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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행 1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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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행 19:1-12)


오늘 본문은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전도와 그 결과의 일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에 속한 한 주였던 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여기서 아시아란 오늘날의 터키의 일부를 가리킵니다. 당시 에베소는 해상과 육상을 통한 운송의 거점도시였습니다. 지중해연안 도시들 중 수리아의 안디옥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어깨를 겨루던 대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전부터 아시아에서 전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행16:6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시아가 아니라 환상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마게도니아로 건너가서 유럽전도를 한 바울이 이제 아시아에서 전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간 것은 그러나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행18:18-22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안디옥으로 갈 때 에베소에 들렸고, 거기서도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했으며,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였지만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는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안디옥으로 향한 바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사람들에게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할 때 그는 아마도 전에 아시아에서 전도하고자 애썼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던 사실을 유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던 일이기에 아무리 사람들이 청한다 할지라도 성령의 허락 없이는 행하려 하지 않으려 조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대신 바울은 고린도에서부터 그와 동행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거기에 머물게 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에 나타난 사람이 아볼로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서 성경해석학과 철학으로 이름난 도시였습니다. 아볼로는 거기서 수사학을 익혀 탁월한 언변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성경학자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조금 앞서는 행18:24에서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디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행18:25는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것은 회개는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 관해서는 아직 잘 알고 있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아무튼 에베소에 온 아볼로는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행18:26). 

그가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 중에는 바울이 남겨놓고 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볼로가 하는 말을 들은 그들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쳐주었습니다(행18:26).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에베소에 남겨둔 것이나 그들이 있을 때 아볼로가 에베소에 온 것은 모두 훗날 바울의 에베소전도를 위해 필요하고 유익한 정지작업이었다고 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로부터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깨달아 알게 된 아볼로는 아가야 지방 곧 고린도로 건너가기를 원했습니다. 에베소의 믿음의 형제들은 그를 격려하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영접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남다른 은사 즉 탁월한 언변에 해박한 성경지식과 해석의 능력을 지니고 하나님의 도에 관한 더 정확한 지식을 새롭게 전수받은 그가 가자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많은 유익을 얻었으며(행18:27)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개적인 논쟁에서 힘있게 유대인들의 주장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행18:28). 

이렇게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선전하고 있을 때 바울은 “윗지방” 즉 갈라디아 지방과 브루기아 지방을 거쳐 에베소에 들어왔습니다(본문 1절).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신자들이 성령께서 계신다는 사실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본문 2절). 그들은 세례도 요한의 세례밖에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본문 3절). 바울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한 그이가 곧 예수님이심을 가르쳤으며(본문 4절) 그들은 그것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본문 5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고 모두 열두 사람쯤 되는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본문 6-7절). 

바울이 어디서나 그랬듯이 에베소에서도 먼저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본문 8절). 그러나 공공연하게 복음의 도를 비방하는 자들 때문에 회당을 떠나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을 따로 모아 두란노 서원의 강의실을 빌려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본문 9절). 두란노 서원은 오전에는 철학을 강의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중 가장 더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는 시간이었으므로 강의실이 비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시간에 그곳을 사용하여 매일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말은 바울이 전하는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낮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모여 공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랜 관습으로 잠이 쏟아질 시간에 깨어 말씀을 경청할 만큼 그들 안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놀라운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시아 주의 수도인 에베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바울과 배우는 제자들의 열심 이 년 이상 계속되자 에베소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소문이 퍼지게 되었으며, 그래서 아시아 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아무도 없게 된 것입니다(본문 10절). 이렇게 전도에 전력하는 바울과 그가 전하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가만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능력으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바울의 손을 통해 놀라운 능력을 행하신 것입니다(본문 11절).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람들이 바울에게서 그가 쓰던 손수건이나 손수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앞에 걸치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병이 낫고 악귀도 쫓겨나가게 역사하신 것입니다(본문 12절). 그래서 바울의 악귀 몰아내는 권능은 예수님의 권능과 함께 악귀 자신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악귀 쫓아내는 바울의 소문이 퍼지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자기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 보겠다고 시험해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행19:13). 그 가운데는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라 자칭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행19:14). 그런데 스게와라는 제사장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 일곱 형제들이 날조한 가공의 인물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즉 그들 일곱 형제가 제사장을 사칭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를 명하여 내쫓으려 하자 악귀가 대답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타서 그들을 눌러 제압하자 그들이 상처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겨우 도망친 일이 있었습니다(행19:15-16). 악귀를 제어하는 힘은 주문을 외듯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 데 있음을 가르쳐준 사건입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악귀 자신이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고 말할 정도로 바울의 권능이 에베소와 아시아에서 확고하게 인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 앞에서 악귀의 역사는 굴복하고 사라지지 않을 수 없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다 두려운 마음으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습니다(행19:17). 그리고 많은 믿는 사람들이 나아와 과거의 잘못된 행실을 자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행19:18). 

가장 놀라운 일은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자진해서 그들의 마술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값을 계산해보니 은 오만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행19:19). 마술행위는 고대세계에서 매우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특히 에베소에서 이 마술행위가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마술서적은 <에베소 문서>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면서 마술과 마술사들이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패배와 창피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술의 거짓됨과 마술책의 허황됨이 드러나자 마술사 행세하던 자들이 스스로 마술책들을 모아 폐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마술책은 대단히 비쌌습니다. “은 오만”이라 했는데 은전 하나는 시골 노동자가 일하여 받는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마술책 한 권의 값이 얼마였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한 시골 노동자가 160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인 은 오만에 상당하는 책을 폐기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마술과 우상숭배의 도시 에베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19:20은 그 변화의 원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하셔서 주의 말씀이 그 권능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흥왕하면 마술과 이단사설이 저절로 사라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말씀이 약해지면 온갖 마술과 이단사설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이어서 일어난 소동은 그 사실을 잘 뒷받침해줍니다. 

에베소는 아데미라는 여신을 숭배하는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아데미”는 에베소와 소아시아의 사람들이 “위대한 어머니”로 숭배하던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었습니다. 에베소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외치며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행19:34). 에베소에 있던 이 여신의 신전은 아덴에 있는 판테온 즉 만신전보다 네 배나 컸고 고대 세계 칠대 불가사이의 하나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에베소 시가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지기임을 자칭할 정도로 광적인 광적인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습니다(행19:35). 그래서 에베소에는 많은 이교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모조품 아데미 신상들을 만들어 파는 상업활동이 왕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거기에 종사하는 직공들에게 좋은 돈벌이가 되어있었습니다. 데메드리오라 자도 아데미 여신의 신상 모형을 은으로 만들어 팔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장사로 재미를 보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그의 직공들에게도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고 있었습니다(행19:24-25).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여 그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에 처했을 뿐 아니라 그 큰 아데미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아데미 여신의 위엄도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행19:26-27). 

그러자 데메드리오가 자기의 직공들 뿐 아니라 동업자들을 다 동원하고 그들을 선동하여 분노를 촉발시키고 온 시내를 격동시켜 이만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극장으로 군중이 달려오게 만든 일이 있습니다(행19:28-29). 부화뇌동하던 군중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은 것은 지혜로운 말로 군중을 진정시킨 한 관료의 노력으로 그 모임이 흩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행19:32-41). 아무튼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권능을 발하자 우상숭배의 도시 에베소가 뒤집히고 말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당신의 전도자들과 능력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아시아의 수도 에베소는 지독한 우상숭배의 땅이었고 따라서 대단히 전도하기 힘든 곳이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조금 더 훈련시키려 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에베소의 동쪽에서 시작한 바울의 전도였습니다. 에베소의 위쪽 지방도 바울로 하여금 먼저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에베소를 건너 뛰어 마게도니야와 아가야 즉 유럽을 또 먼저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에베소와 아시아의 주변을 일단 복음으로 둘러싸고는 에베소를 공략하게 하신 것입니다. 특히 아덴이나 고린도 같이 철학으로 무장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한 도시에서의 힘든 싸움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바울로 하여금 복음전도의 원리를 확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도의 원리를 가지고 극심한 우상숭배의 도시 에베소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 원리란 우리가 고전1:17부터 2:5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이 전도의 원리를 바울에게 깨닫게 하셨을 뿐 아니라 에베소 전도에 전력하는 바울에게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전도가 안 되고 힘든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해하며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지혜와 인내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도에 대한 저항이 강한 곳일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용기를 잃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 주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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