는 그 사람의 감정을 읽으며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에는 여러 유형의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의 유형이냐에 따라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달라집니다. 

말의 유형에는 입술의 말이 있습니다. 입술의 말이라는 것은 마음과 진심이 없는 말입니다. 말을 하기는 하지만 영향력이 없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우리들은 대체로 ‘잔소리’라고 말합니다. 잔소리를 들어서 변한 사람은 없습니다. 잔소리를 들어서 변하는 것이 있다면 성격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잔소리하면 공식처럼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누가 있겠습니까? 엄마 아빠들입니다. 아이들을 보는 순간부터 주문이 쏟아집니다. 밖에 나갔다가 문을 열고 들어와 신을 벗는데도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옷 갈아 입고 빨리 상에 앉아 밥 먹어라’ 고 말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신을 다 벗습니다. 신발을 벗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없습니다.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으려면 상에 앉아야 합니다. 당연한 것을 사명감을 가지고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끊임없이 합니다. 잔소리는 말은 하는 사람도 지치고 듣는 사람도 지칩니다. 말은 많이 하는데 말의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관계만 악화됩니다. 정말 영양가 없는 말입니다. 

머리의 말이 있습니다. 머리의 말은 지식, 정보의 말입니다. 상대방이 모르는 지식과 정보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런 머리의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나, 업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직장인들입니다. 설교도 잘못하면 단순한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식과 정보의 말은 생활에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머리의 말은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지식이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지 못하고 위대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머리의 말의 대표적인 예를 성경에서 찾아 예를 들어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왕에게 자신들은 메시야로 오신 아기를 경배하기 위해서 찾아 왔다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메시야가 어디에 탄생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펼치며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정확한 지식이었고 정보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리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제사장과 서기관의 정확한 지식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의 지식으로 인해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머리의 말의 한계입니다.

말의 유형 가운데는 가슴의 말이 있습니다. 가슴의 말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말입니다. 느낌의 말입니다. 이런 가슴의 말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인격의 변화를 일으키고 상처를 치유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감동과 변화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전하고 받으면 그곳에 감동이 있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가슴의 말을 가지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변화를 만드셨습니다. 가슴의 말을 가지고 영육간의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실 때 입과 머리로 대화하지 않고 가슴과 가슴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여리고 성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키가 매우 작은 신체 장애자였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로서 동족들로부터 미움과 멸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군중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삭개오에게 다가가셔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삭개오의 외로움과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하신 예수님의 가슴의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의 말이 삭개오를 감동시켰고, 변화시켰습니다. 삭개오가 세리라는 직업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백성 됨을 선포하는 변화는 입의 말, 머리의 말이 아닌 가슴의 말의 힘이었습니다. 

가슴의 말에는 ‘기쁨의 말, 슬픔의 말, 분노의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가슴의 말을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하는 가슴의 말은 사람을 기쁘게 할 수도 있고 슬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고 절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가슴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쓴 에모토 마사루 교수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한신대 상담학 교수였던 정태기 교수가 그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세미나에서 마사루 교수는 참석자 중에 정태기 교수를 앞으로 좀 나와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는 컵에 실내에 있는 분수대의 물을 떠서 정태기 교수에게 주면서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감동적이고, 감사한 일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라’고 하더랍니다. 

정태기 교수는 순간적으로 일본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땅에 복음이 전해져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이렇게 새로워지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라고 마음으로 외치는데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더랍니다. 마사루 교수는 정태기 교수가 들고 있던 물을 건네 받아 준비해 놓은 급속 냉동기에 넣었답니다. 영하 150도까지 순간적으로 내려가는 기계랍니다. 순간적으로 그 물을 얼린 후에 꺼내서 물의 결정체를 보여주는데 물이 육각수의 물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마사루 교수가 얼어 있는 물을 녹인 후에 다시 물 컵을 정태기 교수에게 전해 주면서 이번에는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혐오하고 분노했던 일을 기억하고 그 감정을 표현해 보라고 말하더랍니다. 정교수는 13살때 자신에게 치명적인 수치심을 안겨 준 사건을 기억하면서 온갖 욕을 다 퍼부었답니다. 마사루 교수는 물 컵을 받아 다시 급속 냉동기에 넣고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체를 보았는데 육각수였던 물이 다시 보통 분수물로 바뀌었더라는 것입니다. 마사루 교수는 우리가 마시는 물조차도 우리가 마음의 품는 감정에 따라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준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식사를 하면서 하는 식사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식사를 하기 전에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까? 음식을 먹기 전에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기쁘게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우리에게 귀한 영양분이 됩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우리에게 영양분이 되기보다 잘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의 손길과 마음은 음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음식을 만들며 화를 내고, 불평하고, 억지로 하면 그 음식이 복된 음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기쁨과 사랑스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면 음식을 만드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 음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음식을 먹는 가족들이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어머니들은 음식을 만들면서 참으로 귀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아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었기에 먹는 것이 변변치 않은 가운데서도 건강하게 자란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밥을 짓기 전에 먼저 성미를 떼었습니다. 성미라는 것은 밥을 하기 전에 쌀의 십일조를 떼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그것은 모아 교회에 가져와 주일날에 성미 통에 넣었습니다. 그 곡식은 목회자들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성미 양이 많이 모아지면 교회에서 식사를 마련하면서 사용하였습니다. 또는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성미를 떼는 그 마음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솥뚜껑을 열고 밥을 푸시기 전에 주걱으로 밥에 십자가를 긋고 밥을 펐습니다. 미신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지만 그 행위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음식은 나누는 가족들의 건강을 축복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의 가슴의 말을 담아 밥을 짓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음식을 먹는 가족들이 건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은 음식의 영양분을 생각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좋다는 것은 찾아다니면서 먹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보약을 먹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부족한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함과 기쁨의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보약 중의 보약입니다. 

미국 루이빌 의과대학과 침례교회 연합회에서 ‘말과 마음의 영향력’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어느 교회의 여집사님 20명을 선출해 접시에 침을 뱉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세균을 넣어 증식하는 속도를 조사했습니다. 20명 모두의 침 속에서 세균이 빠른 속도로 증식했습니다. 그 날 낮에 그 여집사님들의 남편들에게 연락을 해서 집으로 가기 전에 교회에 먼저 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의사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취지를 설명하며 남편들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20명 중에 10명의 남편에게 집에 돌아가서 오늘 저녁에 자신의 아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해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20명의 남편들에게 아내들에게는 비밀로 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10명의 남편들은 서로 토론을 한 후에 각자가 가장 감동이 되는 선물과 말을 준비해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전하고 사랑의 말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남편들이 출근을 하고 20명의 여집사님들을 다시 불러 접시에 침을 뱉게 했습니다. 그 침에 똑같이 세균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명의 침에서는 전날과 똑같이 세균이 빠르게 번식을 하는데 10명의 침에서는 세균을 넣는 즉시 죽더라는 것입니다. 그 10명은 바로 전 날에 남편으로부터 사랑의 선물을 받고 감동의 말을 들은 여집사님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담긴 가슴의 말은 세균이 꼼짝 못할 만큼 저항력이 강하게 만듭니다. 사랑의 말은 집중력과 창의력을 증가시킵니다. 사랑의 말은 에너지를 몇 배로 증가합니다. 가슴의 말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가슴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가슴의 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분노의 가슴의 말은 분노의 행위로 돌아옵니다. 감사의 말은 감사로 돌아옵니다. 저주의 말은 저주로 돌아옵니다. 축복의 말은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마태복음 10장 12절에서 13절의 말씀을 찾아서 읽어봅시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축복의 가슴의 말은 상대방에게도 축복이 되고 말을 하는 나에게도 축복이 됩니다. 내 가슴에 어떤 감정의 말을 품느냐는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에 대해 귀한 교훈을 주시면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의 칭찬과 격려가 좌절에 빠진 사람을 일으킵니다. ‘잘했어, 너도 할 수 있어’ ‘그래 그래 괜찮아’ 라는 격려는 영혼의 산소와 같은 생명의 언어입니다. ‘칭찬과 격려’ 는 행복한 삶과 행복한 가정과 행복한 교회를 만드는 보약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하나님, 좋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괜찮습니다’ 한 주간도 살아갈 때에 생명을 살리는 가슴의 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은혜가 모든 성도들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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